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택배가 왔었대요. 경황이 없어서 이제서야 씁니다.

2권 모두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오즈마님께 땡스투를 해달라고 속닥일 것을. ㅎㅎㅎ

고맙습니다.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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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7-2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받으셨군요.
마로랑 재미있게 잘 읽으세요. ^-^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리아의 섬찟함에는 전율을 느낍니다.

그중에서도  "울게 하소서"를 좋아하는 편인데, 여러분이 좋아하는 성악가를 추천해주세요.

제가 아는 게 짧아서요.

"파리넬리"는 합성한 게 싫고, 시크릿 가든은 맑기만 하고, 정세훈은 에코 효과가 경박하고,

요시카즈 메라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조금 가늘다고 생각이 되구요.

정통 성악가가 부른 건 오히려 아는 게 별로 없네요. 가르쳐주세요. 기준은 오로지 목소리의 힘입니다.

Lascia ch'io pianga -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l duol infranga queste ritorte di'miei martiri - 이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끊게 하소서

sol per pieta, di'miei martiri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sol per pieta. Lascia ch'io pianga - 주여,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Lascia ch'io pianga - 나를 울게 하소서

la durasorte e che sospiri la liberta,-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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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제목을 좀 바꾸심이 어떻습니까? 추천해달라는 말이랑 <울게 하소서>가 아리아 제목이라는 말 좀 넣어서요...... 그냥 한대 때려달라는 거 같잖아요^^
하라는 추천은 안하고 엉뚱한 소리만.....=3=3=3

조선인 2005-07-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 수정했습니다.

瑚璉 2005-07-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시카즈 메라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브라이언 터펠은 어떨라나요?

키노 2005-07-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소리의 힘이라면 호세 카레라스가 최고가 아닐런지요^^;;

icaru 2005-07-2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넬리"는 합성한 게 싫고, 시크릿 가든은 맑기만 하고, 정세훈은 에코 효과가 경박하고,

요시카즈 메라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조금 가늘다고 생각이

... 아는 게 짧은 거 맞으세요?

되려 주워듣고 갑니다...저는~

조선인 2005-07-2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키노님, 이왕이면 수록된 음반도 알려줄 수 있으세요?

조선인 2005-07-2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네 플레밍은 어떨까요? 음...

瑚璉 2005-07-2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mazon.com/exec/obidos/ASIN/B00006L3K2/qid=1122095409/sr=2-1/ref=pd_bbs_b_ur_2_1/103-4150700-7500608를 한번 보세요.

조선인 2005-07-2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호정무진님, 제가 찾았던 바로 그 무엇이에요. 고맙습니다. 넙죽.
이 목소리가 브라이언 터펠인 건가요? 기억하겠습니다.

瑚璉 2005-07-2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펠이 아닐지도... (꼬리를 내린다).
 
