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랜드 작품집 : MOVIE ARTBOOK
김태용.김대식 지음 / 김영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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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 :

영화 << 원더랜드, 2024 >> 는 말 그대로 놀라운 영화'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이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유사 러브 액츄어리'다. 보는 내내 지루해서 정지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계속 고민하면서 보았다. 참다 참다 참다가는 결국 참치가 될 것만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결국 마지막 5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인내심의 한계라기보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공상과학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공상과 과학이지 멜로가 아니다. 멜로는 공상과 과학이라는 설정이 만든,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역할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숟가락이 만찬의 주인공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영화는 크게 딥러닝 기술로 복원된 탕웨이(에피소드)와 박보검(에피소드)이 중심인 메인 플롯과 주변부의 서브 플롯이 첨가된 옴니버스 형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영화가 재현하고 있는 장소다. 죽은 자를 딥러닝으로 복원한 아바타 탕웨이와 박보검이 머무는 장소는 사막과 우주다. 문제는 인물과 장소가 맺는 관계 설정이 농밀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탕웨이는 직업과 상관 없이 어릴 적 장래 희망이 고고학자였다는 이유로 가상 현실에서는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된다. 박보검은 더욱 황당하다.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박보검은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다. 장소에 대한 애착이 없다 보니 인물과 장소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서로 융합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사막과 우주라는 공간은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이발소 벽에 걸린 그림처럼 예쁜 장식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스펙타클하기는커녕 입체감 없이 납작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 대한 고독과 경외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풍경만 이국적인 관광 엽서 같다. 공간이 입체감이 없다 보니 그 공간을 점유한 캐릭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순간, 그 영화는 망하게 된다. 이 영화를 싸구려 이발소 그림 혹은 500원짜리 관광 엽서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에는 배우들의 빛나는 외모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생명력은 시들시들하다. 특히, 공유가 연기한 캐릭터는 관객이 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이다.

보다 보면 : 동서식품 카누 광고의 영화 버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가 등장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캡쳐 해서 카누 로고를 붙이면 영락없이 동서식품 광고다. 그는 영화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찍고 자빠졌다(박보검-수지 커플은 의류 CF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배우의 잘못인가, 감독의 잘못인가 ? 당연히 감독의 능력 부족 탓이다. 지금까지 내가 침에 입이 마르도록(의도적 오기다) 투덜댔던 단점들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짜진짜 문제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산 자의 사연만 해도 구구절절한데 죽은 자마저 한마디 거드니 구구절절X2인 영화라 할 수 있다)에도 불구하고 사연만 둥둥 떠다닐 뿐 인간에 대한 서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인간 없는 서사는 곧 서사 없는 잔상만 남는 영화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공유는 영화에 등장하여 카누 광고나 찍고 자빠졌고, 탕웨이는 낙타가 보이는 사막에서 의미 없이 흙만 파고 자빠졌고, 박보검은 중력 없는 공간에서 어화둥둥 떠다니기만 한다. 두 쌍의 메인 플롯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의 서브 플롯은 겉돈다기보다는 헛돈다. 공유만 헛발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소개하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 영화의 카메오가 아닌 서브 플롯의 주연인데 카메오처럼 소비된다. << 원더랜드 >> 는 AI가 만든 가상 세계를 다룬 영화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가 이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이 만든 이 영화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 후자의 경우에 전 재산 500원을 걸겠다.

