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3741.html

 

 

 

 


 

이 기사 하나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그가 어려웠던 시절과 서울대 입학식과 결혼식도 지켜봤다. 맑고 쾌활한 사람이었으나 외로움을 숨길 수 없었던 이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사람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 달라는 것을 깎아서 25만 원을 주고 달방을 얻었다. 나는 속초 어느 모텔에서 장기 투숙자로서 1년을 버텼다. 이곳에 투숙한 달방 거주자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지명수배자이거나 노래방 아가씨이거나 유사 성산업 종사자와 그들을 감시하는 포주가 대부분이었다.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은 하룻밤이 지나면 떠나거나 장기 투숙자도 계절따라 모두 떠나갔지만 나는 떠나지 못했다. 떠난다는 행위가 때로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Sara Bareilles의 << 그래비티 >> 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던 곳도 이곳 달방이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창문을 열자 폭설로 인해 속초 도시는 마비가 되어 도로를 지나가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걸었다. 눈길에 빠졌다. 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깊이는 아찔했다. 오늘 문득 이 노래를 듣다가 그때 썼던 글이 생각났다. 시를 쓰려고 행을 나누었지만 부끄러워서 행갈이를 하지는 않았다. 촌스러운 신파이기는 했으나 그때 내가 느낀 상실은 신파라는 감정의 잉여를 거치지 않고서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바람이 그녀의 소식을 전했다. 나는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기를 원했다. 그녀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할 테니까. 그리고는 이내 후회했다. 그 여자는 승객이 붐비는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운 좋게 얻은 좌석 끝자리'였다. 이토록 붐비는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한쪽 곁을 온전히 비울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축복이었다. 그 여자를 사랑했다. 이제 다 옛일이 되었다.


 



Sara Bareilles's official music video for 'Gravity' 

 

 

나 죽어도 당신은 파릇파릇 꽃 피울 것이다 실뿌리 내리고 잎잎이 이슬 받으면 꽃 피어 열매 맺을 것이다 비록 손가락 걸며 맺은 사랑의 약속은 비열했으나 시계추처럼 당신에게 매달린 나의 신파를 비웃지는 마라 사람은 누구나 탯줄에 매달려 사랑을 구걸하던 生이 아니었더냐 어쩌면 미시령 고개 너머에 눈처럼 하얀 젖가슴을 가진 당신을 닮은 여자가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둠에서 절망을 읽으나 또 누군가는 어둠에서 낭만을 읽을 것이다 철없는 녀자 하나 있어 그 옛날의 당신처럼 내 옷자락 끝을 잡고 애원할 것이다 아, 이 세상 모든 꽃들이 시든다 해도 미시령 고개 아래 벌거숭이 빈집에서 병들어 죽어도 눈이 감기는 그 순간까지도 나의 검은 망막 속에 당신의 고운 얼굴 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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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12-2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길을 걸었다. 눈길에 빠졌다.‘ 이 구절 좋네요^^

시도 좋고 곰발님 글 너무 좋네요ㅎ 글 잘 쓰시는 분들 글을 읽으면 그 리듬감이 전해져서 좋습니다. 꼭 음악을 듣는 거 같아요ㅎ
 

 

 

 




​                          


가 장   편 한   곳  :












편하게 있어


 

 








                                                                                                       개그콘서트에서 재미있게 본 꼭지 하나가 << 편하게 있어 >> 라는 코너'였다. 밤만 되면 문어가 되는 주정뱅이 상사가 늦은 밤에 직장 부하 직원을 억지로 집으로 끌고 오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콩트다. 그 집 주인이자 직장 상사인 남자는 부하 직원을 배려한답시고 편하게 있어 _ 를 남발하지만 비교적 정신이 멀쩡한 꼴뚜기 부하 직원은 그 자리가 불편하다.

설상가상, 밤 문어이자 이 집 주인이자 직장 상사인 그는 잠자는 아내를 깨워 술 안주를 내오라고 주문도 한다. 간단한 안주로 뭐가 있을까, 해파리냉채 ?! 그럴수록 어린 꼴뚜기는 불편하다. 아, 불편하다. 불편해, 불편하다고요.                        편하게 있어 _ 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공간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공간 환경에서 가장 " 편한 곳 " 은 어디일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시계 초침을 거꾸로 돌려서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야 한다. 동의하신다면, 당신이 동의하신다면 나는 고통스러웠던 그때 일을 기꺼이 공개할 용의가 있다. 준비, 되셨습니까 ?

