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잡다하게 늘어만 놓았던 마이페이퍼를 일부 통합하였습니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가급적 제가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정치판에 역겨움을 느끼는것이 지겨워서 애써 시론이라는 이름으로 나발대기가 싫어서 아예 그런 공간을 만들지 않았는데....정치를 빼고 몇 가지는 세상사에 토를 조금 달고자 합니다.  정치, 종교는 이곳에서 거론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두 가지에 관한것은 세상이 두쪽이 난다해도 언급을 하지 않으렵니다.  그간 김선일씨 사망, 재보선, 대통령 탄핵, 서울시 버스정책 변경 등등 할말은 많았지만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생ㄱ가되는것은 애써 피하고자 하여 거들먹도 안했지만 이런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할말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신변...그리고 잡기===>신변, 잡기...그리고 시론>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난초와 향은 둘 다 마음을 맑게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로 시작을 했지만 다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지라 두 페이퍼를 합쳐 하나로 묶었습니다. 난이나 향이나 모두 향기를 품고 있는지라 묶어도 별 지장이 없을것으로 판단을 했습니다.

  <가슴아픈 여러가지 일들..>은 <신변,잡기...그리고 시론>과 병합하였으며, 기타 말같지 않았던 것들은 모조리 쓰레받이에 담아 <황당함...그속의 나>에 쏟아부었습니다. <사무실 안과 밖의 풍경>도 신변잡기와 대동소이하여 <신변, 잡기...그리고 시론>에 포함을 하였습니다.

 10개 정도의 주제로 페이퍼를 운영하려고 했지만, 모두 11개의 주제는 어쩔수 없이 남겨야 하겠기에 다소 늘어진 모습이지만 나머지 11개의 문패는 그냥 놔두도록 하겠습니다. 혼란을 드리게되어 죄송합니다만, 자주 방문해 주실것을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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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balmas 2004-07-0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는 잠깐 정리하다 말았는데 ...
언제 정리하나 ...-.-;;

