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위로가 고문이 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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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레코드판), 뾰족구두 하이힐, 단검, 만년필 촉의 공통점은 끝이 뾰족하다는 데 있다. 뾰족구두가 사람 몸에 생채기를 낼 수는 없지만 나머지는 치명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이 단어들의 뿌리를 찾다 보면 stylus가 母語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생김새와 쓰임새가 제각각이어서 서로 남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한배에서 낳은 형제자매인 경우다. stylus이라는 낱말은 철필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끝이 뾰족한 쇠붓이다. 옛날에는 끝이 뾰족한 필기도구로 잉크를 찍어 글이나 그림을 그렸으니깐 말이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낱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style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 오, 스타일 쥑이네 ~ " 라는 표현은 스타일이라는 녀석이 생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성질머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말이다. (치명적 매력의) 스타일은 " kill " 과 관련이 있다(dressed to kill, kill heel)

필름 느와르 장르 영화에서 " 치명적인 여자 " 라는 뜻을 가진 팜 파탈(femme fatale)은 항상 스틸레토힐(끝이 날카로운 하이힐)을 신고 등장한다. 영화 << 원초적 본능 >> 의 그 유명한 장면에서 치명적이었던 것은 팜 파탈'인 샤론 스톤의 무릎과 무릎 사이가 아니라 뾰족구두'이다.  만약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팜 파탈이 아니다(나는 수많은 느와르 영화를 섭렵했지만 단 한번도 팜 파탈이 단화를 신고 등장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탐정은, 그리고 관객이었던 당신은 보자마자 스타일이 죽이는 여성에게 유혹당한다.  우리는 그 유혹이 치명적인 위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지게 된다.

이 욕망은 에로스라기보다는 타나토스적 본능에 가깝다.  느와르 영화에서 스틸레토힐을 신은 여자는 스틸레토(단검)를 숨긴 악녀다.  이처럼 스타일은 날카로운 형질을 내포하고 있다. " 스타일이 좋다 " 는 것은 결국 " 날카롭다 " 는 뜻이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사골 곰탕 맛이라기보다는 칼칼한 생태탕 맛에 가깝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문장은 문체에 의해 완성된다. 문체가 style이라는 점에서 좋은 문장의 기본은 날카로움이다. 내 기준에 있어서 좋은 문장은 " 모필(毛筆) " 로 쓴  문장보다는 " 철필(鐵筆) " 로 새긴 문장이다. 붓으로 그려진, 생채기 없는 문장은 돼지비계를 기름장에 묻혀 마요네즈에 찍어 먹을 때 느끼게 되는 맛'과 비슷하다.

이기주, 김난도, 혜민의 책을 읽을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컹 !  식감이 형편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책들을 읽으면 입덧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스타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 위로 " 가 섹스, 공포와 함께 매우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독자를 위로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들은 위로가 잘 팔리기 때문에 당신을 위로할 뿐이다. 만약에 위로가 상품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독설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고문실에서 고문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계기는 고문 가해자의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말'이라고 한다.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해자의 친절이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내일이 없는 사형수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위로를 하는 행위는 고문이다.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이 달콤한 위로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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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을 왜곡하는 낙관주의는 약자가 처한 문제를 외면하고 방관합니다. 그런 낙관주의자들은 그럴싸한 말만 내세울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3 09:09   좋아요 0 | URL
낙관주의보다는 차라리 비관주의가 낫죠.. ㅎㅎ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 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옷   과      의   자   는      닮   은      점   이      많   다  :



 





롱   패   딩



 

우리는 겉모양새가 사실상 우리의 존재방식이다

가면이 곧 얼굴인 것이다

- 수전 손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주정뱅이 클럽 멤버들이 필동의 노포를 돌아다니며 술독에 빠져 있던 그날, 누군가는 새벽 2시부터 거리에 서서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이거, 실화냐 ?                  느닷없이 찾아왔던 강추위를 생각한다면, 아아 !  극한의 기다림이 아닐 수 없다. 아침 9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라이선스 상품인 `구스 롱 다운점퍼(일명 `평창 롱패딩`)을 구매하기 위해 오돌뼈도 아니면서 오돌오돌 떨었던 사람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영화 << 월드 워 z >> 에 나오는 좀비처럼 백화점 안으로 쏟아졌다고 한다. 몸에 맞는 사이즈를 구매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이 현상은 평창 올림픽에 대한 열기는 아니다(평창 올림픽 티켓은 절반도 못 팔렸다고 한다).