그날 나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후배가 또다시 낙방을 하자 위로주 한 잔 건네기 위해서였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젓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크게 쏘마 !  후배를 만나 술집으로 들어갔다. 한 배, 두 배, 세 배. 술잔이 빠르게 돌았다 x 2.  이미 늦은 밤이라 차편은 끊긴 지 오래여서 나는 후배에게 근처에 모텔이나 24시간 사우나가 있느냐고 묻자 후배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형님, 형님 같은 분이 모텔이나 사우나에서 잠을 주무시다니요. 형님처럼 잠자리가 까탈스러우신 분은 그런 곳에서는 잠을 설칩니다. 저를 위해 여기까지 내려오셨는데 모텔이라니요.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편하게 지내세요. 후배가 늦은 나이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후배의 간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여기서 술잔을 꺾기 아쉽다는 생각도 들어 후배 집에서 잠을 청하는 대신 그 모텔비로 술 한 잔 더하기로 했다. 우리는 24시간 횟집에서 싱싱한 문어숙회에 술 한 잔 더했다.  ㅡ 형님, 쫄깃쫄깃합니다아.                  흥이 오른 나는 농담을 섞어 말했다. ㅡ 문어는 죽어서야 비로소 탱탱한 허벅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슬픈 짐승이지. ㅡ 하하하하. 형님은 유머 감각도 탁월하십니다아.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이곳은 후배의 방. 거실에서는 후배와 어머니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이 들렸다. 사람 됨됨이를 알려면 그 부모나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안다는 소리가 딱이다, 응 ? 니들 나이가 몇인데 다 큰 외간 남자가 남의 집에서 잠이나 처자고 그러니. 사람들이 예의가 있어야지, 예의가 !                      후배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후배는 소리를 낮추라며 간절히 호소했지만 후배 어머니는 말풍선에 더 많은 공기를 불어넣었다(말풍선 내용은 굳이 이 자리를 빌려 설명하지 않겠다). 어찌나 매섭고 모진 잔소리였는지 후배고 나발이고 후배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 과민한 대장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괄약근은 온힘을 다해 성을 수성하려고 애를 썼으나 밀려드는 똥 덩어리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적어도 거실에 있는 두 모자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  그렇게 10분, 20분, 20분 3초, 20분 19초. 20분 19.3초. 20분 19.319초. 20분 19.21934562356초. 아, 아아아아. 다행히도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어서 후배 가족들은 후배만 남기고 모두 교회를 향했다. 잠시 후 후배가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사람 연기를 했다. 후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편하게 주무셨어요 ?  

어, 세상모르고 잠을 잤네그려. 나는 느긋한 목소리로 화장실의 위치를 물은 후에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화장실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0.000000000001초만 늦었어도 나는 분별력 있는 지성인이 아니라 분변력 없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내가 이날 얻은 교훈은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화장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 편하다 " 라는 형용사에서 어근으로 쓰이는 한자 편(便)은 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갈래로는 똥오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편하다는 말 속에는 똥을 눈치 보지 않고 싸야 편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내가 말머리 초입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가장 " 편한 곳 " 은 어디인가 ?  답은 변소(便所)다. 똥오줌 변(편할 편)에 곳 소. 그 아무리 동선을 고려하고 인체공학적 가구와 편리한 시설을 갖췄다고 해도 눈치 보며 똥을 싸야 한다면 그곳은 항상 불편한 곳이다. 화장실을 좀 사용해도 될까요 _ 라고 묻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정상적인 불편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 화장실의 역설 " 이다. 그 아무리 99칸짜리 대저택에 사는 집주인이라고 해도 그가 기껏 가질 수 있는 화장실은 고작 손바닥 크기이다. 운동장 만한 화장실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깐 말이다.


​■


본문과는 상관없는, 출처 없는 발문  ㅣ  ㉠ 혜민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속도를 멈추고 느리게 사유하자는 주장이다. 그래야 여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가 혜민을 비판하는 대목은 그가 언행을 완벽하게 불일치시킨다는 데 있다.  < 그 > 는 느린 사유가 핵심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느린 삶을 살지 않는다. 그는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25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소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SNS적 삶, 자신이 작성한 문자가 빛의 속도로 세계 곳곳을 파고드는 이 아찔한,  이 속도감 있는 삶을 그는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할까 궁금하다. 그는 브레이크 없는 차의 악셀레터를 신나게 밟으며 스피드를 즐기고 있지만 정작 하는 말은 물바가지에 이파리 하나 띄우며 천천히 마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혜민은 " 스피드 광 " 이다. 그렇기에 혜민은 " 스피치 꽝 " 이다. 또한 그는 스펙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저자의 스펙 때문에 하나 마나 한 소리로 가득 찬 이 책이 진리를 담은 책으로 둔갑하여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꽤나 모순이다.