 전출처 : 바람돌이 > 태안반도 여행 -셋째 날, 태안, 서산

오전은 역시 팬션에서 잘 놀았다. 오후 1시 넘어서 주인아주머니께 고맙다고 전화드리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아이들 일정이 아니라 우리 일정이다. 일단 태안읍에 있는 백화산 중턱의 태안 마애삼존불로~~
절 입구까지 차가 올라가 별로 고생 안하고 마애삼존불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날이 맑았다면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이 다 보였을텐데 흐린날이라 다 뿌엿하니 아래는 잘 안보인다. 이곳의 마애 삼존불은 특이하다. 보통 삼존불은 가운데 부처상이 있고 양쪽에 보살상을 또는 또다른 부처상을 두는게 일반적인데 여기는 가운데 관음보살을 두고 양쪽으로 부처를 배치했다. 아미타불과 약사불인 듯 하다. 물론 크기는 가운데 관음보살을 작게 만들긴 했지만.... 이런 식의 배치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어떤 이유일까? 짐작컨대 아마도 엄격한 불교교리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라 아직은 순수한 기복신앙의 형태로 불교가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저 백제의 사람들이 염원하던 마음 그대로를 표현한건 아닐까? 새겨져있는 부처와 보살이 모두 옛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던 이들이다.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의 아픔과 소원을 들어주던 관음보살, 인간의 만가지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 죽은 뒤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아미타여래 - 당시의 백성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부처들이다. 바닷가의 삶이란게 얼마나 척박하고 많은 위험을 안고 사는가? 그런 백성들에게 그래도 한 때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었을 그들. 그런데 한 때는 서산마애 삼존불처럼 미소로 빛났을 이들의 얼굴은 그동안의 파손이 심해 미소를 거의 잃어버렸다. 얼굴표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하기야 지금이야 이런 관광객들이나 가끔와서 휘 둘러보고 가는데 미소지을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태안 마애 삼존불, 불교교리의 기본마저 무시한 파격이 즐겁다. 가운데 보살을 모신 두명의 여래, 이 땅의 민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분들만으로 골라 모셨다. 왼쪽 아미타여래, 가운데 관음보살, 오른쪽 약사여래다)


할머니 따라 집앞절에 놀러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아이들은 절에만 오면 무조건 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먹을 때는 어린이집에서 배운대로"두손 짝" 하면서 기도하자 하고, 절에서는 부처님한테 절하자 그러고... 예린이가 이대로 종교에 대한 편견도 나와 다름에 대한 편견없이 계속 그렇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그다음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나는 가봤는데 남편은 못가본 유일한 곳. 서산 개심사로 가기로 했다. 개심사를 생각하면 또 여우님이 떠오르는건 뭐야 도대체....(알라딘 중독 증세다.)
10년만에 다시 찾는 곳이다. 10년 전의 그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가슴이 설렌다. 내 맘속에 있는 개심사는 주변의 산과 저수지의 어울림으로 가는 길의 풍광이 정말 멋졌었고 길은 포장도 안되어 진짜 울퉁불퉁, 거기다가 어찌나 좁은지 내내 다른 차를 만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던 길이었다. 근데 이게 왠일 길 진짜 잘 뚫렸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이전의 풍광의 멋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긴장된다.
드디어 절 입구에 도착, 근데 없던 일주문이 생겼고 관광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랑 식당까지 생겨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어 있는게 아닌가? 한편으로 씁슬하면서도 이 더위에 아이들을 꼬드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파는게 반가워 넷이서 탱크보이 하나씩 입에 물고 절을 향해 갔다. 기억에는 없는데 꽤 긴 길이다. 아이들을 반은 걸리고 반은 업고 절로 올라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고 힘드냐? 그래도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옛적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있다. 절입구의 외나무 다리도, 대웅전의 단정한 자태도, 심검당의 예술스런 표정도 다 그대로다. 10년동안 이렇게 안 변하다니....


개심사 오르는 길에 잠깐 휴식 - 엄마 빨리와!


용감한 해아 - 절 입구의 외나무 다리도 무서울법한데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신나하는.... 해아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예린이 잔뜩 겁먹어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만세루 창으로 본 개심사 앞 풍경 - 한국 정원은 이런 창이 그대로 액자의 역할을 한다.


단정하고 아담한 대웅전의 모습 - 뒷산의 산세를 그대로 닯아 산속에 폭 안긴듯 다정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아직 조선의 독자적인 양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들이 혼합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심검당의 휘어진 나무들은 여전히 잘 있더라. 이 문을 만든 사람은 참 멋있는 이였을 터.... 그의 넉넉함이 오백여년 뒤어 한 지나가는 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준다.

