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하고 있는 책자들과 보고서 등이 어제 한꺼번에 배송되었습니다.

한아름 소포를 안으니 마로가 눈을 반짝이더군요. "엄마, 내 선물이에요?"

"어쩌지, 이건 엄마, 아빠 책이랑 공책인데요. 아이는 못 봐요."

"언니는 못 봐요?(마로는 자신을 언니라고 곧잘 지칭합니다.)"

"네, 이건 어른들만 쓸 수 있어요."

"아, 그랬구나.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럼 할아버지에게 공책 드려요."

"응? 어느 할아버지?"

"퍼즐 사 준 할아버지요. 엄마, 아빠는 많으니까 할아버지에게 공책 나눠줘야 해요. 할아버지도 줬어요."

며칠전 수암할아버지로부터 엄마 공책(다이어리)도 받고 마로 퍼즐도 받고 케이크도 받았는데,

엄마는 빈손으로 할아버지를 만난 게 영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딸아이에게 한 수 배웠으니 수암 할아버지, 책이 좋으세요? 공책(다이어리)이 좋으세요?



사진은 의미없이 넣었습니다. 놀이방에서 받은 마로 사진. 치마 입었다고 자랑하네요.

액자 테두리 색칠도 마로가 했어요. 1주일이나 걸렸지요.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aviana 2005-01-0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못봐요? ' 저 넘어갑니다....넘 귀여워요...

로렌초의시종 2005-01-0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마로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도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이에요~~~~^^ 게다가 착하기까지!

水巖 2005-01-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게 마로가 칠했단 말입니까? 일주일씩이나 정말 놀랍군요.

마로가 이젠 할아버지 생각도 하고 귀엽군요. 딴 할아버지들이 샘 내지 않으시려나...

할아버지는 공책 쓸 일이 없으니 어쩌죠? 책이 좋겠지만 마로가 선택한것이면 아무거라도 좋죠.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하더라고 전해주시고 예쁜 사진 액자도 칭찬하더라고 전해주세요.
추천하고 퍼 가야지.

chika 2005-01-0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전 '언니'(ㅎㅎ)랑 놀구싶어요~ ^^

Laika 2005-01-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굴도 이쁘고, 맘도 이쁜 언니...^^

2005-01-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0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1-10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년 동서울청년회 우등불 가을답사는 용주사로 가게 되었다. 원래는 브라이언 베리 스님과 함께 탱화를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스님의 사정으로 우리끼리만 가게 되었다.
아침 9시에 강남역에서 모여서 10시가 좀 넘어 출발, 1시간 남짓 차를 달려 도착한 용주사는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달랐다. 산속에 있으리라 생각은 안했지만 도로가 바로 옆에 붙어 있을 줄이랴....절 규모 또한 별로 크지 않았다.

용주사 일주문?! 원래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 일주문인데, 어쨌든 일주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정면 3칸에 맞배지붕의 이 문은 창건당시에는 없었으나 1980년 이후에 경내를 정비하면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주말이라 그런지 삼삼오오 용주사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양쪽벽에는 사천왕상이 그려져 있어 온갖 잡귀와 악신을 물리치고 절을 수호한다.

 

 

 

 

 

원래 용주사터는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된 갈양사가 있던 곳이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창건한 절이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보경(寶鏡) 스님으로 하여금 4년 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용주사는 불교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힘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조선전기에는 고려의 전통을 이어, 왕이나 왕실의 무덤을 수호하고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찰이 간혹 세워지기는 하였으나, 조선후기에 와서 사림세력이 부각되고 성리학이 성행하면서 왕실에서의 사찰건립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용주사를 마지막으로 하여 조선왕조에서의 왕실의 원찰은 더 이상 세워지지 못했으며 이처럼 사회적 여건이 좋지 못하던 시대에 거대한 왕실의 원찰이 세워지게 되었던 연유는 정조의 지극한 효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보통 절과는 다르게 궁궐 건축양식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을 지나 들어가면 매표소가 있고 바로 삼문에 이르게 된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삼문은 좌우에 줄행랑은 지닌 맞배지붕 양식의 문이다.