비연 2004-07-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금동반가사유상이 갖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우선은 반가사유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알아보는것이 중요하다 할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교의 메시아"인 미륵보살은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인 셈입니다. 그리고 '사유'란 고뇌하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 반가사유상은 과연 어떤 고뇌에 빠져 있는것일까요? 사유상의 출현은 출가하기전의 태자의 신분이었던 '싯다르타'가 인간이 갖는 4가지 고뇌, 즉 生老病死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고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4가지 고뇌속에서 번민하던 '싯다르타' 태자는 무엇을 느꼈기에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턱을 괸것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가 얼굴과는 닿은듯 만듯 정말로 손가락 전체도 아닌 점으로써 뺨과 닿아있으며, 고개는 약간 숙인채 얼굴에 담고 있는 미소....한마디로 오묘하다고 표현되는 얼굴표현에는 나름대로의 중생 구제의 방법에 대해 수만가지의 말을 뱉어낼것만 같습니다. 즉, 오랜 고뇌의 기간을 거쳐 드디어 중생구제의 방편을 알아냈다는 미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왼 무릎위에는 한 쪽 발을 올려놓고 있는데 엄지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어 구부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 잔뜩 힘을 주고 있읍니다만, 미사려구를 구사하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이 모습이 달리 보이는지 발가락의 구부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합니다만, 자연스럽다는 말은 힘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지만 그냥 힘을 주지 않고 오른 발을 왼 무릎에 올려놓으면 전혀 지금의 모습은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결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은 자세히 보면 입가의 살포시 웃는 모습과 어울리게 지그시 내려깔고 중생을 굽어보듯 하는데 바로 미소와 더불어 이런 눈매가 미륵보살로서의 위엄을 한껏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대해 최순우 선생은  "이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초월한 것이며.......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한아(閑雅 :막을수 없는 아름다움)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숨을 내쉬게조차 한다....서양인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최고로 여겨 '영원한 미소'라고 예찬하는데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나란히 놓는다면 모나리자의 미소 정도는 당장 안색을 잃을것임에 틀림없다" 고 하였습니다. 아주 점잖게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치켜세웠지만 다른말로 이야기 하자면 모나리자도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면 울고 간다는 말 정도로 해석을 하면 될것입니다. 이 반가상의 머리에는 도교사상에서 나온 삼산관이 얹혀있어 간단하게 "삼관미륵"이라고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상의 출처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이 반가사유상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시기는 1912년 입니다. 당시 이왕가박물관(일본인이 1910년의 한일합방 이후에 대한제국의 황제칭호를 깔아뭉개기 위해 조선 임금의 가계를 <왕가(王家)>로 낮춰 부르게 되었습니다)이 이 반가사유상을 입수할때는 중계인이 '경주 근처의 폐사에서 가져왔다'고 하였기에 신라의 작품으로 알았었으나 한일합방 이전부터 우리 나라의 고적을 조사해온 일본인 학자 이네다(稻田)가 '1910년 충청도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바람에 신라것이냐 백제것이냐를 놓고 헷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미술사>의 저자인 세키노(關野貞)는 "조산 삼국시대의 조각"에서 두 구의 미륵반가사유상을 고신라의 유물로 단정하여 '후치가미 사다스케가 총독부에 기증한 것으로 출처가 확실하지 않으나 경상도에서 발견한듯 하다'고 기록하여 경상도 출토설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후 1915년 바로 이네다의 충청도 출토설이 나오게 되는데 이 때는 그체적인 높이(2자9치7푼)가 제시되어 백제계의 반가사유상으로 인정하기에는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금동, 석불, 마애불 등 모두 32구의 반가사유상이 있지만 1945년 이후에 우리의 손으로 발굴된것 이외에는 반가사유상이 고구려의 것인지 또는 신라나 백제의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애석하게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불상이 고가에 거래되었지만 그 출처에 대한 추궁이나 법적 책임이 두려워 대부분은 오랜 동안을 숨겨 두었다가 내다 바는 악덕 골동품상(거의 일본인)들로 인하여 유물이 갖고 있는 족보가 멸실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네다의 주장대로 이 반가사유상은 충청도 지역에서 올라온 백제계의 반가사유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돌아가신 김원룡, 최순우 두분은 이 불상이 백제의 작품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있는 두 구의 불상이 어디것이냐 하는것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없고 갑론을박 하는데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더 애써 원산지를 찾는 작업을 추진하는 일이 발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된 목조금동반가사유상 때문입니다. 이 불상은 비록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우리 국보 83호인 '삼관미륵'의 복제품이나 마찬가지로 쏙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불상은 일본의 고류지(광륭사)에 소장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불상의 원적이 어디냐에 따라 이 불상의 원적도 덩달아 원적 변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일본에 있는 이 목조반가사유상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이다" 또는 "한반도 사람이 건너가서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 만들었다(대부분의 일본학자 주장)"는 등 여러가지 주장이 있는데 주로 우리 학자들은 위의 두 가지 학설을 추종하고 일본의 학자는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네 조상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목조반가사유상이 있는 고류지에 있는 또 다른 반가사유상입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국보 1호로 지정된 반가사유상보다 후대인 7세기 말엽부터 8세기 중반의 비조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똑 같이 일본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지만 언뜻 보아도 똑같은 목제임에도 국보 1호보다 상당히 조형미가 떨어지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아마도 국보 1호를 본뜬 불상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조각 기법이나 제작기법이 국보 1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것을 사진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불상은 당연히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거나 한반도의 불상을 모방한 불상이라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하고 일본의 비조시대의 제작품으로 인정을 하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백제계의 불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한 학자가 동국대학교의 황수영 박사였습니다. 황수영 박사는 1959년 이 불상의 출처에 대해  원래 이 불상이 경상도 지방에서 출토되었다는 세키노의 발언을 주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불상이 이왕가박물관에 판매시 거래된 금액은 당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2900원이었는데 중간의 악덕 상인들이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 부터 구입을 했기에 원산지는 알 수 없는것 처럼 했기에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출토가 되었는지 잘 모르게 되었지만, 최초에 이 불상에 대해 언급한 세키노의 말 처럼 "경상도"지방에서 출토되었다면 신라 땅 어디에선가 이 불상이 있던 자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경상도 신라땅을 수소문하여 이 불상이 정말로 신라의 옛 절터에서 나왔는지를 찾아보기로 한것입니다.

