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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역설 - 비난의 순기능에 관한 대담한 통찰
스티븐 파인먼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2월
평점 :
제목을 보면 상당히 급진적일 것 같은 책,
게다가 겉포장을 펴보니
● 분노하라! 거침없이 비난하라!
하지만, 걱정마세요.
'이 책은 다 뒤집고 새로 세상을 만들자'!?
이런 책, 아닙니다!! 안심하고 읽어보시기를요.
"비난이 없다면
도덕규범은 실천이 보장될 수 없고
법적 구조도 지탱될 수 없다."
알아서들 잘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법적 구조를 만들어 두어도, 편법으로 단물을 뽑아먹고
사회를 껍대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들이 있으니,
저자가 영국사람이기 때문에,
영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사회가 어찌되건 말건, 내 이익을 취하려는 행태는
인간의 자연적(?)인 특성이다 싶었더랍니다.
정치 잘 하라고 나라에서 보조를 많이 해주는데
심지어 주택보조도 해준다 하네요.
그랬더니, 주소를 여기저기 뿌려두어
나라돈으로 좋단다 하던 정치인들이 꽤 있었다고.
그러하니,
비난이 없다면 도덕규범은 실천이 보장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각이 회의적이건 현실적이건간에,
중요한 건 사회를 제대로 만들고자 하는 모두의 바람.
그리하여, 비난이 기여하는 바가 분명 있으리 기대하며,
비난의 역설을 읽어보게 됩니다.
직접적인 비난의 언어들도 물론 많지만,
책에서 알려주는 '문화 방해'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문화 방해는 방법이 혁신적이고,
광고업자의 기법을 그들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거대 기업의 옆구리에 돋힌 가시 같은 역할을 한다.
심각하면서도 재미를 준다.
기업이 예쁘게 포장하려는 광고에 대해
해학을 가미한 비난, 작품으로 응해 메세지를 담는 방법.
거친 언어로 비난의 메세지를 전하기보다는,
해학이라는 살짝 여유를 넣은 비난의 방식,
급진적인 압력 집단처럼 입장이 명확할 지라도,
뜻을 함께 하는 이를 불러들이기에 부드러운 방식이 인상적이네요.
기업, 정부, 정치인 등.. 사회 속에 영향이 큰 집단에 대해서는
국민들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비난의 역설>에서 비난에 대처하는 잘못된 예를 알려주기를
포드를 꼽아 설명해봅니다.
포드는 2005년 '지속 가능성 연차 보고서'에서
25만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하여
환경주의자들에게 크게 환영받지만, 2006년 중반, 약속을 저버립니다.
사업상 수익성이 좋지 않아 철회를 한 것이지요.
이 문제로 인하여 환경 단체들의 신랄한 비판이 돌아옵니다.
게다가 CEO는 사과랍시고 말을 늘어놓다가...
●...정상적인 내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감정적으로는, CEO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만
실망한 대중에 대해 불필요한 말을 했군요. 신세한탄 같네요.
마치... 당신들이 날 귀찮게 합니다- 느낌으로 말입니다.
영향력이 있는 자리라면, 언행은 이러저러 신중해야 합니다.
사과라면 사과답게 해야겠죠.
비난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은,
책의 초반에서 읽었듯이, 실천을 보장하고 싶어서이지요.
정부의 움직임은 더더욱이 국민들에게 영향이 큽니다.
그러하니 기대도 크고, 실망할 경우 반응의 강도도 셀 수 밖에요.
● 공공기관에서 잘못이 일어날 경우,
설명 책임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거버넌스의 핵심요소라 합니다.
대중에 대한 설명 책임이 있다는 말은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도 같으나,
문제는 정부도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지고보니,
대중에게는 정부는 한 덩어리지만 그 안에서도 참 복잡한 상황이다 싶었습니다.
사실, 권한을 집중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미국도 의회와 정부가 분리되어 있듯이,
우리도 또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분리된 시스템 이기는 하죠.
요즘 상황 보면, 시스템이 있으면 뭐하리.. 싶곤 하지만..
아무쪼록 잘못이 일어났다 하면, 설명책임을 다해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말입니다.
비난의 순기능 중 큰 부분이
책임지는 주체자들로 채워지는 사회를 이룩한다는 점이다 싶었습니다.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고, 해야 할 도리의 책임을 다하고,
사과를 하여 다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비난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짓사과가 이뤄진다거나 <국가지도자들의 사과>에서 보면,
떠밀리듯 사과를 하는 내용에도 정작,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기도 하고,
거기에 20년 뒤, 민족주의자들 지지를 위해 강제성없다며 뒤집기도 하여
● 이렇게 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의 상처를 다시 헤집었다.
잘못과 불의를 바로 잡고자 하는 그 시작을 위한 비난의 노력은
단순히 한 나라만이 영역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사회 전체가 영역이겠지요.
더불어, 비난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도 말하며,
'회복적 사법'을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 회복적 사법에서는 용서가 필수적이다.
용서는 비난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자신을 괴롭힌 자를 사면해주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가 뉘우침이나 회개를 보인 이후에 피해자가 용서하면
피해자가 심리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관용으로 처벌을 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려는 법적 조치도 있지만,
가해자의 뉘우침이나 회개를 끌어내며 피해자의 용서를 통해
사회가 또 다르게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실제로 학교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킬때, 무관용원칙을 내세우기 보다
회복적 사법을 이용한 경우, 학생들의 행동이 더 나아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물론 모든 경우에 회복적 사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인간적 존엄성을 크게 훼손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하네요.
비난의 순기능이란,
사회 전체로 볼 때는 법치와 준법의 본질을 살리는 도구로써,
잘못과 불의를 바로잡는 시작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겠고,
미시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는 주체자의 양산이겠다 싶습니다.
물론 보상 중심의 문화에서,
중대한 결함으로 피해를 유발한 경우, 타격을 받으니,
'극도로 조심하는' 움직임을 끌어낸다 싶습니다.
사회정치도서, <비난의 역설>은
타인을 깎아내리고 우위에 올라서려 하는 비난심리부터 시작,
비난의 나쁜 점들을 1장에서 설명하며 무분별한 비난을 경계하도록 교육(?) 시킨 후,
건강한 비난의 순기능으로 시민사회를 건전히 만드는 교육을 시킵니다.
그리고 비난사회에서 회복사회로 성장하기 위한 비결을 알려주지요.
처음에 마음을 굳게 잡고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비장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건가
조금 떨면서 봤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은 큰 틀을 두고 그리 무겁지 않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싶습니다.
사회정치 도서임에도, 우리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내용이기도 하여
적당한 무개감을 느끼며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