바르셀로나 어느 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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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다. 이상하게 책에 손이 안 간다.

 

대신에

야구를 보고 (어제 두산 겨우 이겨서 1:1,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

Netflix를 보고 (이건 역시, 늪이다),

심지어 왓챠플레이도 보고 (이건 일드 보기에 적당하다.. 면서 핑계를 대본다),

멍하니 인터넷을 뒤지고 (요즘 읽을 것도 없긴 한데)

열렬히 여행을 다니고 (국내도 다니고 해외도 다니고)

하던 운동 띄엄띄엄 하고 (여행 다니느라 자주 못 갔다.. ㅜ)

...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묘한 죄책감 같은 게 있기는 한데, 그냥 손이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지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기를 거부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을을 타는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내 몸에서 생리적으로 땅기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가 내 원칙이라 그렇게 지내고 있다.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다.

 

올해는 유난히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핑계는 여러가지이다. 독립이란 걸 하느라 바쁘기는 했다. 인테리어를 의논하느라, 가구와 가전을 사느라, 집을 정리하느라, 이것저것 생활에 익숙해지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맞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물론 쳐다보면 여러가지로 한참 더 손을 대야 하지만) 그래서 평상심으로 돌아오기는 했다. 지친 걸까. 뭔가 해내었다는 안도감일까. 가끔 집에서 가만히 누워 생각해보면, 내가 참.. 뭐하러 혼자 살겠다고 이 고생을 했나 싶기도 하다. 그냥 부모님과 살면 지지고 볶고 해도 사람 사는 맛은 날텐데... 이렇게 정리하고 꾸미고 하는 게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니고 결국 나혼자 좋자고 하는 건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이 때 안 해보면 언제 하겠냐, 사람은 혼자도 살아봐야 한다 라는 마음이 불길같이 들면서 지금의 생활이 매우 좋기도 하고 그렇다. 왔다 갔다... 뭔가 마음에서 많은 것들이 오고가는 시기인 것은 맞는가보다. 그 틈에 책이 들어가질 못하고 있는 지도.

 

읽다 만 책들은...

 

 

 

 

 

 

 

 

 

 

 

 

 

 

 

 

풋. 올려놓고 보니... 둘다 '개'가 제목에 들어간다. ㅋㅋㅋㅋ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두 책 다 재미있는 책이고, 특히 체호프의 책은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책인데도 진도가 많이 나가질 않으니 원. (개인적으로 체호프를 좋아하는데) 여행갈 때 훌쩍 들고 떠나볼까 싶기도 하고. 그냥 나를 토닥이고 싶다. 애썼다고, 책 며칠 안 읽는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니 그냥 마음 놓고 지내라고. 그래... 가을의 끝자락 쯤에는 추운 날씨에 이불 뒤집어 쓰고 책을 읽을 날이 오겠지.

 

내일은,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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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06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어엇. 여행 가시는건가요, 비연님?
잘 다녀오세요!! 꺅 >.<

비연 2018-11-06 14: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몇 년을 벼르던 ‘바르셀로나’ 네요. 근데 계획 일도 없이 간다는 ㅜ

로제트50 2018-11-06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여름이 독서의 계절,
가을이 여행의 계절 아닌가요?^^
마음 가는대로 하셔요, 그 동안
책 많이 읽었잖아요~~
돌아오면 다시 찐~하게 책을
열겠죠^^* 그리고 가끔은 멍하는
시간도 필요한 거 아시잖아요!💝

비연 2018-11-06 14:10   좋아요 1 | URL
로제트50님. 완전 위안이 되는 말씀을.. 흑흑. 멍때리는 시간 그냥 잘 보내기로. 불끈.

카스피 2018-11-06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실은 밖으로 놀러나가기 제일 좋은 계절이죠.저도 독서는 주로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나오는 여름에 도서관에서 주로 책을 읽습니당^^

비연 2018-11-06 14: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쵸 그쵸. 역시 독서는 션한 에어컨과 함께 해야 하는..^^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라 믿어볼랍니다!

