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사피엔스> 유발하라리의 최신작, 호모데우스.
호모 데우스 ‘Homo Deus’의
‘호모Homo’는 ‘사람 속을 뜻하는 학명’이며,
‘데우스Deus’는 라틴어에서 ‘신god’이라는 뜻
540쪽의 방대한 내용을 읽어보건데,
호모사피엔스를 넘어, 인간은 신이 되려 한다는.
단순히, 생명을 만들어내는 신이 아니라,
그 어떤 것에서도 관장하려는 일부의 '신'이 있음을.
중세, 종교가 신의 말씀을 받들어 사회를 관장했듯,
과학기술까지 결부되고 보니, 더더욱이
신처럼 세상을 장악하려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짐승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호모사피엔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가 이룬 업적들이 대단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서술하고 있는 내용을 보자하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부의 욕망으로 인해
멈추지 않는 폭주로 인해, 미래는 과연 어찌 될지 걱정이 됩니다.
유기체인 우리의 알고리즘을 넘어서는 기계, AI의 알고리즘을 보건데
인간은 더 센 무엇이 있겠거니 넋놓고 보기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손으로 스스로 위험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요한 과제 하나는...
우리 자신의 힘에 내재된 위험들로부터
인류와 지구를 보호하는 것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 이모저모.. 역사, 사회, 문화 등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깨의 압박이 대단한 책임에도, 읽는 재미가 있었던 인문학 책이지요.
중세 종교의 역할을 보건데,
신의 말씀이라 하며 어찌보면 허구일 수 있는 이야기에 모두가 질서를 갖춰 복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였고 비록 그 종교가 대신 인본주의로 넘어오면서,
그 성질이 여럿으로 갈라지기는 했지만 종교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기울어진 시각으로 맹신하게 되고
그 맹신에 의거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또한, 인간은 '상호주관적인 실제'들을 장치로 두고 인간은 공동의 이야기망을 형성, 서로 끈끈해지고자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 이모저모.. 역사, 사회, 문화 등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깨의 압박이 대단한 책임에도, 읽는 재미가 있었던 인문학 책이지요.
중세 종교의 역할을 보건데,
신의 말씀이라 하며 어찌보면 허구일 수 있는 이야기에 모두가 질서를 갖춰 복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였고 비록 그 종교가 대신 인본주의로 넘어오면서,
그 성질이 여럿으로 갈라지기는 했지만 종교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기울어진 시각으로 맹신하게 되고
그 맹신에 의거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또한, 인간은 '상호주관적인 실제'들을 장치로 두고 인간은 공동의 이야기망을 형성, 서로 끈끈해지고자합니다.
인본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있지요.
다양성이 열리는 기회가 분명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된다는 인간세상의 업그레이드를 꽤하게 되는 계기가 된 다는 점은 분명합니다만, 여전히 서로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인본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합니다.
중세 종교가 신의 말씀에 복종하라는 관점으로 타인을 굴복시키려 했더라면,
인본주의에서는 너의 행위가 내 감정을 해침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인적인 (혹은 사회적인) 이기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21세기에 전개될 실질적 상황은 인본주의에서 강조하던 '자유의지'를 위헙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은 경제적, 군사적 쓸모를 잃을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은 그들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2. 시스템은 인간에게서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히 발견할테지만, 개인으로서의 가치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3. 시스템은 일부 특별한 개인들에게서 가치를 발견할 테지만, 그런 개인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된 초인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엘리트 집단일 것이다.
기술개발은 넘어넘어 유기적 알고리즘을 대체할 기계지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네트워크가 훨훨 자유로이 열리고, 개인의 행동이 수월히 파악되고 그 또한 집단적으로 수집되어 가면서
'데이터교'에서는 인간보다는 기계지능에 의존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자본주의가 그랬듯이 데이터교도 처음에는 가치 중립적인 과학이론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옳고 그름을 결정할 권한을 주장하는 종교로 변화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해 서술된 부분을 보자하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입장으로 사실만 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이 4차산업혁명에서의 역할을 보건데
이제는 가치중립지 아닌, 옳고 그름의 결정을 인간대신 하는 위치까지 이르렀습니다.
더이상 일개 인간의 경험을 근거한 판단에 맡기지 않으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호모 데우스>는 질문과 함께 마무리를 합니다.
넋놓고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부탁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 세상의 이치를 알아내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데이터교가 급부상하고 있다 싶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독자들에게 이 질문들을 던지고자,
자세한 설명을 해왔던 것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