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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백설희.홍수민 지음 / 들녘 / 2022년 4월
평점 :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알지못하더라도 귀에 익숙한 문장이다. 세일러문이 환골탈태까지는 아니지만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의 몸으로 바뀌며 외치던 그 문장때문에 내 기억속의 세일러문은 정의의 수호신일뿐이었다. 사실 지금도 검색을 해보고서야 '사랑과 정의'라는 걸 깨달은 것이지 내 기억속 세일러문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무찌르는 정의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법 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라고 묻고 있다. 내 얄팍한 기억때문이었을까. 이 책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물음이다.
이 책은 디즈니의 프린세스 브랜드에서 시작해 게임으로까지 확장된 공주 역할, 소녀로서의 여성성이 마케팅으로 이용되며 사회적으로 규정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학 속 소녀에 대한 이야기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린게이블스의 앤이 빨강머리 앤으로 한정짓거나 작은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을 단순한 소녀문학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으며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의 역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들 중 한명이라기보다 이야기가 이어져가며 등장인물들과의 로맨스에 치중되는 것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제인 오스틴의 여러 소설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누군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그저 '로맨스 소설일뿐'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정말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연애소설이 맞는거 같다 싶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문학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여성의 로맨스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책 읽어주는 서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담겨있는 심리학적인 묘사와 남성중심의 문학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문학의 등장이라며 제인 오스틴의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나 역시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사회적으로 교육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여자아이의 놀이와 상관없이 총싸움의 적이 되어야했고 바둑, 장기 등을 배우고 옷조차 3년터울인 오빠의 옷을 물려받아입어서 여성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환경, 더구나 '여자가' 라는 말을 집안에서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내가 사회화되면서 바뀌어간것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성아이돌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언급하는 글을 읽으며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들에게 동시에 성적인 이미지를 덮어 소비하려고 하는 아이러니함 속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소녀들뿐이지 않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설렁설렁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소녀문화의 이후 행보를 응원하고 싶은 어른이라면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합니다. 소녀문화가 안전하려면 성인들의 문화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197) 라는 저자의 말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새삼스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