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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체의 여행이 필요하다. 나의 육체를 이동시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관점을 바꾸면, 눈이 보는 것도 틀림없이 달라진다. 내 육체를 이동시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1.
思索紀行을 처음 받아들고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며칠전이었는지.... 4일동안의 짧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을 읽었고 돌아와서 뭉기적 거리다 나머지 반을 읽었다. 그 반이라는 것이 정확한 등분이 아니라 내용상 나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뒷부분을 다 읽고 마음이 밑으로 쑤욱 가라앉아버린다. 왜 뒷부분으로 가면서 이렇게 무거워졌지?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간 팔레스타인과 뉴욕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느라 나를 찾아 볼 틈이 없었다. 이래서야 '그의 여행'이지 내가 동참할 수 있는 부분은 없쟎은가. 준비없이 성급히 떠나버려 그런가?
2.
서문을 읽고 첫장을 열었는데 뜬금없는 무인도 얘기에 당황스러움도 없이 무인도 생활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금새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의 여행에 빠져들어버렸다.
개기 일식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이 있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와인여행이나 치즈여행에서는 그저 '맛이 훌륭하다'를 넘어서서 그러한 맛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여행까지 즐길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와인이나 치즈의 맛도 모르고 그저 봉쇄 수도원 수녀님들이 만드셨다는 걸 한번 먹어보고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경험 하나만 갖고 더 전문적인 그들이 만들어내는 맛이라면 가히 환상적이겠구나, 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의 전례음악. 그 느낌은 아마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상상이 안 될 듯하다. 떼제노래를 전례때 처음 들어보고 그 빛 속에서 행해지는 전례와 노래소리의 경건함과 아름다움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번져 발매된 음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실제 떼제 공동체에 가면 또 다른 경건함과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내게는 십여년 전에 필리핀 아이들이 행하던 그 전례가 떼제의 원형이 되었다. 전례안에 녹아들어간 그들의 찬양이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라 그때의 그 분위기와 기도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본질은 발견에 있다. 일상성이라는 패턴을 벗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데 있다" p79
3.
그런데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은 의뢰를 받고, 동참 제의를 들으며 나같은 녀석은 평생에 한번도 해보지 못할 여행을 즐기며 사색하답시고 댕기는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때쯤 대학시절의 반핵 무전여행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와 -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반핵 무전여행의 이야기는 마구 흥분된 기분으로 읽게되더라. 어떤 이야기인데 그러냐고? 이건 내가 전해서 느낄 수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책을 읽어보시라. 온전한 그의 여행은 여기에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내 여행의 주제는 다른 것으로 잡더라도 그와 비슷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
4.
이야기가 팔레스타인과 뉴욕에 대한 것으로 옮겨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그들과 공유하고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을 느껴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저히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질적인 내가 있다. 그래서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 뭔가 묵직하게 가라앉아버린다.
============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책느낌을 쓰려고 하니 어수선한 분위기따라 내 마음과 글이 따라서 번잡해지고 어수선해진다.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쓰는 것은... 책느낌을 다음으로 미뤄버리면 왠지 마지막장의 느낌이 너무 강해버릴 것만 같아서다. 이 책은 그 느낌이 전부가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책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느낌을 적는다. 글을 허투루 쓰지 않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어서, 더구나 여행기라지만 사진 한 장 없고 제목조차 思索紀行이라서 망설이고 있다면 저얼대 어려워하지말고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