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배우는 쪽을 택하라.

두려움을 받아들일 것.
- 두려워하지마. 항상 배우는 쪽으로 밀어붙이렴.

침묵은 공범이다.

첫 번째 교훈은 ‘언제나 배우는 쪽을 택하라‘였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실패할 용기를 내라는 뜻이다.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시점엔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가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편안함을 택해 오랜 친구, 일상, 습관같이 익숙한 것에 머문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 P37

모험을 할 때는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거라는 것을 믿어야한다. 내 차례가 되면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이다.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기보다는 두려움에 맞서는 게 낫다. 도망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그것을 이길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나는 용기를 이렇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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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12-28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배우고 내 가치관을 밀어부치며 살려고요. 가치관이나 성향이 다르면 존중하고 침묵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구나 하는 걸 깨달었어요!!

chika 2022-12-28 18:59   좋아요 1 | URL
존중과 예의는 갖출수있지만 때로는 옳지않은 가치관에 대해서는 맞서야한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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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평등이라는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유가 사회의 정점인 반면 평등은 사회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여, 평등이란 모든 식물의 키가 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키 큰 풀과 키가 같은 작은떡갈나무로 이루어진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거세하기에 여념이 없는 질투들이 이웃해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민권적 측면에서, 모든 능력이 같은 기회를 부여받고, 정치적으로는 모든 유권자의 투표지가 같은 무게를 가지며, 종교적으로는 모든 양심이 같은 권리를 향유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있는 바, 그것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의무교육입니다. 문맹 상태에서 벗어날 권리, 다른 그 무엇에 앞서그 권리부터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부여되는 초등학교 교육, 모든 사람들에게 권고되는 중등학교 교육,
그것이 바로 법입니다. 동등한 학교로부터 평등한 사회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교육입니다! 빛입니다! 모든 것은 빛에서 오고 또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시민들이여, 우리의 19세기는 위대하지만, 20세기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낡은 역사를 닮은 것이 더 이상 없을것입니다. 정복, 침략, 찬탈, 국가들 간의 무력 대결, 어느 왕의 혼인으로 인한 문명의 중단 사태, 세습적 폭정의 탄생, 국제적 협잡에 의한 민족들의 분열, 왕조의 붕괴에 뒤따르는 나라의 분할, 무한의 다리 위에서 마주친 어둠의 두 숫염소처럼 정면으로 부딪치는 두 종교의 싸움질 등,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따위 것들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기아, 착취, 절망에서 비롯된 매춘, 실업으로 인한 극빈 상태, 처형대, 검, 전투, 사건들의 숲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약탈행위 등을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거의 이렇게 말할 수있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사건은 없을 거야‘ 모두들 행복해질 것입니다. 지구가 자기의 법칙을 따르듯, 인류 또한 자기들의 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영혼과 천체 사이의 조화가 다시 확립될 것입니다. 천체가 빛 주위를 선회하듯, 영혼은 진리의 인력에 이끌려그 둘레를 선회할 것입니다. 벗님들이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각,
제가 그대들에게 말하고 있는 이 순간은 몹시 암울합니다. 하지만이것은 미래를 얻기 위하여 지불하는 대가입니다. 하나의 혁명이란 통행세입니다. 오! 인류는 해방되고 다시 일으켜 세워져 위안받을것입니다! 우리는 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인류에게 그것을 약속하고있습니다. 희생의 꼭대기에서가 아니면, 어디에서 사랑의 고함을 지르겠습니까? 오, 내 형제들이여, 이곳이 바로 생각하는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의 합류 지점입니다. 이 바리케이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포석도, 대들보도, 철물도 아닙니다. 이 바리케이드는 두 무더기로 구성되었는 바, 그것들은 이념의 무더기와 고통의 무더기입니다. 비참함이 이곳에서 이상과 조우합니다. 낮이 이곳에서 밤을 포옹하며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 그대와 함께 죽으리니, 그대 나와 함께 부활하리라!‘ 

42-43


내가 이제 그대와 함께 죽으리니, 그대 나와 함께 부활하리라.

빅또르 위고옹께서 위대한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는 행복할 것이라 했지만.
21세기에도 전쟁은 사라지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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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별거 아니다. 버틸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60, 난주의 바다 앞에서



"얻어맞아 팅팅 부은 얼굴이 미워서 내가 ‘이딴 짓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글이나 열심히 써‘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글쓴다고 인생이 가만히 놔둘 것 같니?‘라면서 흘겨보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잖아. 해도 안 되는 일, 질 게 뻔한 일을 왜 하고 있어?‘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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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35, 이토록 평범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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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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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위화작가는 이 말이 한 독자의 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일병합조약]의 난세 속에서 우리에게도 '원청'의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원청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책을 펼쳤지만 위화작가의 서문을 읽는 순간 이 장편소설이 중국작가 쑤퉁의 우화같은 현실의 비유와는 또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원청의 이야기는 사실 담담히 시작하고 있었다. 


시진에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린샹푸는 집집마다 떠돌며 아이 젖동냥을 다니고 있다. 그는 자신과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버린 아내 샤오메이를 찾아 그녀의 고향인 원청을 찾아헤매다 시진까지 오게 되었다. 샤오메이와 아청 남매를 받아들였지만 결혼 후 집안의 금괴를 훔쳐 달아난 샤오메이가 다시 찾아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정식으로 결혼 해 살게 되었을 때 린샹푸의 고달픈 삶이 끝나고 평범한 행복이 시작되는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이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집을 톈씨형제에게 맡기고 땅을 담보로 삼아 돈을 마련한 후 딸을 데리고 샤오메이의 고향 원청으로 떠나게 되며 린샹푸의 삶과 운명이 펼쳐지게 된다. 


청나라말기부터 중화민국의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린샹푸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다른 나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수는 없지만 이 장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운명과 마주했을 때 후회가 없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 양쪽으로 예전에는 부유했다가 지금은 피폐하게 망가져버린 마을이 보였다. 밭에서도 일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 노약자들만 몇 명 보일 뿐이었다. 벼와 목화,유채꽃이 만발했던 논밭도 잡초만 무성하고, 한때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던 강물 역시 혼탁한 데다 비린내가 진동했다"(401)


"원청이 어디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559)


혼란의 시기에 수탈에 수탈에 또 수탈을 당하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과 망가져버린 마을의 모습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간 모두는 어딘가에 있을 원청을 찾아 유랑과 방황을 하였을 것이다. 


좀 멀리 돌아가는 이야기일지모르겠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은 늘 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인물들의 운명과 관계를 말하고 있지만 세세한 설명이 없어도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들의 선한 영향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역경과 고난이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나의 운명의 길 한가운데로 걸어가며 용기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영웅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의 운명과 삶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의 웃음에 마음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딱히 중요하게 - 아니 결국 마지막에는 중요하게 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말이다) -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톈씨 형제들의 등장에 쓸데없이 눈물이 나왔다. 새벽에 잠이 깨어 잠들지 못하다가 펼쳐든 책을,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에 끝내 덮어버리지 못하고 출근 직전까지 읽으면서 이들의 안타까운 운명들에 슬퍼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함 하는 - 물론 순응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모두 삶의 끝에는 죽음을 맞이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그 삶의 자세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의 모습을 선택할 것인가,는 내게 달려있는 것임을 다시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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