 

 

삼문의 네 기둥에는 '龍珠寺佛'의 네 자를 각각 첫 글자로 한 싯구가 주련(기둥이나 바람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씨.)으로 걸려있는데 일제시대 활동한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의 글씨이다.

  용이 꽃구름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용주사라고 쓰인 현판 역시 안순환의 글씨이다.

 

 

 

 

 

삼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

 

 

 

우리 일행은 사찰을 둘러보기 전에 은행나무 옆에서 각자 준비한 발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탱화에 대해서 발제한 희정언니.

 

 

절의 문양에 대해서 발제한 용호형

 

 

용문사에 대해서 발제한 나.

 

 

혼자 셀프놀이 한 종민이형.

 

 

옆에서 땅파고 노는 마로~!

 

 

토론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절 밖으로 나가서 점심으로 순두부를 먹었다.

식당 앞에 묶여 있던 누렁이.

 

 

 

식사를 마치고나서는 본격적으로 사찰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삼문을 지나면 탑이 정면에 보이고, 바로 천보루를 만나게 된다.

탑이 대웅전 앞이 아닌 누각 앞에 놓여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천보루는 1790년 절의 창간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누각이다.

 

 

 

천보루의 아래층은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통로로써 여섯 개의 목조기둥아래 높다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데, 기둥을 받치는 초석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석조기둥과 같이 커다란 규모이다. 대체로 사원건축에서는 목조기둥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러한 석조기둥은 주로 궁궐건축에서 사용된다.

거대한 석조기둥...

 

 

누각의 좌우로는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승당(僧堂) 서쪽에 선당(仙堂 또는 禪堂)이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각각 나유타료(那由陀寮)와 만수리실(曼殊利室)이라고 불리는데 스님들의 요사채와 객실로 사용된다.

나유타료는 현재 공사중이고 만수리실만 볼 수 있었다.

 

천보루에는 '홍제루(弘濟樓)'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천보루 였다가 후대에 홍제루라는 별호가 추가된 것이다. 밖으로는 하늘(天)이 보호(保)하는 곳이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弘濟)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밖에서 보면 천보루

 

 

안에서 보면 홍제루

 

 

중정에서 본 천보루의 모습.

 

 

 

천보루는 궁궐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건물명칭이 그러하고, 궁궐과 같이 난간을 둘렀으며 좌우로 연결된 나유타료·만수리실이 이를 말해준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면서 용주사에 자주 행차하였는데 천보루는 이러한 때를 대비해 행궁규모로 지어진 건물인 것이다.

천보루는 현재 각종 법회 장소로 이용되는데 누각의 내부 측면에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길이 2.44m의 목어가 잉어 모양으로 비늘, 지느러미 등을 사실적으로 갖추고 살아있는 듯이 걸려있다.

 

 

 

 

천보루를 지나 중정에 들어서면 정문에 대웅보전이 보인다.
흔히 사찰내에서 중심되는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대웅전이라 부르는데 정확한 의미에서 보면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곳을 가리킨다.  법호경에서 석가모니를 부를 때 '대영웅 석가모니'라하고 줄여서 '대웅'이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주사에서는 '대영웅 석가모니불을 모신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에서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대웅보전은 1790년 용주사의 창건과 함께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형식으로 공포(拱包)는 각 기둥과 평방위에 설치한 다포계(多包系)양식이다. 처마는 2중의 겹처마로 위로 약간 치솟았으며 그 네 귀퉁이에 활주(活柱)를 세웠으며,

문은 빗꽃살무늬로 처마에 고리가 달려있어 위로 들어 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진에 보이는 쇠로 된 길다란 막대기가 문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예는 사찰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문을 활짝 올려 제치므로서 불전내부의 서역공간과 외부의 새속고안이 차별 없이 하나로 합일되는 역할을 한다.

