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 마음이 그림과 만날 때 감상은 대화가 된다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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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림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림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생애와 당대의 문화,역사적인 배경이 그림의 표현 - 예술사조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시대에 대한 풍자라거나 전쟁에 반대한다거나 하는 상징성까지 설명을 하고 있어서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쉽게 접해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평가란 계속 변하는 법입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특정 시대의 잣대를 들이대며 위계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예술적이거나 문화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감상자로서 우리는 그때그때의 영양 상태와 입맛에 따라 식사메뉴를 정하듯, 우리 영혼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얻으면 그만입니다. 뵈클린이 20세기 초 선풍적인 인기를누린 것은 그의 예술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만큼 큰 호소력을지녔기 때문입니다. 미술사에서 평가가 어떻든 그의 그림은 분명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죽음과 인간의 실존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232)


뭔가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글이 이주헌님의 글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 그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어 보지만 별 감흥이 없다거나 뭘 나타내려고 했는지 모를 때 예술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없는데 아이에게 설명해주듯 친절하게,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상징을 이야기해주거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어서 저자의 설명을 읽고 그림을 다시 보면 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저자의 이야기가 '정답'인 것은 아님을 알고 있어서 그냥 슬그머니 도움을 받는 정도의 글로 생각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이주헌님의 많은 글을 읽었었고 - 그래서 사실 이미 익숙한 글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저자의 글은 친절하고 자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에 더하여 예술작품이 나와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늘 접해보는 것일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사실 예전에 나는 모네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 흐릿한 경계선이 와닿지 않아 모네의 그림이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 찰나의 반짝거림을 본 것 같은 느낌이ㅣ 들었을 때, 그래서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예술작품의 감상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고 '그때그때 우리 영혼의 필요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얻으면 된다'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앙리 루소의 그림들이며, 한번도 열대우림에 가본적이 없지만 그곳의 분위기를 그보다 더 잘 그려낼 수는 없으며 그 자신의 삶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 - 프랑스 정부가 잘못보낸 훈장을 내가 받았으니 돌려줄 수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뱃지를 달고 다녔다는 당당함(뻔뻔함이 아니라)과 자신감은 나도 좀 따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간혹 도슨트나 전공자들의 설명을 들으면 전문적인 지식의 전달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 그림의 이론 공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주헌님의 글은 그림을 통해 예술가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고 나 자신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찰해보게 한다. 그만큼 그림을 보는 감상이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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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양미술사에서 뵈클린은 최정상의 작가로 다뤄지지는않습니다. 근현대 미술사가 사조사 중심으로 서술되며 뵈클린 같은화가는 비교적 주변적인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평가란 계속 변하는 법입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특정 시대의 잣대를 들이대며 위계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예술적이거나 문화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감상자로서 우리는 그때그때의 영양 상태와 입맛에 따라 식사메뉴를 정하듯, 우리 영혼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작품을 감상하고감동을 얻으면 그만입니다. 뵈클린이 20세기 초 선풍적인 인기를누린 것은 그의 예술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만큼 큰 호소력을지녔기 때문입니다. 미술사에서 평가가 어떻든 그의 그림은 분명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죽음과 인간의 실존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 서양미술사에서 뵈클린은 최정상의 작가로 다뤄지지는않습니다. 근현대 미술사가 사조사 중심으로 서술되며 뵈클린 같은화가는 비교적 주변적인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평가란 계속 변하는 법입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특정 시대의 잣대를 들이대며 위계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예술적이거나 문화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감상자로서 우리는 그때그때의 영양 상태와 입맛에 따라 식사메뉴를 정하듯, 우리 영혼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작품을 감상하고감동을 얻으면 그만입니다. 뵈클린이 20세기 초 선풍적인 인기를누린 것은 그의 예술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만큼 큰 호소력을지녔기 때문입니다. 미술사에서 평가가 어떻든 그의 그림은 분명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죽음과 인간의 실존에 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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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탁구공만한 귤은 푸대자루에 담아서 낭푼이로 옮겨 손발이 노래지도록 까먹었다. 귤을 까면 한입거리밖에 안되니 쉴 새 없이 먹고 또 먹었었는데. 

