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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평점 :
이 책은 16년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온 박찬휘의 일상 사물에 대한 사유가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디자이너의 이야기인데다 '딴생각'이라고 하니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함이 담겨있는 이야기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내가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이야기를 못읽을 것도 아니기에 호기롭게 책을 펼쳤다. 차례를 살펴보며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쉽게 접하게 되는 사물들에 대한 디자인 이야기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예상외로 저자 자신의 체험이 녹아들어간 일상의 이야기에 사유를 더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디자이너로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학창시절 태극기를 그려오라는 숙제에 모두 태극기의 평면모습을 그려오고 심지어 액자에 담아오기도 했다는데 저자의 아버지는 바람에 휘날리는 게양된 태극기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이런것이 바로 '딴생각'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놀이공원에서 5분타고 놀 범퍼카를 고르는 것도 신중을 기하는 저자의 어린 아들의 취향과 선택을 이야기하고, 자동차 회사에서 지원한 상징 프로젝트에 모두들 거대엔진과 부품들을 자르고 조립하며 난리법석을 치는데 실상 대상을 받은 것은 자그마한 볼트 하나를 전시한 것이라는 내용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할 때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자판기 앞에서 별생각없이 늘 마시던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그 앞에서 늘 어떤 커피를 뽑아마실지 고민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괜한 낭비를 한다고 비웃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찰나의 시간조차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신이 마실 커피 한 잔을 고르는것에도 신중한 친구들의 여유롭고 소중한 선택의 순간들이 이어지며 곧 인생이 된다는 말에는 강하게 공감을 하게 된다.
전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아이러니하게 친환경적이지 못한 전기차배터리의 처리 문제를 언급하고 전기차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만난 스위스인 윌리엄의 이야기를 꺼낸다. 어릴때부터 아버지와 자동차 밑에 들어가 수리를 하며 친밀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제 자신의 아들과 그러한 시간을 가지려고 하니 전기차가 그 시절의 추억을 가져가버렸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아들과 손세차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차 아래에 뭔가를 고칠 수 있는 부분을 억지로 넣어볼까라며 그러면 윌리엄은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상념에 빠진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오히려 유선이어폰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이나 밥을 주며 시곗바늘을 돌려야하는 예전 시계나 터치감을 느낄 수 있는 옛 휴대폰을 더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도 편리함이 오히려 불편함이 될수도 있으며 기술의 발전이 항상 최고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더 중대해 보이는 것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면 사소한 것들의 존재 가치는 쉽게 잊힌다. 너나없이 새로운 것의 화려함을 좇느라 사소한 것의 존재를, 사소한 부속 하나를 조이고 닦는 일의 가치를 쉽게 간과해버린다. 그러다가 기술에 치여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까지 망각하는 지경에 이르면 저먼윙스의 추락과 같은 인류의 비극이 되기도 한다. 놀라운 창의성과 끊임없는 과학의 진보, 위대한 지도자 혹은 헌신적인 발명가만이 세상을 이끄는 빛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고 미미한 것들을 통해 거대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돌아봐야 한다"(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