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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의 전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자작나무 / 1998년 8월
평점 :
정의도 없고 신의 심판도 없고... 구원도 없었다. 신을 믿고 그를 위한 거룩한 제단에 놓여야 하는 메라노 촛대는 신의 영광을 위해 유태민족, 인간의 구원을 위해 불을 밝히지도 않는다.
유태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전설따라 삼천리를 읽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지만 이 책을 덮을즈음에 나는 전설이 아니라 신과 구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룩한 촛대가 필요한 것은 신인가, 인간인가.
인간을 위한 상징이라면 부와 권력의 소유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니 사라지게 될 뿐인 보석일뿐이고 신을 위한 것이라면 왜...인간의 구원을 위해 촛불을 밝히지 못하는가 고민스러울뿐이다.
"인내심을 갖고서 기다리거라. 아마도 언젠가는 신이 네 마음속에서 스스로 대답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p76)
우리는 수많은 영화, 책, 노래 등에서 폭력이 구원의 역할을 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왔다. 나쁜 놈들이 어떤 좋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테러를 가한다. 그 중 한 좋은 사람이 악당들보다 더 힘이 세다. 그는 점차 영웅이 되고 상황을 변화시킨다. 그러자 악당이 여전히 사악하게 좋은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더 강화시킨다. 그는 영웅에게 더 모욕을 가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은 응징하지 않는다. 그의 시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야기는 절정에 도달한다. 악당은 영웅을 막다른 지점으로 몰아넣는다. 싸우든가 죽든가. 그러자 구원의 활동이 시작된다. 영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옷을 벗어던지고 악당을 죽도록 때려준다. 이제 우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드디어 정의가 실현된 것이다. 악은 무너졌고 선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쯤에서 선이 악보다 더 폭력적이 되었음을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의 영웅은 마더 데레사처럼 시작했지만 결국 람보와 배트맨 모습으로 끝났다. 이 구원이야기의 끝은 예수 이야기의 끝과 근본적으로 반대이다. 예수님은 막다른 골목에서 싸우느냐 죽느냐의 선택을 해야 했으며, 그분은 우리의 신화적 영웅들과 달리 죽는 길을 택하셨다.(거룩한 갈망, 로널드 롤하이저)
촛대의 전설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폭력에 대한 이 글이 생각났다. 비밀을 간직하고 땅 속 어둠에 묻혀버린 신의 영광과 구원이 예수가 행한 비폭력의 구원과 통해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 책은 '촛대의 전설'이라 되어있지만 어쩌면 나는 촛대의 '진실' 안에 담겨 있는 신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어둠속을 영원히 걸어갈 수는 없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낙망함으로 쓰러지고 말지니
하여, 불빛이 필요하다.
어둠을 밝혀 길을 비춰 줄 불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