또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용인데, 용은 법당 전면 기둥과 처마 밑을 비롯하여 법당의 닫집, 천장, 기둥, 벽 등에 주로 장식된다.

대웅보전 어간(御間 : 전면의 중앙칸)의 양쪽 기둥머리에 조각된 용머리.

 

 

법당에서는 전면 바깥쪽에 용두(龍頭)가 안쪽에는 용미(龍尾)를 장식한 경우와 건물 앞쪽에 용두를, 뒤쪽에 용미를 장식한 경우가 있다. 이 때 용두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반야용선(般惹龍船)의 선수(船首)를 상징한다. 불교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말한다.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참조)

용주사의 대웅보전에 장식되어 있는 용두와 용미

 

 

 

대웅보전 내에 모셔져 있는 삼존상은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다.

 

가운데가 석가모니불, 오른쪽이 약사여래, 왼쪽은 아미타불이다. 석가여래와 아미타불은 얼굴 형태가 네모졌고, 약사불은 둥근 형태를 지니고 있어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각각 전라도와 강원도 조각승이 깍아서 그렇다고 한다.

 

 

삼존상 뒤에 걸려 있는 탱화는 '삼세불의 후불탱화' 이다. 탱화의 제작자에 대해서는 김홍도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고 아직까지도 논란이 분분하다.

탱화는 원칙적으로 한치의 여백도 없이 꽉찬 구도를 묘사하는데 이는 불법의 세계가 법과 지혜로 충만된 완전의 공간이므로 이를 묘사한 불화는 마땅히 빈공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탱화는 서양화법과 같은 원근법, 명암법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탱화는 인물의 표현에 음영법을 쓰고 있다.

 

 

 

삼존상 위에는 화려한 닫집이 있다. 닫집이란 '또 하나의 집'이라는 뜻으로 극락정토를 상징한다.

용주사의 닫집은 천장에는 극락조가 날고 좌우에는 구름속에 동자모습의 비천이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각 기둥에는 다섯 마리의 용이 불단을 보호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가 파손되고 넷만이 남았다.

 

 

 

대웅보전 앞에는 정조가 식수하였다는 회양나무가 있으나,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온몸에 붕대를 감은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보전의 처마에 장식되어 있는 봉황. 그런데 꼭 닭대가리 같이 생겼다-_-;;;

 

 


 

 

대웅보전 옆에서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용호형과 종민이형

 

 

 

대웅보전과 천불전 사이에는 시장칠등각이 있는데 칠성, 산신, 독성이 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세 신앙은 불교를 신앙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 수 없는 독특한 한국적 불교신앙으로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호하면서 불교이전의 재래 토착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조화롭게 수용 발전시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칠성신과 독성, 산신을 모시는 전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존재하며 각각의 신을 따로 모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이 별도로 존재하기도 하고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하여 이들 세 신을 하나의 전각에 함께 봉안하기도 한다. 용주사의 시방칠등각은 세 신을 함께 모신 전각으로 전각이름이 매우 독특하다. 그 뜻을 살펴보면 먼저 시방(十方)이란 동·서·남·북, 동북·동남·서남·서북, 그리고 상·하의 열 곳으로서 무수한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칠등(七燈)이란 칠성, 즉 북두 칠성을 가리키므로 시방칠등각은 결국 칠성각과 동일한 뜻이다.  

 

천불전은 말 그대로 천 개의 불상을 모셔놓은 곳이다.

 

 

 

대웅전쪽에서 바라본 천불전과 범종각

 

 

대웅보전의 계단을 올라 오른쪽을 향하면 정면에 법고각이 있고 범종각이 맞은편에 있다. 범종각 안에는 원래 고려대에 만들어진 동종이 있었으나 현재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안은 텅비어있다. 용주사의 동종은 상원사의 동종, 에미레종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잇다.

