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답해 준 다윈


최재천 : 올바르게 잘하고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윈의 사상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말씀해 주세요.
피터: 생각나는 대로 말하라면, 다윈의 진화는 우리가 어디에서왔는지 말해 줍니다. 모든 생물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 주는 그런 이론이 있는 것은 그런 이론이 없었을 때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이해할 수 있게 해 주죠.
로즈메리: 사람과 질병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떻게 질병에 대응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새로운 병에 걸리는지, 제초제에 대한 내성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진화 이론을 이해하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질문을 하게하죠.
최재천 : 갈라파고스가 두 분께 어떤 의미인지 가능한 한 짧게 말씀해 주신다면?
피터: 아, 말문이 막혀버리네요. 로즈메리, 당신에게 갈라파고스는 무엇인가요?
로즈메리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비교적 단순한 환경. 그곳에갈 때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돼요. 제게는 이 세상에서 다녀본 그 어떤 곳보다 자극적인 곳입니다.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곳이어서 그럴 겁니다. 그리 많은 생물이 사는 곳이 아니에요. 다프네 섬에는 겨우 마흔네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요. 복잡하다면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단순해서 질문하고 답하기에 안성맞춤이죠.
최재천: 다윈 흉내를 좀 낸다면 이쯤 되겠네요. ‘그토록 단순한 곳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니!(From so simple a place endless questions most beautiful and most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raised!)‘
로즈메리: 그거 멋지네요.
피터 :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답? ‘과거를 보여 주는 신기한유리창?‘
로즈메리: 그것도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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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 생활 초기부터 설거지를 제가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당시 설거지를 자원해서 한다는 게 한국 남성으로서는 퍽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할 때마다 빠르게 해치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그리고 늘 그 일을 아내를 위해서 하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설거지하는 제 어깨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왜 나는 이것이 내 아내의 일이고 내가 그녀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는 같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결국 제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설거지를 정말 잘하고 싶어졌어요. 제 일이니까요. 그전에는 항상 설거지를 빠르게 끝내고 얼른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어 했죠. 하지만 그날부터 저는 차츰 설거지의 달인이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가끔 아내가 설거지하게 되더라도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결국 다시 하곤 합니다.


###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결과. 쉬워보이지만 실상 많은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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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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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D. 라이트(C.D.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209)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글을 읽는 느낌이라 그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번역의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다음은 저자가 다듬어지지 않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천천히 읽어가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작가인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고래 이야기로 시작해 환경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어서 생태환경에 중점을 둔 에세이 작가의 글인가 싶었는데 휴가여행을 이야기하며 수탈당하고 침략당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진작가의 연대기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사진작가의 사진과 활동을 통해 르포르타주의 의미에 대해, 자비와 연민에 대해 툭 던져놓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강렬하게 펼쳐놓고 있다. 

"집단 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131) 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나 자신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잠시 책을 덮어놓기도 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대학살은 알고 있지만 만약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역시 '기념'일뿐인 것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쓰기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이 아니라 깊이있는 통찰에 의한 날 선 것의 느낌이었나...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고.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개인의 체험 속에서 보편성을 찾게 되고 삶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레슬리 제이미슨의 에세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머리의 인용처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보는' 것이지만 같은 것을 본다고 같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또한 떠올리게 된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의도'와 '의미'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려 하지 않아도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을 읽다보면 애매모호함의 글이 아니라 명확한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애매모호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부끄러움 가득할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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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 D. 라이트(C. D. 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 

애니는 마리아 가족 그 누구에게도 자기 집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국경을 건너와 집을 찾아오면 결코 돌려보낼 수 없을 것을 알아서였다.
사진가 메리 엘런 마크와 그의 남편 마틴 벨은 1983년 타이니라는 이름을 가진 시애틀의 열세 살 성노동자를 중심으로 기록물 「거리의 아이들」을 제작하는 동안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어야 할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이들의 고통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기록하는 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도움이라는 부가적인 책임을 진다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란 지속 불가능해진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리 큰 도움을 주어도결코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마크와 벨은 자신들이 촬영한 아이들에게 돈은 절대 주지 않았으나 음식, 재킷, 신발은 주었다. 촬영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타이니더러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벨의 표현대로라면 "입양이나 다름없었다." 조건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나 타이니는이를 원치 않아 함께 뉴욕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수십 년간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로부터 19년 뒤 타이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늘 생각해요. 제가 뉴욕으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 P204

