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장 편 한 곳 :
편하게 있어
개그콘서트에서 재미있게 본 꼭지 하나가 << 편하게 있어 >> 라는 코너'였다. 밤만 되면 문어가 되는 주정뱅이 상사가 늦은 밤에 직장 부하 직원을 억지로 집으로 끌고 오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콩트다. 그 집 주인이자 직장 상사인 남자는 부하 직원을 배려한답시고 편하게 있어 _ 를 남발하지만 비교적 정신이 멀쩡한 꼴뚜기 부하 직원은 그 자리가 불편하다.
설상가상, 밤 문어이자 이 집 주인이자 직장 상사인 그는 잠자는 아내를 깨워 술 안주를 내오라고 주문도 한다. 간단한 안주로 뭐가 있을까, 해파리냉채 ?! 그럴수록 어린 꼴뚜기는 불편하다. 아, 불편하다. 불편해, 불편하다고요. 편하게 있어 _ 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공간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공간 환경에서 가장 " 편한 곳 " 은 어디일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내 인생의 시계 초침을 거꾸로 돌려서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야 한다. 동의하신다면, 당신이 동의하신다면 나는 고통스러웠던 그때 일을 기꺼이 공개할 용의가 있다. 준비, 되셨습니까 ?
그날 나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후배가 또다시 낙방을 하자 위로주 한 잔 건네기 위해서였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젓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크게 쏘마 ! 후배를 만나 술집으로 들어갔다. 한 배, 두 배, 세 배. 술잔이 빠르게 돌았다 x 2. 이미 늦은 밤이라 차편은 끊긴 지 오래여서 나는 후배에게 근처에 모텔이나 24시간 사우나가 있느냐고 묻자 후배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형님, 형님 같은 분이 모텔이나 사우나에서 잠을 주무시다니요. 형님처럼 잠자리가 까탈스러우신 분은 그런 곳에서는 잠을 설칩니다. 저를 위해 여기까지 내려오셨는데 모텔이라니요.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편하게 지내세요. 후배가 늦은 나이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후배의 간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여기서 술잔을 꺾기 아쉽다는 생각도 들어 후배 집에서 잠을 청하는 대신 그 모텔비로 술 한 잔 더하기로 했다. 우리는 24시간 횟집에서 싱싱한 문어숙회에 술 한 잔 더했다. ㅡ 형님, 쫄깃쫄깃합니다아. 흥이 오른 나는 농담을 섞어 말했다. ㅡ 문어는 죽어서야 비로소 탱탱한 허벅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슬픈 짐승이지. ㅡ 하하하하. 형님은 유머 감각도 탁월하십니다아.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이곳은 후배의 방. 거실에서는 후배와 어머니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이 들렸다. 사람 됨됨이를 알려면 그 부모나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안다는 소리가 딱이다, 응 ? 니들 나이가 몇인데 다 큰 외간 남자가 남의 집에서 잠이나 처자고 그러니. 사람들이 예의가 있어야지, 예의가 ! 후배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후배는 소리를 낮추라며 간절히 호소했지만 후배 어머니는 말풍선에 더 많은 공기를 불어넣었다(말풍선 내용은 굳이 이 자리를 빌려 설명하지 않겠다). 어찌나 매섭고 모진 잔소리였는지 후배고 나발이고 후배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 과민한 대장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괄약근은 온힘을 다해 성을 수성하려고 애를 썼으나 밀려드는 똥 덩어리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적어도 거실에 있는 두 모자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 그렇게 10분, 20분, 20분 3초, 20분 19초. 20분 19.3초. 20분 19.319초. 20분 19.21934562356초. 아, 아아아아. 다행히도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어서 후배 가족들은 후배만 남기고 모두 교회를 향했다. 잠시 후 후배가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사람 연기를 했다. 후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편하게 주무셨어요 ?
어, 세상모르고 잠을 잤네그려. 나는 느긋한 목소리로 화장실의 위치를 물은 후에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화장실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다. 0.000000000001초만 늦었어도 나는 분별력 있는 지성인이 아니라 분변력 없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내가 이날 얻은 교훈은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화장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 편하다 " 라는 형용사에서 어근으로 쓰이는 한자 편(便)은 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갈래로는 똥오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편하다는 말 속에는 똥을 눈치 보지 않고 싸야 편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내가 말머리 초입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가장 " 편한 곳 " 은 어디인가 ? 답은 변소(便所)다. 똥오줌 변(편할 편)에 곳 소. 그 아무리 동선을 고려하고 인체공학적 가구와 편리한 시설을 갖췄다고 해도 눈치 보며 똥을 싸야 한다면 그곳은 항상 불편한 곳이다. 화장실을 좀 사용해도 될까요 _ 라고 묻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이 정상적인 불편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 화장실의 역설 " 이다. 그 아무리 99칸짜리 대저택에 사는 집주인이라고 해도 그가 기껏 가질 수 있는 화장실은 고작 손바닥 크기이다. 운동장 만한 화장실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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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는 상관없는, 출처 없는 발문 ㅣ ㉠ 혜민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속도를 멈추고 느리게 사유하자는 주장이다. 그래야 여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가 혜민을 비판하는 대목은 그가 언행을 완벽하게 불일치시킨다는 데 있다. < 그 > 는 느린 사유가 핵심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느린 삶을 살지 않는다. 그는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25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소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SNS적 삶, 자신이 작성한 문자가 빛의 속도로 세계 곳곳을 파고드는 이 아찔한, 이 속도감 있는 삶을 그는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할까 궁금하다. 그는 브레이크 없는 차의 악셀레터를 신나게 밟으며 스피드를 즐기고 있지만 정작 하는 말은 물바가지에 이파리 하나 띄우며 천천히 마시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혜민은 " 스피드 광 " 이다. 그렇기에 혜민은 " 스피치 꽝 " 이다. 또한 그는 스펙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저자의 스펙 때문에 하나 마나 한 소리로 가득 찬 이 책이 진리를 담은 책으로 둔갑하여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꽤나 모순이다.
㉡ 영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는 이영애를 향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_ 라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이 대사가 하도 개똥 같은 소리처럼 들려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멍청아, 사랑은 변하는 거야 ! 반면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유지태를 향한 이영애의 변심은 사랑이 변한 탓이지 사람이 변한 탓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해서 변심(變心)을 변신(變身)으로 착각하고는 한다. 心은 가변적이지만 身은 불변에 가깝다. 이보다 쉬운 비유를 들자면 20세기 김밥은 소울푸드였다.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점심에 김밥 한 줄 먹었다고 말하면 대뜸 밥을 먹어야지 김밥 먹어서 되겠어 _ 라는 대답을 자주 듣는다. 21세기 김밥은 밥도 아닌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밥이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변한 것은 김밥이 아니라 김밥을 둘러싼 환경이다. 서울시 분뇨차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라는 명곡을 망쳤듯이 김밥천국이 김밥의 아우라를 망쳤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은 < 책 > 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독자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서(성공학) 저자를 자신의 인생 멘토로 설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한때 21세기 청춘 멘토로서 열광적 찬사를 얻었던 안철수의 꼬라지를 보라.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삶을 통해 인생을 바꿨다는 내용을 담은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게으름뱅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잠깐의 변화는 가능하지만 길게 보면 도루묵이다. 영화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향해 "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 " 라고 물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더 근사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_ 라는 질문은 멍청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느 _ 라는 질문은 정치적이고 철학적이어서 깊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