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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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유리의 도시에서]

폴 오스터의 초기 작품이라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그저 그렇게 끝없는 미궁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도시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초기 작품이라니.. 그럴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나갈 즈음에는 갑자기 혼란이 오기 시작해버렸다. 아무래도 이 책은 마지막을 덮으며 다시 첫장을 펴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비슷한 것 때문에 다시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어떤 책이든 리뷰를 쓴다는 것이 쉬운것은 아닌데, 이 책은 특히나 더 어렵다. 그저 단순히 '저도 이 책 읽었거든요..'라는 말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듯 하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도대체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던 90년대 초 우연히 그의 책을 읽고 뭐라 딱히 꼬집을 수 없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 당연하다는 듯 구입해서 읽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솔직히말하자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아주 위대한 작가라든가 그의 작품이 이러이러해서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항상 책을 읽고 난 후 뭔가에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그런 둔탁한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폴 오스터의 책은 다른이들의 리뷰를 읽는것보다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느끼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아주 깊은 내면의 세계를 느끼게 되든, 황당하고 어이없는 가상의 세계를 느끼게 되든 그것은 책을 읽는 자의 몫이려니....

'그러나 아직은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순간은 블루가 방을 나서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가 어디로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가 있다.... 나는 은밀한 꿈 속에서...'[유령들 중에서]

폴 오스터가 은밀한 꿈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의 말에서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나는 여전히 그 상태로 마치 되돌이표가 있는 듯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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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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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리뷰는 책을 읽은 느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쓰기 힘들어지는것 같다. 마음속에선 뭔가 강한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란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흘려버렸었고, 추천도서목록에서 다시 그 제목을 봤을 때는 왜 하필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환경'운운하는 추천의 이야기에 이러한 제목을 가진 환경소설은 어떤 책일까 하는 호기심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은근한 서정성을 느끼며 무심코 책의 첫장을 열었는데 맨처음 마주하는 작가의 말부터가 일순 긴장하게 만들어버린다.

노인은-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이지만 그저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그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간 밀림을 증오하였으나 밀림은 다시 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 밀림 속에서 그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 증오심도 잊어버렸고, 자신이 자유롭다는 인식조차 잊은채...

밀림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수아르족의 '죽음'에 대한 예식 역시 밀림을 살아가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애소설' 읽기를 멈추게 하는 삵쾡이의 사냥에서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고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짐승은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느낀 노인은 그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이 모든것의 시작은 '인간'이 밀림에 사는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금속성의 짐승을 마구 휘두른데서 시작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다섯달이나 걸려 노인이 결론을 내린 좋아하는 책은 '연애소설'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음아파하고 인내하고 슬퍼하지만 어쨋거나 연애소설에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천.천.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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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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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흘러흘러 알라딘 서재를 거닐다 지니님 추천도서목록에서 발견한 책으로 기억한다. 그냥.. 재미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펴들었는데 이 책은 정말 상상 이외의 책이다. 우리의 백두대간을 종주하듯 애팔래치아를 종주하며 느끼는 자연의 위대함, 아름다움..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자랑스러움. 솔직히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어나가면서부터 '이따위로 준비를 하고 이렇게 걸어가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걸까?'라는 실망감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어,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닌것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더 내게 배낭메고 숲으로 뛰어들어가고픈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몇년 전 지리산 등반을 한다고 폼을 잡다가 엉금엉금 기며 손전등에 의존해 야간산행까지 감행하고 비좁은 산장에서 온갖 찌든 냄새와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새우잠을 자던 추억이 슬금슬금 떠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브라이슨과 카츠처럼 나 역시 끝내 지리산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산행을 하는 것은 고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기에 도전을 하였고 내 체력이 되는 만큼까지 갔다가 내려왔다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책이 더 재미있고 실감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들이 너무나 쉽게, 너무나 멋있게 애팔래치아 종주를 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거짓말같은 사실에 실망하면서, 나의 못난 모습만을 떠올리면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어리버리한 준비와 산행, 더구나 배낭이 무거워 일용할 양식까지 다 던져버리는 친구의 어이없는 모습 묘사까지 숨김없이 다 털어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배낭메고 산길을 걸어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런 엉망진창인 그들의 솔직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어쨋거나 우리는 '시도'했다, 라는 말이 맘에 남는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다. 산행은, 자연속에서 숲을 거닐고 여행을 떠남은 반드시 목적완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 생각이 든다. 그 여행길에서 즐겁고 행복함을 느꼈다면 '시도'했다는 것으로 우리는 훌륭할 수 있는 것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 준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본문에서 따옴]

아아, 유쾌하게 숲을 거니는 행복을 맛보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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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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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예찬과 문명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책'

이런 위대한 카피(?)를 달고 필독서라 일컬어지는 <월든>을 바라보기만 하다 드디어 손에 넣고 읽어 보았다. 너무 거창한 광고 카피에 눌려서 그런지 겨우 한번 읽어보고서는 그 느낌을 다 얘기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전혀 월든에 대한 정보가 없을때엔 스콧 니어링의 삶과 비슷하려니..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겨우 3년여의 생활일뿐이었지만 소로우는 스물여덟살의 나이에 월든 숲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선택한다. 소로우의 사상이나 실제의 삶, 월든 이후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사실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어쨋거나 그는 월든 호숫가에서 생활하며 숲에 동화되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활을 하였고 그 생활의 이야기는 한세기가 더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도 하나의 위대한 삶으로 여겨지고 있다는것이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그의 깊이있는 통찰에 의해 한세기 반이 넘는 미래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해보게끔 하기때문에 그가 위대한 것이며 월든은 우리가 읽어봐야 할 필독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소로우가 월든 생활을 겨우 3년여의 기간으로 끝내버렸는지가 의문스러웠다. 그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걸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생활을 했을것이라 믿는다. 그건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느낀 것일뿐 다른 이유가 없다.

'나는 결코 남이 내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사람이 내 생활 양식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나는 또 다른 생활 양식을 찾아낼지 모를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제각기 다른 인간들이 존재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당부하고 싶다'[본문에서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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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클레어 지퍼트.조디 리 그림,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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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수십번을 읽은 책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물론 어린시절이었기에 그 횟수가 과장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쨋거나 읽고 읽고 또 읽었었다. 에피소드의 한 단락이 아니라 누군가의 대화 한마디만 들어도 그에 관해 앤이 벌이는 사건이 줄줄이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올만큼 난 빨간 머리 앤을 많이 읽었었다. 어린시절에는 황혼녘에 원수(?)처럼 지내던 길버트와 화해를 하고 마리라에게 '모퉁이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끝으로 알았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그 부분이 제일 감동적이다.

사실 책의 내용을 빤히 들여다 볼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을 없애지는 못할것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너무 커버려서인지 완역본이라는 책을 들고 앤의 이야기에 푹 빠지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빨간 머리 앤을 추억하는 나는 어쨋거나 완역본이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는 세권의 책을 다 읽었다. 읽어나가다보니 여전히 재미를 발견하고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갔다. 어린시절의 감동이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나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 감동은 거짓이기에...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며 추억속의 앤을 끄집어내는 내가 만난 앤과 아직 앤을 모르는 내 조카녀석이 만나게 될 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앤일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해리포터를 수없이 읽어보는 조카에게 빨간 머리 앤을 만나게 해 줘야겠다. 물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카에게는 모퉁이 길에서 그 길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좋은 것들을 상상해볼 수 있게 첫째권만을 보여줄 것이다. 꿈많은 어린시절엔 모퉁이 길에 잠시 멈춰서서 가슴설레는 미래를 마음껏 상상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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