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블랙북>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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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블랙북 - 아무도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이레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누구를 위해서 하는 말인가?"
직장 상사든, 친구, 정치인, 학자, 영업사원, 하다못해 인터넷에 올린 서평을 볼 때에도 떠올리는 기준이 있다. 바로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인가' 라는 것.
입으로는 "당신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만족'을 바탕에 깔고 '말하는 쪽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것이 대부분이다. '서민'이니 '소통'이니 하는 국민적 기만은 물론이려니와 '고객님께 참 잘 어울리세요' 라든지 '자네 발전에 도움이 될꺼야', '이 책 참 멋져요 꺄아' 하는 따위의 글과 말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보고/듣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게 ① 자기 생각과 신념을 강요하거나(give) ② 관심 또는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는(take) 두 가지 경우를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자기 만족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강변도 있는데, 상대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보다는 말하는 사람 본인의 이익만이 대부분 우선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드물게 '남까지 생각하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 귀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다 때려치우고 내 사업이나 해볼까?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힘들면 '창업'을 꿈꾸게 된다. 물론 요즘은 '취업' 자체가 더 어려운 시절이긴 하지만. 20세기말 대한민국에 몰아친 벤처/창업의 물결은 주변에도 많은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뿐.
쉽게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특출난 개개인의 성공 스토리들은 지난 10년간 전설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고, 서부 개척시대 이후로 이미 창업과 도전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미국에서는 '성공학'이란 것이 거의 '종교'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많은 종교인들이 성공학의 다양한 방식들을 설교나 교리에 접목하여 세를 불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본 경험은 없지만, 여러 번의 창업 검토와 약간의 동업 + 대기업의 신규 아이템과 업체들을 발굴/평가/관리하는 일은 해보면서 왠만한 성공학 서적 또는 창업 이야기 만큼이나 '내 사업으로 성공하기 참 힘들다'는 사실과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배우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 창업을 꿈꿀때 간과하기 쉬운 위험들
검은색 표지의 작은 판형인 [리틀 블랙북]은 '난 이렇게 특별나요, 고생 많이 했고 이렇게 성공했어요' 라고 자기 경험만으로 사람을 부추기는 많은 성공담들과는 다르다. 이건 대놓고 '당신의 창업 의지를 시험하겠다'며 딴지를 걸고 나온다. 그렇다고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민들레 가족'의 안주인처럼 "당신, 그렇게 해서 성공하겠어? 난 불안해." 하며 무작정 창업 의욕을 팍 꺾어놓으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정말로 '창업하는 사람을 도우기 위해',
미리 체크해 두어야 할 14가지 실패요인을 제시한다.
창업자의 95퍼센트가 창업 5년 이내에 문을 닫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실패의 이유를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합리적이고 타당하지 않은가? 창업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경험치와 함께 아직은 순수한 젊음의 열정까지 갖추고 있기에 39살의 저자는 개인적 성공담만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렇게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들은 '간절히 원하면 얻게 될거야'라는 희망찬 마인드 컨트롤 보다는 현실에 부닥쳐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까칠하고 실속있는 조언들로 가득하다.
'왜 창업하려 하는지'를 물어보는 첫 시작에서부터→ 함께 일을 하는 '동업자' 문제→ 창업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대박 아이디어'→ 창업 이후의 '일상생활'→ 실제적인 '사업의 성장' 까지... 창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겪어봤거나 골치를 앓는 주제이기에 '외국이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네!' 라는 공감 속에서 쉽게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경험이 전혀 없다면 좀 생뚱맞게 들릴 내용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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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결정하지 마라 (p.37), 창업은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p.51),
동업자는 가장 값비싼 자원이다(p.66),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동업을 한다 (p.79),
동업자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직성과 유사한 가치관(p.88),
실패자만이 아이디어를 믿는다 (p.114),
무엇을 팔까에 집중하지 말고 고객들이 왜 나에게 그것을 살까를 고민하라 (p.132),
내가 잘 알거나 매우 좋아하는 업종에서 창업하라 (p.146),
돈 많은 협력자나 금융기관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업종이 자금 조달의 원천이다 (p.147),
가족의 무조건적 지지 없이 창업하지 말라 (p.176),
창업가는 일과 개인생활을 조화시키기 어렵다 (p.178), 창업은 365일 24시간 일하는 휴가 없는 근로계약 (p.179),
창업은 쉬우나 성장은 어렵다 (p.185), 매출에 목매지 말고 이익을 실현하라 (p.191),
지속 가능성이 성장보다 더 중요하다 (p.196),
창업가와 사업가는 다른 재능을 필요로 한다 (p.198), et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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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적하는 '실패요인'과 관련하여 직접 보고 들은 것만 해도 몇 시간은 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동업자는 가장 값비싼 자원이다'라면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친구나 가족, 선후배 관계일때는 '참 좋아서'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해보면 '웬수'로 돌변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월급쟁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밤낮/휴일 구분없이 일에 매달리다 보면 가족들의 불만도 점점 늘어나는데, 이런 와중에 때로는 대충 알고 지내던 사람들보다 더 냉랭한 관계로 틀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동업'으로 맺어진 관계. 나중에 사업을 그만두더라도 금전 문제와 감정적 상처로 인해 또 한번 고역을 치르는 것도 역시 이 관계가 아니던가.
동업이 절대 '공짜'가 아니므로, 저자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동업을 하되, 자본 동업만 하고 일을 공유하는 동업은 피하라'면서 여러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실제로 가장 신경쓰이는 문제의 하나이지만, 속이 곪아 터질 때 까지는 내놓고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속 시원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 [리틀 블랙북]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할 수 있겠다.
한글 제목인 "리틀 블랙북"은 원래 '주소록(address book)'을 의미한다. 특히 '옛날 애인의 연락처 따위가 적혀있는 주소록 내지 비밀일기'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동일 주제를 다룬 故 브리트니 머피 주연의 코미디 영화도 있음). 아마 원서 제목 그대로 '기업가 정신을 위한 비밀일기(The Little Black Book of Entrepreneurship)' 같은 걸로는 강한 인상을 못 남길테니 과감하게 뒷부분을 생략하고 '리틀 블랙북'만을 아이콘 삼아 출판한 모양인데, 영미권에는 '101가지' 시리즈나 'Idiot's Guide~' 처럼 "The Little Black Book of~"로 시작하는 시리즈물이 꽤 있더라는 사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알찬 내용 뿐만 아니라 가독성을 높여주는 깔끔한 레이아웃과 책 만듦새, 휴대하기 좋은 판형, 잘 어울리는 컬러 띠지까지 전반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책이다. 단돈 1만원에 '나를 위해' 이 정도의 알짜배기 조언을 해줄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도입부인 프롤로그 부터 책의 뒷 표지에 나온 문구까지, 논지 전개나 설명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창업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대해 '당신을 위하여(for you)' 이야기 해주고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