오후즈음 2018-11-06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올라~~다시가고싶은 바쎌~매력적인밤을 보내세요

비연 2018-11-06 14:12   좋아요 0 | URL
완전 기대되는데 준비를 넘 못해서 가서 많이 헤맬듯 싶어요. 매일매일 버텨보기로~
 

하동에서 열린 다원예술문화순례 다녀왔다. 우리나라 곳곳,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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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냉큼 수상작인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었다. 그 때, 아 이 작가 참 잘 쓰는구나 했었고, 내 마음에 드는 작가야 싶었다. 덕분에 번역이 되어 나올 때마다 열심히 모으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인데...

 

 

 

 

 

 

 

 

 

 

대체로 이런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빨강머리 여인>을 읽으면서... 아 작가의 절정이란 그런 시기란 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으나 왠지 애초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느꼈던 그런 감동은 없어서 다른 책들보다 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는 것 같다.

 

이 책 <빨강머리 여인>은 왠지 이전의 여러 작품들이 짬뽕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이디푸스 신드롬과 나는 잘 몰랐던 동양의 비슷한 이야기, 뤼스템과 쉬흐랍 간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터키의 발전상들이 겹친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결말도 그 신화들, 이야기들과 통하고 있다. 물론, 예상은 되는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아 맞았어 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실망스러워 이런 건 아니었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풀어나가는 이야기 솜씨가 있어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결국 신이 말한 대로 되었군." 마흐무트 우스타는 말했다. "그 누구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는 거지." (p75)

 

아마 이 구절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운명이라는 것. 그게 무엇인지 잠시 이 구절에 머물며 생각. 아버지가 이유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고 그런 아버지의 부재는 '나'에게 일생의 숙제였다. 그러다가 우물 파는 장인인 마흐무트 우스타를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빨강머리 여인'이 운명처럼 마음을 흔들고... 이 만남들이 '나'의 인생을 많이 바꾸어 버린다... 아주 많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알게 되는 여러 사실들도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온 아니 살아오고자 노력했던 '나'의 인생에 파문을 일으켰고.

 

아버지의 목, 피부에 눈길이 멈추었다. 내가 일곱 살 때 한번은 어머니, 나, 아버지 이렇게 셋이 헤이벨리섬 해변에 간 적이 있다. 내게 수영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나의 배를 받치며 물속에 놓았고, 나는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는 아버지를 향해 안간힘을 다해 헤엄쳤다. 내가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조금 더 헤엄을 치고 빨리 배우게 하려고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고, 나는 조금 더 헤엄을 쳐야 했다. 고함을 질렀다. "아빠, 가지 마세요!" 내가 소리를 지르고 당황한 것을 본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강한 팔로 나를 고양이처럼 잡아채 물에서 꺼내 바다에서조차 아주 특별한 향기(값싼 비누와 비스킷 냄새)가 나는 목과 가슴에,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목 바로 그 부분에 내 머리를 기대헤 했다. 그런 다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얘야, 그렇게 두려워할 것 없단다. 봐, 내가 여기 있잖니, 알겠어?"

"네, 알았어요."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p251)

 

돌아가신 아버지를 쳐다 보며 기억하는 '나'의 모습에 괜한 안스러움을 느낀다. 사춘기 시절에 절실히 필요했던 아버지가 부재했었고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던 '나'에게,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들이 조각조각 떠오르면서 그것이 일생의 의지였음 또한 느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굳건했던 아버지, 나에게 큰 의지가 되리라 믿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도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아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만. 긴 소설에서 이 부분이 유난히 인상에 남은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기 때문 아닐까.