애니는 일기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온갖 신화적인 버전의 자신들을 심문한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스스로 구원자 행세를 해야 하나?" 그는 수십 년간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욕망과 싸워왔다. 한 일기에서 그는 자신을 "선한 의도를 가진
‘박애주의자‘라는, 나 자신도 속일 만큼 효과적인 가면을 썼지만 사실은 무방비에 취약하고 독선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예술가"로 묘사했다.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애니는 썼다. "인과응보를 내리는건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이 사진이 아는 모든 것과 함께 사진이 아직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본다. 그리고 이 알지 못함은 사랑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다. 사랑이란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헌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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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준 너에게, 마지막 러브레터를
고자쿠라 스즈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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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청춘소설의 이야기는 무엇을 담고 있으려나 궁금했는데, 이에 더해 '마법의i랜드 청춘소설상 수상'이라는 것과 현재 대학생이라는 저자의 이력은 기대감을 살짝 내려놓고 맘편히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짜임새있고 재미있어서 첫문장을 읽고 그대로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이하라 미즈키는 이쁘고 성격도 밝아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리쓰의 단짝친구다. 아이하라는 리쓰와 모든 것에서 비교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짝사랑하는 소꼽친구 가이토가 리쓰와 사귀는 사이가 되면서 더 마음이 위축된다. 더구나 가이토와 소꼽친구라는 걸 모르는 친구들이 오히려 리쓰를 질투하고 가이토에게 애교를 부린다는 오해를 받아 우울하기만 하다. 아이하라는 가이토를 짝사랑하지만 친구 리쓰와 사이가 멀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 둘이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도서관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남몰래 가이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걸 발견하고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도서관에서 늘 가이토를 지켜보지만 가만히 앉아있을수만은 없어서 처음 눈에 띄었던 '마음' 책을 항상 꺼내는데 어느 날 그 책 속에 아이하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편지를 보낸 사토라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조금씩 변하게 되는 아이하라의 모습과 미지의 인물 '사토'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풋풋한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사토'를 추리해가는 소소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 가벼운 연애감성 판타지 소설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촘촘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단숨에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예상밖의 사토의 정체에 이야기가 급전개되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 책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오히려 더 깔끔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단숨에 읽어버려서 십대의 풋풋한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를 진하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사토의 정체를 찾는 미스터리와 첫사랑의 감정과 우정을 바라보는 것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토 찾기,가 아니라 아이하라에게 사토가 건네는 위로와 기쁨 속에 배울 수 있는 사토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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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크메르루주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 집착한 덕에 이들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기는 수월하다. 온갖 사진, 죄수들의 머리를 처박은 물탱크, 교수대 같은 것들로 크메르루주는 스스로를 효율적으로 화형에 처한 셈이다. 

나는 이곳의 상처를 전혀 모른 채 이 땅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 상처를 눈으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스리랑카를 찾기 1년쯤 전에 나는 보조강사로 일해 모은 돈으로 캄보디아에 사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 프놈펜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옛 크메르루주 감옥인 투올슬렝이었다. 세 채의 콘크리트 건물 속 상자식 감방들에는 아직도 녹슨금속제 침대 프레임, 오래된 쇠고랑, 전기고문에 사용한 전압상자가 남아있었다. 감옥, 아니면 1만4000명이 들어왔다가 단 일곱 명이 살아서 나간,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는 장소가 되기 전에는 학교였던 건물이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 피를 흘린 몸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꼬리표는 없었다.
위층 발코니에 달린 가시철조망이 번들거렸다. 툭툭 기사들은 이곳에 유령이 들끓는다고, 밤에는 근처에 오기를 꺼렸다.
가이드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투올슬렝에 다녀오지 않고는 프놈펜 여행을 마쳤다고 할 수 없다." 여기서 마쳤다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시아누크빌의 파라솔 가득한 해변, 나무동이에 담긴 럼을 들이켜거나, 앙코르와트에서 세피아 톤으로 물든 인스타그램 사진을 남길 자격을 얻기 전에 이곳 역사에 이땅에 남은 상처에 관하여 응당 치러야 하는 몫이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내가 투올슬렝에 갔을 때는 많은 이들이 야자수와 철조망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다들 땀범벅이었다. 뜨거운 날씨여서 탄산음료 노점이 성황을 이뤘다. 나도 목이 말랐지만 다이어트 콜라를 들고 죽음의 전당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탄산음료를 샀든 사지 않았든 당연한 모독을 피할 길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런것들을 바라볼 테고, 그러다가 바라보기를 그만둘 것이며, 그 뒤에는 살던 대로 살아갈 것이다. 집단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
크메르루주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집착한 덕에 이들의 악행을 낱낱이 밝히기는 수월하다. 온갖 사진, 죄수들의 머리를 처박은 물탱크, 교수대 같은 것들로 크메르루주는 스스로를 효율적으로 화형에 처한 셈이다. 나는 이곳의 상처를 전혀 모른 채 이 땅을 돌아다니기보다는 그 상처를 눈으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족쇄가 박힌 기울어진 널빤지와 그 옆에 놓인 물뿌리개를 보는 게, 크리스티안아만푸어가 물고문이 고문에 포함되느냐를 놓고 조지 W. 부시의연설원고 작성자와 벌이던 언쟁을 떠올리는 게 낫다고 말이다.
A 건물 1층 벽보판에 일렬로 붙은 사진들 속, 이곳에 갓 도착한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죽거나 떠나기 직전의 여위고 삭막하고눈이 퀭한 얼굴을 보는 것이 낫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떠난다는것은 대체로 킬링필드로 이송된다는 것, 그저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투올슬렝 주변 묘지들이 꽉 차자 죄수들은한밤중 버스에 실려 외곽지역의 쯔응아익을 향했다. 이곳이 킬링필드다.

쯔응아익은 그저 발전기 하나와 사람을 죽이는 다양한 도구들로 가득한 오두막 하나가 있는 벌판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사람 뼈가 가득했다. 이 표현은 서정적인 진실이 아니라 문자그대로의 사실이다. 나는 내 신발이 뼈 사이를, 뼈 위를 밟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은 이들과 우리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아니었다. 크메르식의 장례 기념비인, 두개골과 대퇴골과 늑골로가득 찬 유리 탑인 스투파로 다가가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내 몸이, 저쪽에는 뼈가 있는 채로 신발을 벗고 머리를 숙이는 경험은 인지 가능한 경건함을 불러왔다. 그것은 내가 규칙을알 수 있는 의식이니까. 그러나 죽은 사람의 늑골 파편, 낡은 옷가지와 신발 고무창 조각 사이로 걸음을 디디며 뼈 사이를 걷는 것은 그와는 달랐다. 죽은 이들 위를 걷는 것은 불경하지만 정직한 일로 느껴졌다. 어차피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걷고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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