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마인드
리처드 왓슨 지음, 이진원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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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이 변하면 인간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도 그에 맞게 적응을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변화와 적응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것들마저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개는 그런 변화와 적응의 과정은 우리를 더욱 더 인간적이고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믿을 것입니다. 한데 최근에 우리의 문화 양식이 디지털화 되어가면서 인간의 근본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의깊게 읽었던 책은 이 책에서도 언급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디지털 문화에 매몰되어 자신이 변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고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디지털 문화가 우리의 사고방식에까지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이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내용이었는데, 아마 이 책도 그러한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주는 과도한 정보, 넘치는 정보의 숲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으며, 깊이있는 사고를 방해받는 우리의 모습의 결국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경고와 그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으니까요.....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머제니치는 여러 실험을 통해 인간의 두뇌가 어떤 자국이나 경험에도 반응하는 '플라스틱'과 같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은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에 의해 틀이 잡힌다는 것이다..... 머제니치는 인터넷이 우리 두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면서 '집단 리모델링'이 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미 빠른 대응 문화가 만들어놓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지속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적절한지 스스로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다. 어쩌면 뭔가를 할 수 있는지 묻는데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그것을 정말 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볼 시간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p10~11  

 혹자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디지털 기기 등을 이용하여 얻고, 디지털 문화의 사용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디지털 문화는 단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 등의 용어가 우리 귀에 낯설게하겠습 느껴지지 않듯이, 이미 그러한 디지털 문화는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조적인 것들이 아닌 사람의 행동을 자신의 힘아래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마이클 머제니치의 실험에 담긴 우리의 주위을 둘러싼 광범위한 디지털 문화가 우리를 디지털 문화라는 틀에 맞게 변형시키고 리모델링 시켜서 결국은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디지털 문화에 종속시킬 것이라는 암시는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문화가 단순히 인간을 돕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순진하게 세상의 변화를 바로보고 있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결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기술이 더 오랫동안, 더 광범위하게 사용될수록 디지털 문화가 형성하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정보를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인간상이 형성되고 시회의 주류가 될 것이며, 그러한 흐름을 역류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우리를 진정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올바른 사고다. 나는 이것을 '깊은 사고 deep thinking'라고 부른다. 이런 사고는 세상을 발전시키는 생각들과 관련돼 있으며 전략적 계획의 수립이나 과학적 발견, 예술적 창조 활동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것은 엄격하고, 집중적이고, 광범위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조심성 있고, 사색적인 사고다. 이런 사고는 정보의 흐름이 제한적이고, 사고와 사고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깊은 사고는 '천천히 흐르는' 사고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얄팍하고, 편협하고, 급하고, 피상적이고, 분열되고, 산만한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p13   

 컴퓨터에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지만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떠다니고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흘러다니지만, 인터넷 시스템 스스로가 근원적인 질문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일방적인 내용만을 흘려보내던 텔리비젼과 같은 미디어보다는 조금더 나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더 똑똑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디지털 기기를 통하면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고 더 복잡하고 긴 수식을 간단히 계산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하던 많은 일들을 디지털 기기에 더 의존하고 맡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듯 합니다. 저자는 그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얄팍하고, 편협하고, 급하고, 피상적이고, 분열되고, 산만한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뛰어넘는 '깊은 사고'임을 깨우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디지털 문화의 홍수속에서 깊은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의 하나로 추천하는 것이 '종이책 읽기'입니다. 스크린의 정보가 빠르게 다양한 정보에 이를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분리된 것이라면 종이책이 머금은 정보는 비록 더디게 읽힐지라도 다른 책들과 역사적 배경과 관련한 맥락을 가지며, 더 전반적이고 사색적이면서 체계적인 주장이나 개념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동은 다소 줄이고 반대로 생각은 늘려야 한다. 그리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속도를 줄여야 한다. 단순한 행동과 발전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을 지금 당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p14~15 