 

 

 

 

용주사에는 그 밖에 지장전과 효성전 등의 건물이 있다.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사찰의 건물을 명부전이라 한다. 그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서 시왕전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다고 해서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주사에는 지장전이라고 이름하여 지장보살 시왕, 판관 등을 봉안하고 있다.

 

 

 

 

 

용주사의 가람배치

 

 

마지막으로 탑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구도 한 번 멋지다. -_-;;;

 

 

마로를 데리러 일어나는 희정언니.

 

드디어 마로와 함께...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찍은 사진. 흔들린데다가 옆으로 치우쳤다--;;

 

 

보너스로 마로와 희정언니 사진

 

엄마가 목걸이 사줬어요~!!!

 


 

 

신나서 펄쩍 펄쩍..

 

 

 

 

이번 용주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사찰답사는 없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불교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미륵이 뭐고 보살은 뭔지....불상은 또 왜그리 많으며 등등....) 사찰건축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그 나마 몇 가지 얻은 지식도 단편적인 이해로만 그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사찰답사를 계기로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된만큼 앞으로도 사찰을 가게 되거나 하면 관심있게 둘러볼 수 있을 듯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5-01-0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쓴 건 아니구요, 후배가 쓴 거 퍼왔습니다.

옆지기가 그 후 단식을 들어간 터라 마음이 어수선해 후기를 정리하지 못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작정하고 올리려고 보니... 사진이 1장도 안 남아있네요.

며칠전 하드를 날려먹었거든요.

회사자료야 그때그때 다 백업서버에 넣어두니 문제가 아닌데,

2년간 찍어놓은 마로 사진이 몽땅 날라간 겁니다. 흑흑흑

반딧불,, 2005-01-0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습니다.그나저나 마로 사진 자주자주 구워두세요.

어떡한답니까..아까워서요.

그리고, 사이든 드림위즈든 사진 많이 올려도 부담없는 곳 꼭 만드세요.

얼마나 아까울까요. 이리 어여쁜 사진을 말여요.

반딧불,, 2005-01-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최근에 불사를 다시 하셨나봅니다.

단청이랑 벽화 들이...좀 어색한 듯 느껴지는 것은 제 착각이겠죠??

조선인 2005-01-07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주사에 불이 난 적 있었거든요(도중에 공사중인 사진 보이시죠?)

그래서 몇 군데 새로 손 본 곳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결정적인 건 사천왕상이겠죠?

없던 걸 새로 불사 올린 건데, 정말 허걱입니다. ㅠ.ㅠ

호랑녀 2005-01-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다녀왔는데,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게 맞는 말이로군요...ㅠㅠ

저는 효성전인가 앞에 있던 탑에 새겨진 효란 뭔가, 불효란 뭔가 뭐 그런 글들이 기억나네요. 아이들에게 소리 내서 읽혔답니다. 그런데 무지 찔리더군요. 니 어머니가 널 이렇게 키웠으니 효도해야 한다... 뭐 그런 글이었는데, 저한테 해당되는 게 통 없어서... 나 엄마 맞을까 뭐 그런 생각만 했거든요...

줄리 2005-01-0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주사에 몇번 가봤는데 이렇게 많은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가는 길이 무지 좋았었던 기억이 나는데.. 좋은 사람과 가서 그랬었나. 산에 있는 절들을 많이 좋아했었는데, 점점 커지고 색깔 요란해지는 절들이 많아지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paviana 2005-01-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글 읽다가 "나"라는 사진 보구 이상하다 내가 아는 조선인님이 아니네 내가 잘못 들어온건가 했답니다...아래 계속읽다가 다른 데서 퍼온글이라는걸 알았구요.마로는 언제봐두 예뻐요..^^
 

지난 월요일 수암님이 트리플 데이트를 즐기신 건 사모님만 모를 거에요. 알라딘 소문은 빠르잖아요? ㅋㅋ
전 염치없게도 수암님께 한 살림 받았답니다.
달콤한 케이크는 간호선생님들께 가서 마로랑 나눠먹었구요,
밀크다이어리보다도 더 멋진 다이어리도 생겼는데, 다행히 만년다이어리라 2006년에 쓸려구요.
메모수첩도 있는데, 이건 장거리 적어두는 용도로 이미 사용중입니다. *^^*
뭐니뭐니해도 마로가 제일 좋아했던 건 퍼즐!

