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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책을 다 읽고난 후에야 왜 표제작이 '라이프 가드'일까 궁금해졌다. 어떤 소설이든 집중하지 않으면 그 행간에 담겨있는 은유를 놓쳐버리게 되겠지만 특히나 단편인 경우 단 한문장, 한 단어를 무심코 넘겨버렸을 때 그 이야기를 이해하는 핵심을 알아채기 힘들어버리게 된다. 표제작인 '라이프 가드' 역시 소설 속 인물인 유지가 라이프 가드 였다는 것도 이 짧은 소설을 다시 읽어보며 알게 되었다.
천천히 다시 한번 더 훑어보면서 첫번째 읽었을 때 떠올렸던 섬뜩함과는 또 다른 삶의 비극적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소설들이 힘들다.
표제작 라이프 가드에서 엄마를 따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하는 유지에게 낯선 동생 진희는 어떤 존재였을까. 바다를 유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그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진희의 시체가 발견이 되었다. 그 다음 여름에 라이프 가드인 유지는 바다를 지켜보며 거짓일까 진실일까 고민하다 결국 바다로 뛰어들고 그 속에서 '거짓은 거짓이고 진실은 진실'(89)일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유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방과 많은 물건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지는 진희의 죽음을 부추긴것일까, 방관한 것일까. 어떤 형태이든 유지는 진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일까? 유지의 죽음은 진희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내 물음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삶과 죽음에 거짓과 진실이 있을까?
솔직히 이 소설집에 실려있는 작품들은 나의 현실과는 많은 괴리감이 느껴져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은 이 이야기들의 끝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실려있는 단편 '전망 좋은 방'의 경우 그 방에서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라고 하는데 붉은 카펫이 깔린 어둠의 계단으로 걸어가면 그것이 절망의 끝인지 희망의 시작인지 애매해진다. 지금도 나는 그 무엇도 자신할수가 없다.
버진블루라군이든 조니워커블루든 도서관의 유령들이든 이 단편들을 생각해보니 삶의 다양한 변주가 아니라 모두 결국은 '죽음'과 연결이 되어있다. 소설집의 제목은 '라이프가드'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곧 절망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있어서 또 멈칫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고 있다,인 것일까.
한가지 좀 걸리는 부분은 단편 '조니워커블루'에서 현기는 관광지에서 만난 여자의 제안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데 어둠이 내려앉을때까지 숲에 머물며 고사리를 뽑는다. 초보자라면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기가 힘들 것이고, 고사리꾼이라 하더라도 해가 뜨면 피어버리는 고사리를 꺾기위해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까지 숲에 남아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니, 소설 속 현기는 오히려 처음이라 저녁까지 남아있었던 것일까? 왠지모를 괴리감에 소설의 디테일을 살펴보다가 그만 대충 넘겨버리고 만다. 다리에 시멘트를 굳혀 바다로 던져버린다는 내용의 괴리감과 비슷하달까.
작가는 "누군가의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단편소설을 읽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더 헷갈리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런데 왠지 가만히 되새겨보고 있으려니 삶에 대한 절망의 끝과 희망의 시작은 다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이 또한 이상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