 대표적인 미래학자로 통하는 저자는 디지털 문화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더 강조하고 싶어하는 내용은 바로 그러한 디지털 문화가 가져올 폐해를 지적하고 극복하여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끼치는 영향에 대한 부분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디지털 문화가 가지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 자신이 제안한 '깊은 생각'을 일상화 하기 위해 필요한 '사고를 심화 시키는 방법'이나 '깊은 사고에 도움이 되는 방법' 등에 대한 내용으로 채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단순히 미래의 우리 모습을 예측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디지털 문화가 가지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미리 자각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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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읽기 - 전체주의의 탐험가, 삶의 정치학을 말하다 산책자 에쎄 시리즈 8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 / 산책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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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서 악의 평범함(?진부함)에 대해서 논했던 아렌트는 20세기 독일 실존철학의 3대 거성인 하이데거, 후설, 야스퍼스를 차례로 사사한 여성 철학자(?)입니다. 실제로 아렌트 자신은 철학자라는 호칭에 대해, 철학은 '단독자인 인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우는 것을 반기지 않았으며, 자신은 '한 인간'이 아닌 지구에 살며 거주하는 '인류'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철학자라기 보다는 '정치이론가'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쾨니히베르크 (칸트의 고향)와 베를린에서 자랐습니다. 괴니히베르크 대학을 졸업하고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와 철학을 배웠는데 그 과정에서 두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하며 후에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이후 프라이부르크에서 후설에게 현상학을 배우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야스퍼스의 지도하에 <사랑 개념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비해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하였고, 1951년 미국 시민권을 얻고, 1953년부터 프린스턴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버클리 대학, 시카고 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51년 간행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되었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줌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이 책이 다루는 <인간의 조건>, <정신적 삶>을 비롯한 <폭력의 세기>, <혁명에 관하여>, <시민적 불복종>, <공화국의 위기: 정치에 있어서 거짓말>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1975년 사망하여 뉴욕의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혀 있습니다. 아렌트의 업적은 전체주의, 권력의 속성과 정치, 권위 등과 같은 주제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등 '전체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주장한 악의 평범성(진부성)에 대한 개념은 오늘날까지 크게 인정받고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왜 오늘 아렌트가 주목받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 <옮긴이 해제: 오늘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에 주목하는가?>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1990년 중반 서구 학계에 불어닥친 아렌트 재해석 열풍은 동유럽의 '벨벳 혁명'과 그에 뒤따른 시민사회의 태동이 기폭제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회주의 국가 통제가 해체된 자리를 민선 체제가 차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요구되었는데,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같은 탈근대적 사회이론들은 비판이상의 정치적 대안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의 갈망을 채우지 못했지만, 아렌트의 정치 행위와 판단에 관한 이론은 시민들 각자의 행위와 정치적 결과의 상관관계를 조명하면서,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매우 실질적인 지향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현재 우리가 아렌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 서구에서 아렌트 재해석의 열풍이 불었던 때와 동일한 이유들을 들이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아렌트가 거침없이 비판했던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현재의 민주국가라는 미국이나 현대 국가의 이면에 숨겨져 있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정치에서 소외되어 버린 현실, <인간의 조건>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 행위-사적인 삶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공적인 장에 참여하여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수행하는 의사소통 행위-를 통한 인간다운 삶, '상호 약속'의 필요성과 정치행위로서의 용서의 유용성 등의 내용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서 현실화 되었으며, 사회 및 정치적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의제기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는 사실 등의 이유 말입니다. <정신의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닌 '우리가 사유할 때, 의지할 때, 그리고 판단할 때 무엇을 하는가?'라고 묻는 사고의 변화를 통해서 사람과 인류와의 관계 맺음으로 표현되는 '정치'와 철학의 결합에 대한 숙고를 담고 있다고 해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렌트 읽기,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그리고 <정신의 삶>을 통해서.... 

