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회사가 목동으로 이사왔지만, 그 전 4년간은 서울역과 회현역 딱 가운데 있었던 터라 노숙자 곁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그런데 노숙자의 수는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추석이 지나면 추위를 피해 지하철역에 급증하기 시작하고, 식목일을 전후로 하여 한산해지곤 한다. 한여름에야 열대야를 피해 일부러라도 공원에서 잠을 청한다지만,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노숙도 아닌 야숙을 자청할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속 때문이다. 아무리 노숙자라도 동사자를 만들 수 없어 겨울에는 내버려두지만, 꽃피는 춘삼월만 되면 단속과 물청소를 강화해 내쫓는 것이다.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여름에도 한뎃잠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데, 노숙자들은 어디서 봄가을을 보낼까 마음이 쓰이곤 했다.
어쨌든 서울역이고 회현역이고 일년 열두달 노숙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나를 비롯한 대개의 여직원들은 서울역보다는 회현역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했다.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지하도의 악취는 락스청소를 하고 노숙자 몸에 대고 소독약을 뿌려대도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반면 회현역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노숙자들의 외양도 멀끔한 편이다.
또 서울역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깡소주나 환각제에 취한 노숙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들은 만만하다 싶은 행인이 지나면 불쑥 길을 가로막거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구걸을 하곤 해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기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일쑤이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거나 토악질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고성방가와 술주정이라니.
하루종일 거지꼴로 지하도를 뒹구는 서울역 노숙자들과 달리 회현역에는 대개 저녁 8시 정도부터 노숙자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단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은 뒤, 짊어지고 온 배낭과 종이상자를 풀어 잠잘 채비를 한다. 수건 겸 걸레로 구석구석 상자의 흙과 먼지를 닦아내는 모습이 꽤나 정성스럽다. 그나마 말짱하고 깨끗한 면을 골라 이리저리 상자를 끼워 맞춰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관 모양을 만드는 재주도 가히 경이롭다. 사람크기만한 배낭에선 침낭이 나오고 여벌 옷이 나오고 베개까지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른 노숙자와 거의 말도 안 하며 잠자리 준비만 끝나면 바로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한다. 가끔 추위를 다스리려고 소주와 꼬마김치를 나눠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다 술주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워있던 사람들에게서 고함이 터져나온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잠 좀 자자."
철야를 하고 새벽에 퇴근할 때면 회현역 노숙자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언 몸을 녹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서울 곳곳의 새벽 인력시장으로 흩어진 것이다. 하루 일당으로 벌집에 들어가 잘 수도 있지만,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친척집에, 혹은 고아원에 맡긴 아이를 찾을 수 있기에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노숙자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에게 왜 이분들이 노숙자 쉼터에 안 들어가냐고 여쭤봤더니 햇살보금자리처럼 새벽출근이 가능한 곳은 얼마 없고, 다른 기관은 일과(훈련)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거나 아예 지방에 있어 일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또 대부분의 기관이 종교단체에서 운영되는 것이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언젠가 회현역에서 노숙자가 지하철 역무원의 부인을 철로에 떨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난 적 있었는데, 이로 인해 회현역 노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서울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바람에 다음날 일거리까지 놓쳤다며 회현역 역무실에 하소연을 하는 걸 보았다. 사고를 낸 노숙자는 회현역 노숙자가 아니라 뜨내기였다며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그들은 일거리가 끊어져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광경은? 하루 3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노숙을 자청하며 돈을 아끼면서도 매일같이 500원짜리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