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반응을 확인하려고 반사적으로 그를 흘끗 보았고그제야 그의 몸통 한쪽을 따라 내려간 끈이 옆구리의 불룩한가죽 총집에 연결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총을 발견한 걸 본 그가 미소를 흘렸다. 「빨리 벽을 세워서 저 짐승들을 차단해야지.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순간적인 것이었지만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총, 본능적인 위협과 그로 인한 원초적 공포,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근본적 충동, 그와 나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모든 것이 합쳐져 내가 일찍이 체험해 본 적이 없는 감정으로 불타올랐다.
나는 그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무력하다는 즉각적인인식에 따른 좌절감은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갉아먹고 있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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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세계사 2 - 전쟁과 혁명의 시대 선명한 세계사 2
댄 존스.마리나 아마랄 지음, 김지혜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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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선명한' 세계사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선명함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흑백의 사진을 최대한 실제 색을 입혀 컬러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역사의 한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의외인 사진들도 많아서 역시 세계사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있음을 새삼 느껴보게 된다. 조금 더 아쉬운 것은 저자 자신이 '사진의 출처는 다양하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본문의 내용에서 몇몇 사진에 대해 사진작가와 출처를 언급하는 것 외에 대부분 출처는 밝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어있듯 두번의 세계대전과 민족전쟁, 이념의 대립과 혁명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많다. 타이타닉이나 미국의 금주령, 쿠클럭스클랜 같은 사진도 있어서 근대의 사회, 문화, 정치적인 이야기도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많은 이야기를 담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다. 세계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들 중에 왜 이 사진 한 장을 골랐을까 싶은 사진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대해 지극히 작가의 관점에 의해 냉전시대의 최초 대리전이라고만 언급되고 있는 것과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웃는 사진 설명에서 체 게바라는 혁명에 집착하여 볼리비아에서 반란을 조장하다 처형당했으며 카스트로는 이후에도 쿠바를 이끌었다는 표현은 왠지 '진정한 해방가는 민중'이라고 말한 체 게바라의 인용글과는 좀 상반되는 느낌이 들어 역사를 보는 관점과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을 골라내는 시각 역시 주관적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에 대해 잘 몰라서 색을 입힌 사진의 가치 역시 못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몇몇 사진은 처참한 모습때문에 오히려 흑백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하고, 시신의 모습은 그렇다 하지만 솔직히 '해방'이라고 붙어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진은 도저히 현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수용소에서의 궁핍하고 고된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좀 충격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설렁설렁 거리며 사진을 보고 시대적 상황과 역사를 떠올려보기는 했지만 선명한 사진과는 달리 세게사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선명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게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세계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재와 인종차별, 해방과 혁명, 민족과 종교를 빙자한 전쟁과 학살이 많았던 - 물론 지금도 역시 그 어리석은 전쟁이 되풀이 되고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에 등장하고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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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아트북
제스 해럴드 지음, 김민성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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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티비쇼에 나온 최민식 배우가 오래 전 영화 올드보이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중에 영화에 등장했던 나이프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영화를 볼 때 그 배경장면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때 사용되었던 나이프가 최민식 배우의 요청으로 보통의 나이프가 아닌 디자인과 제작이 좀 까다로운 나이프를 사용하여 제작비가 증가했다고. 제작자의 마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영화를 볼 때 일반대중의 느낌은 또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의 아트북이 나오면, 특히 좋아하는 영화의 아트북이라면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설명만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탄생이라거나 갖가지 소품들, 배경의 변화까지 많은 세부적인 것들을 알 수 있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분석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최종 장면에 담겨있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많은 노고를 느낄수도 있어서 영화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은 마블팬이 아니더라도 다들 아는 캐릭터이니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예전에 비해 조금씩 세련되고 화려한 기술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기본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가 언제나 시도해 보는 것은 원작 코믹스의 모습에 중점을 둬 보는 겁니다"(55)라는 선임 콘셉트 모델러 애덤 로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버전에서도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언제나 원작 코믹스라는 것이다. 

하지만 코믹스를 읽던 그 옛날의 어느 누가 이런 피터 파커의 등장을 예상했을까 싶다. 