 <아렌트 읽기>는 아렌트의 대표작인 위의 세 책을 근간으로 아렌트의 사상을 소개한 것입니다. 초기 파시즘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눈을 뜨고 내놓은 <전체주의의 기원>,  그 이후 자신의 약속과 용서를 담은 정치이론을 통해 진정한 정치의 복원과 공적 행복을 주장한 <인간의 조건>, 그리고 사유와 의지와 판단을 통한 사랑과 우애의 철학을 말하는 <정신의 삶>에 대한 저자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 독자들이 아렌트의 사상의 숲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단순한 안내서라기보다 아렌트 사상에 대한 하나의 '개론서'정도로 취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 원서가 2006년에 발행된 것은 아렌트 탄생 100주년이라는 의의와 앞에서 언급한 동유럽의 벨벳 혁명,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등을 통한 현대의 사회정치적 문제의 대안으로서의 아렌트 사상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렌트의 사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더 큰 이유는 그녀의 정치 사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필요하고 유용할 것이라는 기대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이번 한국어판 <아렌트 읽기>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61년 아렌트는 예루살렘 재판에 입회하여 육신을 가진 아이히만이 야릇한 독일 관료의 어투로 증언한 것을 직접 본 다음에, 아이히만이 아무런 독자적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나치의 계급 구조 내에서 진급하겠다는 일념으로 속속들이 진부한 자신의 사회에 철저히 순응한 한 사람의 천박한 인간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생각이 없는 thoughtless' 자였다. 아렌트에게 '생각없는'이라는 말은 무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상식이 없거나 사유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무사유성 thoughtlessness'에서 '악의 평범성'의 근원을 보았던 아렌트는 무사유성을 '무지하고 분별이 없음, 혹은 어떨 수 없는 혼동, 혹은 하찮아지고 공허해져버리는 진실들의 자기만족적인 반복이'라고 정의 했으며, '우리 시대의 두드러진 특성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과에 대해 무감각한 관료이자 범죄국가의 대리인이었던 아이히만은 결과적으로 세계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으므로, 또한 세계와 소원했으므로 세계를 황폐케 하는 일에 일조할 수 있었'고, 결국은 우리에게 '흔치 않는 용기와 진짜 사려 깊음'이 없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악의 평범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 입니다. 아렌트의 이러한 탁월한 분석에 대한 뒷받침이 될만한 심리학적인 실험으로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과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두려움에 굴복한 우리 내부의 폭력성의 발현은 아렌트가 말한 '무사유성'과 진실한 용기가 없음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물론 아렌트는 그러한 인간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서 끝내지 않고, 그러한 위험성에 노출된 사람들이 다시 풍요로운 삶과 정치의 주체로 거듭나고, 서로간의 소통과 합의와 용서를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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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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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비평가'란, 저자가 인용하는 영어판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정의에 따르면, '기존의 문화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비평하는 비평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되는 '급진적 radical'이라는 말은 '뿌리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단순히 '과격한 언사나 독설을 늘어놓는다고 급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비평가란 '어떤 사안을 뿌리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는 자'라는 의미로 '존재한다기보다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존재하게 만들어야 하는' '당위적 존재'로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문화비평이란 '언제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개별 문화 현상을 바라보며 실행하는 급진적인 비평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관점'과 '급진적 비평'이라는 말의 의미와 실재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지만, 책을 읽는 내내 숙고하더라도 답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듯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비평을 이해하고, 그러한 개념에 의거해서 시행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 현상들에 대한 이 책의 비평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으로, '인문학적인 소양'이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용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 무턱대고 들이대는 것은 결국 오해와 오역을 낳게 되고, 저자가 말하는 문화비평의 진지한 면에 대해서마저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과거 문화비평가를 '문화좌파나 살롱좌파'로 매도하고, '겉멋 든 언사로 여자나 후리는 놈' 정도로 생각하던 시절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결국 '지금 여기'에서도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과거의 인상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그려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차치하고, 우리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요 문화비평이라는 장르에 그리 익숙하지 못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다루는 우리 문화 현상에 대한 시각과 분석들이 일관되게, 전체적인 관점에서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고 동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철학과 비평, 사회와 정치, 문화와 인물 사이를 넘나드는 저자의 비평행위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적인 관점에서 뿌리를 드러내 보이는 치열함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좀더 근원적으로 이해하기에 난해함을 주는 표현과 시각에 담긴 불편함이 더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라는 의미를 신문의 사설을 읽고 우리 사회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정도 -물론 이건 너무 두리뭉실하지만 소양의 정도를 표현하자면 이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로 말한다면 아마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 독자로서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 대해 쓰는 것은 추억에 대해 쓰는 것'이라는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의 말이 옳다면 우리 후손들은 모두 아파트의 모양처럼 동일한 기억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가 자신의 도시에 대해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년의 기억이다. 한국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이 기억은 아파트처럼 규격화되어 있지 않을까?  그나마 이 규격화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준은 얼마짜리 아파트에 살았는가 하는 것 정도일 테다. ..... 보기에도 아찔하고 흉물스러운 한국적 아파트의 모습은 건설 자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내재화한 우리의 증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축 양식이다. -p119~120, 아파트라는 증상 

