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612 누가 어린 왕자를 죽였는가
미셸 뷔시 지음, 이선민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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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를 죽인 범인은 어린왕자"

라는 문구를 읽으며 나는 책 제목을 다시 살펴봤다. code612 누가 어린왕자를 죽였는가, 인데 어떻게 생텍쥐페리를 죽인 범인은 어린왕자,라는 글이 나왔을까. 사실 이 문장은 소설의 끝무렵에 나오는데 어린왕자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설정에서 시작해 현실 인물인 작가 생텍쥐페리와 소설 속 인물인 어린왕자가 동일시되며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간다.


어린왕자를 여러번 읽었지만 최근 몇 년,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적어도 십년동안은 어린왕자를 정독해본 기억이 없다. 몇년 전쯤에 팝업북으로 어린왕자와 여러 행성에 사는 몇몇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끄집어 낸 기억은 있지만.

어린왕자의 여러 번역버전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셍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서 도출되어 나온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어린왕자만큼이나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의 운명을 평행선상에 올려 보는 시도를 한 적은 없다. 철학적인 이야기 뒤에 범죄가 교묘히 위장되어 있기 때문이었을까?"(11)


루이13세 비행학교 소속 정비사 네벤은 억만장자의 의뢰를 받아 침수된 비행기를 감식하게 된다. 생텍쥐페리가 출격을 했었던 것과 똑같은 비행기인데 그가 사라졌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된 비행기 잔해에 대한 조사를 위해 네벤은 탐정 앤디와 생텍쥐페리의 실종과 연관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정은 어린왕자가 자신의 소행성612를 떠나 만난 사람들과 묘하게 연결되는 클럽 612의 멤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어린왕자와 생텍쥐페리의 죽음 뿐 아니라 어린왕자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담겨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생텍쥐페리 사후 어린왕자의 저작권 만료 기한이 2023년이라는 사실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어린왕자 이야기에 어떤 이야기가 덧붙여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실제 어린왕자의 이야기 속 인용문과 생텍쥐페리의 다른 작품 속 인용, 생텍쥐페리의 삶과 죽음에 얽혀있는 사실과 추측이 마구 섞이면서 또 다른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어 어쩌면 어린왕자의 상상초월 후속작품이 나올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지금 어린왕자를 죽인 범인은 어른들이고 생텍쥐페리를 죽인 범인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전쟁이라 믿고 있지만. 어쩌면 또 다른 범인을 찾아낼지도 모르겠고.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이 소설의 저자가 어린 왕자의 주제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유'임을 이야기하고 있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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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때문에 며칠 비어있기는 했지만 그래픽노블, 동화책 등등등을 감안하면 정말 책을 안읽은 달이구나, 싶다. 그래도 나름 구성이 좋았던 수이의 그림자, 내용이 좋았던 염소가 사라진 길.

그리고 가볍게 읽기 좋았던 예썰의 전당까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5월의 책 읽기.


점점 더 많은 것들이 귀찮아지고 잇어서 큰일이기는 하지만. 



1770년 5월 20일:8번 노예 사망. 노예 무역선에서 열 번의 항해 중 한 번골로 선상 반란이 벌어졌다. 배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가능성은 컸지만 역사가들은 이를 우연으로 치부했다. 흑인 노예의 후손인 리베카 홀은 지워진 여성들의 자취를 추적했다. 그가 찾은 답은 '여성이 반란을 주도했다는 것. 노예무역선 관리자들은 여성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여성은 싸울 수 없다는 편견이 첫 번째 이유였고,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가 공공문서고를 방문할때마다 맞닥뜨리는 인종차별적 현실이 그래픽노블 작화를 통해 노예제 시절 풍경과 겹쳐진다. 뉴욕에서 런던과 리버풀로 이어지는 사료찾기 여정은 빈칸을 남기지만 홀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웨이크라는 제목은 깨어나다,와 장례식에서 밤을 새우는 '경야'의 중의적 표현이다. 










정확한 정신감정이야말로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근데 요즘 돌아가는 거 보니까 한 2050년쯤에 '차별금지 하알까 마알까 법' 정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더티워크: 누구는 손을 더럽히지만 누구는 무거운 짐을 남에게 맡긴 채 양심을 지키며 산다.

코인묵시록:  모르면 당한다.

저널리즘 선언: 오늘날 저널리즘 제도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적실성은 감소하고 있다.

일년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모든 것이 저무는 가을에도 삶은 지속되니.

유인원과의 산책: 왜 갇혀 있는 동물을 보면 고통스러운가? 왜 동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게 느껴지는가? 왜 간절하게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은가? 아직 질문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름다운 답을 줄 것이다.



흠... 신간을 주워(!) 담다가 결국 어제 커피에 배송비 유료인 책 한 권만 같이 주문을 했는데. 역시 우양산은 따로 사야되려나.









