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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매거진 Next Magazine Vol.0 Door - 창간호
디앤디프라퍼티매니지먼트 편집부 지음 / ㈜디앤디프라퍼티매니지먼트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우리집 문이 잠겨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늘 빈집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나였으나 어릴 적 열쇠라는 걸 들고다녔던 적도, 어딘가에 넣어 둔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었던 기억도 없다. 다들 아는 이웃들이고 예로부터 도둑이 없다고 소문이 난 내 고향에서는 80년대까지만해도 길을 지나던 사람이 대문 열린 집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대문이 잠기기 시작했을까. 사실 나도 대문단속에 민감해지기 시작한 것은 새옷을 빨고 널어둔 날 옷을 통으로 잃어버리고난 후부터이다. 형제많은 집의 막내인 내게 새 옷은 흔치않은 일이었는데.....
'문'이라고 하면 경계와 구분이 떠오르지만 또한 동시에 연결이 떠오르기도 한다.
라이프스타일매거진,이라 설명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오는 이 책은 넥스트 매거진의 창간호이며 건축, 인테리어, 공간, 가구...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생활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냥 보여지는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문'에 담겨있는 인문학적 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현재, 과거, 미래를 조명하며 '문'이 갖는 의미에 대해 여러 건축가들의 글을 담기도 했으며 영화속 문의 상징과 문의 문맥, 실재하는 문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적인 건축과 인테리어의 변화에 따른 문의 모습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는데 그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펼쳐보게 되기도 한다.
"조그마한 구멍은 빛과 바람을 느끼게 하고, 낮과 밤을 알 수 있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살린다. 구멍 사이로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빛줄기는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안식이 되고, 구멍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과 달은 내 벗이 된다. 그러니까 창과 문은 '생명의 구멍'이고, 세상과 생명, 자연과 우주를 연결하는 지점이다"(116)
'빛과 바람이 머무는 문'의 한옥 창호에 대한 기사와 김순기 소목장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함축적인 '문'에 대한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오래전 이탈리아의 소도시에 갔을 때 광장을 중심으로 건재해있는 옛집들을 보고 있었는데 일행중 누군가가 창문을 유심히 보라고 하며 벽돌의 색이 좀 달라보이지 않냐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옛도시의 집들은 돌로 쌓아올려서 창문을 자그맣게 만들어놨는데 보수가 필요할 때 그 부분의 돌만 빼놓고 다시 쌓아올려야해서 보수도 쉽지 않고 어쩔수없이 보수를 해야할 때는 똑같은 돌로 쌓을수가 없어서 새롭게 보수한 문이나 창문은 벽돌과 색이 다를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오래전이라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문'이라는 것이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차단이 되기도 하지만 막힌 공간인 집을 외부와 연결시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그때 처음 했던 것 같다.
문의 실질적인 모습은 계속 변화해나가겠지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아 늘 겨울이었던 거인의 정원을 경계짓는 문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로우테크의 문'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타임슬립을 위한 시공간을 드나드는 문은 현존하지 않는다해도 아쉽지 않지만 소통을 위해 여는 마음의 문은 늘 쉽게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 "주변을 이해하고 그 장소에 가장 어울리는 문이 놀랄만한 기술이 적용된 문보다 훨씬 우리 도시의 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드리라는 생각이 든다"(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