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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그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할 만큼 가혹한 경험이었지만, 다른 경험보다 더 가혹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본문에서 인용]
뜬금없이 이십여년 전 읽은 글이 떠올랐다. 오빠가 읽고 방구석에 처박아둔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열심히 읽던 어린시절에 읽은 글이다.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이 미국의 도움으로 엄청난 프로젝트를 세우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선조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모세의 출애굽에 비유되는 엄청난 글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던 그 이야기는 지금 내게 어렴풋이 남아있어 나의 상상력이 글을 부풀린건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이디오피아의 유대인이라니!! 하.하.하..!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게 사실이었구나, 안심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대인의 자본이 전세계에 퍼져 특히 미국의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아 차지해버렸다 라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믿게 되니 이디오피아의 유대인이 선조의 땅으로 이주하였다는 얘기도 그럴싸하게 현실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어릴적에 읽은 잡지의 기사가 사실이었다는 사실에 웃다니. 그게 기쁜일인가? ... 아니, 나는 그래서 역시 방관자라는 느낌을 지울수없는 것이다. 겪어보지도 않은 내가 '용서'니 '화해' 니 하는 말들을 꺼낼수는 없다.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되었든 나는 방관자로서의 수치심 비슷한 것을 안에 담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4.3사건 얘기만 나오면 빨갱이놈들 얘기 꺼낸다며 화를 내시는 어머니에게 뭐라 대꾸할 수 없고, 4.3때 희생당한 분들의 증언들을 보고 읽으면서 역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끔찍하다'라는 말조차 나는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저 머리속을 맴도는 추상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자본의 권력을 배경으로 삼아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았고, 종교적인 문제까지 맞물려있어 분쟁이 끊이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어린 소년들까지 자살폭탄테러에 이용하고 있는 끔찍한 현실, 폭탄테러로 무고한 지역주민 수십명이 사상... 등등의 이야기들에 대해 감히 뭐라 얘기하기 힘들다. 이 책을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치욕과 복수심에 불타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평화를 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화해'니 '용서'니 하는 말들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은 나처럼 그 끔찍한 일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용서와 화해, 평화를 외쳐야 할 것이다. 한쪽이 가해자이고 한쪽이 피해자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수밖에 없었던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인 우리 부모님들이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하며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 것 처럼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의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아직 여전히 평화로운 희망의 미래는 있는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