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언니 그 문신 뭐예요?"
"이거?"
조장이 손목을 보여주었다. 문신은 마치 닳듯이 햇빛이나 물기 같은 것이겠지만 무언가에 닳아 있어서 꽤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안 돼, 라고 말해주는 거야."
"누구한테요?"

우리는 이후에도 여러 번, 그때 조장이 했던 대답에 대해 얘기했는데, 매기와 나의 기억이 서로 달랐다. 나는 그 엑스 자 문신이 상대에게 안 돼,
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기억했지만, 매기는 자기 자신에게 안 돼, 라고 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억했다. 내가 그런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그냥 혼자 안 돼,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그렇게 문신까지 하겠느냐고 주장했지만 매기는 아니야, 당연해, 라고 했다. 그렇게 눈으로 자신에게 보여주면서 되뇌어야 할 일도 있으니까.

언제 서울에 출발했어, 하면서 우리는 되도록 평정을 지키며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이내 멈췄고 이윽고 매기가 조용히 자기 손목을 내밀어 이번에는 아무 것도 칠해지지 않은 손톱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크게 엑스 자를 한번 그렸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기억들을 하나도 잊지 못했으므로 나는 준비해 간 돈 봉투를 주지도, 하고 싶었던 다정하고 따듯한 위로도 못한 채 다만 알겠어, 라고 하면서 곧장 병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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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파는 데는 전혀 관심 없다. 서점을 열 생각 같은 건 꿈에서라도 안 한다. 하지만 서점 없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앤 패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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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1-03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도시에 가면 그곳 서점을 꼭 찾아가보곤 해요. 서점 없는 도시란 어째 안 어울리는 거 같지요. 책읽는나무님 새해엔 더욱 해피한 날들이길 바라요^^

책읽는나무 2020-01-03 19:36   좋아요 1 | URL
예전엔 도서관은 한 번씩 들러보곤 했었는데 저도 요즘엔 서점도 둘러보게 되더라구요~~아직 외국 서점은 섭렵해보진 못했지만요ㅋㅋ
언젠가는??^^

작년보다 올 해가,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좋은 날들이 되고 계신거죠?^^
 
애들 먹일 좋은 거 - 꿈꾸는 할멈의 평생 레시피
김옥란 지음 / 포북(for book)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애들을 키우는 동안 아침 4시 반이면 일어났다.
도시락이 4개, 새참 도시락이 두어 개,
그것도 연탄불에 밥을 하고, 반찬 만들고, 국을 끓였다.
하얗게 동트는 6시 반이면 겨우 한가해졌다.
어수선한 부엌 정리를 마치면 어른들의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고,
10시쯤 시작한 손빨래들은 두드리고 삶고 헹구어 널었다.
하늘을 우러러… 그리고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부엌살림이 싫은 적이 없었다.
아이들 밥해 먹이며 엄마 없는 설움을 풀면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많이 자랐다.
아이들 요리책 만들기를 준비하며 촬영 전에 레시피를 점검하느라 백 가지가 넘는 요리를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봤다.
다 큰 아들딸이 추억하는 요리도 들으며 그 시절로 여행을 다녀왔다.
요리책을 시작하며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 길어졌다.
음식의 기본은 양념과 육수.
아이들 입맛과 영양에 맞춤한 양념장과 육수를
다들 한 번씩 만들어보면 참 좋겠다.
집집마다 같은 재료로 간을 하고 조리하는 방식이 달라도
좋은 양념을 쓰면 맛의 기본은 지킬 수 있다는 것이
30년 내 요리 인생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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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23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너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네요. 전 아직 부담스러운 그 단어... 어머니...

책읽는나무 2019-12-24 09: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앗!! 제가 그동안 너무 드문드문해서 그리 느껴지나 봅니다^^

이 책은 우리네 어머님 시절 우리가 어릴때 이렇게 해서 음식을 해먹이신 것같던데..지금은 자식의 자식인 손주들을 해먹이면서 부모시절을 떠올리며 즐겁게 요리한 시간들을 예쁘게 만든 요리책이더군요^^

할머니든,어머니든...위대한 요리책이었어요.감동 백만 번 하고선...또 소설읽 듯...그러곤 읽기만 했죠ㅋㅋ
저도 부담스러운가봐요?하지만 이런 책 읽고 기운을 전해받는 것이라도 어찌나 좋은지???^^

암튼..미리 메리 크리스마습니다.
오늘 내일은 단발머리님도 저도 위대한 어머님? 함 해봅시다ㅋㅋㅋ

서니데이 2019-12-24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읽는나무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책읽는나무 2019-12-24 19: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늘 이 기쁜 소식을 서니데이님을 통해서 알게 되네요^^
서니데이님도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서니데이 2019-12-3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나무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2020년 경자년에도 건강하고 좋은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20-02-1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몸으로 쓴 글이라는 느낌여요!! ㅠ;;
30년 요리 인생이라!!!

책읽는나무 2020-02-19 22:11   좋아요 0 | URL
너무나도 읽을거리가 없어서...민망합니다.
이렇게나 오랜만에 걸음하셨는데 말이죠!!!^^

내일은 도서관에 가서 님의 서재에서 본 책들을 검색해서 빌려올까?생각중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괜스레 또 미루고 싶어지네요??ㅜ
그나저나~~뉴스보니까 대구쪽이..ㅜㅜ
아...계속 불어나는 확진자들의 숫자를 보면서 무슨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듯하여 순간 두려워지고 있습니다.
모쪼록 건강 조심하셔요^^
 
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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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을 움직여 걸으면서 나는 현재를 밀어낸다. 걸을 때 현재는 나로부터 밀려난다. 한 시간을 걸으면 한 시간만큼 밀려난다. 여섯 시간을 걸으면 여섯 시간의 현재가 밀려난다. 내 두 다리는 시계판 위의 바늘과 같다. 시침과 분침은 부단한, 힘겨운 움직임으로 시간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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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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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다른 세계를 향한 동경은 이 세계로의 귀환을 담보로 한다.  이 세계로의 귀환이 담보되어 있는 상태의 떠돎은, 그 시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여행일 뿐이다. 여행자의 자유로움과 여유는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보장되어 있는 귀환에서 비롯한다. 그렇지 않을 때 낯선 세계는 동경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 세계에서 상처를 입은 이도 이 세계에서 떨어지는 것을 겁낸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애착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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