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대략 4백여명이 식량을 타러 모트가로 온다. 라디오 소리는 경쾌하게 울려퍼지고 커피냄새는 향기롭고 아침 공기는 신선하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나다니는 내 마음은 결코 편치가 않다.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서 일일이 줄을 세워야 할 형편이다. 이젠 줄 세우는 거라면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로 부드러운 코티지 치즈와 호밀빵과 커피를 나눠준다. 공동체에서는 안 어울리는 광경이다. 대도시 안에 있는 모트가나 헤스터가와 같은 작은 이탈리아인들의 마을은 바워리 거리가 옆에 있는 데다가 실업자들로 우글거린다. 물론 그들이 부랑인들은 아니다. 단지 영육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거리를 찾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미사 참여를 가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명랑하게 인사나누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가장 고역스러웠던 건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을 지니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한 사람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인사하는 일이다.
그런 인사를 하느니 차라리 손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용서하세요, 우리 서로를 용서합시다! 우리 모두 좀 더 평안해지고, 잠자리도 생기고, 하루 세끼 식사는 물론 원하던 일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당신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우리 모두 서로에게 죄인인 셈이죠. 서로의 멍에를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면 하느님도 우리 모두를 용서하실 겁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성요셉의 손에 맡겨버렸다. 어제 아침에는 성요셉 성상앞에 촛불을 켜놓고 노동자들의 주보이신 그분의 멋진 얼굴을 알아보았다. 건장한 두 팔로 아드님을 안으시고 미사에 참석한 노동자들을 굽어보시는 얼굴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우리는 요셉 성인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성부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말씀하시쟎아요.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하기 전까지는 주님을 알아뵙지 못했어요. '주님께서 빵을 떼어 주시자 비로소 제자들은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않았습니까?'(루가 24,30-31). 우리가 요즈음 굶주린 친구들과 함께 쪼개는 빵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지난 달만 해도 무려 1만3천5백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일을 도와주셔야 해요. 빵을 데는 가운데 서로를 알게 되쟎아요! 서로를 알수록 이렇게 보잘것 없는 사람들도 주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그러면 주님도 알아뵙게 되니까요"

어젯밤에는 만약 우리가 지난 두달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이 일을 시작할 엄두조차 못 냈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를 이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나누었다.

- 1937년 2월, 도로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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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책을 쓰는 일도 '내 자신을 모두 내어놓는' 일이기에 힘들긴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인간사의 갖가지 문제들, 하느님과의 관계,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써봐야겠다. 멀리 내다보면, 인간사란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 내 자신에 대해 써보자... ... 나는 전기 작가도 아니요, 저술가도 아닌 저널리스트일 뿐이다. 주위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병고와 굶주림과 비애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 중 수많은 시간을 펜을 놀려 글을 쓰는 일이란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다고 썩 잘 된 글을 썼다는 생각도 안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다. - 기나긴 고독에서, 도로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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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의 고통에 직면했을 때, 도로시는 우리가 삶의 기쁨과 아름다우에도 귀기울여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태양과 달과 별, 우리가 사는 이 섬을 에워싸고 흐르는 강, 만에서 부는 시원한 미풍 등에서 아무런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 비참함의 극치에 덩달아 한몫 거드는 셈이다" 칼럼을 쓸때 도로시는 자주 도스토예프스키의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구원받으리라"는 말을 인용했다.

비록 여러 주교들과 수도원들의 야심만만한 건축 계획에 분개하기는 했어도 도로시는 저들의 아름다운 교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분명히 이들 가난한 교회로 가야 할 많은 돈들이 엉뚱한 곳에 쓰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로시는 교회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고요와 평화와 휴식뿐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까지 찾았던 휴식처를 보았다. 이것들은 빈민가에서도 무시되어서는 안 될 가치들이다. 전임 신문 편집장이었던 톰 코넨은 이같은 도로시의 생각을 다으의 이야기와 연관지었다.

어느날 한 여인이 '가톨릭 노동자'에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를 기증했다. 우리는 도로시가 그것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보석상에 가 돈으로 바꿔올 수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반지 한 개 값이면 한달치 콩을 사고도 남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도로시는 가끔 우리에게 끼니를 얻어 먹으러 오던 혼자 된 어느 노파에게 그 반지를 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 반지를 팔면 1년치 집세를 치르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항의했다. 도로시는 그런 항의를 예상했다는 듯 그 노파에게도 존엄성이 있다고 하면서 노파가 원한다면 그것을 팔아서 집세도 낼 수 있고 바하마로 여행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며, 아니면 그저 감탄을 연발하며 갖고만 있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부자들만 위해 다이아몬드를 만드셨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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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08-0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저생계비 체험단 중 한사람이 '헤어 젤'을 샀다고 비난할 때, 먹을 밥도 모자라는 사람들이 웬 과일이냐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안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의식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 그러한 생각을 했었으면서도 왜 여전히 나는....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랜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양철 지붕에 대하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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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마더 데레사 지음, 앤서니 스턴 엮음, 이해인 옮김 / 황금가지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늘 감사합시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의 길에서
우리에겐 아직 줄 것이 많고 나눌 것이 많습니다.

- 본문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어렵지 않은 간결하기에 더 마음을 파고드는 말씀들을 참 좋아합니다.
멋모르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던 어린 시절에 '변화의 방법'은 하나뿐이라 생각하며 외골로 나가던 나를 잠시 멈칫하게 만든 분도 마더 데레사입니다. 구조의 변화가 근본적인 것이지만 구조의 변화는 더디오고 그동안 죽어가는 이들을 방관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에 대한 대답 역시 마더데레사의 말씀에서 찾습니다. 다양하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도 저도 아닌 이기적인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또한 좌절하지 않는 것도 내 삶의 길에서 내가 내어 줄 무엇인가가 있을거라는 희망하나를 갖고 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더데레사의 말씀은 무더운 여름철 한줄기 바람과 같은 기쁨과 맑음을 줍니다.
마더 데레사는 직설적인 말로 '투쟁하라'고 외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시오'라는 말로 내 삶의 변화를 위해 투쟁할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실천으로 부조리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그 모두를 사랑해야함을 일깨워줍니다.

오늘도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이어질 것이고 그 기도는 때로 파병철회를 위한 몸짓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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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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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지 않았다면 난 아직까지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짧은 내용이었지만 4년여전에 읽으며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용 역시 다 기억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역시 감동으로 느껴진다. 물론 처음의 그 엄청난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찾아 읽다가 예전의 감동을 느꼈던 짧은 책을 꺼내들고 읽으니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동 한그릇에 담긴 그 마음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99년 9월에 33쇄까지 인쇄된 이 책의 겉표지에는 '99년 말까지 우동한그릇 1권마다 100원씩 결식아동기금으로 쓰입니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우리는, 아니 나는 지금 현재 어떠한 변화를 하였는지....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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