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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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성과 인간의 존엄성, 혹은 생물학적 법칙에 대해 지극히 일반적인 견해를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무기력하게만 할 뿐이다..... 인간복제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개인적, 사회적 윤리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또한 이 책을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책'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사실,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뭔가 좀 약한 느낌이긴 하지만, 적어도 인간복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로 '복제'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복제라는 것을 단지 과학의 발전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단성생식이 가능하다는 생물학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사고에 대비한 장기이식의 기능,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연구,  불의의 사고에 의한 죽음을 대신할 인공배아의 양성....
아직까지는 많은 국가에서 '인간배아'연구를 윤리적인 측면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 최초의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승승장구하는 우리의 황우석 박사는 사실.. 윤리적인 부분을 도외시 한 것으로 보이며 화려한 언론플레이로 자신의 연구성과에 대한 홍보를 잘 해낸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이미 복제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처럼 인간복제가 단순한 문제일 수 있을까?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연구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현재의 단계로서는 과장되었을뿐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과 동물의 배아 교접 연구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인간배아 세포는 바로 하나의 생명체가 될 수 있는것인데 단지 연구를 위해 수많은 배아를 생식시키고 폐기하고....

흔히 농담처럼 하나뿐인 아이가 죽으면 배아세포로 똑같은 아이를 복제하여....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언제부터 장난감처럼 파괴되면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기 훨씬 전에 영화 A.I를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있을 수 없는 공상과학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현실화 될 가능성을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나의 존재를 위해 내 추억속의 생명체를 대신 할 대용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문제는, 하나뿐인 생명체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것이다.

내게 끝까지 남아있는 의문은 단 하나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나를 복제한 생명체를 '사육'한다는 것이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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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08-3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제된 '시리'의 심리 묘사를 통해 '사랑이 없이 태어난 인간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된다. '자기애의 전형인 나르시스조차 자기의 뜻대로 또 하나의 자신을 복제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숭배하고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이다!'[본문인용].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거였을까...?

숨은아이 2004-08-3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설령 인간을 복제한다 해도, 성체가 통째로 복제되진 않죠. 이를테면 내가 나를 복제했다 할 때, 나만한 인간이 또 한 명 생기는 게 아니고, 나와 유전자가 같은 아이가 하나 태어날 뿐. 이 아이가 나만하게 성장하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필요하죠. 10년 지나면 열 살이 되고, 20년 지나면 스무 살이 되고. 그 동안 이 아이는 나와 영 다른 환경과 교육을 거치게 되죠. 결국, 또 다른 인격체일 뿐. 부모가 낳은 아이라도 부모 소유가 아니듯, 내 유전자로 만들었다 해도 이 아인 내 소유가 아니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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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에니어그램의 9유형에 해당한다. 구원받지 못한 9유형의 상징동물은 코끼리이다. 코끼리는 좀체로 움직이려 들지 않으며, 한번 움직이면 주위를 초토화시켜버리며 그저 자신의 앞길만 디립다 질주하는 덩치 큰 괴물로 비유된다. 하지만 구원받은 9유형의 상징은 '돌고래'이다. 돌고래는 영리하다고 알려져있고, 인간을 위협하는 상어떼를 쫓아내준다...
9유형은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화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이 생각이 떠오른것은 왜일까?