개심사에서 아이들 업고 다니느라 너무 지쳐 서산 마애삼존불은 지나치기로 했다. 시간도 벌써 5시 30분 지금 부산으로 출발해도 올 때 기준으로 생각하면 새벽이 되어야 도착한다. 서방은 내일 출근인데.....
서해 고속도로로 가기 위해 서산쪽으로 나오는 길에 갑자기 끝도 없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저푸른 초원위에'노래가 절로 나오나 내력을 알면 그리 신나지 않다. 이름하여 삼화목장. 옛적에 김종필이 잘 나가던 시절에 이곳에다가 숲의 나무들을 몽땅 잘라내고 외국에서 들여온 풀씨 뿌려 만든 곳이다. 딱 이 시대 군바리다운 발상이다.(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걸 위해서는 산 하나쯤은 날려도 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게 되는걸까? 이 인간 목장은 엄청 좋아해서 제주도에도 한 때는 목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둘이서 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서방이 "종필이 앞니 드러내고 말달리는거 한 번 상상해봐라" 한다. 둘이서 키득거리다가 또 불쾌해졌다. 세상에는 생각하는 것 만으로 불쾌해지는 인간들이 꼭 있다.


갑자기 펼쳐지는 목장 - 삼화목장이다. 엄청난 규모다.


개심사 입구 산중턱의 소떼들 - 예린이가 갑자기 이 소들 얼굴보러 산에 올라가자고 떼써서 죽는줄 알았다.

사흘간의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시원섭섭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더 놀고 싶기도 하고.... 그래도 자정전에 돌아가려고 둘이서 차를 있는대로 밟아댔다. 중간에 해아의 쉬~~ 소리는 계속됐지만 엄청 밟아댔더니 그래도 반 11시 반에 집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딱 두시간 덜 걸렸다. 짐은 모두 그대로 쌓아두고 그냥 자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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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주 > 맨발 산책길



방학 첫날. 윤이와 영이는 일 년 간 벼르고 벼루던 맨발 산책길 1km 대장정길에 서다.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잔잔한 모래섞인 황토흙을 깔아놓은 <맨발산책 전용로>.



"오메, 나죽네!" 벚나무의 시원한 그늘이 잠시 벗겨진 곳-가뜩이나 뜨거운데 오르막이다. 얼른 통과하고 보자는 윤이-엉덩이를 쑥 내민 채 허둥지둥 왕자님 스타일 다 구긴다. 영이는 아직 발바닥이 보드라운지 조금 걷더니 맨팬한 콩크리트 경계석 위로 걷는다. 나도 처음엔 시원하더니 나중엔 발바닥이 얼얼한게 감각이 없다.



중턱에 나무그루터기 의자가 있다. 이만큼 반가운게 또 있다냐? 영이가 낼름 앉는다. "이잉, 발바닥에 불나는 거 같아. 아파 죽겠어!" 형한테라도 엄살을 늘어놓는다. 엄마는 개의치않고 사진이나 찍는다. 메렁~



좌로는 숲이요, 우로는 호수라! 사잇길로 맨발로 걷는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우리곁으로 오리유람선 한 척 유유히 떠간다. "엄마, 우리도 저거 타요. 네?" 오리배는 짠순이 엄마에겐 안 통하는 이루지 못할 영이의 희망사항이었다.



드디어 맨발산책로가 끝나고 발을 씻는다. 발씻는 돌세수대야 정말 좋다 그지?



으메 션한 거 으메 존거! 차가운 물로 발을 씻으니 날아갈 듯 개운하다. (윤이는 아직 발등까지 벌겋다)



신발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신의 폭신한 안락감에 꿈길같이 걸어 야은 길재 선생 유적지에 갔다. 채미정 입구에 선 <회고가>시비 앞에서 윤이는 아는 걸 최대한 동원해서 시조에 실린 시대적 배경을 영이한테 전수한다. '우리 히야는 우짜면 이래 아는 것두 많으까?' 영아, 부러우면 너도 책 읽으렴, 지발 부탁이야..