■ 덧대어 투덜대기

이 영화를 다룬 언론 기사를 읽다가 빵 터졌다. 다음과 같다. " 연출과 더불어 탕웨이 등 주요 출연진의 절제된 열연은 '원더랜드'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려, 구닥다리 신파 멜로 대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수작의 길로 이끈다. 특히 탕웨이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파트너 없이 홀로 연기하다시피 하는데, 그럼에도 박보검-수지 커플을 능가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 기자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시적인 느낌을 지닌 유럽산 SF 수작이라고 표현했을까 ?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지역의 정체성보다는 이국적인 이질성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가 뒤섞여 있고 공간도 사막과 우주다. 한국 영화이기는 한데 한국인으로서 느낄 만한 공감은 없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 낮다. 사막과 우주를 체험한 한국인이 얼마나 있겠나. 좋게 말하자면 세계의 보편성에 근접한 영화라고 표현할 수는 있으나 나쁘게 말하자면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진 산신령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영화다. 시골로 낙향해서 텃밭 가꾸며 사는 것 같은 정유미의 부모는 숟가락과 젓가락 대신 수저와 포크로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다. 식탁 위에는 바게트와 와인 잔에 담긴 포도주가 놓여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에서는 식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는데 한식인 밥과 찌개가 나오는 장면은 한 장면도 없다. 공상 과학 영화에 쌀밥에 된장 찌개가 등장하면 예쁜 화면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묻고 싶다. 감독님, 쌀밥이 그렇게 부끄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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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 아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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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_ 라는 의문은 이미 오래된 질문이다. 서점에 가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을 분석한 책은 쌓이고 쌓였다. 이 현상은 특정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다. 대한민국도 예의는 아니다. OECD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40. 4% : 2위 라트비아는 25%)를 차지한 대한민국 고령층이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라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종의 반계급 투표인 셈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원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원전은 주로 경상도에 배치되어 있는데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상도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일종의 계급투표 위반이다.

대한민국의 원전 정책을 보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연상케 한다. 수도권에는 왜 원전이 없을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위험하니까. 달리 말하자면 : 원전 사고가 나면 지방 사람들(부산,울산,경주,울진,영덕)도 위험하다. 목숨은 하나인데 그 목숨에 대한 귀천은 있다(수도권 시민은 지방 시민의 목숨보다 귀하다). 그렇다면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역은 어디일까. 당연히 수도권이다. 전력 수요의 7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위험 시설은 지방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그 혜택은 수도권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서울의 밤거리를 보라. 정작, 지방에서는 재정난을 이유로 도로의 밤 조명을 낮춰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도대체 원전 정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서구 열강은 황금알을 낳는 땅(식민지)에 군대와 무기를 투입하여 자원을 탈취했지만 지금은 군대 대신 개발 원조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국가에 머니(돈)를 빌려준다. 머니가 곧 무기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이 저개발 국가에 대한 개발 원조 자금이 무상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개발 원조 자금은 상환 의무는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이자가 붙는다. 때론 원금보다 이자가 몇 배가 더 붙는 경우가 허,허허허허다하다. 전형적인 사채업자의 고리대금이다. 이것을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 개발기구가 담당한다. 사시미칼을 들고 돈거래를 하면 사채업이고 회색양복이 서류가방을 든 신사가 돈거래를 하면 개발 원조'다.

채무국은 채권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국영화 기업을 민영화로 전환하라고 요구한다. 그다음은 노동 임금을 낮추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온갖 신자유주의 정책에 참여한다. 채권국이 채무국에게 가하는 내정 간섭이다. 예상 시나리오는 뻔하다. 글로벌 자본이 투입되어 국영 기업을 산다. 그리고 채무국의 저임금 정책은 채권국 투자자 이익을 극대화한다. 서구 열강 입장에서 보면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굳이 군대와 무기를 동원하여 식민지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돈이 곧 무기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한스 로슬링 같은 데마고그( :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장사꾼 )는 부자 나라의 개발 원조로