 황수영 박사는 제자인 정영호박사(현 단국대 박물관장)와 더불어 경주지역에서 수소문한 결과 드디어 원래 이 불상이 있었던 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옷칠이 된 위에 회분을 칠하였는데, 대부분의 목불이나 금동불은 칠을 하기전에 옷칠을 하는데 원 소유주는 옷칠 위에 다른 칠을 하지 않고 회분을 칠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수소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불상이 세간의 이목을 받게되자 경주 오릉 근처에 있던 불상이었다는 소문이 떠돌게 되었고 이소문을 접한 두 사람은 1964년 경주 남산의 산방谷에 있는 산방사라는 절의 할머니가 당시 4원(또는4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판매를 하였다는 사실과 원래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수차례 방문하여 노보살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 분명 신라의 불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아직도 이 불상의 족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까요? 한동안은 <미술사학>에 이 문제에 관한 연구 논문이 게제되고 맞느니 틀리느니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원래 그 장소에 있는것을 본적도 없을뿐만 아니라 단지 노보살(이 노보살은 그후 사망하였음)의 증언에 의존한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타당성을 입증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입장이었고,  불상의 양식이나 형식의 정확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라계다 백제계다를 말한다는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신라계라는 확신을 가진 황수영 박사, 정영호 박사측은 신라의 불상으로 보고 있으며, 김원룡박사, 최순우 선생 등의 계열은 백제계의 불상으로 보는 것이며 두 학설간에 뚜렷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위대한 모나리자의 미소가 울고가게 할만한 이 위대한 공예품은 그저 <삼국시대>의 작품으로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출처가 애매모호한 반가사유상에 대한 연구는 지지부진하고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이나 발표논문은 찾기가 힘든 지경이 되어버리고 만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에 이 불상은 우리 나라에는 부지기수로 많아져서 미처 제대로된 연구가 나오기도 전에 온통 사찰에 범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용화사상을 주로 하여 미륵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법성종계열에서 중국으로부터 대량으로 미륵반가사유상을 수입을 해 왔기 때문인데, 우리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는 매우 흡사하지만 전문가의 눈이 아니라면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교한 불상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우리 나라에 유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땅 속에 묻어두고 거름을 주거나 화학 성분을 부어 1~2년을 묻었다가 마치도 오래된 금동불에 녹이 슬은 모습으로 수입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중국인들은 이런 모조품을 만들어 우리 나라에 수출할 생각을 다 하게 되었는지 기가막힐 따름이지만 이런 문제는 제가 직접 중국을 방문하여 확인을 해볼 요량이며, 그 불상이 단순하게 비슷하게 만든것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음은 궁금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불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겻들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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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08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도 요새 바쁘신가봐요.
저도 요새 정신이 없어 어쩌다 댓글다는 정도밖에 서재를 드나들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예고에 비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셨다구욧!
하여간 문외한인 저는 백제든 신라든 모나리자가 울고 갈 미소라는 것에 한표 던집니다요.
(실은 그 미소 때문에... 전 백제설을 믿는 경향이 있지요. ㅎㅎㅎ)

balmas 2004-07-0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 갑니다~~~ 감사^^