평창 롱패딩 가격이 시중에 유통되는 타 상품보다 싸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했던 나이트클럽 삐끼 혹은 대리운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온성 때문에 입거나 운동선수들이 체온 유지를 위해 입던 기능성 운동복이 이제는 겨울철 생활복으로 바뀌었으니 제2의 노스페이스 사태'라 할 수 있다. 등골브레이커의 시작을 알린 노스페이스를 입은 학생들이 앵무새처럼 쏟아냈던 말이 예뻐서 입냐, 추워서 입지 _ 라는 변명이었는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이번 겨울에 롱패딩을 구입해서 입은 이들의 한결같은 소리도 예뻐서 입냐, 추워서 입지 _ 라는 소리'였다.

누가 보면 대한민국은 해발 3000 미터 아래 학교가 있고 영하 40도를 웃도는 북극 날씨여서 앞으로는 모르는 길을 묻기 위해 앞서 가는 양복 입은 신사의 어깨를 두드렸더니 팽귄이 고개를 돌렸다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하것어요, 니미.                 나의 과격한 반응에 롱패딩-성애자가 이렇게 대꾸했다. 취존입니다아.                      그는 취향과 유행을 같은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취향과 유행은 같은말이 아니라 반대말에 가깝다. < 유행 > 은 집단 내 포섭 욕망이고, < 취향 > 은 집단과의 결별과 차이를 뜻한다.  김경은 <<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재미있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대세를 따르는 행위는 취향이 아니라 유행이다. 유행은 몰개성적이며 무취향적이다. 롱패딩을 입고 거리를 자신 있게 워킹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직립보행하는 애벌레를 보고 있는 듯한 착시는 나의 눈병이 낳은 비극일까 ?  유행한다 싶으면 " 빠숑 레밍 " 처럼 달려드는 욕망을 볼 때마다 패션 파시즘을 연상케 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듯이 평창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기념상품인 롱패딩도 한철일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일인일옷(1인1옷)이었던 2002 월드컵 로고가 박힌 빨간 티셔츠를 아직까지 입고 있는 이 없고,  88올림픽 호돌이 기념 티셔츠 또한 그렇다. 이런 옷들은 대부분 과테말라에서나 빈티지스럽게 유통되고 있을 것이다.

이 상품은 디자인과 스타일 면에서도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가성비 측면에서도 형편없다. 가장 촌스러운 옷은 한때 졸라 유행했던 옷이다. 고가인 옷은 유행보다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옷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의자와 옷은 닮은 점이 많다. 디자인과 스타일이 뛰어난 의자일수록 불편하다. 예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의자는 대부분 불편하다. 옷도 마찬가지다. 의자와 옷은 앉았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어야 미학적으로 뛰어나다. 옷이 태도를 만든다. 편한 느낌은 자세를 망가뜨린다.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 디자인과 스타일이 뛰어난 복장은 몸에 불편하다.

그것을 견디줄 아는, 그 결핍을 충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멋쟁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머리와 발목만 빼고 온몸을 감싼 롱패딩 패션은 실패한 스타일이다. 겨울철에는 따듯하게 보이는 옷보다 약간 춥게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이 멋있다. 입만 열면 명풍 타령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청바지 하나를 사도 몇 십만 원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봄에 입는 바람막이 옷도 백만 원을 주고 사 입는 녀석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는데 티셔츠를 청바지 안에 넣어 입는 것이었다. 내가 젊은 놈이 왜 티셔츠를 왜 바지 안에 넣어 입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잖아.

