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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빌 브라이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09년 7월
평점 :
우리가 인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희극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천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단시들만이 전해졌다면, 그를 아주 검은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우리는 그를 우아한 사람, 지적인 사람, 철학적인 사람, 우울한 사람, 책략에 능한 사람, 신경질적인 사람, 쾌활한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등으로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작가로서 셰익스피어는 이 모두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p27~28,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찾아서> 중에서
'깔끔하게 턱수염을 기른, 머리가 벗겨졌지만 그리 못생기지 않은 40대 남자..... 왼쪽 귀에 금귀고리를 달고..... 표정은 자신감이 넘치고 매우 호쾌하다. 이 남자는 당신의 아내나 다 자란 딸을 가볍게 맡길 만한 남자는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로 알고 있는 '챈도스 초상화'에 대한 작가의 설명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생존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무도 그가 진짜 셰익스피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다만 그리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지요. 셰익스피어의 초상으로 알려진 작품은 두가지가 더 있다고 합니다. 1623년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 First Folio-의 권두화로 실린 동판화-드뢰샤웃 판화-와 그의 유해가 묻혀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의 벽으로 된 셰익스피어 기념물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채색된 실물대의 조상인데, 두가지 모두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그린 것으로 솜씨가 별로 좋지 않았던 화가들에 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한눈에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라고 알고 있는 그림은, 실은 신빙성이 높지 않은 작품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모두가 그렇게 믿고 서로에게 말하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100여년 전의 명성황후의 모습과 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일어나고는 하는 논란을 생각해 보면, 400여년 전의 셰익스피어의 모습에 대한 논란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역사적인 자료로 당연시하며 존중하는 것들의 허술함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묘한 것은 우리가 그의 초상을 보면 즉시 그가 셰익스피어임을 알아보지만, 실상 우리는 그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생애나 성격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역시 비슷하다. 그는 잘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이 책은 이처럼 어설픈 초상화 세개를 가지고 누구나 그리 믿게 된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듯이,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빈약한 몇가지 사실만을 가지고 그의 완벽한 생애를 무리하게 재생해 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제 알려진 사실보다 더 많아져버린 추측과 억측들, 그리고 그것들이 사실처럼 호도되어 버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어떤 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이야기되고 있기에,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상상을 가미한 사람들의 추측인지가 헛갈리는 것이 사실이기에, 실제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셰익스피어의 일생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사실과 추측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구분해 나가며, 현재까지의 자료에 근거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처음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들을 분명히 인정하고, 타당성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 또한 충분히 남겨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생애와는 별개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는 다양한 작품이 실제로 남아 있으니-실제 원작인지, 가필되거나 고쳐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실제 셰익스피어의 생애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그의 생애 자체보다는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평가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이겠지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출생에서 죽음-1564~1616-까지를 다루는 앞부분-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보다는 마지막 9장의 '이색 주장을 펴는 사람들'편을 가장 흥미롭게 읽을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지금까지 알려진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부분인데, 베이컨이나 옥스퍼드 백작 등이 실제 저자라는 주장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죽고나서 200여년 동안 그의 저작에 대해서 의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1800년대 초반 델리아 베이컨이라는 미국 여성의 알수 없는 확신에서 시작된 셰익스피어가 진짜 작가가 아니라는 집착에 사로잡힌 연구의 결과가 뜻하지 않게 베이컨 저작설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였고, 그러한 주장이 일종의 종교처럼 번지며 소문이 소문을 낳는 과정을 거쳐 진실인양 확대 재생산 되고 있음을 추적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를 대신할 후보자로 베이컨에서 시작된 명단은 옥스퍼드 백작, 크리스토퍼 말로, 펨브로크 백작부인 메리 시드니 등을 거쳐 이제는 그 수가 50여명에 이른다고 하니, 호사가들의 실없음에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실제 현재 우리가 접하는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분명 400여년전에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인 작가였던 인간 셰익스피어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타 다른 주장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의 초상을 보며 셰익스피어라고 느끼듯이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의 생애의 흔적들은 그가 분명 위대한 작가였고, 그러한 작품을 남길 만한 재능과 환경 속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초상속의 셰익스피어를 아는 것이 실제 셰익스피어를 아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듯이, 우리가 접하고 인정하는 셰익스피어의 명성과 탁월함이라는 것도 400여년 전에 존재했던 인간 셰익스피어 자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라는 명성과 탁월함 속에는 400여년의 세월동안 그의 작품을 보존하고 정리하고, 시대에 맞게 이리저리 다듬고,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탁월함과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서 알린 수많은 학자들과 연극인들,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의 연극에 열광할 줄 알았던 관객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 주장할 수 있지만 그러한 영광의 근본 바탕은 물론 400년전 실존했던 스트랫퍼드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겠지요. 이 책은 우리가 아는 영광의 관을 쓰고 있는 셰익스피어라는 신화적인 인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인간 셰익스피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을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바탕 위에서 이제는 그의 작품들의 탁월함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문헌은 그 시대에 그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있습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는 그의 시대에 살고 있었던 어떤 극작가보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6, 데이비드 토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