 그러나 이 스펙터클-김길태라는 악인의 충격적인 범행이라는-을 넘어서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 여중생은 왜 집에 혼자 있었고, 그 동네는 왜 그토록 빈집들이 많았는지 말이다. 결국 재개발이라는 한국 사회의 도시 정책이 이런 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원인이 아닌지 우리는 반문해야 한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동네를 파괴하는 것이 누구에게 가장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는지 이번 사건은 정확하게 증명한다. ..... 이 사건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이렇게 마구잡이로 달려온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용산 철거민과 부산 여중생의 죽음은 사실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재개발의 이권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는 악순환을 끝내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p186~187, 김길태와 한국사회  

  서구의 부르주아와 달리, 한국의 부르주아는 아직도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귀족계급이나 구체제와 투쟁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한 경험도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서구의 부르주아와 다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서민 정서'라는 특이한 요소이다. 이 서민 정서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의 노른자라고 불리는 압구정동에 여전히 연탄불 돼지껍데기집이 있는 것이고, 최첨단 아파트에 김치냉장고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p229, 서민은 나타나지 않는다 

 북한의 어뢰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부재 원인'의 현신 같다. <개그 콘서트>가 사라져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욕망하는 현실이 개그맨의 대사들처럼 말도 되지 않는 억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개그 콘서트>가 금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개그 콘서트>, 부재했지만 여전히 우리를 웃겨주었던 좋은 프로그램이다. -p357, 개그없는 정권 

 정말 전체적인가? 정말 근원적인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비평한 것인가? 저자 나름의 시각을 존중하지만, 저자의 글에 동의한다기 보다는 앞의 의문들을 들이대면서 뜯어보고 싶은 내용들의 일부입니다. 저자의 생각처럼 아파트 숲에서 자란 아이들의 기억마저 획일화 되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지, 아파트라는 거주구조가 갖는 의미가 상당하지만 아이들의 기억을 형성하는 것이 그러한 구조만이 아니라는 것은 왜 간단히 외면하고 말았는지, 김길태의 범행과 그에게 희생된 여중생을 우리 사회가 달려온 자본주의의 결과라고만 단정할 수가 있는 것인지, 그러한 논리의 전개가 여성의 옷차림이 성폭행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는 사고방식과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인지, 저자는 김치냉장고와 연탄불돼지껍데기를 왜 고급 아파트나 압구정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천안함 사건에서의 정부의 대응과 갈등을 간단히 웃음을 주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개그맨들의 프로그램과 비교하는 것이 이 사건을 뿌리에서부터 바라보고 비평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지....... 

 책을 읽고 나서 문득 '허풍선이'이라는 단어를 떠 올렸습니다. 비평가와 허풍선이. 아마도 비평가에겐 허풍선이의 기질이 조금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비평가와 허풍선이 사이에는 그 둘을 구분하여 주는 선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예를 들자면 허풍선이란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우기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모으며 웃기는 사람으로, 그리고 비평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지만 배꼽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면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배꼽에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다가 정말로 보이는 듯이 열광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아니라 '벌거벗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었던 아이의 시선이 전체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근원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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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3 - 금융 하이 프런티어 화폐전쟁 3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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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경의 개념에는 영토, 영해, 영공으로 구성된 삼차원적인 물리적 공간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향후에는 '금융'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영역이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 -p30 