뱃살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이 자그마한 귤을 많이 먹어대지도 못하고 껍데기가 시들해질 때까지 쌓아두고 있다. 그래도 썩는 것은 아니니 두고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인건가 싶지만.

과당이 나를 더 살찌우게 할지라도 귤 먹는 걸 멈출 수는 없는데 왜 자꾸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만 들고 있는지 모르겠어.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찾아가서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안되는 것 같다. 보고 싶은 마음보다 귀찮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으니, 나의 모든 열정도 역시나 시들거리고 있는것인지.


너무 애쓰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게 인생,이라고 깨달아서 그런거라고 치자. 나의 시들거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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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trackback/lifewith_/13155115

















내 어머니 이야기, 개정판이 출판되었다고 했을 때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는 지금까지 구입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문득 진짜 내 어머니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 나는 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야금야금 들어보고 싶어져서 책구입을 미뤄두고 있다. 야심차게 정리하며 들어야하는데 도무지 그에 집중하며 시간을 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황해도 겸이포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47년 7월에 서울로 오셨다. 짐작한바와 같이 38군사분계선이 그어져있었고 이북에서 넘어올 때의 이야기만 해도 어마무지하다. 할아버지는 1년전 홀로 서울로 내려오셨고 나머지 식구들이 모두 남쪽으로 넘어오는데 어머니는 삼촌 한명과 안내자를 통해 산으로, 할머니는 또 다른 삼촌을 데리고 바닷가길로 새우젓장사를 하며, 큰 삼촌은 만주를 통해 멀리 돌아 서울에서 다 만날 수 있었다고한다. 

어머니는 해주에서 바로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고 - 그곳에서 개밥같은 밥을 줘서 못드셨다고... - 어떻게 풀려나서 (아마 안내자가 돈으로 해결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보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시 남하를 시도하는데 또 걸려 총알이 날아오니 삼촌은 북쪽으로 도망가고 어머니는 안내자와 무사히 산을 넘어 서울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 만주로 돌아온 삼촌의 이야기와 총을 피해 북으로 다시 돌아가 인민군대장 아들을 둔 게모할머니가 숨겨주고 돈을 마련해줘서 남쪽으로 보내주셨다는 이야기까지 하면 더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오래전에 삼촌들은 세상을 떠나셨다. 


아무튼 다행히 온가족이 서울에서 다 만나고, 당시 협신제약회사 직원이었던 할아버지가 제주파견근무를 하고 계셔서 48년 8월에 제주 입도를 하셨다.















세상에나 48년이라니! 死삶 항쟁의 봉기가 있었던 해가 아닌가. 

물론 어머니는 해안에서 살게 되어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폭도'(!)들이 오면 아버지가 이발쟁이라고 말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리 큰 위험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 4.3에 대해 물어보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이덕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을 때 좀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덕구가 사살된 후 목에 숟가락이 꽂힌 상태로 광장에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이덕구의 시신은 형틀에 묶여 주머니에 숟가락이 꽂힌채 관덕정 광장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4.3에 대해 들어본적도 없다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들었을 때,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가 '속솜허라!'라는 한마디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큰며느리가 맘에 차지 않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빨갱이년'이라는 욕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는 내게 그렇게 다가온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으로 먼저 다가왔기에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강작가가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직접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데 오랜 세월 빨갱이년이라는 가해자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고 그래서 또 간접적인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 말하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는 그 내용자체가 신선함을 넘어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는데 그 신선함에서 나는 또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36년생이신 어머니는 6.25때 약품조달을 위해 서울로 가셨던 할아버지가 행불자가 되셔서 서울로 진학할 예정이었던 진로를 바꿔 중등4학년이 아닌 교원양성과정을 배워 교사가 되셨다. 

