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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오늘도 나는 책 제목을 헷갈려한다. 꿀벌과 집, 벌꿀과 집? 설마 벌집과 꿀....
아무래도 표제작은 벌집과 꿀을 읽으며 받은 느낌,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집, 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어서 자꾸만 집을 독립적으로 놓고 싶은가보다. 내 마음은.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릴적부터 같은 동네에서만 이사를 다녔었고 중학생 이후로는 그마저도 없어서 붙박이처럼 좁은 반경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내가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호기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읽고 있었던 책이 '오픈 엑시트'인데 부의 불평등한 상황에서의 이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해서 조금 더 관심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뭔가 내가 '디아스포라'라고 떠올릴때의 그 느낌과 소설의 전개가 조금은 달라서 단편을 읽어갈수록 이게 뭐지? 하는 느낌에서 조금씩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과 틀이 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출소를 하고 정착을 하려는 '보선'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출소자들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전개라 솔직히 첫 단편인 '보선'을 읽을 때까지는 흥미로움이 강했다.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보에 따라 미국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정말 '이건 뭐지?'라는 느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소설은 서사와 설명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파견된 러시아군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곧바로 일제강점기와 쫓기고 쫓겨 사람이 살기 힘들다는 곳으로 강제이주된 우리 선조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적 사건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 그 옛날 그곳에서도 가정폭력은 존재했고, 자치권으로 치부되는 일들은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전개된다. 다른 많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표제작인 '벌집과 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역참에서,를 읽으면서는 그 당시 '유미'라는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에만 빠져있었는데, 침략전쟁으로 살인과 수탈을 일삼던 왜군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장에서 엄마를 잃은 아기를 살려서 일본으로 데려가 키운 후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는 스토리가 가능한 것인가 싶었지만 그 이야기 안에 담겨있는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니 마지막 순간에 다시 멈칫하게 된다.
"우린 이 생을 살다가 또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거야. 네 생각도 그렇지 않니? 너는 이 생을 살았지만 내일이면 금방 또 다른 누군가가 돼서 또 다른 누군가와 살게 될 거잖아. 그런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는 거야. 그걸 받아들이고 더 강해져야 돼"(97)
어느 단편 하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로 연결이 되는 느낌을 갖는다. 굳이 디아스포라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왠지 변방에서 변방으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내게 익숙한 시공간을 떠나 그 어딘가에 정착을 시도한다는 것은 내 삶이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되다고, 더 강해질 수 있음을 응원하고 있는 것 같기도하다. 단적으로 이것 하나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메타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