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편에 속하는 나는 컨닝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성격을 아는 터라 나보고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던 친구도 없었고.
하지만 나도 컨닝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대학 시절 잡다한 욕심이 많았던 나는 문어발 생활을 했다.
과 연극부, 과 전공학회, 과 사회과학학회, 단대 사회과학학회, 동문회 연극부, 동문회 기장, 생협 학생이사 등.
게다가 전공과 필수교양은 뒷전이면서 사회학과 전공과 여성학 교양을 수강하러 다녔다.
또 4년내 학교 근로장학금은 물론 생협 근로장학금을 받아먹느라 근로시간 짜내는 것도 일이었다.
당연히 최대한 수업을 빼먹었고, 2학기만 되면 과, 단, 총 선거 때문에 수업을 들어가도 딴 짓 하기 일쑤였다.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2.0만 넘으면 돼지' 라는 신조로 뻔뻔하게 지냈다. ㅎㅎㅎ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교수님이 말씀해줬다. 역대 최저학점 합격자라고. 교양학점이 좋아 봐줬다고 *^^*)
그러다가 컨닝의 유혹에 빠진 건 2학년 2학기 교양선택 과목이었던 "환경과 인간" 때문.
생협 덕분에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터라 무척 기대했는데,
강사가 강의에 서툴었을 뿐 아니라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자기 책 선전에 할애했다.
그리하여 난 200명 대형강의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출석확인만 하고 몰래 뒷문으로 기어나가곤 했다.
레포트로 대체했던 중간고사에서 마감을 어겨 c-를 받은 상황에서 기말고사가 닥치자 불안에 휩싸였다.
부랴 부랴 선생님이 선전해대던 책을 읽어치웠지만(다행히 책은 강의보다 훨씬 나았다)
그래도 D를 받을 수 없다는 강박에 컨닝을 결심했다.
컨닝 준비를 위해 시험 시작 시간보다 1시간 먼저 교실에 들어간 나는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초긴장 상태에서 예상답안을 책상에 옮겨적었다.
마침내 시험이 시작되고 시험지가 나눠질 때 난 쾌재를 불렀다.
내가 뽑은 예상문제들이 꽤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 곧 낭패감을 느끼고 말았다.
내 딴엔 잘 보이는데 쓴다고 책상 정중앙을 골랐는데, 시험지와 답안지에 가려 볼 수가 없었던 거다.
그렇다고 차마 시험지와 답안지를 들추고 컨닝할 만큼 담이 크지는 않고.
결국 '그래, 내 주제에 뭔 컨닝이냐, 포기하자, 이게 더 잘 된 거야'라며 마음을 고쳐먹고 시험을 봤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극도로 긴장했었기 때문일까?
컨닝을 위해 책상에 베낀 답안들을 난 거의 다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생협 특강과 중복되는 내용도 꽤 있었고, 책 선전을 일삼았던 대로 책에서 그대로 베낀 문제도 많고.
덕분에 난 a-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고 평균 b-가 나왔다.
에헴, 그리하여 나의 교훈은? 컨닝할 정성으로 공부하자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