 화폐전쟁 1, 2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화폐와 금융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자신의 시각으로 그린 저자가 이번에는 중국 역사에서의 화폐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중국의 화폐와 금융역사의 굴곡과 대비시켜 일본의 성공적인 화폐와 금융의 역사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번 <화폐전쟁 3>은 중국이라는 떠오르는 강대국의 과거 화폐와 금융의 역사를 돌아보고, 진정한 강대국에 이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주장을 담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이 경제 규모만 커진다고 강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고 금융의 측면에서 위안화의 국제화 또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 확보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논지는 저자가 처음 <화폐전쟁>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부분으로, 결국 이전 1,2권에서 앞서 세상을 지배했던 서구 열강의 금융 패권을 자신의 시각에서 파헤친 것도 결국은 강대국에 이르기 위해서 화폐와 금융의 지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집요한 연구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자의 시각이 다분히 음모론적인 부분이 있고, 막연한 개연성을 사실로 다룬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읽는 이가 조금만 가려서 읽는다면 딱딱한 경제서적들이 가지지 못한 부드럽고 흥미롭게 읽히는 장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번 3편도 전체적인 그림에서 그러한 시각에  의존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저자가 자신이 더 쉽게 찾고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조국의 화폐와 금융역사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기에, 책속에서 인용하는 자료와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이전의 1,2권에 비해서는 훨씬 사실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융 하이 프런티어', 이번 3권에서 저자가 새롭게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용어입니다. 19세기 말에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미국인 알프레드 머헨의 '제해권', 1921년 '하늘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던 이탈리아인 줄리오 두에의 '제공권', 1980년대 초 미국 육군 중장 다니엘 그레이엄의 '우주를 장악하는 자가 천하를 호령한다'는 '하이 프런티어'이론을 소개하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강대국 간의 각축 못지 않게 금융분야가 강대국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금융은 주권국가가 영토, 영해, 영공에 더하여 반드시 수호해야 할 '네 번째 차원의 영역'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금융 하이 프런티어'란 '화폐 발행권을 형성, 행사하기 위한 일련의 완벽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말하는데,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국가가 자국의 화폐를 자국의 의지와 이익에 부합하게 발행하고 유통시키고 또한 회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독자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힘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여기서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자국의 통화란 당연히 위안화일 것이고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위안화의 금융 하이 프런티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은 위안화의 국제화와 영향력 증강을 위한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체계적인 틀을 구축하는 것에 저자의 관심이 닿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중국에서만 아편무역과 아편전쟁이 발생했을까? 무엇 때문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성공했으나 중국의 양무운동은 실패했을까? 무엇 때문에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은 모두 '한 손에 총, 한 손에 돈주머니' 전략을 실시했을까? 무엇 때문에 장제스는 화폐는 통일했으나 화폐에 대한 주권을 수호하지 못했을까? 무엇 때문에 일본에서는 황권과 금권사이의 분쟁이 빈발했을까? 무엇 때문에 국민당의 법폐 개혁이 일본을 격노시켜 일보의 중국 침략 전쟁을 앞당겼을까? 무엇 때문에 국민당의 법폐가 몰락하고 공산당의 인민폐(위안화)가 역사 무대에 등장했을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의문점들이라고 밝힌 것들 중의 일부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근,현대사를 통해서 두 나라의 독자적인 금융시스템의 성립여부와 금융시스템의 장악을 위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혼란을 일으켰으며, 독자적인 금융 하이 프런티어 시스템의 성공적인 구축 여부에 따라 중국과 일본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흥망성쇠는 이미 1,2권에서 다루었던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구축여부가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편전쟁과 서구 열강의 침공에서의 중국의 실패와 메이지 유신을 통한 일본의 성공, 장제스의 집권에서 시작하여 법폐 개혁과 실패 그리고 인민폐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대사에서의 천황과 금권의 치열한 투쟁 과정 등에 얽힌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금융시스템의 장악과 적절한 금융 프런티어의 확립 여부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장 금융 하이 프런티어와 인민폐의 국제화', '10장 은의 영광과 몽상'은 아마도 이번 <화폐전쟁 3>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저자가 앞에서 다룬 모둔 내용은 인민폐의 국제화와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금융 하이 프런티어의 구축이라는 일관된 목적에 맞춰져 있었고, 저자는 그 과정에서 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며 은에 대한 투자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시리즈와 비슷하게 이번 <화폐전쟁 3>의 매력 역시 금융이라는 민감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다양한 이야기같은 요소를 가미하여 독자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점일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학술적인 바탕을 가진 것은 아니더라도, 읽는 이가 수긍하게 만드는 타당성을 담고 있는 주장들이고, 기존의 진부한 이론이나 사실의 열거가 아닌 저자 자신의 관점에서 그런 문제를 신선하게 풀어가는 것을 읽으며 즐기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옆에서 그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을 구하것 역시 저자의 주장들 못지 않게 읽는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4권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으니, 이 부분도 많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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