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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평점 :
"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D. 라이트(C.D.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209)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글을 읽는 느낌이라 그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번역의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다음은 저자가 다듬어지지 않은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천천히 읽어가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작가인 레슬리 제이미슨이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고래 이야기로 시작해 환경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어서 생태환경에 중점을 둔 에세이 작가의 글인가 싶었는데 휴가여행을 이야기하며 수탈당하고 침략당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진작가의 연대기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사진작가의 사진과 활동을 통해 르포르타주의 의미에 대해, 자비와 연민에 대해 툭 던져놓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강렬하게 펼쳐놓고 있다.
"집단 학살 관광산업은 공공의 역사를 민간의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과거는 집으로 가져갈 수있도록 찢어낸 입장권과 사진으로, 경험 그 자체라는 기념품으로 포장된다."(131) 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나 자신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잠시 책을 덮어놓기도 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대학살은 알고 있지만 만약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역시 '기념'일뿐인 것이 되겠지, 라는 생각에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쓰기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이 아니라 깊이있는 통찰에 의한 날 선 것의 느낌이었나...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고.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개인의 체험 속에서 보편성을 찾게 되고 삶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레슬리 제이미슨의 에세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머리의 인용처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보는' 것이지만 같은 것을 본다고 같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또한 떠올리게 된다.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의도'와 '의미'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려 하지 않아도 레슬리 제이미슨의 글을 읽다보면 애매모호함의 글이 아니라 명확한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애매모호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부끄러움 가득할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