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벽 별

                                  박노해시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별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필립비 2, 15)

*******************

조선인님 서재에 갔다가 문득 생각나서 찾아봤다.

참 좋아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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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chika 2004-09-1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라다이스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이 선물받은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빠른 시간내에 읽을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이 책을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선물해준(엄밀히 말하자면 공짜로 책을 얻어 볼 심산으로 이벤트에 응모해 얻어 낸) '따우'님의 리뷰가 아니었다면 책을 읽으며 옮긴이의 말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막바로 본문을 들췄을 것이다. 책을 읽으려 할때, 옮긴이의 말을 꼭 읽어보라 했던 것으로 기억한 나의 기억력 때문에 나는 온통 그 첫문장으로 인해 파라다이스이 초반부를 먹어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책을 읽어보기 전에 이 리뷰를 우연챦게 보게 될 사람을 위해, 오랫동안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첫 문장을 쓰고 싶지 않은데 알라딘의 책 소개에도 그 말이 떠억 하니 올려져 있어 당황스럽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이해가 안되면 자꾸 되돌아가 사람을 확인하라 한 따우님의 조언을 전혀 반대로 기억을 해 꾸역꾸역 앞으로만 나아갔다. 뭐.. 간혹 두어번 확인을 해보긴 했지만말이다.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것 없이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주변머리 얘길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 느낌을 뭐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짧은 글표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수가 없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도 못한채 조금씩조금씩 읽다가 책을 살며시 놔버릴뻔했다. 과거의 현재에서 또 과거로, 회상에서 현실로.....도대체가 이 구성은...!! 하며 이해못하는 내 머리가 아닌 책을 어렵게 쓴 작가에게 괜히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아가며 책을 읽었는데 서서히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느껴버렸다. . 한장면이 또 한장면과 겹쳐지고 연결되어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에 붙잡혀버린거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어렴풋이 '파라다이스'의 상징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파라다이스가 주는 평화와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과 감동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졸면서라도 리뷰를 쓰지 않으면 두번째 읽은 후엔 이 책의 리뷰가 더 어려워질것만같아 꾸역꾸역 적어가고 있다. '즐겁다'라는 표현은 이 책의 느낌으로 생뚱맞은 거지만, 그러한 즐거움이 아니라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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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1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리뷰를.... 도망 갈거예요..=3=3

chika 2004-09-16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전 단지 이 책을 먼저(!) 잡고 읽었을뿐이라구요~
근데요.. 전 리뷰를 좀 못써서 그렇지 이 책 참 좋았습니다. 따우님을 알게 되고 그 덕에 이렇게 좋은 책도 읽게 되어서 좋았어요~ 아영엄마도 읽으면 좋아하실껄요? ^^
 
 전출처 : 바람구두 > 노튼영문학개관:영문학의 무수한 오솔길을 일러주는 지도책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사람들에게 "노튼영문학개관"을 이야기하는 건,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성서"를 말하는 것, 역사를 전공한 이들에게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느냐고 묻는 것과 흡사하다. 영문학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책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도 이 책의 명성을 능가하는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영문학 개론서이자 영문학통사라 할 수 있다.

"나의 책읽기"란 글을 통해 나는 저자 서문이나 옮긴이 서문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이 책엔 저자 서문은 아예 없고, 옮긴이의 서문이라는 건 분권된 2번째 책의 말미에 짤막하게 이 책과 옮긴이 김재환 교수의 인연 부분이 전부다. 이 책을 교재로 삼은 학과 이외의 독자들에겐 상당히 불친절한 셈이다. 조셉 골드(Joseph Gold)가 북키앙에서 펴낸 "비블리오 테라피"란 책이 있다. 읽어보진 못하고 그저 그런 책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책인데, 이 책의 부제는 "독서치료, 책속에서 만나는 마음치유법"이다. 우리가 향기 치료법을 아로마테라피라고 하는 것처럼 책을 통한, 독서를 통한 치료법이란 의미에서 "bibliotherapy"란 제목을 달았다.

이 책에는 워즈워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인가 얻어내고 소비하느라 우리는 우리의 힘을 탕진하고 있네. 우리는 우리의 것인 자연 안에서 보지 못하네"

이때 저자 조셉 골드가 이 글의 출처로 삼고 있는 것이 "노튼영문학개관" 이른바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이다. 나름의 독서법을 위해서는 한 권의 책을 개관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책의 로드맵이랄 수 있는 인덱스 부분을 충실하게 검토해보라고 말했다. 이것을 영문학사 혹은 다른 테마의 책들로 옮겨 볼 때, '개론서'라는 것은 강의나 학습의 필독서 차원을 넘어 독서에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로드맵 구실을 해준다.

