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윤구병, 이해인 외 지음 / 화니북스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일까, 너를 위한 기도일까. 아니 우리를 위한 기도인것인가?

얼핏 낯익은 분들의 에세이모음집이다. 더구나 몇몇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꽤나 유명한 분들이다. 책을 펴면서 그냥 흔한 얘기들이 적혀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역시 함께살기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의 말은 아주 큰 설득력이 있다.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느껴져 좋은 글들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에 걸맞게 함께살기뿐만 아니라 절망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감동에 젖어들게 하는 글이 담겨 있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풍에 걸린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모시고 갔다가 그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만 5년동안 입원 의뢰를 해 왔고, 단 한차례도 거절한 적이 없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때 거절당한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신교에는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이 없어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에 환자들을 모셔가는 일을 사명처럼 알고 묵묵히 해오던 터였다.
나는 병들고 가난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회봉사단체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교파는 다르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자신들이 못 하는 일을 해주거나,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다면서 서로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맘으로 하는 듯 했는데, 그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사실 초창기부터 나느 무척 마음이 아팠다. 격려해주거나 환영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성당에 찾아가서 별별 소리 다 들으며 겨우 도장을 받아서 어려운 환자를 가톨릭 무료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는 날이면 자존심은 있는대로 구겨진 채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곤에 지치곤 했다. 그래도 마땅히 해야 할일을 할 뿐이라고 여겼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그분의 마음으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그분의 눈으로,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내면의 아픔마저도 끌어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 하나 없는 개신교의 현실에 대해 나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앓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처에 병원에서 할머니를 거절하며 던진 말에 나는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목사님, 이 할머니를 우리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부인이셨다면서요? 개신교는 뭘 어쩌자는 겁니까? 평생 목회하다가 돌아가신 목사님 부인을 이렇게 가톨릭 무료병원에 보내도 되는겁니까? 천주교는 돈이 많아서 이 병원 저 병원 운영하는 줄 압니까? 도대체 개신교는 돈만 생기면 예배당 짓고, 예배당 짓고나면 교육관짓고, 돈만 생기면 건물 짓고 땅 사들이기 바쁘니, 언제 이분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세울겁니까? 다일공동체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업고 오시면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정신들 차리시고 무료병원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동네마다 골목마다 수십억, 수백억씩 돈 들여 지은 예배당은 그렇게 많으면서 어쩌자고 무료병원은 하나도 없는 겁니까?"
쌀쌀하게 문을 닫고 돌아선 담당 수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병원복도에 풀썩 주저앉아버린 그때 일은 지금도 때때로 클로즈업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한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최일도,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중에서

============================================================================

최일도 목사님의 그 무지막지하게 큰 무료병원 개원소식을 들은 것이 언제였나... 그당시 우리성당 신부님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개신교목사라는 것을 안타까워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매정한 수녀님의 말 한마디가 지금의 엄청난 병원을 존재하게 했구나, 생각도 들고.
수녀님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었어도, 결국은 할머니를 받아줬어야 한다. 어찌보면 세속에 대한 많은 것을 끊는 것이 정확해야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매몰찰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일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식탁에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앞쪽 식탁의 백인 여자가 다가오더니 실례한다고 말하며 자기의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기 아들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인데, 자기 부부는 아이가 출신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 식당에 온다는 것이었다. 먼저 음식 맛을 알아야만 다른 전통문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자기들이 젓가락질을 가르쳐도 아이가 잘 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자기들의 젓가락질 방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나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하여 그 부부와 까아만 눈동자의 황인종 아이 앞에서 진지하게 젓가락질 시범 공연을 해보였다. 아이의 젓가락질이 이제는 능숙해졌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 깊이 남은 것은 나의 시범을 본 다음 그 백인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나의 젓가락질을 자세히 본 다음 그 어머니는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라고 "젓가락은 두개로 이루어져 있지? 그러니까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서는 꼭 두개의 젓가락이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알았지?"라고 요약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무언가를 배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더불어, 사랑이라는 것의 성실성에 대해 오히려 내가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녀의 말처럼 젓가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개가 한 쌍이고, 그것이 평형을 이루어야 우리가 음식을 집어서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또 두 개가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입 속으로는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다. 인생이란 것도 젓가락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일찌기 불가에서 말한 것처럼 생은 시와 더불어 이루어져 있고 희망은 절망과 더불어서, 기쁨은 슬픔과 더불어서, 성공은 실패와 더불어서, 늙음은 젊음과 더불어서 있는 것이다. 크게본다면 그 둘이 크게 다를 것도 없고, 또 싫다고 해서 둘 중하나를 쫓아버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젓가락질을 할 때처럼 그 둘 사이의 심리적 평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집고 싶어하는 행복이라는 양식을 집어 마음의 속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말이 생각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도 아무도 당신을 낙오자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김승희, 젓가락과 사랑 중에서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hinPei 2004-10-2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ka님, 내가 이 글을 읽어 용기를 얻었어요. 감사해요.

chika 2004-10-2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애써 글 올린 보람이 있네요. 같이 힘내자구요. 홧팅~!! ^^

숨은아이 2004-10-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빵~!
 