사고 싶은 책은 많지만 공간의 여유가 없음이 망설임을 길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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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 : 서양미술 편 - 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
KBS <예썰의 전당> 제작팀 지음, 양정무.이차희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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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레 미제라블에 대한 이야기를 보지 않았다면 예썰의 전당,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호응이 좋았던 서양미술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들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된 말로 '썰'을 풀어나가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인데 개인의 취향일 수 있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술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 시대적 상황인 정치, 사회, 문화를 아우르며 말하고 있는 것에 더해 예술가 개인의 사상과 개인사까지 포함해 예술 작품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편에는 이름만 들어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사실 관심을 갖고 있는 화가에 대한 여러 썰들은 대부분 한번쯤은 어느 책에선가 읽어본 기억이 있는 이야기들이기는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예술은 역시 미학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취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마티스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나는 마티스의 그림보다 호안 미로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 호안 미로의 축제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축제의 기쁨과 환호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을 어쩌면 마티스의 '춤'을 보며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될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내 그림들이 봄날의 즐거움을 담았으면 한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337)라는 앙리 마티스의 말이 더 찰떡처럼 다가오고 있다. 


고흐와 고갱이 짧은 기간 함께 살았고 고흐가 귀를 자르는 자해 사건에 대해서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는 사건이겠지만 고갱이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좋아했다는 것은 또 새롭다. 비슷한 색감과 느낌이지만 고갱보다는 앙리 루소의 그림이 더 좋은데다 고갱이 진심 고흐를 좋아한 것은 아니란 생각에 개인적으로 고갱에 대해선 그냥 그랬는데 고갱이 또 고흐에게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니, 고갱과 고흐의 동행이 좀 더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뭉크가 '인생의 춤'으로 사랑의 4단계를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것은 윌리엄 호가스의 결혼세태 시리즈이다. 판화 연작으로 돈을 벌기도 했지만 시대를 풍자하는 호가스의 그림들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이 부조리한 시대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편은 다른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짧고 굵게 작가와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서 뭔가 정리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알폰스 무하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인 듯 하다. 아르누보풍의 곡선미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뿐만아니라 무하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 시리즈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을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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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우리나라에 대한 작품도 남겼다. 이 그림은 발로리스라는 프랑스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다. 발로리스는 프랑스 남동쪽 지중해 연안에있는 마을로, 도자기로 유명하다. 피카소는 1948년, 자신의 나이 예순일곱부터 이곳에서 머물기 시작하는데 지친 심신을 도자기를 구우며 달렸다고 한다. 발로리스에는 피카소 박물관이 있다. 옛 수도원이기도 했던박물관 안에는 반원형의 터널이 있고 이 터널에 그려진 <전쟁과 평화〉는한국의 6·25전쟁을 주제로 한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그려진 이 그림은 터널의 양쪽으로 나뉘어 있으며 한쪽은 전쟁, 다른 한쪽은 평화를 담았다.
먼저 ‘전쟁‘(353쪽 위) 그림을 보면 괴수가 한 손에는 피 묻은 칼을, 다른손에는 벌레들이 붙어 있는 방패를 들고 있는데 이는 세균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앞으로는 괴물들이 전쟁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를 막아선 인물이 있다. 그가 든 방패에는 평화의 메신저로 불리는 흰 비둘기가 그려져 있고, 들고 있는 창에는 저울이 매달려 있다. 저울은 곧 정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곡식이 보이는데이는 풍요를 상징한다.
맞은편 벽에 있는 ‘평화‘(353쪽 아래) 그림을 보면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피리를 불거나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한 아이는 날개 달린 말을뒤에서 편안하게 끌고 가고 있는 등 동심이 살아나는 그림이다. 흥미로운건 하늘에 그려진 문양인데 이 그림을 6·25전쟁으로 해석하면 피카소가 태극무늬를 재해석한 문양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전쟁과 평화>는 국경을 초월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평화로운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피카소의 진심을 담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가 태어난 후 20세기 전반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6·25전쟁까지 목도한 피카소는 전쟁의잔혹함, 비인간성을 예술로서 고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을 다룬 또 다른 그림도 있다. <전쟁과 평화>보다 1년 먼저 그려진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인데 여기서는 ‘한국‘이라는 단어가제목에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그림 왼쪽을 보면 지금 벌거벗은 모습의 순박한 사람들이 무기 하나 들지 않고 아이를 안고 있거나 체념한 듯 서 있다.
반면, 이들의 반대편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로봇처럼 보이는 무시무시한 학살군이 총을 겨누고 있는 구도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왼쪽에 양민, 오른쪽에 학살자라는 같은 구도를 갖고 있다. 글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처럼 그림 역시 왼쪽에 희생자를 둠으로써 우리의 시선이 희생자에게 먼저 향하게 해 희생자 편에 더 공감할 수 있도록 싸인 구도라고볼 수 있다.
고야의 그림이 학살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느껴진다. <한국에서의 학살>의 희생자들은 여성과 아이들인 데다가 알몸 상태로 위험과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속에는 만삭의 여성이 있는데 당시 임신 중이었던 피카소의 연인 프랑수아 질로Françoise Gilot를 소재로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피카소가 만삭인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이 그림에 담은 것이라면 그만큼 6·25전쟁에 깊이 감정 이입했다는 징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의 공포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6·25전쟁 때 한반도에서 쏜 총탄의 양이 2차 세계대전 때 전 세계에서 봤던 총탄의 양과 비슷했고 6·25전쟁에서는 게르니카 학살 당시의 공습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한번 폭격할 때 900~1,000대 가까이 비행기를 띄웠을 정도로 전쟁이 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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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들이 봄날의 즐거움을 담았으면 한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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