나는 꽤나 칭찬에 인색한 부모님에게서 별로 칭찬받은 기억없이 자랐다. 물론 성적이 안좋다고 꾸중하신적도 없지만 다들 부러워하는 성적표를 갖고 왔을때조차 칭찬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 남은것은 '공부'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것.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다시말해 사회성, 친교성, 적극성 등 모든 것이 부진아일뿐이라 생각한다는 발언을 망설이지 않고 하신다. 나의 자기비하와 자신감없음은 그래서 더욱더 커질수밖에 없었겠지. 이렇게 별볼일없이 형편없는 녀석으로 자란 나는 대학교에서 여러사람을 만나고 이러저런 활동들을 하면서 변해갔다. 점차 자신감도 생기고 나 자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이 책에 언급된 '칭찬'의 기본전제에는 신뢰를 쌓아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라, 실수할 때에는 에너지를 전환시켜라라는 세가지이다. 칭찬에 의한 고래반응이라는 것은 요즘 흔히 말하는 윈윈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것이겠지. 내가 변화하게 된 기본적인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칭찬'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학교를 다닐즈음에는 한창 '이미지 게임'이라는것을 유행처럼 할 때였다. 페이퍼를 돌리며 서로의 이미지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인데,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쌓여가는 페이퍼는 점점 진솔해지고 발전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통해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 나의 부정적인 면을 보는것보다 긍정적인 면을 봐주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칭찬을 해 주었고, 나의 실패가 단지 한순간의 실수일뿐이라며 감싸주고 다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딱히 칭찬받아보지 못하고 자랐던 내게 친구들이 해 주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내겐 자존감을 높여주는 엄청난 칭찬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칭찬에 인색했던 부모님처럼 나 역시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주위에서 무엇인가를 잘 하고 있을 때 '와, 잘했는데?'라는 말보다는 '음.. 이러이러한 것만 고치면 정말 잘 하겠다'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나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할 때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것처럼, 나를 변화시켰고 그것이 내 주위 모두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는 확신을 가지며 고래반응을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9유형은 진정한 평화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건 자기 자신이겠지만,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자기긍정을 할 수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의 '칭찬'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참된 고래반응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경쟁, 그러니까 자신을 변화시키고 좀 더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고래반응을 퍼뜨리자. 이제 우리 서로 서로 칭찬의 즐거움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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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08-30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고 이렇게 훌륭한 리뷰를 쓰셨군요^^ 괜히 제가 기뻐지네요.
저에게 이 책은 일장일단이 있는 책이었죠. 칭찬이 인색한 저에게 칭찬의 중요성을 강조해준 책이긴 했지만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칭찬을 한다>는 눈에 보이는 목적이 맘에 들지 않았었죠.(뭐든지 경제적인 것과 연결되면 괜히 눈을 흘기고 보는 게 제 문제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칭찬에 관한 책으로는 이 책보다 <엄마, 힘들땐 울어도 괜찮아>란 책이 참 좋았어요.

chika 2004-08-3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두기님 혹시 '칭찬하기'를 실천하고 계신건지도..? 흐~ ^^)
기회가 되면 좋다고 하신 '엄마, 힘들땐 울어도 괜찮아'라는 책도 읽어보겠습니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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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다고 하기엔 어딘가 무거운, 그렇다고 무겁다고 하기엔 또 어딘가 어색한.. 그런 '동화'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이래서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책이라 적혀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세풀베다의 이 동화는 먹이사슬의 파괴가 아닌이상, 동물들은 서로에 대한 신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를 오염시키고,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동물에게 술을 먹이는 따위의 생태파괴 행위는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고발하는 듯 하다. 물론 오늘, 나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아니 인간만이 그런 행위를 하는... 과식을 하고 들어왔다. 오로지 인간만이 필요이상을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퍼 먹은 다음, 그걸 소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약물에 의존한다. 소화제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이상으로 넘쳐나는 열량을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었으니, 후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물 부족이 심해지고, 환경오염이 심해지고,자연생태의 붕괴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또다시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너무 늦는다. 지금부터 해야한다.

