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분명히 읽었고 심지어 다 읽었다고 중고 서적으로도 내놓았다. 이 작가의 작품을 그닥 좋아하진 않는데, 이런 내용의 결말은 어떨까 싶어서 골랐던 기억이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일드의 소재로도 자주 쓰이는데, 이번에 이 책이 드라마화되어 등장했다. 책도 봤는데 뭐하러 봐.. 그러다가 그냥 보기 시작했는데... 아. 아. 보면 볼수록... 기억이 안난다.

 

이 책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기억이 안 나..!

 

절망이다. 나는 이 책을 왜 읽었을까. 마치 처음 보는 내용인 양 일드에 푹 빠져 재미나게 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 넌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이제 반 이상 왔으니 대충 생각나야 하잖아. 근데 왜 모르는 거야. 왜. 왜...

 

안 그래도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머리도 둔해지고 마음도 우울해지고 술만 늘고 밥만 늘고 있는데... 이런 일까지 겹치니 정말 사는 게 낙이 없다. 갑자기 책도 보기 싫은 거다. 기억도 못할 거.. 라는 삐딱한 생각에 말이다.

 

책은 중고로 넘겼으니, 어쩔 수 없이 일드로 결말을 확인해야겠다......................

 

 

 

 

 

 

 

 

 

 

 

 

 

 

 

 

 

 

 

 

 

 

이 중에 <고백>, <꽃사슬>을 읽었고, 일드로는 <N을 위하여>, <속죄>가 나왔던 것 같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너무 음침하고 인간의 속내 중에서도 어두운 부분을 사진 찍듯이 보여줘서 읽고 나면 왠지 토가 나온다. (미안..) 그렇다고 기억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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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6-09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일 너무 왕왕 벌어져요.....

매번 새롭게 읽는 것도 축복이라며 위로해오면 뭐래 이놈 싸대기를 올릴까?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일이지요....ㅠ

비연 2017-06-10 16:20   좋아요 0 | URL
흑흑. 큰일에요~ 우짜면 좋을까요 ㅠㅠ 그냥 자연스러운 거다 받아들이기엔.. 넘 가혹한 느낌이라눙 ㅠ

희선 2017-06-10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드라마는 소설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아주 똑같지 않기도 해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갈릴레오 시리즈에는 처음에 여자 형사가 나오지 않았는데, 드라마에 나오게 했더군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중에 여자 형사를 나오게 해서 드라마를 만들 때 나오게 한 건지, 그 반대일지... 미나토 가나에 소설은 드라마로 많이 만들었죠 <고교입시> <야행관람차> <경우>도 만들었어요 <왕복서간>에서 한편은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N을 위하여>는 괜찮았습니다 소설을 보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 봤는데(그걸 보면서 소설도 저랬던가 했습니다), 그 드라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속죄>는 좀 어둡죠


희선

비연 2017-06-10 16:21   좋아요 0 | URL
갈릴레오 시리즈는 좀 많이 바꾼 일드였죠~ 책도 다보고 드라마도 다봤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듯. 미나토 가나에 작품을 드라마로 만든 걸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첨에요. <속죄> 보다가 넘 어두워서 허걱.. 했거든요.
 

 

출근. 비가 온다.

 

원래는 비가 오는 걸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머리가 곱슬이고 힘이 없어서 비오고 습하면 머리가 구불구불해지면서 축 늘어진다) 오늘은 비가 반갑다. 가물어서 다들 걱정이고, 정말 가물다 느낄 정도였으니까. 근데 요즘엔 비가 좌락좌락 내리는 날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다. 장마도 없어진 것 같고, 부슬부슬 떨어지다가 그치니. 이걸 비라고 해야 하나. 옛날같은 비가 문득 그리워진다. 도로에 물이 막 넘쳐나서 신발이 다 젖고 그랬었는데. 흠. 이건 하수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인건가? 허허.

 

5일날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나흘이나 놀았는데, 출근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뭘 했는 지 모르겠는 거다. 도대체 뭘 했지? 뭘 했지? 사실 책도 많이 안 봤고... 아 요즘 정말 집중력 완전 떨어져서 도대체가 책 진도가 안 나간다고 다시한번 투덜.