가난한 나라의 극빈층이 중위 소득으로 상향 조정되었다며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구라를 치지만 본질은 빈곤과 불평등의 격차가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이슨 히켈은 << 격차 >> 라는 책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한다(현재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좋은 책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불온한 책이라는 낙인이 찍힐 뿐이다. 오히려 나쁜 책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나쁜 쪽으로 ! 한스 로슬링의 << 팩트풀니스 >> 를 읽고 나면1) 우리는 어느새 신자유주의 자본가의 찬탈 행위를 세계의 구원으로 이해한다. 사시미칼을 버리고 회색 양복에 서류 가방을 든 사람들이 고리를 뜯는 일은 이제 원조, 구호,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있다. 97년 IMF 가 발생했을 때 세계은행이 대한민국에 요구했던 구조조정의 여파로 무수히 많은 한국인이 자살했던 기억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 격차 >> 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은행의 조건부 대출이 가진 기발한 점은 채권자에게 사실상 아무런 리스크를 부담시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계은행은 월가에 채권을 판매해 은행과 민간 투자자들이 글로벌 남부 국가들의 부채를 살 수 있게 한다. 이 ‘혁신적인 부채 상품innovative debt products’(세계은행은 이렇게 부른다)은 안전하면서(보통 트리플A 등급이다) 동시에 15%에까지 달하는 큰 수익을 준다. 세계은행은 어떻게 해서 고수익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었을까? 채무자에게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달도록 강제함으로써 세계은행은 채무국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원천에서 최대한 돈을 끌어모아 부채 상환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다른 지출을 줄이고 자산을 매각해서 그 돈으로 부채를 갚으라고 채무국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패 가능성이 없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채무국의 시장을 외국 투자자에게 개방하는 추가적인 이득도 있었다(격차, 히켈).



위의 ‘혁신적인 부채 상품 innovative debt products’ 이라는 표현을 정직하게 번역하자면 " 고리대금 사채업 상품 " 이다. 이 고리대금을 세계은행이 판매하고 있으니 세계은행이야말로 베니스의 상인인 셈이다. 샬록인가 ? 다윈은 << 비글호 항해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내가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1) << 팩트풀니스 >> 에서는 인구 증가 문제에 대해서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한다. " 생존자(유아 사망률 감소 현상)가 늘어날수록 인구는 줄어듭니다아 ! " 이 문장을 읽고 나는 괴랄한 감탄사는 내뱉었다. " 뙇, 시베리아 오호츠크에서 고래끼리 싸우는데 독도새우 등 터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다. " 그의 주장은 현대 의학의 발달로 유아 사망률이 감소하면 아이들이 증가한다는 소리. 그는 현대인들이 아이들을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하기 때문에 하나만 낳아 집중과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쌍팔련도 남조선 새마을 구호 같은 이 주장은 틀린 말이다. 아이들은 미래의 가임 인구'이므로 유아 사망률 감소는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구 증가의 요인이다.


저자는 1960년대 이집트의 유아 사망률이 30%에서 오늘날은 2.3%로 낮아져서 이집트 부모들은 모든 자녀가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대가족을 꾸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저자가 좋아하는 통계로 확인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누구냐 ? 찾아보았다. 2000년에 7천만 명이었던 이집트 인구는 2024년에 1억 600만 명으로 가파르게, 초고속으로, 졸라 빠르게 증가하였다. 한스 로슬링이여, 이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실 겁니껴 ? 또 다른 증거도 있다. 나이지리아 유아 사망률은 1980년대 나이지리아 유아 사망률보다 1/3 줄었지만 출산율은 미친듯이 치솟았다. 최근 UN 통계에 의하면 2017년 1억 9100만 명이었던 인구는 앞으로 2100년이 되면 8억 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4년 현재 나이지리아 인구는 2억 2,915만 2,217명이다).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 진짜 주장 " 은 신자유주의 찬양이다. 부자 나라가 그동안 가난한 나라에게 많은 원조를 했기에 빈곤층은 감소했고, 불평등도 해소되었으며, 서구 중심의 개발 원조 정책이 환경을 악화시키지 않았다는 ㅡ 주장.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 투자 결정과 관련해서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을 버리고, 오늘날 최고의 투자 기회는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프리카를 주로 언급했지만, 요즘 인도가 성장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투자처를 미국, 한국에 국한하지 말자 (팩트풀니스, 361쪽) "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말 : 서구의 자본 사업가들이여 ! 저개발 국가인 아프리카 대륙에 투자하라 ! 국유화를 민영화로 만들고, 빈곤층 노동자에게 값싼 임금을 제공하고 자원을 헐값에 사들여라. 내 주장이 지나친 과대 망상이라고 ? 이 책에 대해 극단적 찬사를 쏟은 미국인 2명이 있다. 빌 게이츠는 모든 졸업생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고, 오바마는 2018년에 읽은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선정했다. 공교롭게도 한 명은 신자유주의 경제 권력의 우두머리이고, 다른 한 명은 정치 권력의 우두머리였다. 또한 빌 게이츠는 자선이라는 탈을 쓴 약탈자이고 오바마는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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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을까 ?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제, 책장에 꽂힌 많고 많은 책 1000권 중에서 홍세화 에세이 << 빨간 신호등 >> 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 중계는 라디오 삼아 귀로만 듣고 침대에 앉아 눈으로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쓴 칼럼 모음집이다 보니 철 지난 잡지를 읽는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이곳저곳 밑줄을 그은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꽤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그가 어제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근 들어 홍세화와 정의당의 사망 선고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 멜랑꼴리하다. 홍세화, 노회찬, 심상정이 없는 진보의 미래란.......