고양이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갈매기는 스스로 날기를 원하였고, 인간은... 공존을 배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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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루가 23, 43)

 

나쁜 기억은 우리가 그것을 지워버리지 못할 때 암세포와도 같이 퍼져 나가 우리를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기억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요한 8,11)고 하신 것처럼 다행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나쁜 기억을 하나도 가지고 계시지 않다. 우리의 나쁜 기억이 고해소 안에서 다 지워져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느님께서 잊으실 수 없는 즐거운 기억이 우리에게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즐거운 기억을 만들지 못한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마태 7,23)는 일갈을 듣고 문밖에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잊혀진 존재만큼 슬픈 존재도 없다(시편 88,6).
지옥이란 다름아닌 철저한 망각의 세계요, 천국이란 다름아닌 즐거운 기억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 들숨날숨 2002. 4월 편집부, '지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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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함께 천국의 나날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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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08-2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즐거운 기억의 부활을 ... ^^
 

일찍이 1,600여 년 전, 가난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벗이 되어 부자들의 탐욕과 불의를 고발하고 분배정의를 외쳤던 아름다운 교부 암브로시우스! 빼어난 학식과 인품을 지녔던 그는 이미 서른의 나이에 밀라노 지방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로 마음먹은 뒤로는 세상 부귀와 영화를 미련 없이 버렸다. 세례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암브로시우스는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한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살았다.
브라질의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내가 가난의 원인을 이야기하면 나를 공산주의자라 한다”고 한탄한 바 있다. 만일 암브로시우스가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났더라면 아직도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암브로시우스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의 근본 원인을 부자들의 탐욕과 재화의 독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암브로시우스의 여러 저술과 설교들은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와 소유에 대한 강력한 권고뿐 아니라, 부자들을 향한 매섭고 날카로운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De Nabuthae historia>(387∼390년경)는 부와 가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교부 문헌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약성서의 인물인 가난한 나봇(1열왕 21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부자들의 미쳐버린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이 작품은, 대 바실리우스의 강론에서 영향을 받아 설교 형식으로 쓰여진 교부 문헌이다.
 
 

금술동이에 담긴 좋은 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
그대의 식탁은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대가로 치른 것입니다. 그 식탁에 차려 놓은 잔들에서는 그대가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몰아붙인 사람들의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쾌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을 죽여야 합니까? 그대들의 단식은 헛된 것이고, 그대들의 영화도 부질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대들의 곡식을 쌓아둘 곳간을 넓히기 위해서 일하다가 지붕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많은 포도 가운데 어떤 것은 식탁에 가져가고, 어떤 것은 그대 식탁에 어울리는 포도주로 만들기 위해서 고르다가 나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개와 생선이 그대 식탁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일하다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토끼 발자국을 따라다니거나 새 잡는 덫을 찾아다니다가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언가 잘못하여 그대 마음에 들지 못한 까닭에 그대 눈앞에서 죽도록 채찍질을 당하고, 그 피로 호사스럽게 차려진 식탁 위를 적십니다.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퍼낼수록 맑게 빛난다
그대 부자들은 노예들이며, 매우 고통스런 종살이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대들은 오류의 노예이고, 탐욕의 노예이며,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심의 노예입니다. 탐욕은 거세게 휘도는 끝없는 소용돌이 같아서, 그 안에 빠진 것을 심연까지 끌고 들어갑니다. 탐욕은 우물과 같아서, 넘칠 때면 더러운 진흙을 토해 내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땅을 휩쓸어 버립니다. 이러한 예로써 그대들을 권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물의 물은 그대가 퍼내지 않으면 꼼짝없이 고여서 쉽게 썩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더욱 맑아지고 물맛이 좋아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축적된 부는 그것이 쌓여 있는 한 먼지 가득한 채 남게 되고, 그것이 사용되면 빛나게 됩니다. 부는 잘못 쓰면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대, 이 우물에서 물을 길으시오. 그러면 “타오르는 불을 끌 수 있는 물을 찾게 될 것이며, 자선은 죄를 덜어 줄 것입니다.”(전도 3,29)
이와 반대로, 고인 물은 금세 벌레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대의 보화를 쓸모없이 내버려 두지 말고, 그대의 욕심을 그냥 타오르게 놓아두지 마시오. 자비로운 행위로써 욕심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그 욕심은 그대 안에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오, 부자여, 커다란 불길이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오! 이 부르짖는 소리는 바로 그대의 소리입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다가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루가 16,24)