 

하루는 조카랑 엄마랑 <원더우먼>을 봤다. 조카가 재량휴일을 받았는데, 동생네가 조카를 우리집에 투척. 나의 휴가랑 겹치는 바람에 그래, 그럼 영화나 보러가자 해서 간 거였다. <캐러비안..> 볼래? <원더우먼> 볼래? 했더니 <원더우먼> 해서 갔고. 조카와 엄마 함께 영화보고 점심먹고 한 건 좋았다. 피곤하긴 했지만, 기분전환도 되었고. 조카가 이제 다 커서 - 세상에. 벌써 중1이다 - 말도 좀 통하고.. 아직 사춘기는 안 왔는 지 남자애가 수다가 엄청나서... 야. 입좀 다물어 해도 계속 조잘조잘. 조카라 그런 지 그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한 건... 콩깍지 씌워진 고모의 모습.

 

<원더우먼>은 재미있었다. 그닥 기대하지 않았던 거에 비하면.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처음엔 좀 지루했고 중간부터 흥미진진해졌는데, 마지막에 가서 김 빠지는 결말이라 그렇긴 했지만, 파워풀한 원더우먼의 모습은 반가왔다. 예전에 미드로 나왔었던 그 원더우먼은 예쁘장하고 뭔가 여성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원더우먼은 '투사'였다. 아 저런 캐릭터, 옆에 있으면 든든하겠어. 이런 느낌이 쫘악 전해지는?

 

근데 우습게도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상대역인 크리스 파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일단 크리스 파인이 좀 멋졌었고.. 스타트랙부터 눈여겨 봤었는데, 흠. 멋져.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때의 그 눈빛. 버튼을 누르기 전 살짝 망설이던 그 손동작. 그걸 보면서, 아 대의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무엇이냐. 아마도 다음날이 현충일이라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존재는, 대의 앞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존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목숨을 바친다는 것, 사실 너무 무섭고 끔찍한데, 그걸 버릴 수 있었던 사람들. 그들에게 국가적인 보상과 명예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이든, 그게 아니든. 아마 현충일 대통령의 추념사도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가 싶다...

 

암튼 하루 정도 그렇게 보낸 건 오케이. 나머지 3일은 뭘 했나. 뭘 했나. 아 모르겠다. 계속 잤나. 계속 잤구나... 철푸덕. 요즘은 이상하게 연휴가 되어도 여행도 안 가는 꿀꿀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지라. 좀 반성 중이다. 이제 하반기 계획도 좀 짜고... 뭔가 활발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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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난 김에 기다릴 것 없이 찾아갔다.
....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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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걸 읽고 있다. 1,000페이지쯤 된다.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 갸우뚱하면서 읽고 있다. 뭔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뭔 말인지 알고는 싶은 건가 의아스럽기도 하고. 6월까지 한번 쭈욱 다 읽을 생각인데... 될까? 아 몰라.

 

오늘은 5월 30일. 내일이면 5월이 끝난다.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걸 측정자를 만들어서 세월 흘러가는 걸 느끼게 한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뜯겨가는(물리적으로 뜯지는 않지만) 달력을 보며 한숨 짓는 나를 보면, 못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7년의 반에 거의 다다랐다는 게 믿겨지냐고. 한 일도 없는데. 하겠다고 한 일은 하나도 못한 것 같은데. 이런 걸 우리가 '허송세월'이라고 부르는가.

 

 

 

 

 

 

 

 

 

 

 

 

 

 

 

 

 

 

이렇게 약간 무력하고 쓸쓸하다 할 때는, 잔잔한 일본 소설이 제격이다. 일본 작가들은 참 재미있는 것이, 정말 끔찍한 소설들도 많이 쓰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잔잔하기 그지없는 소설들을 잘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거.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조미료 하나도 안 친 신선하고 담백한 유기농 야채를 먹는 느낌. 청량함. 잔잔함. 깨끗함.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책도 그럴 것이라 예상하며 펼쳐 들었다. 그래그래, 세월 간다고 그만 투덜거리고 이런 책으로 마음을 좀 정화하렴, 비연.. 이런 심정인 것이다. 얼른 집에 가서 이 책을 읽고 싶어 좀이 쑤신다. (... 라기 보다는 회사 있기 싫은 거 아닐까? =.=;;)

 

가을이 되어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금방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을 바라볼 때만, 외로움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처럼, 낮에는 찬란한 햇빛이 반짝이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시기에 외로움이 더 절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는 거. 내 심정이 요즘 그렇다. 뭐라 설명하기는 그런데... 아뭏든 덕분에 집중력 제로 무력감 최고조 이런 상태. 괜히 사람들을 만나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떠들고 술을 마시고 해봐야 남는 건 적막감과 사무치는 그리움 뿐이라 이제 당분간 자중하며 지내기로.. 마음 먹어본다. 여행.. 도 가고 싶은데, 묘하게 이런 심정으로는 여행 계획도 잘 안 짜진다. 결국은 집에 틀어박혀 음악 들으며 책이나 읽는 게 해법.