문득 < 정의당 > 이라는 당명 자체가 잘못 지은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 금력, 완력이라는 단어에는 힘(力)이 붙는다. 다시 말해서 : 권ㅡ, 금ㅡ, 완ㅡ은 사람이나 사물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 단어는 무궁무진하다. 경제력, 이해력, 포용력, 사고력, 생활력, 호소력, 지구력, 순발력 심지어 매력도 힘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각자 이름이 다를 뿐 < 힘 > 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종류이다. 힘이 없는 것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기계를 움직일 수 없고, 공장을 가동할 수 없고, 세계를 움직일 수 없고, 변화를 꾀할 수 없다. 

힘이 낳은 사생아들이(수많은 단어들이) 각자 힘을 과시하며 자기 PR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 정의 > 라는 단어에는 힘(力)이 없다. " 정의력 " 이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파업이나 시위 현장에서 주먹 불끈 쥐고 " 정의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자 ! " 라거나 " 정의는 승리한다 " 라고 외치지만 힘이 없는 정의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공염불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정의라는 의로운 투지에 회의가 드는 것은 내 신념이 변질된 탓일까 ? 현대 정치는 정의에 의해 변화한다기보다는 정치력이 영향을 준다. 대한민국 보수는 반(反)정의'로 정권을 획득한 세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 민주 없고 국민의힘에 국민이 없는 것처럼, 정의당에 없는 것은 " 정의의 힘 " 이 아닐까 싶다. 정의는 힘이 없다. 중요한 것은 힘이 없는 정의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힘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시대의 어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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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블루레이] 쇼생크 탈출 : 리패키지 슬립케이스 한정판 (2disc: 4K UHD + 2D)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팀 로빈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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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치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어서 깜빵 생활도 나름 재미를 붙일 수 있다. 범죄자 새끼들이 슬기로우면 얼마나 슬기로울까 마는 이승에서의 온갖 쾌락을 다 포기하고 살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교도관들이 불시 검문하면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 나, 떨고 있냐 ? 그 캐릭터는 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일까. 감옥 영화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탈옥을 계획 중이거나 실행 중이다. 탈옥이란 자유에 대한 실행 의지이니 그의 불안은 자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가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에서 죄수들은 쇼생크 교도소의 규율에 적응하여 큰 불만 없이 수감 생활을 한다. 교도소의 규율 체제에 적응한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을 버리다 보니 절망도 없다. 삼시 세끼 밥 주고, 철통 보안에 누울 자리도 주니 태평이라. 그래서 영화 속 죄수들은 태평하다. 레드(모건 프리먼 분)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동료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이렇게 말한다. " 참 이상하지, 이 감옥 벽들 말이야.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곧 적응하게 되어버리고 어느 순간에는 의지하게 되거든. " 레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교도소의 규율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희망을 포기한 레드에게 앤디는 말한다. "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희망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반면에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앤디( 팀 로빈슨 분)는 밤마다 굴을 판다.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앤디는 자신의 10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항상 불안에 떤다. 이 불알은, 아.... 오타다. 이 불안은 앤디의 자유 의지 때문에 발생한 마음이다. 자유 의지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안도 없을 테니까.