채미정을 둘러보고 숲 속을 거닐다 보니 배가 고팠다. 감자옹심이 칼국수-칼국수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겨?(4500냥)하고 버럭버럭 화냈던 적이 있지만 먹어보면 과히 예술의 경지라고나 할까 홍홍..감자로 빚은 옹심이와 감자면이 쫄깃쫄깃한게 맛이 기가 막히다. 김이 술술 나도 두 녀석이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다음에 또 오자"라는 약속을 하며 돌아섰다. 방학 첫날은 이만하면 제법 보람있었는데 앞으로 남은 날들은 과연......ㅡ.ㅡ;

/050721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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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돌이 > 남도의 마지막 겨울 햇빛 - 둘째날 해남

해남은 여러번 왔었는데 역시 기억에 남는건 신혼초에 남편이랑 둘이서 배낭매고 버스타고 왔던 때다.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그 때 참 맘씨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차를 많이 얻어타고 다녔었다. 추억을 떠올리며 나중에 아이들이 좀 더 큰다면 넷이서 배낭매고 여행다니자는 얘기를 둘이서 두서없이 해대면서 옛날 우리가 참 맛나게도 먹었던 명동정에 가서 게장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 집은 그 허름한 분위기하며 주인집 부부하며 하나도 변한게 없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근데 음식맛이 여전히 맛있긴 한데 옛날처럼 그렇게 환상적인 맛은 아니다. 아마도 그동안 쓸데없이 입맛만 비싸진게 아닌지...

  '녹우당'으로 향했다. '녹우당'은 윤선도의 고택이다. 여기도 그 아득한 옛날 갔던 기억은 있는데 생각나는거라곤 고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참 정겨웠다는 것과 집앞의 커다란 은행나무뿐... 다시 찾은 녹우당은 그동안의 정비사업으로 집앞이 깔끔하게(너무 깔끔하게) 정비돼버려 옛날의 정겨운 맛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여전히 서있을뿐... 새롭게 해남윤씨 소유의 문화재들을 전시하기 위한 전시관이 있었는데 도난 문제 때문에 진품은 없고 중요한건 모두 사진들이라 김이 빠졌다. 다만 인상적인건 엄청난 양의 책들과 분재기(분재기란 옛날 재산을 자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나눠준다는 기록이다.)였다. 그 시대에 저 정도의 책을 소유한 집이라면 엄청난 부자라는 얘기, 거기다가 분재기의 길이가 저렇게 길다는 것 역시 나눠줄 재산이 무지 많았다는 얘긴데... 분재기 안내문에 윤선도가 재산을 나눠줄 당시 노비의 수만 500여명이었다는 기록에 입이 쩍 벌어진다. 그러면서 작년 여름에 갔던 보길도가 생각났다.

                      녹우당 앞의 은행나무 - 침대를 몇개나 만들수 있을까?
 

   보길도는 윤선도의 별장이라 할까? 부용동 정원이란걸 만들어 윤선도가 보길도 전체를 거의 자기 개인의 정원처럼 만들어놓고 노년을 즐겼던 곳이다. 윤선도가 보길도에 간 사유와 그의 이후 보길도 생활은 이해하기 힘든 불협화음이다. 그가 보길도에 간건 조선 인조가 병자호란에 패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더러운 세상에 살 수 없다. 세상을 멀리하자'며 제주도에 가다가 잠시 들른 보길도의 풍광에 반해 눌러앉은 곳이다. 그후 그곳에 세연정이란 정원을 만들고 곳곳에 거처를 만들어 살면서 거의 날마다 세연정에 나가 그위 옥소암이란 바위위에 악공과 기생들을 불러 노래하고 춤추게 하면서 그 모습이 아래 세연정 연못에 비치는걸 보고 풍류를 즐겼다는 것. 이게 나라의 운명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선비의 모습과 도대체가 매치가 안되는거다. 고등학교 때 배운 그의 어부사시가가 왜 훌륭한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나로서는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그것을 즐기는데 온힘을 아끼지 않은 전형적인 지배층으로서의 그가 이미지로 떠오를 뿐... 씁쓸하다. 갑자기 남편이 묻는다. "이 집안이 아직도 그렇게 부자일까" 글쎄 나도 궁금하다.

