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歲寒圖

* 진경그림이 아니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 세한도
이 그림은 마립간님의 서재에서 퍼온것으로 세한도의 제문을 옮겨서 감상하는 방문객에게 선사하고져 한다. (水巖)
전예체로 쓴 歲寒圖 藕船是賞 阮堂- 세한도. 우선에게 상을 줌. 완당이라 쓰고 그림 옆으로 쓴것은 단정한 解書體 로 題文을 쓴것이니 -
"그대가 지난 해에 桂未谷(계미곡 이름은 馥복 호는 晩學만학)의 만학집(8권)과 운子居(운자거 이름은 敬경, 호는 簡堂간당)의 大雲山房(대운산방:8집) 을 보내주고 올해에 賀耕藕(가경우 이름은 長齡장령)의 皇朝經世文編(황조경세문편:120권)을 보내주니, 이런 일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은 아닐것이다.
더구나 이것을 천만 리 먼 데서 구입하였고, 그것도 몇 해 걸려서 처음으로 얻었으니, 한 때의 일이 아니라 하겠도다.
또 세상 사람들은 도도하게 오직 권세와 이익에만 쫓아가는데, 이처럼 마음과 힘을 합하여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도리어 절해 고도 유배지에 있는 초췌하고 마른 나에게 보내주니, 세간의 권세와 이익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太史公(태사공. - 司馬遷사마천)의 말대로 '권세와 이익으로 얽힌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멀어진다.'고 했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권리중의 한 사람인데 초연하게 스스로 권세, 이익 밖에 솟아 남이 있으니, 권세와 이익의 대상으로 나를 보지 않음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것인가, 공자가 '추운 겨울을 당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드는것을 안다.'고 하였으니 松柏송백은 사계절을 일관하여 시들지 않음이라.
추운 겨울이전에도 송백이오, 추운 겨울 이후에도 한 송백이어늘 성인이 추운 겨울의 송백을 칭찬하였다. 이제 그대와 나와의 관계는 귀양 전이나 후가 더하고 덜함이 없도다.
그러나 전날의 그대는 칭찬 받을 만한 것이 없었고, 이제 와서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하게 되었다. 성인이 각별히 소나무와 잣나무를 칭찬하는것은 한갖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든다는 정조와 굳은 절개뿐만 아니라 또한 추운 겨울에도 오히려 싱싱한 때문이다.
아아, 前漢과 같이 순후한 풍속에서도 당시의 汲암 鄭當時와 같은 사람은 현달한 현자이었으나, 그의 盛時(성시)에는 많이 보이던 빈객들도 그의 세력이 쇠하자 하루 아침에 문전이 쓸쓸하였다.
저 하비의 책公이 대문에 방을 붙여 '일사일생에 交情을 알겠고 一食一富에 交態를 알겠으며 一貴一賤에 교정이 나타나 보인다.'고 했듯이 세상인심을 통탄함은 박절함이 극한 것이 로다. 완당노인은 쓰노라."
1786년(정조 10년) 6. 3일 충남 예산에서 탄생.
1856(철종 7년)10.10 阮堂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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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에 阮堂 金正喜先生 100周忌追念遺作展覽會(震檀學會 주최.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다. 당시 전람회 도록은 흑백 도록과 이병도 선생의 <완당선생 약전>과 100점의 전시작품 목록과 별호집에는 素筌 孫在馨씨가 조사한 175에 이르는 완당의 호가 계제되었다.
1986년 9월에는 추사탄신200주년기념전이 백악미술관에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