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 아침 나치가 롬인 아이들에게 행한 의학적 잔혹 행위에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저는 롬인의 바이올린 음악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하는데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주아주 신중하게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나도 어떨 때는 문장 하나를 쓰는 데 석 달이 걸리곤 합니다. 글은 평생을 갑니다. 만약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207


그는 그날 아침 나치가 롬인 아이들에게 행한 의학적 잔혹 행위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저는 롬인의 바이올린 음악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하는데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주아주 신중하게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나도 어떨 때는 문장 하나를 쓰는 데 석 달이 걸리곤 합니다. 글은 평생을 갑니다. 만약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 P207

수녀님은 일요일 아침 나를 노숙자를 위한 미사에 데려갔다. 성당 뒤편에는 구호 물품으로 보이는 배낭이 잔뜩 쌓여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에 모든 참석자에게 제공될 아침식사였다. 우리는 제대에서 가까운 앞쪽 자리에 앉았고 우리 뒤의 신도석은 금세 노숙인들로 가득 들어찼다. 그들 가운데는 긴 치마를입은 롬 여인들도 흩뿌린 것처럼 섞여 있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강론 말씀이 끝나고 성체 성사 차례가 되었다.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나는 수녀님께 속삭이듯 여쭈었다. "왜 롬 여인들은 아무도 제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거죠?" 그러자 수녀님은 아예 모두가 들으랍시고 크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롬인들에게 성체 주는 걸 반대하는 교구사람들이 있거든!" 나는 오랫동안 피렌체를 사랑해왔지만, 그날은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본 것만 같은 기분에 내가 과연 이곳을 제대로 알고 있긴 했던 건가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롬인. 흔히 비하의 뉘앙스를 담아 ‘집시‘라고 부르는 유랑 민족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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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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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형사의 귀환‘이라는 말에 잠시, 가가형사 시리즈를 떠올려본다. 기억력이 좋지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 하나가 ‘붉은 손가락‘인 것은 기억한다. 사실 사회파,라고 하기보다는 감성파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내용이 담겨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그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바로 가가형사인지라 ‘희망의 끈‘ 역시 그런 의미에서 좀 기대가 됐다. - 성급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의 끈‘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게 해주고 있다는 것에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희망의 끈‘은 미스터리보다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더 중점이 있는 것 같다. 오랜 세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어서인지 예상이 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져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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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5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패스해요. ㅠ.ㅠ

chika 2023-02-15 07:03   좋아요 0 | URL
ㅎ 패스해도 괜찮을듯한 작품이기는하죠. 저도 받은책이 아니라면 뭐.... ^^;;;
 

축축한 이불에 둘둘 싸여 버려진 채로 구호원에 도착한 아기라도 가치를 알 수 없는 교회 바이올린을 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마달레나 롬바르디니가 좋은 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의 딸로 태어나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였지만 걸인 구호원을 졸업한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바이올린 비르투오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래가 바뀐 여자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이 같은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물건을 만드는건 사람이지만 때로는 물건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98


교회의 이중구도는 이렇게 선순환을 갖게되기도.


바이올린은 보통 뒤판 안쪽에 제작자 서명을 한 레이블을 붙인다. 앞판의 에프홀을 통해 들여다보면 보인다. 그러나 레프의 낡은바이올린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에프홀 안쪽을 쌔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블이 떨어졌나보다-종종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애당초 레이블이 붙지 않은 악기라고 했다. 교회악기는 제작자 서명을 붙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가 발주한 바이올린의 가치를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책략이었다. 유명 제작자의 서명이 붙은 악기라면 해를 거듭하면서 가치가올라갈 게 분명한데, 그렇게 되면 교구 사제나 주교, 추기경 같은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바이올린 딜러로 제2의 인생을 열지말란 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교회로서는 상표를 제거하는방식으로 악기의 가치를 틀어짐으로써 교회 관리들의 부정부패라는 난감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그렇지만 크레모나의 솜씨 좋은 장인들이 이처럼 수상쩍은 거래 조건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유혹이라면 전문가 집단인 교회가 솜씨를 제대로 발휘한 덕분이다. 교회 내 관리들의 청렴성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악기 제작자들에게는 상표를 붙이지 않은 악기를 만들어 척척 공급만 해주면 비과세 소득을 보장하겠다고 꼬드긴 것이다. 레프 바이올린의 주인이 한 말에 따르면 이례적인 이윤 창출의 기회를 주겠다는 유혹에 심지어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들마저 넘어갔다고 한다. 88-89

17세기 중반에는 이미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미사 제례의 노래 부분에 곁들이는 전주곡과 간주곡으로 바이올린 협주곡과 소나타를 삽입하기시작했고, 때로는 성가 대신 바이올린 음악을 연주했다. 부유한 교회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은 제1독서와 제2독서 사이에 는 현악 합주 협주곡을, 사제의 성체 거 도중에는 엄숙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성체 성사 도중에는 명상적인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는 호사를 누렸다. 이러한 혁신의 상당 부분은교회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의 주교와 추기경과 교황은 새로운 음악을 가장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후원자였다. 90

축축한 이불에 둘둘 싸여 버려진 채로 구호원에 도착한 아기라도 가치를 알 수 없는 교회 바이올린을 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마달레나 롬바르디니가 좋은 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의 딸로 태어나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였지만 걸인 구호원을 졸업한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바이올린 비르투오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래가 바뀐 여자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이 같은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물건을 만드는건 사람이지만 때로는 물건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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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나는 이런 디테일로 바이올린을 구별할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갔다. 그렇긴 해도 악기 전시실은 슬픈 장소였다. 바이올린을 보고 있으면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행위처럼 느껴졌다. 바이올린은 제작되는 동안, 그리고 바이올린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동안, 꾸준히, 가까이, 친밀하게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물건이다. 유리장 안에 갇힌 바이올린들은 야생동물이 자유를 갈구하듯 인간과의 접촉을 갈망하는 듯 보였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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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지칠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결국 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꾸짖거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 해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생각을 내려놓고 원래 집중하려던 대상으로 차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뇌는 애초에 부정형으로, 즉 무언가를 없애는 방향으로 사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해도,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면 앞으로의 삶에 이루 말로 다할수 없을 만큼 유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생각을 어떻게 내려놓을까요? 일단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우리의 관심입니다.
꽉 쥐었던 주먹을 활짝 편다고 상상해봅시다. 이 동작은 어떻게 우리가 생각이든 물건이든 내려놓고 보내줄수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잠깐이라도 힘주어 붙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는 간단한 행위로 상상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가령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고민 대신 호흡처럼 덜 복잡한 신체 활동으로 관심을의식적으로 돌린다면, 내면의 혼란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찾는 동시에 치유 효과도 누릴 수 있지요. - P32

관심을 어디로 기울일지 선택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겠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솔선해서 인정하겠습니다. 처음 호흡에 집중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 마음은 대부분 요요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거든요. 몇 차례 호흡을 따라가는가 싶다가도 사소한 일에 주의력이 흐트러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을성 있게 관심의 끈을 다시당겨야 합니다. 당기고 또 당기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하지요. 우리 마음은 지칠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결국 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꾸짖거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 해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생각을 내려놓고 원래 집중하려던 대상으로 차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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