 녹우당은 윤씨 종가의 사랑채를 말하는데 여전히 집 전체의 구조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옛날보다 더 황량해진 느낌에서 그저 밋밋하게 둘러보고 나와 완도로 향했다.

  완도는 요즘 드라마 해신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장보고, 그가 가져다주는 부와 진귀한 보물들에는 환호했지만 귀족이 아닌 그가 가지는 권력은 참을 수 없었던 신라 귀족에게 장보고는 반역자에 불과했다.  장보고를 제거한 후 그의 본거지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섬의 주민들까지 다른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해야 했었다. 그로 인해 완도에는 그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제대로 남아있는게 없다. 그래서 몇 번의 이쪽 답사여행에서도 번번히 빠졌던 곳이다. 어쨌든 이번에 이곳을 다시 찾은건 나 역시 드라마 때문이니  텔레비젼의 위력이란...(드라마를 한참 재미있게 봤는데 요즘은 장보고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오바하는 장면들이 거슬려 안본다. 성질머리 하고는...ㅡㅡ;) 두 곳에 세트장이 건설되어있었다. 먼저 가까운 신라방 세트장을 찾았는데 문경에 있는 왕건 세트장의 썰렁함에 비하면 훨씬 볼거리가 있다. 혹시나 촬영팀이라도 만나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리라는 기대감에 갔는데 곳곳에 관광객만 넘쳐나는군. 갑자기 남편이 월요일엔 촬영을 안하고 쉰단다.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근거없이 한마디 해놓고는 딴청이다)
  다음에 간 청해진 세트장에서는 본격적인 장보고의 청해진 활동을 위해 세트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왕건 세트장 보고 지나치게 얼렁뚱땅 만들어진 건물들에 황당했었는데 여긴 공사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건물들을 새로 짓는 수준이다.(우와! 우리나라 방송국들 돈 많아) 바다쪽으로 촬영에 쓰이는 배들이 점점이 떠 있어 구경갔다가 갑자기 몰아치는 찬바람에 얼어죽는줄 알았다. 나 추운것도 안괜찮은데 우리 예린이야 오죽하랴?  예린이 갑자기 가자고 난리다. 아이가 견디기에는 바닷바람이 너무 엄청났다. 게다가 아침밥을 깨작거리기에 과자를 못먹게 했더니 그 심통까지 겹쳐서 심술이 바닷바람만큼이나 세다. 점심은 잘 먹겠다는 약속과 함께 매점에 가서 과자와 음료수를 안겨주고 나서야 기분이 풀렸다.(단순한 것^ ^...)


                          완도 해신 세트장 - 신라방, 많이 보던 모습이군

 
                               완도 해신 세트장 -청해진, 무지 추웠다.

  몇 년 전 남편과 단둘이 찾았던 미황사를 다시 찾았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묵언수행중이니 절대정숙이라는 커다란 표지판 하나. 순간 걱정이 되어 예린이에게 "예린아 여기는 조용히 해야되는 곳이야 그러니까 떠들지 말자" 순간 예린이 왈 " 다음부터는 조용히 하는데 가지말자 왜 맨날 조용히 하는데만 가노"(허걱!!!) 중창공사를 몇군데 했음에도 아직은 미황사는 조용한 절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달마산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대웅전이 들어서는 이를 압도한다. 지붕의 선이 어찌 저리 산세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까? 그러면서도 곳곳에 건물없이 담장을 터서 문을 만든 절집의 담장들이 아기자기하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도밭을 가기위해 절 뒷편으로 난 오솔길을 산책했다. 드디어 떠들어도 된다니 예린이만 신이났다. 아빠에게 목마를 태워달래고는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둘이서 갈때는 얼마안되던 거리가 아이랑 같이가니 왜 이리도 머냐? 둘이서 예린이를 번갈아 업고 안고 도착한 부도밭은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져 예전의 그 아기자기하던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도 세월의 무게를 담담히 지내온 돌들은 여전히 정겹고 부도에 익살스럽게 새겨져 있던 게나 거북이의 모습도 정겹다. 어쩌면 엄숙할 수도 있는 이런 부도에 이런 정겨운 조각을 새긴 석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여기에 묻힌 스님 역시 인간미가 풀풀 풍겨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예린이가 부도에 새겨진 게에게 "꽃게야 내 풍선 줄게 잘 가지고 놀아"란다.


