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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수학, 페미니즘! -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필수 교과로 가르쳐보았다
이임주 지음 / 봄알람 / 2025년 3월
평점 :
아들이 덜컥 첫 연애를 시작했고, 속되게 말해 진도가 매우 빠르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던 차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딸은 또 어떠한가. 고3때 숏컷을 했다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꼴패냐고 공격받았던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하필 대학도 가부장제가 심한 남녀공학에 가는 바람에 또 꼴패로 낙인찍힐까 겁나 여성학 수업 1번을 못 듣고 졸업할 예정이다. 나는 여대를 다니며 주인된 경험을 해봤으면서, 사회 속에서 '여자라서 그래'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발악하며 살아왔으면서, 가정에서의 페미니즘 실천은 너무 등한시해왔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더 두려워하라'고 강요받아온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집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진작에 나도 집에서 제대로 페미니즘 교육을 할 것을. 밥상머리 교육으로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체득하고 있을 거라 믿었던 안이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지금이라도 동백작은학교에 단기학습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참 후회중이다. 동백작은학교의 페미니즘 필수 교육 과정(35~38쪽)을 본따 주말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다짐중이다. 동백작은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한 학생도 선생도 아직까지 가정에서의 페미니즘 실천은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작은 위안 삼아 뒤로 숨지 말아야겠다.
또 다른 반성은 내가 딸에게 연애를 종용해왔다는 것이다. 이성애를 전제하지 않기 위해 남자든 여자든 얼른 연애를 하라고 해왔는데, 연애 종용이 결혼 종용이 될 수도 있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연애만이 아님을 쉽사리 망각해왔던 것이다. 양육자로서 페미니즘을 다시 공부하지 않은 것이 자꾸만 부끄럽다.
페미니즘은 반남성주의도, 여성우월주의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계의 철학이고, 실천이다. 이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정의롭기를 바라는 지향이고, 생활과제이다. 내 속에 숨은 차별과 이기주의와 혐오를 직시하고 나부터 바꿔나가자는 마음가짐이고 행동전략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은 상식적인 인간의 근본 욕구라 우리는 믿는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헤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고 싶었다는 이임주 교장 선생님에게 한없는 존경을 바친다. '나는 세포부터 바꿔야 한다'고 엉엉 우는 남자 선생님에게도 감사 드린다. 학교 안에서만은 안전하게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간다고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너무나 예상 가능하게도 동백작은학교의 젠더 평등 선언식 때문에 학교 밖에서 민원, 협박 전화, 교육부 감사는 있었다고 한다. 부디 모두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학교가 있음에 알아주고 응원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