2009-01-14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뉴스를 접하면서 개탄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흡연이 금지된 학교 규정에 반하여 흡연을 하던 학생이 적발 되었고, 학교 규정(아마, 정학 정도 되겠지요)에 따라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학생이 반발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교사 3명이 체벌을 가하여 학부모가 교사 3명에 대해 폭력행위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고발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고 머리를 깎이는 행위는 규정을 위반한 학생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기회와 시간을 주기 위한 예전부터 행해오던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기에 이런 규정은 바뀔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머리 깎이기를 거부하는 학생의 행동입니다. 교사 3명이 가세를 했다고 단순히 학생 한 명을 두고 일방적으로 때린것 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이 세상의 어느 교사도 지금시대에 마음놓고 학생을 두들겨 팰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당장 이유없는 체벌은 그 교사의 밥벌이를 끊는 하나의 빌미가 되는데 누가 그런 올가미를 자신의 목에 걸려고 하겠습니까? 그 학생이 규정을 따르지 않으려고 반발을 하고 그 와중에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교사 3명이 가세를 하였고, 결국은 부모로부터 고발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교칙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면 교사는 그냥 그 학생을 내버려 두어야 하는것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중요한것은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우습게 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교육 환경이 가장 발달하였다는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 나라에서는 버젓하게 일어납니다. 특히 교육제도가 가장 발달하였다는 영국에서는 당연한 체벌은 부모가 창피하게 여기며 처벌 또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부 13주는 자녀의 귀가 시간이 저녁시간보다 늦으면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광경처럼 무릅에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는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며, 미국 사회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고깔씌우기를 해서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있도록 합니다. 그만큼 반성의 기회를 본인 스스로에게 주어서 반성할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우리 나라의 경우는 모든 여건이 앞의 예를 든 두 나라의 경우와는 많이 다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Ivy라던가 하는 외국의 명문같은 명문...3대 공립, 5대 사립하던 명문도 이제 우리 나라에는 없습니다. 공교육을 마치도 공산품 생산하듯 획일화 시키고 나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 오늘날의 교육계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공산품 만들듯 획일화 하여 평준화라는 미명으로 덮어질 수 없음에도 배운 사람들이나 안배운 사람들이나 똑 같이 졸업생이라는 딱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사교육비도 바로 이런 점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녀는 할수 있어"라는 사고로 열심히 투자를 하면서 공부에 취미가 없다거나 아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자녀에게 돈만 들이면 성적이 올라가리라고 믿는 학부모들 때문에 너도 나도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부어대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고 봅니다.

 노동 현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의 일정한 직장에서의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죽어라고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을, 그리고 맨날 놀러나 다니고 기술도 변변하게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대접을 하는것이 시장 원리입니다. 그러나 1988년부터 이런 조짐은 이상한 노동운동으로 흘러가기 시작해서 죽어라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대충 놀며 놀며 온 사람이나 동등한 급여를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고 공공기관인 서울 지하철을 필두로 투쟁에 투쟁을 벌이며 극과 극의 상황속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의 상황을 보고 외국인들은 혀를 찹니다. 소위 힘 하나 안들이고 빈둥빈둥 놀며 왔던 사람이 죽어라고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공부를 해 온 사람과 동등한 급여를 달라는것은 정말로 완전한 공산주의나 다름이 없다는 날강도 심보인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목표가 늘 120% 달성!!  150% 달성!!  하는 식으로 상향 달성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것은 애초부터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이 되었던 것이지 실상은 목표보다 상향 달성한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평등을 부르짖었기에 신분은 있을지언정 계급은 없었고, 너 나 할것없이 나름대로의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공동의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아 대충 한 일들의 목표는 늘 초과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었습니다. 과연 입사 동기라면 그 사람의 능력이나 배움 정도나 수행하는 일의 양이나....기타 등등을 무시하고 급여가 똑 같아야 되나 하는 문제는 평준화 개념에만 빠져서 모든것의 평준화를 요구하는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문제로 우리는 심각하게 짚고 넘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작은 사업체로 공장을 운영하는 제 친구는 늘 사람을 못 구해서 야단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직원으로 입사를 하면 평생 직장처럼 특별하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반성의 기회를 주고는 고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종의 다른 직장에 비해 덜 주지는 않지만 더 주지도 못하는 급여입니다. 그런데 사업장을 확충하려고 해도 제대로 사업장을 돌아가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일에 종사할 사람들이 급여를 따지면서 기피하기 때문이랍니다. 과거 대기업에서 받던 급여보다 10여만원이 적으니 못하겠다는 둥, 또는 과거 직장에서는 휴일이 년간 며칠씩 더 많았다는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구직보다 구인이 더 많다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배가 부르다는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밖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구요. 정말 당장 단돈 몇 푼이라도 아쉽다면 배짱 튕기면서 저울질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부터 직장을 구하느라 머리는 푸욱 수그리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집에서 식구들이 굶어서 뀅한 눈만 보인다면 그 때 가서야 막벌이라도 메달리겠지요. 정말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또 자신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최선을 다합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은 꾹 참는 것입니다.