나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이고, 이 등딱아 !  봄바람에 얼어죽겠구나  


-


덧대기   ㅣ     스타일은 고가의 명품(재료)을 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네 건달이 금목걸이를 두른 채 백구두에 아르마니 정장을 입는다고 해서 우아해 보일 리는 없다.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 >> 을 20자로 줄이자면 이렇다  :  예술 하려면 돈이 좀 필요해 !  어찌 보면 궁상맞기도 하고 속물 같기도 한 넋두리이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 >> 은 우아하다.  그는 궁상맞은 재료를 우아하게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예술가'다. 글을 쓰는 작가는 문체가 곧 스타일이다.  스타일이라는 낱말은 원래 글을 쓰는 도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양피지 위에 쓰여진 글이든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위에 쓰여진 글이든 중요한 것은 문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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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21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롱패딩 한 벌 때문에 등골 휘는 사람들이 더 생기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1 14:01   좋아요 0 | URL
이미 10년 전부터 북창동이나 장안동 가면 겨울 밤 거리에서 늘 보던 패션입니다.
삐끼들이 취객 호객할 때 항상 저 옷을 입거든요.
그래서 저는 롱패딩하면 항상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게 핫해 핫해 할 줄은 몰랐습니다.

수다맨 2017-11-2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행‘ 은 집단 내 포섭 욕망이고, ‘취향‘ 은 집단과의 결별과 차이를 뜻한다... 이 글의 내용을 가장 간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표현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1 14:48   좋아요 0 | URL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행은 집단 내 포섭 욕망이고
취향은 내집단 탈주 욕망이다.

이런 표현이 적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품라벨 꼼꼼 가이드 - 건강한 식품선택을 위한
강희진 외 지음 / 우듬지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                                               


라 면 에  김 치 가  없 었 더 라 면  :



 

 

 

 



 

푸드 나쇼날리즘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 정답은 김치란다. << 식품 라벨 꼼꼼 가이드 >> 라는 책에서 가이드가 내놓은 김치에 대한 정의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설이니 불만을 품고 토를 다는 놈은 배반, 배신, to부정사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이 설명이 맞는다면 김치는 불로초를 능가하는 음식이다. 김치 먹고 암을 극복했습니다아 ~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과다 나트륨 섭취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치(김치를 짠지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김치는 소금 덩어리 짠 음식이다)가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춘다는 설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짠맛이 비만과 혈압을 높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김치는 비만과 혈압을 높이는 주요 음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서는 나트륨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고 지적한다는 데 있다.

 


서울환경연합이 밝힌 라면 한 개당 평균 나트륨 함량은 2,075mg으로 우리나라 1일 성인 섭취 상한선인 3,500mg의 59%에 해당하며,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1,968mg을 훌쩍 넘어선다. 라면 한 개를 먹는 것만으로도 1일 상한선을 넘어서는 나트륨을 섭취하게 되므로 영양성분표에서 나트륨 함량을 꼭 확인하자.( 59쪽)

 

왜 이 책의 저자들은 음식을 섭취할 때 나트륨 함량을 꼭 확인하자면서 김치의 과다 나트륨 함량에 대한 지적은 안 하는 것일까. 나트륨이 건강의 적이라면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더욱 좋겠죠 ?  _  라는 친절한 해석 정도는 붙여야 하는 것 아닐까 ? 그리고 이 세상에서 비만을 방지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음식은 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래기 같은 내용을 읽고 있자니 헛웃음만 난다. 그래도.......   여러분은 김치는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to부정사(취급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니까. 우리 모두 합창합시다.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아 ~                                

