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이사하던 날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덕분에 차가 막혀 이사가 늦어진 데다가,
비로 책을 망치면 안된다는 일념하에 이불로 책상자들을 감싸는 바람에 며칠동안 줄곧장창 이불빨래를 해야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날씨가 좋아 일단 안심.
부동산 아저씨의 착각으로 그 바쁜 와중에 인감증명서 떼러 왔다갔다 했던 것만 빼면
서울에서 출발할 때까지 별반 문제도 없었고.
문제는 수원에 도착하면서부터.
언제까지나 수원에 살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월세로 집을 구했더랬다.
낡은 편이라 도배를 새로 해준다는 조건이었는데, 수원에 도착해보니 아직 마루 도배중이었다.
여자 혼자서...
22평이 큰 평수는 아니다.
하지만 당일에 이사나가고 새로 이사가 들어오는 상황인데,
여자 혼자서 1-2시간 안에 도배를 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
도배비야 벽지값과 인건비인데 주인집이 값을 흥정하다 1명만 쓰는 조건이 된 듯 하다.
우리로선 5시 30분 이후에나 이삿짐을 올리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선 사전협의없이 시간이 지연되어 심야운송을 못 뛰게 되었으니 요금을 2배로 내라고 펄펄 뛰고.
최소한 말이 되는 요구를 해야 들어주든 말든 하지 않겠냐고 한참을 옥신각신 싸우고.
그 와중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 주인집 할아버지와 만나 이 상황을 따지는데,
어르신께선 도배해주기로 약속한 거지, 몇시까지 도배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며,
세입자가 왠 큰소리냐, 젊은 사람이 경우가 없다 등등 적반하장이었다.
결국 옆지기와 난 더 이야기를 나눠봤자 씨알이 먹힐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연장자랑 핏대올려 싸울 수도 없다 싶어 중도 포기하고 나오는데,
오히려 부동산에서 미안하다며 복비를 2만원 깎아줬다. -.-;;
다시 이삿짐센터를 얼르고 달래 10만원을 더 주기로 합의하고,
복비 아낀 2만원으로 같이 간식을 사먹고, 차에서 낮잠도 자며 시간을 때우고
간신히 이삿짐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10시가 넘어서야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 쓸고 닦는데 스팀청소기가 없었다면 청소도 하세월 걸렸을 것이다.
어쨌든 11시쯤 되어 간신히 몸 누일 구석을 마련하여
도와주시러 오신 시어머니랑 마로랑 조카랑 뒤엉켜 골아떨어졌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자 어머니 기일이라 퇴근후에는 친정에 가야했고 한밤중에 돌아왔다.
일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치우기 시작했는데 책을 정리하다 깔릴 것 같아 책장을 사기로 특단을 내리고 전격쇼핑.
결국 오늘까지도 안방과 화장실만 자리가 좀 잡혔을 뿐,
마루와 베란다와 마로방은 아수라장이다. @.@
그래도 이사한 보람을 여러 모로 느끼고 있으니...
- 22평이다. 마로도 집이 커서 좋다고 한다. 우스우려나?
- 현관문부터 사무실 책상까지 걸어서 18분이다. 지각할 걱정 전혀 없다.
- 단지 바로 주변은 번화가가 아니지만 두 블록만 지나면 아주대가 있어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 월드컵 공원에서 조깅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월드컵 체육센터와 아주대 어학원을 이용할 수 있다.
- 마로 어린이집에서 차량을 운행하는데 어차피 가는 길이라고 나도 태워준다. ^^V
- 무엇보다 회사와 집이 가까워 마로 아침을 먹일 수 있다.
(그동안은 어린이집에서 아침도 먹여줬다. 매일 3식구가 함께 아침을 먹는다는 건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 소소한 사연
- 아가씨네 계시던 어머니께서 이사 당일 일을 도와주신다고 오셨다. 그런데 아가씨 큰딸을 대동하신 것이다. 속으로 돌볼 애가 둘이나 되면 어찌 일을 하나 싶었는데, 5살 하영과 4살 마로가 죽이 맞아 놀아줘서 덕분에 어른들은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 어머님이랑 하영, 마로와 함께 저녁을 사먹었는데, 어머님이랑 나랑 서로 고기를 사양하느라 김치만 실컷 구워먹고 막상 고기는 홀라당 태워먹었다. 결국 막판에 아깝다고 바싹 탄 고기를 서로 주섬주섬 먹는데, 어찌나 웃기고 짠하든지.
- 친정어머니 1주기 기일전 1달 사이에 이직문제, 이사문제, 전의 회사 미지급금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어머니께서 힘을 써주셨나?
- 원래 책장 하나만 더 사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따져보다가 유아이 600 3Set로 주문해버렸다. 어차피 책장이야 평생 끌고 다닐 거고, 마침 미지급금도 입금되었겠다 싶어 질러버렸다. 설치될 날만 손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