강아지와 바나나는 순식간에 맞추고 인어공주에 도전중인데 이건 조각수가 많아 무척이나 고심합디다.



퍼즐 조각 모양을 보고 아무데나 내려놨다가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 도로 집어들고 갈등하는 마로.
결국은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그동안 퍼즐 주면 저 혼자 잘 놀았는데, 수암님 덕분에 마로와 좀 더 살 부비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물만두님의 소포는 하루 반나절 정도 수위실에서 쓸쓸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죄송.
하지만 마로 좋아하는 거 보세요.
특히 허그곰이 들어간 미니 카드 3개에 완전 반해버렸답니다.
고맙게도 마로 닮았다고 해주신 엽서도 정말 이쁘고, 어머니의 날 카드도 환상적이죠?
무엇보다 연하장에 빼곡히 써주신 말씀, 명심하며 살겠습니다.
참, 복주머니 안에는 인삼사탕과 젤리가 있는데, 마로는 사탕만 골라먹더군요.
뭐 사실 사탕보다 인기 있었던 건 복주머니 수술입니다.
뱀놀이를 한다고 마로가 죄다 잡아뜯어 온 집안에 붉은 실이 구불구불
사진에 안 나오게 하느라 힘들었어요. 흑흑흑



수암님, 물만두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07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5-01-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카드는 하나빼고 모두 올리브님께서 주신 겁니다. 드릴 것이 별로 없어 죄송할 뿐입니다^^

sooninara 2005-01-0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는 좋겠네^^

2005-01-07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水巖 2005-01-0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어공주 퍼즐은 예뻐서 넣었더니 조금 많었군요. 진석이래도 못 맞출것인데 중간 퍼즐이 있어야 좋을뻔 했군요. (진석이 등쌀에 나가야 해요)
 

▶ 시누이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

손위시누이 남편: 아주버님, 서방님,00고모부(님)
손아래 시누이 남편: 서방님, ○○고모부 , 큰/작은/○째 등의 서열을 넣어서 ○○막내고모부

▶ 시백, 중, 숙부모에 대한 호칭

시백부 : 큰아버님
시중부 : (둘째)큰아버님
시숙부 : 작은아버님, 숙부님
시백모님 : 큰어머님
시중모 : (둘째)큰어머님
시숙모 : 작은어머님, 숙모님

▶ 남편의 종, 재종, 3종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의 호칭

남편의 형제자매를 부르거나 가리키는 말을 참고로 하여 나이와 상황에 따라 지칭한다. 큰, 작은, ○째, 막내, 지명 등을 넣어서 아주버님, 서방님, 도련님, 형님, 아가씨, 동서, 아우님 등으로 부르면 된다. 손아래 동서가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으면 동서 또는 아우님으로 부르되 '하오'를 해야 한다.

▶ 시조카들과 그 배우자들의 호칭

조카들이 어릴 때 : 이름
성년 : 조카, 조카님, ○○아범, ○○아빠
조카딸 : 조카, 조카님, ○○어멈, ○○엄마
조카며느리 : 질부, 아가, 어멈, ○○어미
조카사위 : ○서방님, 사위님, ○○아범, ○○아빠

▶ 시고모와 시이모와 그 배우자들의 호칭

시고모 : 고모님
시고모부 : 고모부님
시이모 : 이모님
시이모부 : 이모부님

▶ 시외숙내외의 호칭

시외숙 : 외숙부님, 아저씨
시외숙모 : 외숙모님, 아주머니(님)