 

다음 주는 5일에 휴가를 내어서 본의 아니게 며칠 쭈욱 쉬게 생겼다. 정말 여행 계획 짜다가 집어 치웠고 ... 어떻게 지낼까 생각 중이다. 하루는 나가서 전시를 보고 주변에서 사진을 찍을까. 또 하루는 어느 카페에 틀어박혀 책 쌓아놓고 읽을까. 또 하루는... 휘릭 차를 몰고 나가서 바다나 보고 올까. ... 마음 속에 뭔가가 불쑥불쑥 올라오곤 하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매일 10시쯤 일어나 점심도 아닌 것이 아침도 아닌 것이 그런 밥을 먹고는 또 퍼져 자다가 저녁 먹고... 운동이나 꾸역꾸역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나흘이 될 수도... 있다.. (가능성 제로라고, 양심상 말하기 어렵다 ㅜㅜ)

 

영화는 하루 봐야겠다. <노무현입니다>. 이 영화는 꼭 혼자 볼 거다. 예전에 <변호인> 보러 갔다가 대성통곡을 한 경험이 있어서, 영화 보는 내내 질질 짤 것으로 예상되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가기도 전에 울거라고 생각한다니. 사실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칠고 늘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이, 버거웠다. 생각은 옳으나 처리하는 방법이 세련되지 못해서 빚어지는 많은 일들이 아쉽기도 하고 화도 났었다. 그래, 그랬었다. 하지만, 퇴임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대통령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시기상조의 일이었던 것이기는 하나 행운이었다 싶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퇴임한 대통령의 멋진 모습을 남겨주실 것을 기도했었다... 이번에 정권이 교체되고... 다시한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대중은 열광하고 역사는 그의 존재를 인정할 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적으로는 참 외로왔겠다, 참 힘들었겠다 싶어서 가슴이 따끔하다.... 그래서, 혼자 가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나저나... 나의 오월은 종합검진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수면내시경으로 끝날 나의 종합검진. 멋지지 않은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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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5-3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자격증을 준비 중인가 봅니다. 수험 교재로 보이는데 엄청난 두께군요. ^^;

비연 2017-05-30 20:49   좋아요 0 | URL
흠흠... 한번 해볼까 싶은데... 이 나이에 하려니 머리가 딱딱..ㅠㅠ
 

 

 

 

 

 

 

 

 

 

 

 

 

 

 

 

별 얘기 아닐 수 있다. 그냥 영국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위치한 어느 작은 중고서점에 있는 사람과 미국에서 그닥 잘 나가지는 못하는 작가간의 책 있어요 책 보냈어요 뭐 이런 내용들만 가득한 편지일 뿐 일수도. 사실 내용도 그렇다. 그 내용 이외에 매우 대단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리 재미있고 훈훈하고 아름다운 거지..?

 

1949년 10월 5일

선생님께:

토요문학평론지에 실린 귀하의 광고를 보니 절판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고 하셨더군요. 저는 '희귀 고서점'이라는 말만 봐도 기가 질리곤 하는데, '희귀' 하면 곧 값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p9)

 

 

이렇게 미국의 헬렌 한프가 영국의 채링크로스 가 84번지에 있는 마크스 서점에 보낸 편지가 시작이었다. 1949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였고 그래서 영국의 사정이 그닥 좋지 않은 시기였다.

 

 

1949년 10월 25일

친애하는 부인,

10월 5일 보내신 편지에 대한 답신입니다. 저희는 부인의 문제 가운데 3분의 2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께서 원하시는 해즐릿의 수필 세 편은 논서치 출판사에서 간행한 산문선집에 들어 있고, 스티븐슨은 젊은이를 위하여에서 찾았습니다...

(p10)

 

정중하게 보낸 답신에 서명은 FPD. 그것이 '친애하는 한프양'으로 호칭되고, 서명은 '프랭크 도엘 드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친애하는 헬렌'으로 호칭되고 서명도 '프랭크'로 바뀌는 동안 그들 사이에 생기는 유대감이란...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만 했다. 헬렌 한프의 까칠하면서도 책에 대한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편지와 사정이 안 좋은 영국의 사정을 생각하여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료품들을 챙겨서 서점 식구들에게 보내는 마음이 전해지면서 근 20년 동안 프랭크 도엘 뿐 그의 아내 노라와 딸뜰, 서점의 모든 사람들, 세실리와 마크스... 과의 우정이 피어나게 되는 과정들... 정중하고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일면 유머러스한 프랭크 도엘의 편지들. 무엇보다 20년이라니. 