 

오르한 파묵의 책을 앞으로도 계속 읽을 지는 모르겠다. 아마 나는 이 작가의 절정을 이미 맛보았기에 어떤 작품으로도 그걸 대체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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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10-1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 이름은 빨강에서 시작해서
고요한 집 순수박물관 ...그의 작품을
다 좋아하는데요...
이번 빨강머리 여인은 제겐
아닌 것 같아요^^;; 판타지 신화...
그 분야를 안좋아해서요;;
소개글 보면서 방향전환인가 싶고..
여태껏 개인적으론 터키역사와 과거회상의
변주곡 같아도 좋았고, 싫증이 안나더라구요~
비연님이 별 4개를 주셔서 한번
읽어볼까 싶었는데...감사해요!^^

비연 2018-10-17 17:48   좋아요 1 | URL
빨강머리 여인도 ... 판타지신화 보다는 신화와 현실을 잘 버무린 내용이라 좋아하실 수도 있을 듯... 전 원래 별 세개반 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어서 그냥 네개로 ㅠㅜ

로제트50 2018-10-17 18:05   좋아요 0 | URL
에이, 안 볼래요^^;;
읽을게 많아서요~~

비연 2018-10-17 18:05   좋아요 1 | URL
헉..^^;;;
 

 

 

 

 

 

 

 

 

 

 

 

 

 

 

 

 

가끔 그렇다. 평소에 읽어야지 읽어봐야지 했던 책들이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문득 저자의 부고를 듣는다. 좋은 글을 쓴다는 말, 듣기만 했는데, 아주 드물게 컬럼이나 보곤 했는데, 더 이상의 책을 낼 수 없는 피안의 세계로 영면하셨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아뿔싸. 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책을 사든다. 그리고 왜 그 전에 좀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후회하곤 한다. 지금 읽은 황현산의 책이 그러하다. 몇 달 전 돌아가셨고 나는 그 이후에야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너무 일찍 보내야만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움과... 가슴 한귀퉁이 스치는 쓰라림이 있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p97)

 

한글날이다. 그리고 황현산의 이 책 제목인 <사소한 부탁>은 글 내용 중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에서 나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언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 말. 사소한 것부터 고쳐달라고 하는 이 부탁. 그리고 우리가 잘못 된게 있다면 아마도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감, 또 동감.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쓸 때 그의 문체는 따뜻하다. 구구절절한 말을 쓰지 않고도 담백하게 그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더 찡하다. 더 절감된다. 말을, 글을 정갈하게 쓰면서도 마음을 전할 줄 아는 분이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타자를 품고 산다. 자기이면서도 자기인 줄 모르는 자기, 자기라고 인정하기 싫은 자기가 자기 안에 있다는 말이다. 이 자기 안의 타자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의지를 훼방하지만, 많은 창조자의 예에서 보듯이 때로는 의식과 의지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 타자가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 점은 국가와 같은 거대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명석한 독재'가 정연하고 잘 계산된 가능성의 기치를 내걸고 실패할 때, 반항하는 사회적 타자들의 들쑥날쑥한 정신은 명석한 정신의 계산 밖으로 밀려났던 무한대의 가능성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미래의 희망이 사회적 주체보다 사회적 타자에게서 기대되는 이유도, 민주주의가 가장 훌륭한 정치체제인 이유도 여기 있다. (p173)

 

그러면서도 당신의 전공 분야인 평론에 들어가면 좀더 어려운 말을 구사하면서도 유연하고 명징하게 표현해준다. 문학을 공부한다는 게 무엇인 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내는 일의 소중함은 무엇인 지, 차분히 이야기한다. 맞다. 차분하다. 그런 표현이 떠오른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면. 크게 분노하지 않고 크게 역정내지도 않으며 장광스러운 이론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어느 새 내 마음에 스미도록 하는 글을 쓰고 계셨다. 더 적절한 어휘로 전달하고자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것이 또한 삶의 이유임을 말한다... 아, 좀더 이 땅에 계시면서 더 좋은 글들로 우리를 다독여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이 아침, 괜한 애통함에 젖게 된다.

 

한 인간의 내적 삶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그 점에서도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p169)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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