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생리
옛날에는 월경 중인 여성은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월경 중인 여성은 교회 바깥에서 머물러 있도록 지시받았다. 남성의 피가 희생과 용맹을 의미했다면 여성의 피는 불결과 불경을 의미했다1). 조국을 위해 피흘린 숭고한 주체는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다.
이처럼 피에 대한 해석에도 남성과 여성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했다.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피는 가부장제 담론 안에서 남성의 피보다 더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진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킹 초기 장편소설 << 캐리 >> 에서 캐리는 왕따 학생이다.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배제되고 삭제된다는 점에서 불가촉천민에 가깝다. 소설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캐리가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장면은 이 소설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장편소설 << 캐리 >> 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고 풍부한 풍미를 갖춘 문학적인 텍스트'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여성 성기를 " 돼지 " 라고 지시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여성 성기를 닮은) 조가피를 화폐로 사용하던 시대에도 조가비 화폐를 돼지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여성 성기를 돼지로 비유하는 데에는 돼지가 더러운 동물을 대표하는 짐승2)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 습속은 오늘날에도 남아서 독일어 암퇘지스러움을 뜻하는 단어 " sowishness " 가 월경을 뜻하는 속어로 쓰이고 있다. 캐리는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순간 더러운 년이 되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더러운 돼지 피를 뒤집어쓴 캐리는 더 이상 인격체를 갖춘 신체라기보다는 짐승의 몰골을 한 비체로 취급된다.
여기서 < 비체 > 는 非體 (아닐 비)이면서 동시에 卑體( 비천할 비) 이다. 이러한 흔적은 한국 남자들이 여성을 비난할 때 흔히 사용하는 " 너, 오늘 생리하니 ? " 라는 표현과도 연결된다. 이 표현에는 여성의 피를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담겨 있다. 몇 달 전, 대한민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외상을 겪은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행위의 심리는 이상 배출된 fluxes 피와 멍으로 인해 피해자의 인격체가 비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해자들이 보기에 피해자는 생명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라기보다는 더러운 오물 덩어리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청결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내에 있어야 할 물질(똥, 오줌, 침,고름,기생충,피,생리혈)이 외부로 fluxes 되어 신체가 오물로 오염이 되면 인간으로서의 주체는 급격하게 비체로 전환된다. 그것들은 은밀하게 배출되어 처리해야 될 금기-들이다. 내가 이국종 교수를 비판하는 지점은 그가 북한 병사의 배를 갈라서 체내에 있는 물질을 적나라하게 세상 밖으로 브리핑했다는 데 있다. 부상을 당한 북한 병사의 몸은 기생충과 분변 그리고 피 범벅인 이미지화된다. 기생충이 장을 뚫고 나온다는 말은 영화 << 에이리언 >> 에서 외계 생명체가 사람 몸을 뚫고 나오는, 그 유명한 공포 이미지를 " 우라까이 " 했다.
그가 기만적인 이유이다. 북한 병사는 주체에서 비체로 전환된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점령할 때 내세우는 변명을 합리화한다. 제국이 식민지를 침탈하면서 내세우는 것은 위생과 청결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국종의 브리핑은 매우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해 발설된 정치적 언술이다. 그는 청결한 남한을 강조하기 위해 불결한 북한을 전시한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국종 교수에게 묻고 싶다. 기생충이 환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나 ? 몸 길이가 27cm나 되는 기생충은 한국인의 몸에서는 볼 수 없다 _ 라는 말은 정말 사실인가 ?
이국종 브리핑 논란과 그것을 소비하는 언론을 지켜보고 있자니 캐리에게 돼지 피를 뒤집어씌우고는 낄낄거렸던 잔인한 학생들이 오버랩된다.
1) 남성의 피가 계급을 초월하여 희생과 용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귀족의 피는 성스럽고 천민의 피는 더럽다.
2) 자연 속에서 자란 돼지는 피부가 예민하기 때문에 햇볕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 진흙에 뒹구는 버릇이 있는데, 돼지가 가축화되면서 진흙이 없는 사육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임시 방편으로 진흙 대신 배설물을 이용하게 되었다. 더러운 동물이라는 오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