"전작들에서 각자 상징적 개성을 보여 준 스파이더맨 3명을 충분히 유기적이고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한데 모아 멋진 활약을 하게 만든다니, 그리고 이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질만한 스토리까지 안겨 준다니,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죠"(184"


사실 영화와 아트북에 대해 뭐 별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진중하게 한 장 한 장 넘겨봐도 좋고, 좋아하는 장면, 궁금한 캐릭터 사진을 더 유심히 보면서 설렁설렁 넘겨봐도 좋고, 영화제작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읽어도 좋은 것 같다. 특히나 고독한 스파이더맨의 활약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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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밑줄 긋는 시사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
김현정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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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방송작가 김현정의 글쓰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엮은 에세이이다. 이렇게 쓰고보니 이 책의 설명에 대한 결이 약간 어긋나있는 느낌이 든다.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에피소드 중심이 아니라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주고 있는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사실 방송작가의 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그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방송작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수는 없을 것 같다. 대본, 섭외, 시나리오, 기타등등 많은 것들을 구성하고 다듬어나가는 작업을 하는, 생각보다 더 광범위하고 방송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업을 위한 글쓰기,라는 관점이 더 컸었는데 딱히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생업을 이어간다는 쪽이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냥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지금에 이르기까지 - 아니,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날마다 새롭게 시도하고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글쓰기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실력이 늘어나거나 잘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끈기와 성실함으로 날마다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선배 작가님들의 이야기에서 또 감동과 그들의 변함없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으며 앵커브리핑에서의 에피소드는 당시 직접 봤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자꾸만 손석희님의 그 어투가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고, 자신의 글에 대한 손석희님의 짤막한 반응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읽으며 웃어대다가 잠시 당시 작가가 느꼈을 그 마음을 떠올리니 뭔가 애잔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정말 맛나게 글을 쓴다고 느꼈는데 그 기나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물일 것이라 생각하니 그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 책에서의 강조점은 '오늘도' 씁니다,일 것이고 글을 쓰는 자세와 배우는 자세, 나도 모르게 표절을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검열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넘기는 것 없이 철저히 확인을 해야하는 것이 작가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님의 6강이라는 표현은 정말 본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 같은데, 그런 기본적인 실수들을 통해 더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을 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은 글쓰기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에서도 배울 부분인 것 같다. 


훌륭한 성과물은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고, 하나하나 새겨가며 읽을 이야기들이지만 그냥 그 하나의 에피소드로 감동을 느꼈던 글이 있다. 수많은 시간 생각을 하고 좋은 표현을 기록해두고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글이 아닐까 싶다. 다시 읽어도 뭔가 뭉클해지는 글이다. 


마음을 다한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무언가 근사한 방법이 없을까... 한참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떠올렸다. <반짝이는 박수소리> 표현이 아름다워 저장해둔 문장이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런 표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청각장애인들은 박수 대신 두 팔을 이렇게 반짝반짝 흔들며 축하와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은 제2회 한국수어의 날입니다. 눈과 손으로 전하는 우리만의 언어를 기념하는 날인데요.
(수어와 함께 멘트) 서로 조금씩 다른 모든 사람이 수어로 다 같이 반짝이는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 9시 뉴스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KBS <뉴스9>, 2022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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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드가 차를 살펴보는 동안, 나는 그에게 질문을 하고싶은 열망에 차서 서툰 펀자브어로 그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지 않을 정중한 단어들을 선택하여 문장을 구성했다. 이윽고질문의 형태를 정했을 때 그가 내 옆으로 돌아왔는데, 차에새로 긁힌 자국이 없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당신의아들 오사마도 나중에 위대한 전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내가 물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게, 그 질문을 들은 그는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대답 또한 나의 예상과는 달리간단명료했다.
「그 아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면, 인샬라, 그 아이가 제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면 ㅡ 아버지로서 그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 P144

나는 전화를 끊은 뒤 정적 속에서 차를 몰았다. 바퀴가 아스팔트 위에서 궁시렁거렸다. 바람이 살짝 열린 창틈으로 씨근거렸다. 실내에서도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정제된 음울한소리, 커져 가는 진실의 조용한 우르릉거림. 뉴욕에 닿으려면 한시간은 더 달려야 했고, 그때쯤엔 결심이 설 터였다. 미국인이라는 기분을 느끼는 척하는걸 그만두기로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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