▶ 유복친 밖의 시가 친척의 호칭

시조부와 같은 항렬

남자 : 할아버지(님), 대부(님), 족조(어른)
여자 : 할머님, 대모님

시부모와 같은 항렬

남자 : 아저씨, 족숙(어른), 일가어른
여자 : 아주머님, 일가어른

남편과 갚은 항렬

남편보다 연상 : 일가어른, 족장어른, 족숙어른
남편보다 연하 : 서방님, 00아버지
여자 : (나이에 따라) 형님, 아우님
청소년: 도련님, 이름
소녀, 처녀: 아가씨, 이름

자녀와 같은 항렬

아이들 : 이름, 조카
성인남녀: 조카, 조카님
며느리들: 조카님, 질부(님), ○○어머님(엄마)
사위들: ○서방님, 사위님, ○○ 아버지(아빠)

손자와 같은 항렬

아이들 : 이름
성인남녀 : 족손, ○○ 아버지(아빠)
며느리들: 손부님, ○○ 어머니(엄마)
사위들 : ○ 서방님, 사위님, ○○ 아버지(아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1-07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인간아 > 아, 지율 스님

71일째 단식 지율 스님...'신변정리' 들어간듯
[오마이뉴스 2005-01-05 18:28]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2004년 12월 3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때의 지율 스님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5일로 71일째 '58+' 단식을 하고 있는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신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율 스님은 최근 천성산 대책위 홈페이지(www.cheonsung.com)에 여동생과 박영관 부산시교육위원의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신변 정리'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끈다.

지율 스님은 지난 12월 30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 도중에도 유사한 심경을 표한 바 있다. 지율 스님은 최근 천성산과 관련한 영상물을 만들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도중 지율 스님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시디 제작에 들어갔던 것"이라 말했다. 또 지율 스님은 인터뷰 도중 "앞으로는 언론과 인터뷰도 안 한다. <오마이뉴스>가 마지막이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31일 지율 스님은 동생을 서울 거처로 불러 자신이 쓰던 휴대전화를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월 말 지율 스님을 돌보았던 부산광역시교육위원회 박영관 위원도 31일 부산으로 돌려보냈다.

현재로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정보교환이 지율 스님의 유일한 의사소통 경로다.

여동생 글 댓글 통해 소회 밝혀

단식 70일째였던 4일 지율 스님은 홈페이지에서 '여동생'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지율 스님은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덫에 걸려 있고 죽음을 비극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세상의 인연 또한 그지없이 소중했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또 지율 스님은 "홈페이지와 자료의 관리를 맡겨 두고 가며 초록의 공명은 교육의 문제이기에 전교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율 스님의 여동생은 지난 3일 홈페이지에 '서울에서 돌아오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니의 생명은 다 타고 심지만 남은 촛불과 같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삶의 모든 것을 던지고 생명까지 내어서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어느 산과 어느 바다를 지킬 수 있을 것이며 누가 또다시 생명을 내어 던져 자연을 지키려고 싸워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영관 위원 글에 대한 댓글 통해서도 심경 밝혀

또 지율 스님은 박영관 위원이 올린 글의 댓글을 통해 "이제 저는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한조각 땅을 찾았습니다. 저는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번져가게 할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그 가운데 저는 한사람의 일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율 스님은 "'만약'이라는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 이후 일어날 모든 업무적인 일은 도롱뇽 소송의 법적대리인이신 이동준 변호사님과 손정현님, 선생님께서 돌아봐 주시고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천성산 대책위와 논의하여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부탁했다.

2001년부터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저지운동을 시작한 지율 스님은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로부터 '노선 백지화와 대안 노선 재검토' 공약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 뒤 공약 이행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03년 2월~3월 35일간 단식에 이어, 10월~11월 2차 45일, 2004년 6월~8월 58일간 단식을 벌였다.



/윤성효 기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5-01-05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보탤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