㉡  영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는 이영애를 향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_ 라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이 대사가 하도 개똥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멍청아, 사랑은 변하는 거야 ! 반면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유지태를 향한 이영애의 변심은 사랑이 변한 탓이지 사람이 변한 탓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해서 변심(變心)을 변신(變身)으로 착각하고는 한다. 心은 가변적이지만 身은 불변에 가깝다. 이보다 쉬운 비유를 들자면 20세기 김밥은 소울푸드였다.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점심에 김밥 한 줄 먹었다고 말하면 대뜸 밥을 먹어야지 김밥 먹어서 되겠어 _ 라는 대답을 자주 듣는다. 21세기 김밥은 밥도 아닌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밥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변한 것은 김밥이 아니라 김밥을 둘러싼 환경이다. 서울시 분뇨차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라는 명곡을 망쳤듯이 김밥천국이 김밥의 아우라를 망쳤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은 < 책 > 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독자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서(성공학) 저자를 자신의 인생 멘토로 설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한때 21세기 청춘 멘토로서 열광적 찬사를 얻었던 안철수의 꼬라지를 보라.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삶을 통해 인생을 바꿨다는 내용을 담은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게으름뱅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잠깐의 변화는 가능하지만 길게 보면 도루묵이다. 영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향해 "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 " 라고 물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더 근사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_ 라는 질문은 멍청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느 _ 라는 질문은 정치적이고 철학적이어서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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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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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는 인생이 종종 거제도 권사님이 한 달 건너 한 달, 다달이 보내주는 택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거제도 권사님의 애틋한 시스터후드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셨다. 가을에 잡힌 전어는 어머니의 손맛을 거치면 봄에 잡힌, 아니 여름에 잡힌 전어 맛이 났고, 겨울에 잡힌 숭어는 달다 하는데 어머니가 요리를 하면 여름에 잡힌 숭어 맛이 나서 갯내가 진동했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어느새 모래도 씹어먹을 만큼 맛없는 음식에 대한 내성을 기르게 되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여름 숭어도 겨울 숭어처럼 맛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어머니도 알고 있다. 요리 솜씨가 형편없는 이에게 생선만큼 까탈스러운 재료도 없다. 그래서 어머니가 선택한 요리 방식은 물고기보다는 육고기 위주로 양념이 필요 없이 굽거나 맹물에 푹 삼아 익히는 백숙 요리였다.

삼겹살도 구워 먹고, 생선도 구워 먹고, 조개도 구워 먹고, 닭이나 오징어, 꼴뚜기 따위는 백숙으로 소비되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자매처럼 지냈던 권사님이 고기 잡는 사위 따라 거제도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의 근심이 늘어났다. 거제도로부터 처음 도착한 택배는 살아 있는 문어였다. 비명 소리에 나가보니 거대한 문어가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오, 오오오옥토퍼스닷 !                           갓 태어난 갓난애 크기만 했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펄럭이(리트리버)는 뒷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펄럭이는 몸무게가 34kg를 자랑하는 늑대의 후손이었으나 왕문어를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물이 담긴 비닐봉지에 다시 넣었지만, 어머니는 살아 있는 문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시름에 빠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문어 머리를 뒤집어서 내장을 꺼낸 후 손질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러운 결과인 셈이다. 더군다나 죽은 생선만 손질하던 어머니가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질해야 하다니(기억은 나지 않지만 문어를 손질해서 먹긴 먹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었다. 문제는 거제도 권사님이 다달이 택배를 보낸다는 데 있었다.

자연 그대로, 잡힌 그대로의 숭어, 방어, 대구 따위가 도착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시름도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감사 전화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권사님, 보내주신 숭어가 어쩜 그리 다디달아요.  이 귀한 생선을 이리 받기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네, 네네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은총이......       하지만 어머니의 물고기 간증과는 달리 가족은 숭어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은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눈치채신 것일까 ?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을 때에는 항상 문을 닫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결국 생선들은 냉동고 속에서 얼어 죽을 동태가 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들의 실종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되기도 하고, 따스한 관심은 근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르트르보다는 성정이 고와서 타자가 지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랭보는 나는 타인이다 _ 라고 말했지만 랭보보다는 삐뚤어져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사르트르와 랭보 사이, 그 어중간한 위치가 좋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귀찮더라도 달달이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택배를 열어 생선을 손질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 전화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내주신 문어가 어쩜 그리 싱싱하답니까. 택배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다 납디다. 호호. 네, 네네네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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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라 귀여운 뒷모습 같으니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7 12:04   좋아요 0 | URL
쇼 님이 걸을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 녀석의 뒤태를 보셨어야 하는데..
 
