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추위가 몰려왔다. 반팔 티셔츠를 개켜 넣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는 작업을 부리나케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당황도 했지만, 따끈한 코코아나 향 진한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책 읽는 계절이라니 생각만 해도 좋다. 차가운 10월을 함께 하고 싶은 따끈한 인문사회과학 신간들...
1.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을 인문사회과학 코너에 넣자니 뭔가 어색한 기분. 에세이에 해당하는 건가 고민하다 알라딘에서 이쪽으로 분류해 주셨으니 여기에 써도 되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늦은 밤 바싹 구워 기름 뺀 삼겹살을 씹는 성스러운 시간을 포기하게 될까 두렵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필력이라면 나를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채식주의자라 결사 반대했다는 아는 분의 웃지 못할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사람마다 각자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어떻든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긴 하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것은.
알라딘 책소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첫 번째 논픽션. 육식은 과연 자연스러운 관습인가, 이 시대의 악덕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포어는 공장식 축산업 종사자, 동물 권리 보호 운동가, 채식주의자 도축업자 등 다양한 입장을 지닌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했고, 소설가의 예민한 감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자료를 내세워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진실을 밝혀내고자 했다.
포어는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하며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인용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포어는 인간이 문화적 배경 아래 선택적으로 육식을 하고, 어떤 고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지만, 사실상 그 기준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되며, 단 하나의 일관된 태도는 탐욕과 지배이다.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우리는 공감력을 잃고 그 자체를 망각하고 있다고 포어는 말한다. 그리고 그 공감력을 회복하고 우리가 벌이는 일들에서 '수치'를 느낄 때야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노엄 촘스키,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세트는 어떤 의미에서 분명히 나를 계몽시켜주었다. 요즘은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읽고 있다. 틈 나는대로 손에 잡으려 하지만, 촘스키는 내가 따라가려하면 더 한 발자국 먼저 나가있어서 늘 나를 숨차게 만든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책은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원제는 Problems of Knowledge and Freedom: The Russell Lectures 이다. 지식과 자유의 문제.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하여'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러셀이 고민하고 탐구했던 '앎'과 '지식'과 '자유'를 촘스키가 소화해서 이야기했단다. 학문적 업적을 사회적 변혁으로 연결한, 많이도 닮은 두 지성인의 지적 모험의 전수를 이번 책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된다.
알라딘 책소개 20세기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인이라는 촘스키가 러셀을 존경하여 지금까지도 자기 연구실에 러셀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러셀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강연에서, 러셀의 생애나 업적을 나열하지 않았다.
촘스키가 강연한 것은 러셀이 온 생애에 걸쳐 세상에 보여주었다고 촘스키가 생각한 그것, 곧 ‘앎’이란 문제에 대한 치열한 탐구 정신과 생애 마지막 무렵까지 시들지 않았던 비판 지성이다. 다시 말해 촘스키는 러셀이 추구해온 ‘지식’과 ‘자유’의 문제, 또 다른 말로 하면 인식론 철학과 정치사상을 자신이 ‘소화한 대로’ 이야기했다.
삶의 막바지 단계까지 학문 탐구와 자유를 향한 투쟁을 그치지 않았던 러셀과 촘스키는 매우 닮았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강한 정신력을 다해 만연한 무지를 일깨우는, 위험한 검은 양’ 촘스키를 위해 주문을 왼다. “아브라카다브라(네가 가진 불꽃을 세상 끝까지 퍼뜨려라)!”
3. 진중권, <아이콘>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논객 진중권. 얼마전 트위터에서 그를 애지테이터라고 표현한 글을 보고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각 사안에 대해서 바로바로 (이것 역시 일종의 성실함이다)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논객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이 얼마만큼 마음을 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절반 이상은 나의 무지탓이리라), 그가 말하는 스로 점검하는 힘'을 더욱 키우기 위해, 성실하게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알라딘 책소개 미학자이자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철학의 38가지 개념을 소개한다. 잡지 씨네21에 ‘진중권의 아이콘’이란 제목으로 2010년 4월부터 1년간 연재된 칼럼을 모아 수정, 보완한 책이다. 사회적 이슈들을 철학의 개념을 동원해 분석한 연재 당시의 칼럼들은, 주제별(냉소적 이성, 시뮬라크르, 정체성과 차이 등)로 분류되어 큰 사유의 틀에서 종합적, 복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편집되었다.
제목이 말하는 ‘아이콘’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뜻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아이콘(시각화된 명령어)을 뜻한다. 아이콘을 이용해 복잡한 명령어 없이 간단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듯, ‘개념어’를 통하면 전문적 철학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아도 철학적 수준의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표명한 나의 주관적 견해나 주장들은 모두 잊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개념의 사용법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범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의견과 관점에는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내 주장이 옳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성에 젖은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안내하는 데 있다.
4. 강신주,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강신주 박사님의 책이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전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는 것은 어렵고 한편으로 괴로웠지만 분명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10월 20일에 저자 강연회도 하는 것 같던데, 갈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문정희, 백석, 신동엽, 이성복....! 반갑고 궁금하고 기대된다.
알라딘 책소개 2010년에 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시인 14명과 철학자 14명을 이번 책에서 다룬다. 문정희, 고정희, 김행숙 등 여성 시인들과 백석, 신동엽, 이성복, 김정환, 허연 등 전편에서 다루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시인들이 포함됐다. 속편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독자들에게 읽히길 원한다.
저자는 ‘철학적’으로 시를 읽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괴로움의 깊이만큼 시인과 철학자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이 책의 시선은 한층 더 깊어졌다. 사랑, 돈, 여성, 그리스도, 타자, 자유, 역사, 대중문화, 글쓰기, 감각, 관계 등을 다루고 있는 각 장의 내용도 우리의 삶과 더욱 밀착되는 주제들로 채웠다.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고유명사’의 학문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정신의 소망입니다. _17~18쪽_<프롤로그> 중에서
5. 김어준, <닥치고 정치>
나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알라딘 세일즈포인트가 16만이 넘었다. 뜨겁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hot한 사람 중 한 사람. 나꼼수를 계속 들어온 사람들은 책이 나꼼수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새롭디 새롭고 충격적인 듯 하다. 정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지인이, 우연히 서점에서 나꼼수를 집어들고 선 채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단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계산을 하고 나왔단다. 우리나라 정치에 새로운 물결을 공급해 온 김총수의 명랑시민정치교본. 읽어 보고 싶다.
알라딘 책소개 <나는 가수다> 평론과 <나는 꼼수다>를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적 인지도와 정치적 영향력을 얻은 김어준의 명랑사회 정치교본. 보수와 진보를 사바나 시절 인간의 본능적 습성으로부터 구분 짓기 시작해 현 정권, 삼성, BBK 등 구체적인 주체와 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 보수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진보 정당의 한계 또한 확실하게 꼬집는다.
저자는 이런 밑그림을 충분히 보여준 다음 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누가 해야 하는지 현실 가능성에 근거한 전망과 플랜을 제시한다. 내년 대선과 총선에 앞서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우리의 욕망과 희망에 부합하는지 정치가 인격화된 우리나라 정서에 딱 맞는 김어준식 해설과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수다를 떨 듯 쏟아내는 노골적인 인물평 속에는 통찰이 있다. 단 한마디로 그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시켜준다.
이처럼 김어준의 명쾌한 어법은 현 정치 판세를 명확하고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그려주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정치적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돕는다. 이를 통해 정치와 우리 개개인이 괴리되어 있지 않음을,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해준다. 이 책의 첫 장을 낄낄거리면서 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위로와 희망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