 

 

1949년 12월 8일

...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라고 외쳤답니다...

(p18)

 

 

중고책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정 중에 이것에 비길 게 있을까 싶다. 누군가의 손을 거친 책에서 그가 즐겨 펴던 페이지가 저절로 펼쳐지는데 그 대목이 나의 마음과 통할 때의 그 찌릿함. 아. 생각만 해도 훈훈하지 않은가.

 

 

1951년 4월 9일

친애하는 한프 양,

소포에 대한 인사가 없어 혹시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염려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를 감사도 모르는 패거리로 생각하셨겠지요. 사실은 제가 그동안 안쓰럽게 바닥난 재고를 채우기 위하여 교양 있는 가정을 찾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제 집사람은 이제 저보고 숙식만 제공받는 하숙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물론 건조 달걀과 햄은 말할 것도 탐스러운 고기까지 들고 집에 들어서자 집사람은 저를 썩 괜찮은 남자라 여기며 모든 것을 용서해주더군요. 그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한 덩어리로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p47)

 

 

공식적으로 또는 어느 정도는 건조한 답변만 보내던 프랭크 도엘의 이 유머러스한 답변이라니. 그냥 서점에서 책을 사는 손님과 책을 파는 점원의 관계가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을 쓰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1951년 4월 16일

... (그리고 미래의 소유자에게도 그랬을 거에요.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p50)

 

 

책에 뭐가 쓰여 있으면 버럭 화가 날 수도 있는데, 그 책을 가졌던 사람의 글을 보면서 마음이 통함을 느끼는... 책을 애정하는 헬렌 한프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책이라는 대상이 그저 소유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같은 책을 바라보며 역사를 가질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

 

 

 

1957년 5월 3일

친애하는 헬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지난 편지에서 요청한 세 권이 일제히 당신한테 가고 있습니다. 1주일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묻지 말아요. 그저 마크스 서점의 서비스라고만 생각해줘요. 부족한 5달러 청구서를 여기에 동봉합니다...

(p108)

 

 

한번의 만남도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전달하며 20년이 흘렀다. 늘 일에 쫓기고 생활에 시달렸던 헬렌 한프는 늘 방문하고 싶어했으나 영국을 가보지 못했고, 그러다가 프랭크 도엘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면서 이 책은, 이 편지 왕래는 끝나게 된다. 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1969년 4월 11일

...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헬렌

(p145)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살면서 만나서 지지고 볶고 얼굴을 마주대고 이 일 저 일 함께 겪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가끔씩 소식을 전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인연이 있다. 그것이 책을 매개로 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일이 될 수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사는 이야기, 나누는 이야기들을 함께 한, 그렇게 해서 둘만의 인연이 아니라 그 주변의 많은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던 세월들이... 마음에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뭐라 장황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훈훈함이 가슴 가득 퍼지는 책. 그런 책이다, 이 책이.  

 

이 책은, 영화로도 나왔다. 우리나라 제목은 <84번가의 연인> - 아 유치해라. 이건 연인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닷 - 안소니 홉킨스와 앤 밴크로프트가 나온 영화. 나는 어제 네이버에서 이 영화를 5,000원이나 주고 다운로드를 받았다. 꼭 영화로 만든 걸 보고 싶었다. 영화도 참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어서... 주말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릴랙스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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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 중에서 잘 찾아보면 읽어 볼만한 것이 있어요. 원하는 책을 찾을 때와 무작정 책을 찾을 때의 느낌을 비교하면 완전 달라요.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 기분, 정말 짜릿합니다. ^^

비연 2017-05-30 10:4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짜릿한 기분 느껴보고 싶네요. 절판된 책 중에 읽어볼만 한게.. 저번에 한 권 눈에 들어왔었는데.. 중고서점에 한번 가볼까... 그냥, 이 책의 헬렌처럼 편지를 써볼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7-05-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영국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유럽에 갔을 때도
영국에 가지 않았었는데, 영국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니
이제는 영국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지더라구요 :>

비연 2017-05-30 15:23   좋아요 0 | URL
영국은... 참 독특한 나라라는 생각 들어요.
예전에 런던만 잠깐 갔었는데...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영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아.. 런던도 다시 가고 싶고 여기저기 영국을 알고 싶구나 싶어져요. 헤이온와이도 가고 싶구요. 흠... 계획 짜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