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는 물건처럼 취급되는 사람이 아니다. 노예는 물건이다. 타른이들이 그렇게 여기듯, 노예 스스로도 자신을 물건으로 취급한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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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나가 말하길, 잔지바르의 바닷가에 살던 어린 시절, 11월이나12월 즈음이 되면 사우디아라비아, 페르시아만, 인도, 심지어 태국에서온 커다란 배들 수십 척이 부두에 모여 있는 광경을 자기 방에서도 볼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는 자신이 더 큰 세상의 일부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 모두가 문화적·역사적 공동체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고 말하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바닷가에서 속 지배적인 내러티브는 바로 무심이라고 밝힌다. 무심은 소설을 탄생시킨 대전제 조건인 것이다.
물론 이런 환경이 마냥 낭만과 신비로 가득했을 리는 없다. 구르나는 잔지바르 사람들에게 무심 교역이 어떤 의미였는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건과 신과 자신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신들의 이야기와 노래와 기도를 함께 들고 왔고, 그 지식을 흘낏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들인 노력의 정수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굶주림과 탐욕, 자신들의 환상과 거짓말과 증오를 가져와서 그것들 중 일부는 평생 그곳에 내버려두있고, 자신들이 사들이고 거래하거나 앗아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갔는데,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거나 납치해서 고국에 노예로 팔아먹었다˝
399 황유찬 역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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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후 이어지는 몇 년의 세월에 대해 말하지 않는 법을 스스로 익혔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세월을 조금이라도 잊은 건 아닙니다. 그 세월은 몸의 언어로 쓰였고, 그것은 내가 말로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에요. 때로 나는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사진을 보는데, 그러면 그들의 비참함과 아픔의 이미지가 내 몸안에 가득 울려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이미지가 내게 그억압의 기억을 억누르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왜냐하면 어쨌든 나는 이곳에 건강히 잘 있고, 그들 중 몇몇이 어디 있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기 때문이죠. 바로 얼마 전에 나는 그런 사진을 한 장 보았는데, 오래된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 속에는 세 명의 유대인이 넙죽 엎드려 있었습니다-한 명은 짙은 정장과 타이 차림이었고, 다른 두 명은 셔츠 바람이었는데, 한 명은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죠. 그들은 바닥솔을 쥐고 빈의 인도를 쓸고 있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그들 아주 가까이에, 그들의
‘뒤와 앞의 인도에 빈 사람들이 무리 지어 빼곡히 서서 히죽거리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모든 나잇대의 사람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과 아이들이 누구는 자전거에 기대 있고 다른 누구는 쇼핑백을 든 채 점잖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하는 동안 그 세 사람은 그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켄크로이츠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세 유대인의 굴욕에 웃음을 터뜨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어요. 그 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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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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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에이든이 가톨릭계 사립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하고 중학교 친구들과의 마지막 보이스카웃 캠프를 떠나 그곳에서의 체험과 성장을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곧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질 에이든의 고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 - 아시아계 혼혈이라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거친 운동보다는 손을 움직이거나 걸그룹댄스를 더 좋아하거나 목소리마저 일반적인 남자애같지 않은 그런 모습때문에 고민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놀려대는 아이들에게서 에이든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며 에이든을 좋아하고 그와 친밀함을  맺는 친구도 있다. 

어떤 면에서 에이든을 힘들게 하는 건 그를 놀려대는 친구들이 아니라 오히려 에이든에게 친절하고 그를 감싸주는 마음 따듯한 캠핑메이트 일라이어스다. 자꾸만 일라이어스에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생겨나고 그 감정을 억누르던 에이든은 결국 참지못하고 친구의 뺨에 뽀뽀를 해 버리고 만다. 그 이후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고, 늘 자신을 응원해주던 펜팔친구 바이올렛마저 에이든의 정체성을 드러낸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하지 않는데......


가톨릭교리의 엄격함으로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은 에이든이 머리로 이해하는 성정체성과 성장하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성정체성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스러움과 불안감이 잘 묘사되어 있고 친구들과는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절친 일라이어스마저 잃게 되었다는 생각에 결국 파멸을 선택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빨려들어갈듯이 책장을 넘겼다. 

'플레이머'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것은 규범적이라거나 보수적인 전통에 대한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 이 이야기가 실제 저자의 체험인것처럼 - 에이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든 또래의 아이들, 부모, 선생님들은 에이든의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만약에 내가 에이든과 같은 아이를 만난다면 말투도 걸음걸이도 행동하는 것 모두가 하나의 일률적인 규범 아래 똑같이 평범해야 인생이 편해진다(185)고 말하는 어른일까...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야 '플레이머'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찾아 볼 생각을 했다. 이중의 의미로 쓰여졌을까?

흑백으로 이어지는 그래픽 노블인 플레이머는 타오르는 불꽃의 색만을 붉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책 표지에 있는 에이든의 모습이 단순히 스카웃의 인사인 줄 알았는데 세 손가락 인사이다. 불복종과 저항의 의지. 헝거게임에서 유래 된 것 같은데 미얀마인들의 저항의 모습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세 손가락 인사.

이런 것들이 많은 상징과 의미를 짧은 글과 그림에 담아내는 그래픽노블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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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3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에 진짜 좋은 책들이 많은거 같은데 저는 아직 제대로 본게 얼마 없네요. 이 책도 기억해둬야겠습니다.

chika 2022-05-30 22:09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페르세폴리스,라는 그래픽노블도 사두고는 아직 읽지 않았네요. 좋은 책들이 정말 많아요 ^^

chika 2022-05-30 22:09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페르세폴리스,라는 그래픽노블도 사두고는 아직 읽지 않았네요. 좋은 책들이 정말 많아요 ^^
 

˝정착민이셨나요?˝
그녀가 움찔했다. ˝그래, 정착민이었지.˝
˝왜 케냐였죠?˝
그녀는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었는데, 그러고서 다시 말을 시작할 때 보니 집중을 하느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질문을 그런식으로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왜 다른 곳이 아니라 케냐냐고 물으려던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만일 그런 뜻이었다면, 케냐든 다른 어디든 상관없었다고 말해야 할 테니까. 우리는 유럽인이었어. 이세상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지. 네 말은 왜 굳이 가서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것을 빼앗았느냐는 그리고 왜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부르며 이중성과 무력을 앞세워 번영을 누렸느냐는 뜻이겠지. 심지어 우리에게 권리가 없던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못 쓰게 만들면서까지 말이야.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니? 음,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권리가, 검은 피부와 곱슬곱슬한 머리를 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던 장소들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를 살았으니까. 그것이 바로 식민주의의 의미였고, 우리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게 해준 방법들을 우리가 모르는 척하게끔 회유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어. 215







 나는 그들의 자신감에 놀랐고, 내가본 것이 엘레케가 자신의 부모님이 케냐에서 보였다는 자기 연민의 오만함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다른 무엇, 그러니까 그들이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긴 신념의 가치에 대한 느긋한 확신 같은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식민주의의 추악함을 겪고도, 나치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비인간적 행위를 겪고도, GDR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기인한 수모를겪고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던 신념에 대한 그 지속적인 열정을 지금의나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고, 그들의 태도를 드레스덴의 그 아파트의 축소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매력적인 기이함으로만 여겼다. "삶은 우리를 그렇게 끌고 다니지‘
한번은 엘레케가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끌고 가다가, 우리를 뒤집어서는 또 저렇게 끌고 가지."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합리적인 무언가에 매달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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