흰눈썹황금새와 아카시아 나무


삐리 보로고로 삐리 뽀로 삐리- 삐리삐이-.

흰눈썹황금새의 노래가 숲으로 퍼져나가자 어둡던 숲이 환히 밝아왔습니다. 숲속의 모든 나무들도 지그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흰눈썹황금새야, 넌 정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구나. 내 품에 둥지를 틀지 않겠니?”흰눈썹황금새에 반한 아카시아 나무가 수줍게 말했습니다.

“아뇨. 전 아름다운 나무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가시는 너무 날카롭군요. 둥지를 틀다가 찔릴까 두려워요.”

“이 가시는 남을 찌르려는 게 아니라 무서운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인걸. 난 너를 아주 포근히 품에 품어줄 수 있어.”

“오, 죄송해요. 전 차라리 가시가 없는 약한 나무가 좋겠는걸요.”

흰눈썹황금새의 말에 아카시아 나무는 눈물이 날 정도로 섭섭했지만 생전 처음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허겁지겁 자라기만 바빠 볼품없이 조급한 이파리, 꽃 한 송이 필 것 같지 않은 거친 줄기와 가냘픈 산새 한 마리 발 들여놓을 틈도 없이 촘촘히 박힌 의심 많은 가시 가지들…….

“안녕, 겨울이 오기 전에 전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가 봐야겠어요.”

아카시아나무는 흰눈썹황금새가 떠나버리자 밤새도록 우헝우헝 울었습니다. 지나가던 돌개바람이 깜짝 놀라 물었을 때도 떠나버린 새 이야기를 들려주며 종일 울먹거렸습니다.

“아카시아야, 아직 늦지 않았어. 흰눈썹황금새가 정말 귀한 마음을 가졌다면 눈앞의 겉모습만 따지진 않을 거야. 보이는 것은 잠깐이란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만이 영원할 뿐이야. 이제부터 네가 아름다운 나무가 되면 되잖니? 울지만 말고 향기로운 나무가 되어보렴.”

그때부터 아카시아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마구 뻗고 싶은 뿌릴 애써 움츠려 다른 나무들이 더 많은 뿌리를 내리도록 자릴 비켜 주고, 날카로운 가시가 불쑥 불쑥 치밀고 올라올 때마다 흰눈썹황금새를 생각하며 참고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카시아의 몸은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계절이 바뀌고 아카시아는 조금씩 새로운 모습이 되어갔습니다. 가을에는 금빛 이파를 털어 약한 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되기도 하고, 가난한 나무꾼에게 제 몸을 삭힌 가지를 흘려주며,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여쁜 새가 찾아와 둥지를 청해도 아카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외로움과 그리움에 시름시름 앓게 되었습니다.

아카시아가 가슴을 앓는 동안 해님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나무들을 일일이 어루만져 꽃눈을 틔워 주었습니다. 오월의 꽃들이 다투어 꽃불을 터뜨리기 시작하던 어느 날, 며칠 동안 신열로 앓던 아카시아의 가지에도 봉긋봉긋 열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저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아카시아의 눈물이 핀 것입니다. 꽃이 핀 아카시아 나무! 그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달콤한 꿀 냄새에 몰려든 벌들은 달콤한 꿀에 모두 취했고 아카시아는 아낌없이 모두에게 꿀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한편 흰눈썹황금새는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 강남 나라로 날아갔고, 넓은 땅과 온갖 나무들이 있는 숲속에서 겨울을 보내려고 찾아온 많은 철새들과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렇게 많은 나무들 중에 내가 찾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을 거야.’

지식, 행복, 허영의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숲으로 날아간 흰눈썹황금새는 우선 가장 빛나는 잎새를 가진 ‘지식의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지식의 나무님. 당신은 무엇이든 알고 계신다지요?”

“알다마다! 난 이 숲속의 박사니까 무엇이든 물어 봐.”

“전 아름다운 나무를 찾고 있어요. 모든 것을 견디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알며, 자신을 삭혀 인내할 줄 알고 아픔으로 여문 열매를 맺는 나무를 찾는답니다. 그런 나무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글쎄, 그런 나무가 세상에 있기나 하니?”

“그럼 당신은 무얼 잘 알죠?” “난 땅의 것을 다 알고 있단다.”

“그렇게 안 지식으로 무얼 하지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나요? 전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지식은 필요가 없답니다.”

흰눈썹황금새는 얼른 ‘지식의 나무’를 떠났습니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다니느라 지친 흰눈썹황금새는 이번에는 풍요로운 과수원을 지나가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피곤한 새야, 내 과일을 먹고 힘이 생기거든 가렴.”흰눈썹황금새는‘풍요의 나무’가 베푸는 인정에 끌려 잠시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자, 이걸 먹어. 내 열매는 한 입만 먹어도 구름을 탄 듯 황홀해질 거야.”“정말 그렇군요. 이 열매는 아픔으로 익힌 열매인가요?”

