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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장르문학의 거성 듀나,의 작품집이 십주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듀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읽어 본적이 없어서 이 기회에 읽어보고 싶기는 했지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SF라면 특히나 고전이 될지 그저 한물간 촌스러운 이야기로 느껴질지 기대반 걱정반이라 최근의 다른 작품집을 먼저 읽어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중단편 작품집이라면 글이 씌여진 시기를 감안해 듀나의 넘쳐나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시대성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듀나의 작품세계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경계선에서의 모호함과 시스템의 유용함을 이용하려다 오히려 시스템에 장악당하고 구속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고발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해설까지 읽어봤지만 책을 읽은 느낌을 딱히 표현할 수 있지는 않다.
동전마술, 메리 고 라운드,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 같은 작품들은 긴 이야기의 서막같은 느낌으로 끝이 나버리는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아이디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우골, 정원사는 판타지와 스릴러의 서막인 것 같기도 하고. A,B,C.D.E & F는 가상세계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뭔가 미래의 우주속 인류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듯한 소유권이나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같은 작품은 읽고 곱씹어볼수록 섬뜩함이 느껴지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식물인지 동물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브로콜리의 존재는 귀여운 이미지로 시작했는데 그 어떤 작품보다 무섭고 끔찍했다. 북한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통한 이해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그들의 세계는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청수와 진호 둘을 놓고 봤을 때 누가 더 비인간적인지 - 아니, 인간성과 도덕성, 생존을 놓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 생각하면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가볍게 시작했지만 작품들을 읽어나갈수록 생각이 복잡해진다. 현실에 상상력을 더해 가끔은 기괴한 이야기들이 미래와 우주의 가상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 아무리 현실의 반영이라지만 너무 암울하다. 듀나의 작품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책을 다 읽고난 후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듀나 역시 밝은 미래를 그리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밝은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내가 가까운 시기에 '호프펑크'에 속한 글을 쓸 가능성은 비료적 낮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어려운 걸 상상하고 구체화하는 것이야말로 이야기꾼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개정판 작가의 말) 라고 말하는 듀나의 소설은 점점 더 밝은 미래를 그리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