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엔드 오브 맨,은 일명 남성대역병으로 불리는 감염병에 의해 남성의 90%가 사망하게 되는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기시작할 때 지금 우리 시대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대한 은유적인 이야기인가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있다. 그런데 금세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절대 가볍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가상의 미래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오랜시간 천천히 읽을수밖에 없었다.
처음의 시작은 예상이 되듯 대수롭지 않을 것 같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심각한 질병에 의한 사망사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그렇듯 강력한 전염병의 예고를 감지한 여의사 어맨더는 정신병자로 치부되어버리고 그 사이 전염병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수많은 남성이 죽어가게 된다.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격리되어 감염되지 않기만을 바랄수밖에 없다. 알수없는 이유로 면역이 된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이미 세상은 많은 것이 멈춰버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소설은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인물들이 팬데믹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아는 것보다는 그 흐름속에서 각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각자의 역할과 삶의 변화,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물음과 답을 던져주고 있는데 지금의 우리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지 온갖 생각과 감정이 밀려와 이 소설을 그저 한편의 소설로만 읽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짧은 소견보다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잠시 이 세상의 남성 90%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장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까? 인류의 생존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만 뒤이어 그럼에도 인류는 생존을 이어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그저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이 소설은 몇몇의 등장인물을 통해 구체적인 이야기로 파고들어가고 있다.
전염병이 발생하고 패닉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들고, 그럼에도 인류는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백신이 개발되며 새로운 세계의 환경에 적응해나갈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은 차츰 과거의 역사로 사라져갈 것이다.
이 역사속에 구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된다.
정말 놀랍게도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세상에서 휴대폰의 크기가 달라진다거나 여성운전자들에게 맞는 차량의 개발이나 여성들의 질병 데이터 분석으로 여성질병의 치료가 가속화되고 아이 없이 여성끼리의 결혼이 자연스럽게 된다는 이야기들을 통해 현시대의 차별받는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이 치명적인 사망률을 높이고 있다가 백신이 개발되고 세계는 조금씩 코로나 이전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기때문인지 내 시선을 그런곳에 가 박히고 있다.
며칠 전 외국에 살고 있는 조카가 4년만에 귀국했다가 돌아갔다. 이 책의 기록자 캐서린의 기록에서처럼 태어나 4년만에 처음보는 할머니와 손주의 모습이 멀리있지 않은 것이다. -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는 이런 것을 어떻게 예지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지인들이 그녀를 '카산드라'라 불렀다는 말에 그저 농담인냥 웃어버리기에는 그녀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뭉뚱그려 이야기하기에는 좀 아쉬우니 내 마음에 남는 문장 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어맨더와의 인터뷰 질문중 슬픔에는 어떻게 대처하냐는 대답에 '대처하지 않습니다'(189)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 개훈련사 강형욱님도 반려견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물음에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울컥했는데 모든 슬픔이 극복하거나 대처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자체가 왜 그리 위안이 되는지.
"나쁜 일과 좋은 일은 공존하는 법"이니 "우리는 열심히 좋은 것을 찾아내야"(350) 한다는 것은 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팬데믹을 겪으며 저마다의 힘듦과 고통과 슬픔이 있었을 것이고 면역체계를 가진 누군가처럼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과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사람이 있는지...
훗날 우리의 후손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데?" 라고 묻는다면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기록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영영 되찾을 수 없고, 되찾을 수 없는 것을 비통해하겠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애도하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찾아야 한다. ... 역병의 공포는 우리 대부분을 혼자라고 느끼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가장 흔히 겪은 일들 - 과부의 삶, 자녀, 부모, 형제의 죽음- 은 가히 보편적이다"(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