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들이....마녀의 후손들이다.>
이번 달의 여성주의 책읽기였던 이 책은 읽어본 책 중 가장 얇고 빨리 읽혔던 책이었다.
중세의 여성들을 마녀 몰이로 인해 화형시켰다는 이야기는 역사책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고 영화를 통해서도 그런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고 있으니 책을 읽어나가며 낯설지 않아 그래서 쭉쭉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평소 느끼던 것을 또 깨달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의 원인을 좀 더 내밀하게 알게 됨으로 결과가 달리 보인다는 점이다.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희생양은 역시 힘없는 여성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특히나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7장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 지구화 그리고 페미니스트 연대‘ 부분이 너무 강렬하여 책을 덮은 한참 후에도 두고 두고 생각이 났는데 지금 현재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마녀‘들이 고발당하는 범죄에는 유럽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다. 이 범죄들은 종종 유럽의 악마 신앙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며, 복음화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야반도주, 변신, 식인, 여성 불임화, 영아 살해 그리고 농작물 파괴다. 또 두 사례에서 모두 ‘마녀‘는 주로 나이 든 여자나 가난한 농부이고, 종종 혼자 살며, 또는 남자와 경쟁한다고 여겨지는 여자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의 마녀사냥처럼 아프리카 마녀사냥은 ‘시초축척‘ 과정을 겪는 사회에서 일어난다. 그런 사회에서는 많은 농민이 자기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새로운 재산 관계와 새로운 가치 창출의 개념이 자리를 잡아 가고, 공동체적 연대감이 경제적 갈등의 영향 아래 파괴되어 간다. (143~144쪽)
시초축척은 원시의 자본을 최초로 축척한 과정을 말한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었던 최초의 0이란 개념같은 구조에서 자본을 쌓으려고 보니 아마도 먼저 선점하는 자만이 승리하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먼저 선점할 수 있는 자라면 막강한 권력이 있는 자일테고 권력이 없다면 하물며 힘이라도 쎈 자이지 않겠는가. 힘으로라도 뺏어 내 것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시초축척 과정을 겪는 구조라면 당연히 권력도 힘도 없는 자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 희생양이 여성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주된 희생양은 나이 든 여성, 혼자 있는 여성이 타깃이 된다. 평생 모아 둔 재산이라도 가지고 있는 나이 들고, 혼자 있는 여성이라면 좋은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나도 나이 든 여성이라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프리카에 태어났더라면 죽임을 당할 순번 1번이었겠구나!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아...재산이나 땅이 없었다면 또 다를려나?
아니지. 힘 없고 권력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아프리카의 저 사태를 어떡해야 할 것인가?
참.....
광복절 휴일에 딸들과 여자 조카를 실내 놀이터에서 놀게 해 주고 기다리는 시간동안 카페에서 이 책을 읽었다.
뭔가에 몰입하면 며칠 동안은 그것만 생각하는 나!
며칠 뒤 조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 뒷좌석에 어떤 외국인 여자 아이가 쌩긋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조카가 비슷한 또래로 보이니 인사를 하고 싶은 듯한 포즈를 취하는데 조카는 급 내향적인 아이가 되어 고개를 땅에 떨구어 빨리 걷는다.
아까전만해도 인형 뽑기에 중독되어 더 하고 싶다고 조르며 조잘대던 모습을 보아선 제법 외향적인 아이였었는데....?
외국인 아이라 주눅이 든 듯 했다.
어릴 때 주눅이 들던 내 모습도 떠오르기도 했고,
페데리치의 책을 읽으며 힘이 없으면 페미사이드 공포감에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란 생각에 꽂혀 있기도 했던지라,
조카에게 잔소리를 좀 했다.
˝조카야.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어깨 쫙 펴고..엉?
어깨 쫙 펴고 당당하게 살면 행복할 수 있어.
너 행복해지고 싶지?
그럴려면 당당하게...엉?
어깨 쫙 펴고...엉?
고모는 오빠야랑 언니야들한테도 맨날 어깨 쫙 펴고 걸으라고 하잖아.˝
라고 말했더니 나를 흘끔 쳐다보던 초딩조카는
˝그래서 고모는 그렇게 가슴 내밀고 걷고 있나요?˝
?????? (무슨 뜻이지? 그래도 당당하게 답하자.)
˝그........러엄!!!!!! 어깨 쫙!!!!!!!˝
밤엔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슬쩍 다가오길래
˝조카야. 옛날엔 여자들을 마녀로 내몰아 불에 태워 죽였대.˝라고 말했더니 조카 완전 충격받아 딸들에게 달려가 ˝언니. 여자를 불에 태워 죽였대.˝ 알려 준다.
아....이걸 초딩조카에게 밑도 끝도 없이 결론만 얘길해줘 아이를 놀라게 한 게 미안하긴 했지만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초딩 조카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딸들과 초딩 조카가 살아갈 시대는 부디 피해자가 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