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원주에 사는 동기 집에 나들이 갔다가 하룻밤 묵었다.
이제 나이가 든걸까? 다들 딱 좋은 만큼 술을 마셨고, 다음날 아침 모두 무사히 일어났다.
그새 원주박이가 된 동기는 돈 안 내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가르쳐줬지만,
원주까지 갔는데 산만 볼 수 없다 하여 결국 구룡사 행 결정.
날은 더웠지만 산 밑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걸어올라가는 길의 향취는 참 그럴싸했는데,
특히 아이업은 아빠와 양산받쳐주는 엄마가 된 후배부부의 그림이 참 이뻤는데,
내 옆을 걷던 동행 1인을 무례하게 손으로 밀쳐가면서까지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끼어든 마로. -.-;;

1인당 3,200원의 거금을 내고 치악산 국립공원 입장.
1,600원은 산림청에 내는 국립공원 입장료이고, 1,600원은 문화재관리국에 내는 관람료.
궁금한 건 단체의 경우 국립공원 입장료에서만 200원 할인 혜택을 준다. 왜 그럴까?
하여간 입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만나는 건 황장금표.
궁궐 재목으로만 쓰이는 황장목을 다른 사람이 베어가면 안 된다는 표지인데,
예나 지금이나 힘있는 놈들이 좋은 거 미리 침바르는 버릇은 똑같은 듯.

그럼 왕이 미리 찜한 나무는 무엇이더냐.
황금송(?)과의 소나무인데, 남의 떡이 커보이는 이치랄까. 소나무 숲이 기차게 잘 생겼다.

솔직히 말해 구룡사는 역사만 길지, 잦은 전소로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고,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를 주차장 같이 싹~ 밀어버린 터라 사찰기행의 맛은 영 별로였다.
하지만 황장금표가 말해주듯 수림만은 일품이고, 장수목도 많다.
구룡사 입구의 200년 넘은 은행나무.

사찰로서의 구룡사에서 인상깊었던 건 오히려 최근에 세워진 것들.
사천왕 중 지국천왕에 깔린 악귀?가 천왕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눈초리라니.
사진이 흐릿하고 먼지가 많이 쌓여 그 풍부한 표정이 살아나지 못한 게 영 아쉽다.

구룡사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이지만, 남아있는 건물 중 제일 오래된 건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보광루.
원래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건물이 좀 더 있었으나, 2003년에 홀랑 다 탔다.
보광루만이라도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딸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손을 붙잡고 휭 하니 올라가버리고.

그런데 구룡사의 유래와 관계가 있는 걸까? 보광루 안에는 바다거북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멍석은 어디 갔는지 찾지 못했다.

16나한을 모신 응진전도 최근에 다시 세워진 듯 한데, 그 중 두 나한상의 모습이 무척 해학이 넘친다.

응진전 뒷벽에 그린 그림도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청와대에 근엄한 대통령 초상화나 사진만 걸어놓지 말고,
시원하게 등 긁는 모습을 그려놓으면 참 신나겠다.
그런데, 효자손을 보자... 수구모 생각이 물씬. 새벽별님 돌아와줘요. 절규 한 번 내지르고.

벌써 대웅전도 새로 세워져 불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단청은 안 올렸다.
이제서야 밑그림을 그리는 중인가 보다.

한마디로 전체적인 소감은 치악산을 위해, 계곡을 위해 구룡사를 가는 건 강추지만,
사찰 기행을 위한 구룡사는 기대 이하이다.
마지막으로 마로와 옆지기의 다정한 한 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