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구판절판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을꺼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건 그거야. 바보같겠지만 말이야-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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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1-07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하면서 관두고 싶을 때 떠올렸던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지금 주일학교 교사를 관둬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전의 노트를 뒤적거리다 보니 묵상노트의 맨 앞장에 이 글이 적혀있다.

내일도 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지만, 난 이미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호밀밭을 등져버리고 있는것이 아닌지... 쓸모없는 생각만 많은 토요일 밤이다. 쩝-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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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호가 물었다.
'의술이란 천한 기술이고, 시정은 비천한 곳이다. 그대의 재능으로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과 사귀면 명성을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시정의 보잘것없는 백성이나 치료하고 다니는가?'
조광일의 대답인즉 이렇다.
'나는 세상 의원들이 제 의술을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을 떨어 서너 번 청을 한 뒤에야 몸을 움직이는 작태를 미워합니다. 또 그런 작자들은 귀인의 집이 아니면 부잣집에나 갑니다. 가난하고 권세없는 집이라면 백 번을 청해도 한 번도 일어서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이겠습니까? 나는 이런 인간들이 싫습니다. 불쌍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정의 궁핍한 백성들입니다. 내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에 돌아다닌 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니 다시 십년이 지난다면 아마도 만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내 일도 끝이 날 것입니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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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1-0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시 뉴스에 '건강도 되물림 된다'라는 머리기사를 봤다. 그래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소외된 사람들은 끊임없는 악순환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아직 정부의 복지 정책만으로는 안된다고 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 조광일 같은 명의가 많아지는거라도 바래봐야겠지.
 
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지음, 남도현 옮김, 송락현 감수 / 열음사 / 2002년 9월
절판


사이타마현에 살고 있는 14세 소녀는 이런 감상을 적고있다. "지금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은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어두운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되었다"

"모노노케 공주의 무대는 전국戰國시대로 변해간다고 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살 수 있을까. 숲도 타타라 장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두 꺾이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서 나는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다. 괴로운 일이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괴롭지만 지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앞으로 많이 남았지만 나는 여름방학이 끝날때쯤 한 번 더 <모노노케 공주>를 보고, 기운을 내서 등교할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약한 자신, <모노노케 공주>는 그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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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1-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는 줄바꿈이 안된다. 구분이 없네!

chika 2004-11-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라'의 메시지에 무척이나 공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메시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절박한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알 수 없었다. '살아라!'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함께 놓일 수 있는 말일까?

진/우맘 2004-11-0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며칠동안 안 보이던 밑줄긋기가 이젠 보이네요.^^

chika 2004-11-0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는 줄창 잘 보이더군요. 흐흐~ 알라딘 에러가 사람따라 서재따라 맘대로였군요!! ^^
 
비폭력 대화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바오 / 2004년 11월
구판절판


"우리 자신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대로 변하지"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먼저 다른 사람이 변하기만을 기다린다....
비폭력은 우리 안에 잠재한 우리의 긍정적인 면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이기심, 탐욕, 미움, 편견, 의심이 많고 공격적인 태도 대신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 이해, 감사, 연민, 배려가 우리 마음 안에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것이 비폭력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이 세상은 무자비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냉혹해져야만 한다"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세상은 우리 행동의 결산이다. 오늘날 이 세상이 무자비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무자비한 태도와 행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 아룬 간디, 머리말중에서-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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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지음, 남도현 옮김, 송락현 감수 / 열음사 / 2002년 9월
절판


크샤나를 구해주는 나우시카, 레프카를 돕는 코난... 미야자키의 작품에는 자신을 해치려 하는 증오할 수밖에 없는 적에게조차, 그들이 위험에 처하면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사람들은 보고 있는 동안에는, '저런 놈들은 그냥 둬도 좋을텐데'라고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러나 미야자키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 자식이 '저 사람을 버리지 말아요'라고 말했다면, 당신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미야자키는 또 '그런 얘기를 해주는 아이가 나올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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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4-11-0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선악의 구분이 없어서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에 열광할수밖에 없는지.. 이 글을 읽으면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된다.

숨은아이 2004-11-0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런 점이 좋아요. 크샤나나 레프카는 악인이 아니라 이성적인 인간이지요. 이성적으로 나름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그 논리가 틀렸음을 깨달으면 잘못된 행동을 멈추지요. 무분별한 악녀 때문에 여주인공이 곤란을 겪고, 남주인공이 그런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할리우드 만화와는 다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