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지음, 남도현 옮김, 송락현 감수 / 열음사 / 2002년 9월
절판


하늘을 날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항상 똑같은 시선으로 보면 세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칭칭 얽매여 있는 것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시점을 바꾸면 세계는 좀 더 유연한 것이 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갖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TELEPAL, 1989년 7월 15일 호,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론-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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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은 평범한 어린이입니다.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시의 일상생활을 중요하게 여기고, 섬에 되돌아가면 마을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으면 그것으로 좋은, 그런 인간입니다. 슈퍼맨도 아니고,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그 만큼의 활약을 하고 하이하바에 돌아와도 마을 사람들은 코난을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 로망앨범 46 미래소년 코난 수록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세계 고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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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가망이 없어 보여도 괜찮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마음. 미야자키는 라나를 묘사할 때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남자 주인공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이제부터 어떡하지'라고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 ANIMAGE 90년 7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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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자키 하야오론 '일상성의 행방'을 쓴 카와키타 야시오는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말한다.

"부질없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고, 단지 한결같은 맹렬함으로 결정 되지 않은 상태로서의 현재를 헤쳐나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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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라나는 "이제 어떡하지?"라고 묻지 않아요. 결코 낙담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일정한 공동체 속에서 일정한 일을 하고 있으면 능력차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됩니다. 어지간한 게으름뱅이가 아닌 한에는, 마을이 굶주릴 때에는 함께 굶주리고 마을이 풍요로울 때에는 자신도 풍요로워지는.

사람과 교제할 때에도 누가 위, 아래라는 개념이 없고, 그래서 역으로 다른 폐해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세계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도시형 사회는 각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상품가치로 순위를 정하고 있으니까요.

- ANIMAGE 89년 5월호, 카도노 에이코, 하야시 아키코와의 대담에서의 미야자키 하야오 발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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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아직 인간이 세계의 주인공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믿으며, 농부는 수확을 즐거워하고 직공은 솜씨를 자랑하며 상인은 상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들의 운명은 자신에 의해 변화가 가능하며 개척 가능한 것으로,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롱게 내맡겨서 빈곤함도 있지만 서로 돕는 마음도 있고, 수확도 있지만 가뭄과 흉작도 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악인도 확실히 악인다운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욕망을 감추지 않고 겉모습 따위에 개의치 않고 장렬하게 돌진하는 악인이라도 악인대로 차라리 상쾌하게 살고 죽는 것이 가능한 세계. 이 세계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대량생산의 공장제품이 아니며, 기능이 드러나는 즐거움과 수제품의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도 땅에도 수제 발명품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그것을 길들이고 수리해 가면서 능숙하게 타고 다니다.

- 미야자키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기획원안에 기록한 문장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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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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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을 때는 커다란 감동과 먹먹함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들춰보려니 그 가닥을 잡을 수 없는 느낌이 어땠는가 풀어놓기가 힘들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낀다 하더라도 서경식이라는 분이 직접 겪은 그 경험은, 아니 그분의 삶은 내 삶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하겠지.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이 눈에 익은 그림이든 전혀 낯선 그림이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것,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책의 제목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사나이들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무엇을 쫓고 있는가? 아니면 쫓기고 있는가?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인가? 혹은 괴로운 여행을 계속하는 순례자인가?
곰곰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아, 내가 지금 꼭 이런 꼴이겠구나 하고 생각되었다"-에필로그에서

인쇄된 상본이긴 하지만 몇년 전 외젠 뷔르낭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 그림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었기때문에 더 많은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조금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떠오르고, 그 속에서 더욱 더 슬픈 가족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내가 지금 꼭 이런 꼴이겠구나'라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부활의 믿음도 없이 모든 희망이 사라진듯한 슬픔과 괴로움속에서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의 그 절박함이 그때의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이제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그런 마음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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