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산다는게 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자의로 태어난 인생이 아닌데 왜 삶을 계속 영위해야 하는지, 죽는것 보다 사는게 더 나은지 아닌지 해답을 구하는 이에게 제멋대로 끄적끄적.
자유와 결혼은 병행될 수 없는 단어랍니다. 결혼은 '계약'이니까 책임일 수 밖에 없어요. 그나마 온기를 더해 줄 수 있는 건 사랑보다 신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이야 식어버리면 그만이고, 정이야 세월따라 익는 것이니 아직은 먼 단어. 그렇다면 상대가 나와의 계약을 온전히 이수하지 못해 패널티를 물 수는 있겠지만, 불가항력의 사유가 아닌 '고의의' 중차대한 과실로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그나마 따스하지 않을까요? 저로선 도무지 왜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드릴 수 없어 이렇게 현실을 따져보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네요.
그리고 책보다는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행을 가시기 힘들다면 다만 하루라도 은둔을 하시길 바랍니다. 월차를 내고 핸드폰을 끄고 하루종일 외출을 하겠다고 옆지기에게 단언을 해둔 다음 은둔을 하는 거죠. 집에서 은둔을 하면 원치않는 잡상인이나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까 외출을 해야 제대로 은둔을 할 수 있답니다. 옆지기가 출근을 하자마자 부랴부랴 걷기 편한 옷과 신발을 골라잡아 바로 나와야 합니다. 제한된 자유의 시간을 1분 1초라도 더 누리기 위해선.
저의 경우 집을 나와서는 걷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잡스런 생각을 하며, 심각하게 고민도 하며, 심심파적 울기도 하며, 열받는대로 발도 쿵쿵 굴려가며 걷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걷다 보면 더 이상 새로이 넋두리할 것도 없고, 화풀이할 것도 없고, 똑같은 생각을 곱씹기도 마땅치 않아, 걷는 것 자체에 푹 빠져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다시 한 두 시간 더 걷다 보면 이젠 다리도 아프고, 날이 너무 춥거나 덥게 여겨지고, 배도 맹렬히 고파옵니다. 그때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끟여먹고 한숨 낮잠을 잘 수도 있고, 만화방에 들어가 라면을 시켜먹고 종일제로 노닥거리기도 합니다.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저녁 시간이 되버린다면 다시 30분 정도 생각해봅니다. 내가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이 뭐뭐였는지. 달게 잔 낮잠 때문이었는지, 비현실적인 만화에 폭 빠졌었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아까의 감정 과잉 상태를 조금 더 냉정하게 따져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립니다. 계약을 파기할 것인지, 아니면 패널티를 책정할 것인지, 별도의 유지보수 계약을 추가해야 하는지. 만약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시간 제한에 걸려 계약 자체가 아예 파기되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는 편이 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어떠한 종류의 계약이든 갑과 을의 피해 규모는 계약 파기로 인해 가장 커지므로 파기 결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파기 이외의 결정을 내렸다면, 계약 유지를 위해 상호 우선 실행가능한 사항을 이행한 뒤, 추가항목에 관한 세부 협상에 들어가야 추가협상이 유의미합니다. 이때 우선 이행사항은 당일내 처리하거나 통보하고, 추가 협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하면 됩니다.
파기 결정을 내렸다면, 내가 입은 피해를 정확히 산정하고, 향후 유사한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본 계약 파기에 따른 결과보고서도 만들어두어야겠지요. 이상이 저의 방법론이며, 아직까지 파기 결정을 내린 적은 없으나 추가협상을 위한 유예기간을 가진 적은 있습니다. 이상의 방법은 '왜'에 대한 답변은 되지 않겠지만, 이미 날인된 계약서를 두고 '왜'를 따지는 것보다 사후대책을 세우는 게 더 긴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손톱만큼이라도 참고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