사실 내가 태어나면서 퇴직을 하시고 밭일만 하셨기때문에 난 어릴적에 그저 무지랭이 밭일을 하는 어머니라고만 생각했었다. 역사도 모르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어보이고 내 학업성적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던 어머니라고만 생각했는데.

해방전에는 역사를 배우지 못했고, 북쪽에서는 교실에 스탈린, 레닌 사진이 걸려있었고 영어는 더더구나 배워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때야 비로소 내 편견의 시선을 깨달았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시겠다며 한글문서작성하는 걸 배우러 동사무소 교육센터에 등록하시고 나도 작성하지 않는 규정문서작성법을 예습복습하며 가르쳐달라실때는 그저 귀찮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또 영어를 배우시겠다며 날마다 알파벳 쓰기 연습을 하시는 걸 보며 나는 어머니를 안닮았나보다...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알파벳을 처음 배울때 b와 d를 헷갈려하는것처럼 어머니도 똑같이 거꾸로 쓰신 걸 보고 재밌어 웃었더랬는데 어느샌가 알파벳을 읽기 시작해서, 화단에 적혀있는 영어를 읽어 화원 아저씨를 놀라게 하셨었다. 


어린시절엔, 굴곡의 역사속에서 어머니는 어쩌면 그냥 무난하게 잘 지내오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손꼽히는 부잣집에서 험한일해보지 않은, 더구나 아들부잣집의 막내딸이었으니 오죽했겠나, 하지만 현대사 속에 녹아든 삶의 모습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얼렁뚱땅 술렁거리면서라도 어머니 이야기를 한조각 적어놓으니 오늘은 좀 마음 한구석이 편해진다. 병원에 다녀올때마다 점점 소멸되어가시는 듯한 어머니 생각에 마음 한켠이 불안했었는데... 긴 세월을 강건하게 잘 살아오셨다는 생각을 하니 뭐가 두렵고 뭐가 아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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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24-10-1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댓글로도 남겨보고. 링크도 걸어보고.
분명 글은 남아있는데 왜 새창으로 연결이 안되는것인지 모르겠다. 이럴거라면 먼댓글주소는 뭐하러?
 

아무래도 내게 공부라는 것은 공부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인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습관이 아닐까 싶다. 

영어공부를 해보려고, 아니, 그냥 말 한마디라도 해 보려고 큰 돈 들여 강의 신청을 했지만 실상 늘 흘러가듯 듣고만 있어서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쓴 대화문이 - 완전한 회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문답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가, 에 대한 평가는 해 볼 수 있는 것이니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시도를 해 본 결과 문법은 좀 많이 엉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관사를 빼먹는 러나 단복수, 시제의 일치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 뭐 그렇다고 해도 의사소통은 되는 것이니 포기하지말고 계속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맞을텐데 나는 이미 회의적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쉬운 영어라고 해도 애니메이션을 듣고 있으면 뭔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먹을수가 없다. 하기, 외국인과 대화를 하면서 유창하게 말할 것은 아니니 그저 술렁거리면 천천히 이야기하면 대화는 통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만.

어릴때처럼 - 아니, 이젠 젊을때처럼,이라고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 하루에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일이 많으면 아무것도 할수없고 읽어야 할 책이 있어도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생기지 않고. 

뭔가 몸과 마음과 정신상태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왜... 하루 24시간이 길면서도 짧은 건가. 

과연 공부는. 왜.

내게는 어떤 의미가.



















이젠 읽은 책도 기록을 찾아봐야 기억할 수 있고 - 때로는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 왜 안읽은 것처럼 떠오르는 내용이 없을까, 싶을때도 있는데... 큰일이다. 

그래도 최근 읽은 책들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 있어서 다행,인지...

아무튼. 

간헐적으로 동네 도서관에 다 읽은 책을 기증하러 가곤 하는데, 이 책들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도서관에 기증하고 읽고 싶을 때 대출해서 읽을까, 집에 고이 모셔둘까... 

집에 쌓아두고 폐지가 되어가는 책들을 보면 내가 책무덤을 만들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지는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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