개론서는 단지 개론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테마 뒤안에 있는 수많은 오솔길과 갈라지는 길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책 "노튼 영문학 개관"이 다루고 있는 영미권 시인들이 그렇다. 이 책의 1권에서는 중세 앵글로 색슨 시대와 노르만 시대의 중세 영문학을 다룬다. 영미 문학의 고전이랄 수 있는 "베오울프"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개괄하면서 읽다보면 문득 한 사람의 이름에서 눈길이 멈추게 된다. 그는 바로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다. 그가 지은 "캔터베리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이 책 "노튼영문학개관"을 통해 이 작품이 영국 문학사에 있어 어째서 중요한 작품인지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는 제프리 초서 연구서들이나 그의 작품들을 함께 읽어볼 수 있다.

제프리 초서 시대의 영국은 아직 이들만의 사상이 무르익은 시기라 볼 수 없었다. 사상이 현실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이 사상보다 앞서 있던 시대였다. 문학사는 어느 경우라도 당대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 상황과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헨리 5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국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국의 왕이니만큼 전제 왕정 시대의 영국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그의 업적을 높이 찬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헨리 5세를 각별히 아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헨리 5세는 영국의 세종대왕이었다. 헨리 5세는 그의 숙부인 윈체스터 주교 헨리 보퍼트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영어로 읽고 쓰는 법을 먼저 배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왕이었으며, 영어를 궁정어의 지위로 승격시킨 왕이었다. 헨리 5세의 부왕이었던 헨리 4세는 1399년 의회에 나가 영어로 연설하였고, ‘영어를 지나치게 조잡하거나 이상한 용어로서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해될 수 있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소통의 어려움을 제거하고자 했다. 헨리 5세는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프랑스어의 사용이나 프랑스적인 풍속을 억눌렀다. 이제 영어는 최소한 영국 땅에서만큼은 더 이상 ‘정복당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정복한 사람의 언어’ 가 되었다.

제프리 초서가 영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1387년 - 1400년)』를 집필한 것이 이 무렵이었던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 무렵 영국은 점차 민족국가로서의 국가성(nationhood)을 획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보다 많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하면서도 지식이란 그것을 활용할 때 비로소 본래의 의미를 다한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노튼영문학개관"을 그저 영문학 개론서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동안 이 책은 절대로 본래의 의미대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문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영국사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영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영국의 철학과 사회와 경제, 문화를 이해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다시 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글을 쓰거나 리뷰를 한다는 목적으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지식이란 그 본래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영문학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저 지난 과거의 영문학사를 공부하는 것에 그치는 건 시간낭비다. 인간이 어느 한 일면만을 지니고 있지 않듯, 어느 한 시대는 어느 하나의 일면만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하나의 학문은 단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인접 분야의 학문 체계와 유기적 연관을 맺는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물론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독서가 요구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셰익스피어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튜터 왕조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역사구분법은 일반적인 영국사의 시대구분법과 맥을 같이 한다. 중세를 지나면 16세기가 나오고, 17세기의 중요한 사건들인 청교도 혁명 전후의 주요 작가들, 존 단, 존 밀턴,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 등을 다룬다. 왕정복고시대와 18세기에서는 신고전주의 문학이론을 개괄하고, 이 무렵 영미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소설의 출현을 다룬다. 존 번연과 다니엘 디포우, 사무엘 버틀러, 조나단 스위프트 등이 이 시대의 작가들이다. 만약 누군가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고 이것이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여전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느낀다면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영미문학사를 개론하고 있는 책 가운데 이 책 보다 더 좋은 책도 있을 수 있다.

한 권의 책, 하나의 작품, 한 명의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되고, 그에 대한 작가론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함께 짚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에서 보다 많은 지식들을 얻어낼 수 있다. 좋은 책은 많은 대화거리들과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골치아픈 영문학개론 숙제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 처음 이 책을 접한 이들은 리포트 작성 뒤엔 더이상 이 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자신은 학교에서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고 과감무식하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지식은 교과서(text)에서 얻는다. 텍스트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참고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도 드물다. 만약 대학에서 이 책을 교재로 삼았고, 그것을 공부했다면 이 책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이 책에서 가지를 치고 나가는 독서를 하는 것도 매우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2권에서 다루고 있는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들, 윌리엄 블레이크, 로버트 번즈, 윌리엄 워즈워스, S.T.코울리지, 바이런, P.B. 셸리, 존 키이츠 등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에도 모두 번역된 시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후의 작가,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세로부터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영미권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이 한 권을 텍스트 삼아 주변부로 가지치기 하는 공부를 해나갈 때 아마 본인도 모르게 축적된 영문학에 대한 교양에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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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로마 16,26; 로마1,5;2고린10,5-6참조)을 드려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발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그분께 자유로이 맡기는 것이다" - 계시헌장 5항.