“아픔이라니? 아픔이 어떤 거니? 왜 아픔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니?”

“쉽게 얻은 열매로는 우리 영혼을 살찌울 수 없으니까요.”

“난 기름진 거름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올려 주는 뿌리 덕분에 언제나 풍성한 과일을 맺는단다. 무엇 때문에 쉬운 것을 두고 땀을 흘리겠니?”

“그렇게 쉽게 열린 과일은 곧 썩는답니다.”

“이제 보니 참 까다로운 새로구나. 아무도 너같이 말하는 새는 없어. 왜 힘들게 살려고 하니? 그러지 말고 너도 여기서 즐겁게 살자꾸나.”

“아, 아니에요. 전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가야 해요. 아함-, 그런데 왜 이렇게 졸음이 올까요? 여전히 목도 마르구요…….”

“내 과일을 먹었기 때문일 거야. 아름다운 새야, 여기 누우렴. 너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 그리고 내 풍성한 양식을 내게 줄께.”

“제가 찾는 건 먹을수록 목이 마르는 양식이 아니에요. 전 아름다운 나무를 찾는답니다.”

흰눈썹황금새는 자꾸 가물거리는 정신을 추슬러 풍요의 숲을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아름다운 나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그 후로도 황금새는 아름다운 나무를 찾지 못했고, 슬퍼할 줄 모르는 허영의 나무를 만나 그만 꽃 속에 숨어있던 가시에 찔려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어린 시절 친구였던 슴새를 만난 황금새는 이제 뿌리굴 속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모습에 안타까운 슴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흰눈썹황금새야, 넌 왜 꼭 아름다운 나무여야 하니? 도대체 그 아름다운 나무란 게 어떻게 생긴 나무니?”

“나무는 겉모습만 보아선 몰라. 보이지 않는 모습이 진짜 모습인걸.”

흰눈썹황금새는 슴세에게 아름다운 나무의 모습을 그려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슴새는 한숨을 휴- 내쉬며 말했습니다.

“흰눈썹황금새야, 그런 나무는 네가 욕심을 낸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릴 때에야 얻어진단다. 네가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세상 어디를 뒤져보아도 그런 나무는 찾을 수 없을 거야.”

흰눈썹황금새는 슴새가 하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네 말을 듣고 보니 그 동안 내가 그렇게 힘들게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다닌 건 그 나무를 찾아 내 것으로만 소유하며 살려는 욕심 때문이었나 봐. 나는 조금도 변하려고 하지 않고, 아름다운 나무만 찾으러 다닌 욕심쟁이였어. 그래서 누구에게나 정을 주는 게 인색했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까다롭게 거절하고 달아나곤 했었지.”

흰눈썹황금새는 동백나무 뿌리굴 속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어느 새 나이 많은 새들은 서둘러 고향 숲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흰눈썹황금새는 고향으로 간다는 생각만 해도 힘이 솟구쳤습니다. 먼길을 날아 고향에 다다르게 된 새들에게 고향의 섬들도, 언덕빼기에 사는 망초꽃도, 세잎 소나무도 ‘어서 와, 어서 와!’ 하며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바람이 숲 속의 나무들을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바람은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향기를 몰고 왔습니다.

“아, 이 향내 어디서 풍겨오는 꽃향기일까?”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던 흰눈썹황금새는 잡목 숲이 날아갈 듯 환한 꽃등을 밝혀들고 아이보리 빛 주렴을 일렁이며 지긋이 생각에 잠겨 있는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를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인색하게 고개를 흔들고 떠났던 아카시아 나무였습니다. 아! 눈물의 꽃! 이렇게도 눈부시게 순결한 꽃을 피우다니, 바로 내가 찾아다니던 아름다운 나무다!

“아카시아님, 당신의 가지에서 쉬어도 되나요?”

“어서와서 쉬렴. 나는 너를 그리워하느라고 에인 가슴이 삭아 생겨난 너의 보금자리야.”

“난 당신을 버렸어요.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걸요.”

“아니, 넌 나에게 아픔을 주고 눈물을 주긴 했지만 기다림과 사랑과 희생을 가르쳐 주었어. 섭섭했지만 널 원망해 본 적이 없어. 아름다운 나무가 되기 위해 그 모든 것이 내겐 약이 되었는걸. 우린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아프게 힘써왔던 거야. 흰눈썹황금새야, 정말 잘 돌아왔다.”

박숙희, <새를 기다리는 나무 중> ‘아카시아나무와 흰눈썹황금새의 이야기’ 요약 재구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때 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그의 소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끝에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르니더"
나는 몇 점 꽁보리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그만 이 말을 듣고는 목이 꽉 메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화들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땅 위의 직업' 갖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하나의 커다란 깨우침이었다.

==================================================================

정호승님이 잠시 기자로 있을 때 인터뷰를 했던 광부의 이야기입니다. 땅을 일구던 농부로 살다가 농협에 진 빚 200만원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삶을 살아가던 어느 광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슬픔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04-10-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소중한 것은 우리가 발디디고 살아가는 이곳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