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우정은 도모하겠으나 총은 버리지 않겠다 :

 


 


 

 

 


 

미생이 기만적인 이유



                                                                                                      미생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  직장은 전쟁터'다. 이 웹툰은 징글징글한 직장의 정글, 나아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득권에 대한 찬사와 옹호'이다.

그러니까 일터 노동자 시선으로 자본 정글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자본가 시선(자본이라기보다는 자본에 세뇌된 익숙한 논리)으로 체제를 옹호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 직장은 전쟁터 " 라는 프레임은 자본-욕망'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프레임 설정 자체부터 글러먹었다는 뜻이다. 일터를 전쟁터로 환유하는 순간, 이 기본 설정 때문에 직장인은 총을 든 병사가 된 마음으로 일터를 향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는 이렇게 말하리라. 노동자여 ! 보았는가. 직장은 전쟁터이니 총을 든 병사처럼 죽기살기로 일해라 !  이런 프레임으로 시작되는 작품이 많이 나올수록 좋아할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이건희'다.

그가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_ 라고 주문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재벌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재벌은 가족애를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에 함몰된 집단이라는, 흔해빠진 클리셰 덩어리로 포장된 드라마는 대중이 재벌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시청자는 재산을 놓고 서로 싸우는 재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불행하지 않다. 돈이 많다고 해서 그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으나 행복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로 살 수는 있다. 이처럼 재벌 집단을 불행한 부류로 묘사하는 드라마는

불알 두 쪽이 전부인 가난뱅이 시청자에게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는 자위를 하게 만들지만, 이 자위는 허망에 가까운 기망이다. 이런 드라마는 재벌이나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집단을, 그 체제를 옹호하는 기능으로 작용한다. 직장은 전쟁터야 _ 라거나, 돈만 알고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재벌은 얼마나 불쌍해 _ 라는 인식은 오히려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부자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병 줍는 노인이 우리 박근혜, 불쌍해서 어쩌냐 _ 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미생 >> 원작자인 윤태호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이 작품은 자본 정글을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라 자본 정글을 옹호하는 작품이다. 이 웹툰은 총을 버리고 잃어버린 인간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여기는 전쟁터이니 총은 들되 우정을 쌓으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폭력은 지양하고 평화는 지향하되 방어 차원에서 총기는 소지해야 된다는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미생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덧대기 ㅣ 본문이 짧아서 본문과는 상관없는 글을 첨부한다(어른이 된다는 것을 주제로 글을 하나 써야 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생각의 큰 줄기를 엮는다). tvN 프리미엄 특강쇼 << 어쩌다 어른 >> 은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쇼'다. 이 전제는 나이가 들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자격 조건은 반드시 어린이'라는 상대적 계층이 존재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 만약에 어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른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어린이라는 말은17세기부터 써온 말인데 중세 국어에서 어리다는 의미는 " 나이가 적다 " 는 것이 " 어리석다 " 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 대접을 했다고 한다. 필립 아리에스의 의하면 어린이는 근대의 발명품이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어른이라는 개념은 근대가 만든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개념은 허구'다. 나이 가지고 유세를 떠는 인간만큼 추잡한 인간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어쩌다 어른이 된 강사가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위로하는 어쩌다 어른 특강쇼가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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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2017-12-2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덧글 답니다. 저는 이 만화 정말 토나왔거든요. 직장인들이 미생 보면서 찬사하는 걸 보고 진짜 의아했습니다.
 

 

 

 

 

 

 

 

 

 

 

 

 

 

 

                                                   

 

촛불 이후,  이제 와서  고백하거니와   :





 


나는 친문보다는 비문이 좋다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에서 나를 사로잡은 문장은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이다. 이 문장은 문법에 취약한 사람이 판단해도 뜻을 알 수 없는 어색한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고 ?! 