신부님 강의 중에, "하느님 계시의 절정" - 십자가(예수 그리스도)

더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계시지 못할 가장 밑바닥에도 하느님은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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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혹은 신문왕
데니스 브라이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정확성, 정확성, 정확성!!!
책을 읽는동안 툭하면 '정확성'을 외쳐대곤 했다. 어느날 하루는 점심을 먹으러 가서 아무말 없이 그저 올림픽 중계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때 같이 있던 애들의 반응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분명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을거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누구때문에 어떤 일로 화가 났을까... 하는 얘기를 들으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또 한번 외쳐봤다. '정확성!, 확실하지 않은거에 대해서는 공론화시키지 말아줘라'
엊그제 우연찮게 또 어떤 한사람에 대해 뜬소문이 난무하는 것을 들으니 퓰리처가 말하는 신문보도의 자세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것이 편견없는 공정한 보도인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정말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가?"

사실 책은 좀 지루한 면이 있었다. 만일 한겨레 신문이 터뜨린 폭로 기사들에 대한 글을 읽는다면 오히려 맘에 와 닿고 재밌었겠지만 벌써 한세기가 지난 신문의 기사들, 그것도 미국의 사회,정치, 경제를 다룬 기사의 흐름으로 책이 엮여있으니 도통 맘에 와닿는 기사는 별로 안된다. 책의 흐름은 시간대별로 퓰리처의 생애를 이야기하며 신문기사의 인용을 많이 하고 있기때문에 퓰리처의 생애 역시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괴팍하고 멋대로이며 엄청난 재산으로 사치스럽다고 할 수 있는 안락한 삶을 살아갔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 한권을 읽고 뭐라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유명한(자세히는 몰라도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을) 퓰리처상을 제정한 퓰리처라는 인물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세금'에 대한 일화에서였다.
 [...뉴욕 주의 불공정한 세제... 퓰리처의 '개인세금'만 50만 달러... 록펠러, 애스터 가문 등에 부과된 세액의 두 배 내지 다섯 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퓰리처는 이러한 세금 사정 결과에 맞서는 대신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나서 세제 개혁을 위한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는 개인들에게는 세금이 무겁게  부과되는 반면, 거대 기업들은 세금을 거의 한푼도 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주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법안이 표결도 없이 폐기되자 퓰리처는 특별열차를 빌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 10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올버니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의회에 그 법안에 대한 표결을 요구했다. 퓰리처의 압력때문에 정치가들은 그 법안을 되살려 104대 18로 통과시켰다. 퓰리처는 이 법안이 "이 도시에서 현재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시민들의 부담을 1500만 달러 줄여주고, 시의 채권 발행 능력을 1억 달러 늘려줄 것"이므로 "대중적인 운동을 통해 정의가 주목할 만한 승리를 거뒀다"고 환호하면서 "그러나 민중이 나서기만 한다면 아직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 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것만 같은 일화이다. 물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퓰리처라는 개인보다는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혹은 신문왕'이라는 부제가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들이었다.
기사작성의 원칙이 될 수 있는 '정확성, 간결함, 끈기'는 확실히 사실보도를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란 생각도 들고...

[항상 진보와 개혁을 위해 투쟁하라. 부당함과 부패를 결코 묵인하지 말라. 항상 모든 당파의 선동가들과 싸우라. 결코 어떤 당파에도 소속되지 말라. 항상 특권계층과 공공재산의 약탈에 반대하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없어서는 안된다. 항상 대중의 복지에 헌신하라. 단순히 뉴스를 인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항상 철저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약탈적인 금권에 의한 것이건 약탈적인 빈곤에 의한 것이건, 무엇이는 잘못된 일을 공격하는 걸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된다]-J. 퓰리처

기사작성에 대한 그의 말을 읽어가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퓰리처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그가 성공한 신문사 사장이어서도, 언론대학원을 설립하는데 공언하고, 퓰리처상을 제정하여 언론의 아카데미상을 만들고... 그래서만은 아니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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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8-3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벌써 다 읽으셨군요! 책이 고마워할거에요. ^^

chika 2004-08-31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열린사회의적 2004-10-1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을 읽으셨네요. 마음은 가지만 손이 아직 가지를 않네요...-,-

chika 2004-10-1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는 부분은 화장실같은 곳처럼 오로지 볼꺼리라고는 이 책뿐인 곳에서 진도를 나가긴 했지만요..(^^;) - 그니까 문학적으로 큰 재미는 없지만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