                                     달마산과 어우러진 미황사 대웅전과 응진전

 
                                      대웅전 앞뜰에서 풍선들고 신난 예린이
 

 
       부도밭 가는 길의 담장위의 나무 -나무의 자람을 위해 담을 허무는 마음이 아름답다


전망을 모두 가리는 건물의 지붕 - 대웅전 앞에 새로 건물이 들어섰는데 건물을 잘못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도로변의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김남주 시인의 생가로 갔다. 길거리에 커다란 표지판이 있어 찾아갔는데 시인의 흔적이라곤 집앞에 고은 시인이 써서 세운 철판뿐이다. 시인의 약력이 간단하게 소개된 글이었는데 고은씨 정도면 좀 다르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집안에는 곳곳에 가난의 내음이 묻어나오고 조그만 안채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듯한데도 폐가의 분위기가 집을 압도한다. 피를 토하듯 시를 썼으며 지배자에게는 서슬퍼런 칼날이었던 그의 시를 생각하면서 조그만 시비라도 하나 시인의 집앞에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집앞에서 윤선도를 다시 생각했다. 단순히 부자냐 가난하냐가 아니라 누가 진짜 시인일까를 생각해본다. 어부가 없는 어부사시사는 거짓일뿐이다.

  큰일났다. 내가 운전을 하는 사이 예린이와 놀아주던 남편이 전화통화를 길게 하는 바람에 피곤했던 예린이가 잠이 들어버렸다. 이제 좀 있으면 저녁먹을 시간인데 한 번 잠들면 옆에서 폭탄이 터진다 해도 꿈쩍도 않을 예린이가 밤늦게 일어나 밥투정에 안자고 놀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애가 잠드는 것도 모르고 전화에만 집중한 남편한테 신경질을 퍼부었다. 좀 미안하긴 한가보다. 그러면서 1시간이면 일어날거야 하는데 흥 어림없는 소리....

  자는 예린이와 함께 오늘의 마지막 일정. 고천암호에 철새를 보러 갔다. 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극한 남편을 위해 잡은 일정이다.(나는 동물 별로 안 좋아한다. 무섭다. 특히 날개달린 것들. 바퀴벌레도 날개달린게 제일 싫다.) 고천암호에 도착하자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엄청나다. 멋지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으랴? 날이 너무 추워져 차안에 있다가 나갔다가 하면서 새들을 기다렸다. 해 저물 무렵 갈대밭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석양진 하늘의 장관에 감탄하면서.... 새들은 이제 다들 떠났는지 기대했던 만큼 많이 날아오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감탄을 연발하는 남편...(그래 새가 좋나? 나는 비둘기나 가창오리나 백로나 다 새일뿐인데...)


   고천암호의 가창오리들 - 이 새들은 아직까지 안가고 뭘하고 있을까? 다들 간것 같은데


                                       고천암호의 끝도 없는 갈대밭

해는 지고 잠시 둘이서 자는 예린이를 보면서 고민을 했다. 이틀의 강행군에 좀 많이 피곤하고 원래 예정대로 내일 강진까지 둘러본다면 모레 개학이 부담스럽다. 원래 여행이란 아쉬움을 남겨야 하는거야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6시간을 차를 달려야 하나? 피곤하면 운전 교대하기로 하고 집으로 출발(결국 운전은 남편 혼자서 다했다. 대단한 체력이야...에구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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