이 영화의 원작이 수록된 단편집 << 사계 / 스티븐 킹 >> 는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짧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폐기 처분하려던 것을 출판사 편집장이 원고를 읽고 홀딱 반해서 작가를 설득하여 단편집으로 묶은 것이다. 장정일은 스티븐 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접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며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잊지 못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두고 두고 읽어도 명문이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종종, 불안을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추천하는 영화는 << 쇼생크 탈출 >> 이다. 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 불안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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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 잡지 << 키노 >> 는 전설이었다. 다른 잡지들이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설렁설렁 페이지를 채웠다면 < 키노 > 는 깨알 같은 글씨로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었다. 한국판 < 까이예 뒤 시네마 > 나 < 사이트 앤 사운드 > 를 표방한 잡지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족히 열흘은 걸렸다. 글 속에 사유가 난무한 만큼 철학도 난무했다. 글의 행간을 읽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철학의 계보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왜 철학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은 그 당시 편집장이었던 정성일에게 묻기 바란다. 영화 잡지 키노는 내가 유일하게 정기 구독한 잡지였으며 1호부터 폐간 99호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는 잡지이기도 하다. 
매월 15일 즈음에 우체국 배송으로 배달되는 종이 잡지는 마치 사랑하는 애인에게서 온 러브레터만큼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글자 하나하나 밑줄 그어가며 정독했던 잡지였다. 9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을 때 슬프다기보다는 서글프다는 이유로 옛 애인과 낮술을 마시며 죽은 잡지를 애도했다. 21세기는 키노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구나. 슬프도다, 슬프도다, 졸라 슬프도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허진호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의 말을 빌려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 라고 청승맞게 말했지만 나는 유지태의 천진난만한 순정이 촌스럽다고 느껴졌다. 사랑은 불변이라기보다는 가변의 속성을 가진 것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내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키노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정성일 문체를 교주의 정언 명령처럼 받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의 화려한 만연체에서 느껴지는 느끼함과 허세는 못 봐줄 만큼 형편이 없다. 정성일은 그 당시 유행하는 사상의 언어를 직수입하여 예쁘게 포장한 지식 소매업자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세는 작렬했고 유치는 뽕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잡지 << 키노 >> 에 대한 애정은 버릴 수가 없다. 나의 로테였으며, 나의 캐서린이었고, 나의 데이지였다. 이번에 키노 시네필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판이 제작되었다. 복간은 아니고 말 그대로 특별판인 모양이다. 잡지 표지에는 그 유명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 편이라 할 수 있는 << 화양연화 >> 의 장면이 박혀 있다.
인사말은 정성일의 느끼한 허세로 채워져 있다. 오랜 만에 맛보는 마블링 맛이다. 가끔, 이런 맛도 추억이 되곤 한다. 시대가 변했다. 종이 잡지는 사망 선고를 한 지 오래이고 정성일은 펜으로 작성한 기술 대신 마이크를 잡고 극장에서 구술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탓할 생각은 없다. 시대가 변하면 환경이 변하기 마련이고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하니 말이다. 한때 영화 평론을 종횡무진했던 정성일은 가고 이동진은 종편에서 생중계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로 등장하여 열을 올리고 있다. 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래저래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어째튼 키노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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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4-04-14 0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넘나 반갑습니다. 예전에 어떤 징징거리는 댓글을 달고는 후다닥 지워버렸던 생각이 나네요.ㅎㅎㅎ 암튼, 아는 분의 글이 화제의 글에 올라오는 거 보니까 좋아서 댓글 남겨요. 키노라는 잡지는 첨 들어봐요. 저는 정성일 전집같은 것을 산 적이 있는데 아직도 딱딱한 박스에 비닐 포장도 안 벗긴 상태로 책장 맨 밑에 버티고 있네요. 암튼 정성일도 그렇지만 저는 이** 그사람에 대한 말씀에 더 공감이 갑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4-04-15 10:29   좋아요 0 | URL
아이구, 라로 님.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아, 이거 코미디언 유행어 흉내를)
제가 요즘 알라딘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끔 들어오는데.... 라로 님 댓글을 보니 반갑네요. 뭐, 라로 님은 워낙 잘 지내시는지라 잘 지내시죠, 라는 인사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ㅋㅋㅋ

이동진, 보면 볼수록 가관이에요. 남의 나라 영화제를 왜 생중계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봉준호 말마따나 로컬 영화제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