바르트는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나는 (배)가 아프다, 나는 (팔)이 아프다나는 (다리)가 아프다 _ 같은 문장 구성에서 괄호부 안에 들어갈 대상으로 1인칭 화자의 신체 부위가 아닌 타자인 " 그 사람 " 을 넣는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바르트가 이 비문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아와 타자를 동일시해서 그 경계가 무너지는 증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아는 그 사람이 아프면 내 팔이, 내 다리가, 내 배가 아픈 것처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내 오장육부이다.  < 흉터 > 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기호라면 < 눈물 > 은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한 기호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팔이 잘려나가는 아픔 때문에, 다리가 뽑히는 통증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다. 그 통증은 마인드보다는 피지컬의 영역이다. 바르트가 사랑의 아픔은 본질적으로 환상통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바르트는 비문의 힘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징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비문을 경멸하며 기계적으로 정문(正文)을 강조할 때마다 쓸쓸한 생각이 든다. 언어는 순결할 때보다 오염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하나같이 히마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공교롭게도 문학을 다루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 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련다. 이런 빙딱 ~                 페르난도 페소아 또한 << 불안의 책 >> 에서 이 사실을 지적한다. 발췌문이 조금 길지만, 내 이웃들이 그 찰나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돼먹지 않은 무뢰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러니까, 에헴. 교양인이다.

 

나의 글쓰기 체계는 두 가지 원칙에 의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훌륭한 고전주의 작가들의 전통을 좇아 나는 즉시 두 원칙을 좋은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는다. 첫째, 느끼는 것을 말할 때는 정확히 느낀 대로 쓴다. 분명하다면 분명하게, 모호하다면 모호하게,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게 쓴다. 둘째, 문법은 도구일 뿐, 법칙이 아님을 명심한다......(중략) 문법은 언어 사용을 규정하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동사에는 자동사와 타동사가 있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느낀 것을 사진처럼 남기기 위해 자동사와 타동사를 일부러 바꾸어 쓰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불분명하게 보는 대신 그렇게 한다. 내가 존재한다고 말하기 위해 " 나는 존재한다 " 고 말할 것이다. 내 영혼의 개별적인 실체성을 강조할 때는 "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 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성스러운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 존재한다 " 는 자동사를 타동사로 바꾸어 " 나를 존재시킨다 " 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문법을 초월한 승리자로서 " 나는 존재시킨다 " 고 말하리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문법에 복종하라


불안의 책, 118쪽



페소아의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롤랑 바르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문법에 복종하는 대신 문법을 초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판사에게는 헌법이 최고 권력이고 군인에게는 군법이 최고 권력이듯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법이 최고 권력이지만 롤랑 바르트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조까라마이싱을 외쳤던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문장은 종종 문법을 초월할 때 발생한다. 셰익스피어 문학이 지금에서야 위대한 문학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 당시에는 평론가들로부터 비문투성이라는 조롱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김애란의 << 바깥은 여름 >> 이라는 소설을 비판하는 대목은 김애란의 문장은 날것이 주는 비릿한 맛이 휘발되었다 _ 라는 점이다. 김애란 문장은 모양만 예쁜 쿠키 과자 같다. 그것은 발효된 숙성이 아니라 설익은 복종이다. 문장이 문법에 포섭되는 순간, 생명력은 상실된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문단 마피아들이 권력을 얻는 이유는 문법도 법이기 때문이다. 법을 장악하는 자는 권력을 얻는다. 신춘문예를 목적으로 작품을 쓰는 문창과 졸업생들의 문체는 문법적으로 나무랄 데 하나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서서 죽은, 딱딱한 나무 같다. 그들에게서는 날것이 주는 맛이 없다.

언제부터 문학이 커피 향이나 딸기 향만 나는 장르였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냄새는 배제된 채 향기만 강조하는 문학은 살롱 문학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냄새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독한 향수만 뿌려대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 풍각쟁이다. 요즘 유통되고 있는 한국 문학에서는 비린내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모두 다 방부제 처리가 된 모양이다. 문학은 위생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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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4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는 악취를 뿜어내는 글을 썼어요. 기성 권력과 독자들 모두 까는 보들레르의 패기가 대단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5 15:30   좋아요 0 | URL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신 보드레르고 신랄하게 문단으로부터 조롱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비문과 오문이 많다는... 어디서 들었는데... 아닌가... ㅎㅎㅎㅎ 혹시 아시나요 >

transient-guest 2017-12-15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작가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특정 문단이나 학연, 연줄을 통해 등단하는 경우도 많고 일단 천편일률적인 소설작법과 접근도 그런 면이 있구요. raw한 작품이 나오려면 그만큼의 연단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인생경험도, 준비도, 무엇도 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길만 밟고 나오니 다양한 느낌의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제 편견은 인정합니다만, 그런 면에서 문창과의 창궐에 대한 문제의식이 저에겐 늘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5 15:31   좋아요 1 | URL
전 요즘 작품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서 굳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성이 없어요.주제도 거의 다 비슷하고... 서사의 개성도 없고, 치열함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