 "교사의 변은 개도 안쳐다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만큼 교사직이 더러워서가 아닙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교사라는 직종을 특별하게 인식하여 그만한 대접을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십 여년 전부터 교사는 정말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여 버리고 만것 같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잘못을 해도 함부로 회초리를 들 수가 있나, 소리 한번 제대로 칠 수가 있나, 예전처럼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을 이해하고 진학과 학업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어 인성을 길러 나가도록 해야하는가...등등에 관한 문제는 이제 교사의 손에서 떠난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애들 시달림에 잘 견디자는 출근길의 교사들에게서 무엇을 우리 아이들이 얻기를 바라겠습니까? 교사가 상전이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가 상전인 사회에서 교사인들 무슨 재미로 의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할 맛이 돋겠습니까?

 이번 사태의 경우, 학생이 반항을 하고 거부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그 학생의 요구대로 가만히 놔 두는것이 상책입니까? 학생이 막말로 교사를 앞에서 지랄발광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냥 방관을 해야 하는것이 교권을...교사들의 안녕을 위한 방법인가요? 오늘날 교권이 땅 바닥에 떨어진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사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커 온 학생들이 가치 판단의 기준도 없이 사회에 나가서 또 아이들을 낳고 어른이 되어 잘못 배운대로 제 자식을 가르키고 있으니 이런 악순환은 오랜동안 고치기 힘들게 될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는데 한번 잘못 길들여진 교육의 폐해는 되돌리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게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학교의 전통도, 교풍도 다 사라져버린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고 제자리를 찾았어야 했던 교사들이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이 오늘날의 이러한 현실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제 자식이 얻어맞아 마음 아프지 않는 학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 아이들도 학교에서 체벌을 당한 경험을 방과후에 집에 돌아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잘 맞았다고 해 줍니다. 그리고는 마치도 재판장 처럼 왜 잘못했다고 선생님이 체벌을 가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맞는 순간은 기분이 나빴을 아이들도 충분한 설명에 이해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중 중요한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왜 체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행동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과 반성보다는 체벌 자체에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비단 제 아이들이 못나서의 문제기 아닙니다.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아이들이기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으면 모두 똑 같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뒤떨어진것이 요즘 아이들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체벌을 가해야 할것입니다.

 이제 3명의 교사가 고발이 되는 사회문제로 비화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는 많은 교사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실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런 회오리속에 빠져들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의 경우에 똑 같은 일이 발생을 해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야 하겠습니까? "군사부일체"는 이젠 고문서 속에서나 나뒹구는 헛 구절이 되어버리고 한 대 맞았다고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고매한 교사들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어대는 학부모...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한 자녀들이 사회에 나와서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기를 바라시나요? 사물을 보는 눈이 삐뚤어져 있으면 그 사물이 아무리 바로 놓여있어도 비스듬해 보인다는 프로이드의 말 처럼 그렇게 자라서 배출되는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것일까요? 그저 좋은게 좋고 내 자식만은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은 여늬 부모나 다 마찬가지이며 충분히 이해하지만 순간의 치미는 울화와 아픔을 참고 자식이 똑똑하게 크기 보다는 똑바르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모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정심(正心)이 자식 교육의 성패임을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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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7-0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요즘 선생님 알기를 뭘로 아는지...
부모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생각을 하면 어른들부터 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인 2004-07-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매를 기꺼워할 수 있는 학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 다짐해 봅니다.

메시지 2004-07-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아이를 보면 그들의 부모를 떠올립니다. 아이의 죄 90%이상이 부모의 잘못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부모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어머니 학교가 많이 생겨서 가족의 올바른 가치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는 그 기본적인 원인은 경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살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아이들.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일어나더군요. 그들에게도 연민의 정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해 줄수 있는것은 다 해주고 싶은것이 부모의 마음인것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금만능이라고 뭐든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심지어는 아둔한 머리 조차도 돈이면 채울 수 있다는 사고와, 반대로 내 아이는 머리가 좋은데 돈이 없어 남들만큼 과외를 시키지 못해서 성적이 안오른다고 자조하는 부모...자식의 정확한 머리의 한계를 우선 알아야 할것입니다. 돈으로 해야 할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심한 말로 부모 자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여러분의 말씀처럼 부모의 잘못된 사고를 아이들도 답습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대로 된 집안의 자녀들의 교육은 뭔가 다릅니다. 개방적인것 같으면서도 분명 한계가 있고, 아래 위가 없는것 같으면서도 위와 아래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어른을 어려워 할 줄 모르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역시 어른을 어려워 하지 않게 되며 그 자신도 다른 똑같은 사고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당하게 된답니다. 자식을 나무라는 마음...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일지라도 진정 자녀를 위한다면 매를 드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부모보다 오랜시간 머물수밖에 없는 학교교육에서의 스승에 대한 예우나 공경심은 한창 인성교육의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기회이며 시간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보장을 해 주어야 할것입니다. 부모가 못시키는 인성교육을 학교에서나마 조금 부족하더라도 채워나가도록 하는 풍토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 줘야 할것입니다.

