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3식구는 어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평화대행진"에 갔다왔습니다.
3시간에 버스 1대가 다닐 뿐인 평택시 대추리와 도두리.
개발도 관광도 바라지 않는 이 한적한 시골마을이 유명해진 건,
우리 국회의 평택미군기지 확장 계획 승인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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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전쟁반대 7.10 평화대행진'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대추초등학교로 들어오는 진입로에서 경찰이 차량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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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퍼옴) |
저놈의 표지판 때문에 전경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길 4키로를 걸어들어가야했습니다. 마로는 잔뜩 겁에 질려 집에 가고 싶다고 흐느껴 울더군요. 기사에는 6천명이라고 나왔는데, 실제 동원된 전경은 총 1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하게 많긴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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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전쟁반대 7.10 평화대행진'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대추초등학교 진입로에 경찰병력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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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퍼옴) |
행사 자체는 무척 흥겨웠습니다. 저와 옆지기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민중연대 공동대표이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위원장인 정현찬 선생님의 여는말이 흐드러지고, 안치환씨(노근리 출생), 정태춘씨(도두리 출생) 등 각종 문화공연이 이어지고, 권영길 의원,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발언과 공연이 실감났습니다. "미친 세퍼트를 한곳에 몰아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몰아야 하는 거다"는 말씀에 폭소와 박수갈채가 와르르 쏟아졌더랬죠.
드디어 어제의 하이라이트, 미군기지 인간띠잇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불허방침이 나온 터라 불상사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고 해서 저와 마로를 비롯해 부녀자 일동은 의료봉사단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전경들 때문에 기지쪽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논길로 에둘러야 했지요. 논두렁 위에 점점히 찍힌 게 모두 어제의 참가자랍니다. 4천명 정도 됐다고 하네요.

원래 이 일대는 갯벌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논두렁 곳곳에 바다조개껍질이 눈에 띄고 강을 따라 갈매기가 올라온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소금땅을 간척해서 사람이 살게 되고, 이제는 논농사도 지을 수 있는 땅이 되었는데, 이 땅을 몽땅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내놓으라고 하니 모두 열받을 수 밖에요.
그런데 아뿔사, 의료단 옆에 자리잡은 게 실수였습니다. 끊임없이 피투성이 부상자들이 밀려오는 바람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울기 시작했습니다. 의료봉사단이야 지혈 등 응급처치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중상자들을 호송하기 위해 구급차를 계속 불러야 했고, 여기저기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자 아이들 중 몇명은 패닉에 빠져 엄마들이 애를 먹었지요. 상황실에 따르면 부상자가 200명이 넘었고, 이 중 병원으로 호송된 사람만 85명이었다고 하니 대충 상황이 짐작가시겠죠. 대개 곤봉에 맞거나 방패에 찍혀 심한 타박상을 입거나 살이 찢어져 출혈을 일으킨 경우였는데, 제가 본 가장 심한 환자는 갈고리로 머리를 찍힌 경우였습니다. 출혈도 어마어마했지만 의료단이 걱정하는 건 두개골 함몰과 실명 가능성. 안타깝게도 후속기사가 없어 중상자의 근황을 알 수 없네요. 부디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5시 30분에 인간띠 행사를 마무리하고 지역주민들은 대추초등학교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다른 지역 참가자들은 귀가하기로 했는데, 황당한 건 귀가행렬까지 전경들이 막은 겁니다. 부대 옆으로 지나가면 안 된다나? 작은 마을이라 외길 뿐인데, 유모차 끌고 애들 업고 논길로 갈 수도 없는 일. 집에도 못 가게 하냐고 항의하던 도중에 버스위에 올라가있던 전경들이 행렬에 소화기를 뿌리는 바람에 아이들이랑 허겁지겁 논고랑으로 피신하느라 진흙을 홀딱 뒤집어써야했습니다. 정말 어찌나 화가 나는지 절로 욕이 쏟아져나왔지요. 그 과정에서 민노당 모 의원이 대표로 항의하다가 대표로 두들겨맞아 입원까지 했다는군요. 정말 제기랄 젠장이죠.
30여분의 실갱이 끝에 간신히 합의가 되어 귀가길을 보장받았지만 마로는 완전히 진이 빠져 늘어져버렸고, 결국 4키로를 업고 가야했습니다. 흑흑흑. 그래도 돌아오는 차에서 한숨을 자고 나선 다행히 다시 기운을 차리더군요.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마로가 경찰은 나쁜 놈을 감옥에 가두는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모, 삼촌을 때리는 광경에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진짜 경찰이 아니라 "가짜 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그제서야 납득이 갔는지, 얼른 태권도 배워서 가짜 경찰을 혼내주겠다고 큰소리칩디다. 딸아이의 천진한 모습에 저로선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언제쯤이나 되야 내 나라, 내 땅을 내 손으로 지키겠으니, 너희 미국은 모두 이 땅을 떠나라고 온 국민이 힘을 합쳐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 부디 딸아이가 경찰이 우리 국민 대신 미군을 우선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그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