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보다 먼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군인들과 관리들을 보내,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데만 관심 있는 적들로부터 지켜주러 왔다고 말하게 했다. 그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무역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장사꾼들은 유럽인들에 대해 얘기하며 놀라워했다. 그들의 잔인함과 무자비함에 기가 질려 있었다. 그들은 한푼도 내지 않고 최고의 땅을 가져가고, 이런저런 술수를 부려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만들죠. 그 사람들은 아무리 질기고 냄새가 나도 그냥 아무것이나 먹어요. 그 사람들 식욕은 메뚜기떼처럼 끝도 없고 품위도 없죠.
여기도 세금, 저기도 세금을 매기고, 어기는 자는 감옥에 처넣거나 매질을 하고, 심지어 목매달아 죽여요. 그 사람들이 세우는 첫번째 것은 감옥이고, 다음은 교회고, 다음은 모든 거래를 지켜보고 세금을 매기기 위한 시장 건물이죠. 살 집을 짓기도 전에 그런 것부터 만드는 거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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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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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내게 그리 궁금한 책이 아니었을 것이다. 방황하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 더구나 왠지 낭만적인 느낌이 가득한 제목이라니, 청소년 문학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 책은 다른 책들의 순위에 밀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을 책 목록에만 자리하고 있었을 것 같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물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례식장의 알바가 끝나는 밤의 거리를 말하고 있다. 삶이 끝나고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의 마지막 시간이 끝나면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재호의 시선으로 이어간다. 어릴적에 누나와 목조르기 놀이를 하다가 자신이 누나를 죽게 만들었다고 믿는 재호는 취업에 계속 실패를 하고 장례식장 빈소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그곳에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며 시험준비를 하는 마리가 함께 알바를 하고 있는데 마리는 알바가 끝나면 집으로 가는 지하철이 끊겨 근처 24시 햄버거가게에서 시간을 보낸다. 마리의 사정을 알게 된 재호는 마리와 함께 밤을 지새며 햄버거순례를 다니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의 밤거리를 달리기도 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 지나면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과 누나의 죽음, 취업을 못하는 알바 인생... 이런 것들이 20대 청춘인 재호를 짓누르는 것 같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것들이 재호에게만 있는 특별함이 아니라 재호의 성장과정에 있는 하나의 배경처럼 그려지고 있다. 아니, 이런 느낌은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겠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다 그들 나름대로의 성장통을 겪었으며 취업난에 빠져있고 끊임없는 알바로 탈출구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울의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고 있으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답답함이 있지만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밤의 현재는 아름답기도 하다. 


쓸쓸하게 세상을 마감한 뒷집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에서도 찾아오는 가족도 없이 쓸쓸하고 외로움을 보여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려는 이웃들과 친구로 인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아보이기도 한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 회원들에게 빨간색 양복을 선물한 히로시의 이야기도 그의 부모의 죽음과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지고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례식장에서의 빨간색 양복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까만색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이 언젠가 닥쳐올 죽음보다 내게 남겨진 지금 현재의 삶을 밝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의 표현인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물리적으로 장례식장일것이라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 앞, 봄밤에 볼 수 있는 아름답게 피어난 벚꽃이 보이는 그곳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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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를 떠올렸었고 신화의 또다른 이야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 본 트로이 전쟁 이야기라는 가벼운 기대감이 있었다. 아, 그런데 책을 펼치면서 바로 나의 가벼움이 부끄러워졌다. 이 느낌을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위대한 아킬레우스. 영민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아킬레우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우리는 그중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도살자'라니. 첫문장부터 심상치않게 다가온 이 소설은 소설임을 알고 있는데도 자꾸만 역사의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신화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과 달리 영웅 아킬레우스를 도살자라고 부르는 그녀, 브리세이스의 이야기는 전쟁을 바라보는 현실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한 국가의 왕비였지만 패배한 나라의 남자들은 도살되고 여자들은 노예가 될 뿐이었다. 전쟁은 그런 것일뿐이었다...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지만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전리품처럼 아킬레우스의 소유가 된 브리세이스는 그의 노예가 되었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보는 전장의 모습은 야만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형제, 남편과 아이들을 죽인 적군에게 노예로 끌려간 여인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이들의 시중을 들고 성적인 노리개로 전락하게 될 뿐인 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만약, 만약의 경우 트로이인들이 이긴다면 그들이 오래전에 잃은 여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자신을 환대해 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를 적의 노예로 보고, 자기들 노예로 삼아 또 맘대로 하지 않을까?"(185)

슬프게도... 그 옛날 병자호란때 이 땅의 딸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은 커녕 오히려 온갖 고난을 겪고난 후 고향을 찾은 여인들에게 환향녀라며 손가락질을 했고 그 말이 욕으로 전해졌다는 화냥녀의 어원이 떠올랐고, 오랫동안 고통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브리세이스의 시선만이 아니라 아킬레우스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따라가기 위한 것의 의미이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전쟁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브리세이스의 일상에 대한 묘사와 대비되며 더 강렬하게 그 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닞만, 처음에, 나는 아킬레우스의 서사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했고,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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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초저녁 어스름한 거리에서 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빛 속에서, 궤양이 생기고 앙상한 그들의 몸이 보였다. 털은 더러웠다. 달빛 속에서 그렇게 잔인해 보였던 눈은 낮에 보니 진물이 흐르고 희끄무레한 눈곱이 끼어 있었다. 파리떼가 그들 몸에 난 붉은 상처 주변을 윙윙거렸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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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난과 물가에 대해 불평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 자신들의 거짓말이나 잔인함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46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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