메시지 2004-07-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승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제자도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의 부재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라크에 파병중인 대대장이 직접 이라크인들의 긴 머리를 자르는 사진이었습니다. 이렇게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재건 지원과 대민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김선일씨는 죽임을 당하고야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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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 수수께끼님... ㅠ.ㅠ

가을산 2004-07-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이런 사진일 줄 알았슴다. ^^

물만두 2004-07-0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랐잖아요. 볼까말까했는데 잉...

sunnyside 2004-07-0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이걸 봐야 하나... 엄청 고민했자나여~~

호랑녀 2004-07-0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늘 진지하시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금동반가사유상....그 힘없는 미소를 머금은 금동반가사유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반가사유상은 비슷한것이 우리 나라의 국립박물관에 2개, 그리고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된 일본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 등 현재까지 알려진것은 모두 3개 입니다. 그런데 3개의 반가사유상이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먼저 유사한 형태이면서도 결코 같은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두번째는 3개 모두의 정확한 출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양식적 특성으로도 유사한 형태의 불상이 나타나지 않는 관계로 다른 불상과 비견하여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문헌이나 출처를 근거로 하여 어느시대의 조성물인가를 판단해야 하지만 그 마저도 일관성이 없어 지금은 그저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이라고 명기하여 이 불상의 출처로 인한 갑론을박을 애써 피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인 국보 제 78호(좌)와 국보 제 83호(우)로 지정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좌측 불상의 높이는 83.2cm,우측 불상은 93.5cm로 우측 불상이 10cm가량 높이가 높습니다. 이 두개의 비슷한 반가사유상을 자세히 눈여겨 보신다면 똑같은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이 두 불상의 미술사학적 고찰과 아울러 출처에 관한 문헌과 관계자의 증언, 그리고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된 목조반가사유상에 관하여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므로써 어느 시대의 불상으로 판단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하실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과연 백제의 불상인가? 또는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신라불상으로 봐야 하는가? 일본의 불상을 일본인들은 비조시대의 불상으로 바득바득 우기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 정말 일본 불상일까?  아니라면 우리의 두 개의 불상과 매우 비슷한 양식이어서 우리것인데 일본으로 건너갔던가, 또는 적어도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나라 사람이 제작한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을 해 보는것도 바람직할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와 일본 사이에 문화교류의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실정으로 아직도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각각의 불상이 갖는 미적 감상기준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옷을 입은 단정한 불상과 웃옷도 훌러덩 벗어버린 불상....과연 이 불상은 어느시대의 불상일까요?  앞으로 2차례에 걸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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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7-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시대의 우리와 일본의 교류는 정말 베일에 가려진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이건 다른 이야기이지만.... 무열왕이 일본에서 살다가 왔다는 것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수수께끼 2004-07-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열왕이 아니라 문무왕이 아닌지요? 그의 아들 신문왕과 신하가 공모하여 반정을 꾀하는 바람에 문무왕이 일본에 가서 새로운 도읍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일부 학자(특히 이영희)에 의하여 제기되어 왔었고, 실제 일본에는 문무왕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모두 부인하는 입장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일단은 문무왕을 화장을 하여 동해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했음을 기록하고 있어 그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밝혀질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7-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백제의 무열왕릉의 주인인 무열왕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일본서 자랐다는 썰을 들었는데...

수수께끼 2004-07-02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말씀을 들어보니 백제의 무녕왕을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가을산 2004-07-0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 이름치가 들통나에요. 무녕왕 맞네요.

호랑녀 2004-07-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이야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balmas 2004-07-0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추천하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