도둑질한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할 부자들의 의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모든 것은 그대에게 유익합니다. 재산이 줄어들수록 그대의 유익이 늘어납니다. 그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음식으로 그대를 양육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자선 행위의 씨앗은 땅에 뿌려지지만 그 싹은 하늘에서 트고, 가난한 사람 안에 심어지지만 하느님 앞에서 열매 맺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일 주겠노라고 말하지 말라”(잠언 8,28)고 그대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내일 주겠노라”고 말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시는 분께서, 어떻게 “나는 주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것을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그대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가난한 사람의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함께 사용하라고 준 것인데, 그대는 그대 자신만을 위해서 그것을 도둑질했기 때문입니다. 땅은 부유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부자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벌
그대들은 저택의 벽은 덧입히면서 사람들은 발가벗겨 버립니다. 헐벗은 자가 알몸으로 그대 집 앞에서 부르짖고 있는데, 그대는 무시해 버립니다. 헐벗은 사람이 절망적으로 울부짖고 있는데, 그대는 집 바닥을 어떤 대리석으로 깔까 하고 궁리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구하지만 얻지 못합니다. 그대의 말이 금으로 된 재갈을 이빨에 물고 있는 동안, 가난한 사람은 빵을 구하러 돌아다닙니다.
오,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떨어질 단죄는 얼마나 무겁습니까! 백성들은 굶주려 있는데, 그대는 그대 곳간 문을 닫아걸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대는 옥반지만 굴려 댑니다. 오 불행한 사람! 그대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할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실천할 의지가 없습니다. 그대 옥반지 하나면 모든 백성의 목숨을 구하고도 남을 텐데.

금을 팔아서 구원을 사라!
그대는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인데도, 금을 땅에 묻어버립니다. 그대는 심판관이 아니라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입니다.”(마태 6,21) 그러므로 그 금을 땅에 묻으면서 그 속에 그대 마음도 묻은 셈입니다. 금을 팔아서 구원을 사고, 보석을 팔아서 하느님 나라를 사시오. 밭을 팔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나는 지금 참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이신 분의 말씀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해지려면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터이니, 그렇게 하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마태 19,21) 그대, 이 말씀을 듣고서 슬퍼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이런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재산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구려!”(마르 10,23)
이 말씀을 읽을 때면, 그대가 지니고 있는 것을 죽음이 앗아갈 수 있으며, 그대보다 더 큰 권능을 지니신 분께서 그대가 지닌 것을 가져가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오. 그대는 지금까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얻으려 발버둥쳤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위해서 애써 왔으며, 은총의 보화가 아니라 재화를 위해서 수고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의 것들은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지만, 뒤의 것들은 영원히 남는 것들입니다.

참다운 부자가 되는 길
아! 사람아, 그대는 재화를 쌓을 줄 모릅니다. 그대가 진정 부자가 되고 싶다면, 세속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느님을 향해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부유한 사람이 하느님께 부유한 사람이며, 자비가 부유한 사람이 하느님께 부유한 사람입니다. 단순함이 부유한 사람이 하느님께 부유한 사람이며, 지혜와 슬기의 부자가 하느님께 부유한 사람입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부유한 사람이 있고, 부유하게 살아가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재물에 초연한 마음 덕분에 그윽한 가난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부자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입니다.
그 때문에 성서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종들은 자기 주인들에게 돈을 빌려 줄 것이다.”(잠언 22,7) 흘러넘치는 재화와 악을 심는 부자들과 주인들은 그것으로부터 어떤 열매도 얻지 못하고, 가시만을 거두어들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굽실거리게 될 것이고, 종들이 영적인 재화를 주인들에게 빌려 주게 될 것입니다.(1고린 9,11) 부자가 가난한 라자로에게 물 한 방울이라도 자신에게 빌려 달라고 간청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루가 16,24)
부자들이여, 그대도 이 교훈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 그러면 주님께 빌려 드리는 것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하느님께 빌려 드리는 것이다.”(잠언 19,17)

최원오 / 신부, 부산가톨릭대 교수, 월간 들숨날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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