이 귀한 보물을 일본이 " 기무치 " 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으니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열불 날 일이다. 김치 예찬론자이자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은 " 기무치 " 라는 명칭이 원조(한국)를 감추고 궁극에는 일본화하려는 고도의 개수작이라는 주장을 한다. 인도에서는 " 마샬라 " 라고 부르는 음식을 한국에서는 " 카레 " 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카레라는 명칭은 한국인의 개수작'일까 ?  원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그 나라 발음으로 발음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 오뎅 " 을 " 어묵 " 이라고 가르치는 것일까 ?  나는 한식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숭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식이 슬로푸드의 대명사이기에 건강식이라는 논조에 대한 반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삼겹살이 불판에서 익는 속도를 감안하면 삼겹살은 패스트푸드가 아닐까 ?  직장인으로 붐비는 식당에 앉자마자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것도 패스트푸드가 아닐까 ?  햄버거가 패스트푸드라면 삼겹살도 패스트푸드다. 또한 짜장면이 패스트푸드라면 김치찌개도 패스트푸드'다. 음식은 음식일 뿐이지 열등과 우등을 가르는 문화-리트머스紙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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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가 너무 과하면 타국 음식을 선호하는 개인의 취향을 짓밟는 경향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일본 음식 한 번 먹었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사람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1 09:11   좋아요 0 | URL
오죽 할 게 없으면 음식에서 민족주의를 찾습니까. 한심할 뿐입니다. 이러다 보니 이명박 때 우리의 김윤옥이 학식 세계화한다고 김치 칵테일이나 만들고...ㅎㅎ
 





나는 스타일을 신뢰한다

 

 

 

                                                                   스타일을 신뢰하는 편이다. 전자제품을 살 때에도 성능보다는 디자인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사람들은 치장(겉)을 보지 말고 마음 됨됨이(속)을 보라고 충고하지만 내 귀에 그런 소리는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마찬가지로 마음보다는 얼굴부터 보게 된다. 남진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_ 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개 풀 뜯어먹다가 어금니 빠지는 소리'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이 좋다. 그런데 " 스타일이 좋은 사람 " 에 대한 내 평가는 다른 이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스타일이 좋은 사람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스타일이 후진 사람부터 말하는 게 순리일 것 같다. 그해의 유행이나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롱 패딩이 유행인지 너나 할 것 없이 롱 패딩을 입고 다니는데 직립보행하는 애벌레 같다.  자기 깐에는 유행을 선도하는 나는야 패셔니스트 _ 라고 외치겠지만 글쎄올시다. 아이고, 시바. 모르것습니다.                   좋은 스타일의 핵심은 개성이지 몰개성이 아니지 않은가. 좋은 스타일은 개성과 조화의 합이다.

 

 

- ​나는 차별화된 개성에는 성공했지만 조화에는 실패했다. 스타일의 최대 적은 과잉이다


내 기준에 있어 가장 완벽한 스타일은 노숙자다.  은유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유머도 아니다.  노숙자야말로 가장 완벽한 패셔니스트다.  산발한 머리와 덧대어 입은 옷은 개성과 함께 조화롭다. 왜냐하면 노숙자가 옷을 입으면 그 어떤 컬러도 궁극에는 무채색의 모노가 되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노숙자의 외피는 통일성을 대표한다.  한때 나도 그들이 입는 스타일을 따라 한 적이 있으나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삼천포다. 지금부터가 서울로 가는 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의 핵심은 속이 아니라 겉이다.  그런데 입시용 시 교육은 온통 신체 해부에 열을 올린다.

나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서 시를 읽는다. 스타일이 후진 시'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시는 본질적으로 시옷을 입은 명조체의 세계이다. why ?  시라는 장르는 명조체라는 옷이 가장 잘 어울리니까. 그 사실을 무시하고 궁서체를 입히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지게 된다. 배우 조인성에게 모시 적삼을 입힌 꼴이다. 상상해 보라. 아이고, 시바. 잘 모르것습니다.                         스타일이 좋은 시가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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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5:4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좀 과합이다. 제 패션은 과잉이 넘쳐서 조금 아방가르드하게 되었습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1-1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셨음을 사진집(?)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6:12   좋아요 1 | URL
사진집이라니요... ㅎㅎㅎㅎㅎ 고맙습니다.

syo 2017-11-1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집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저 인물들이 전부 동일인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syo의 날카로운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5행 2열의 인물을 곰발님이라고 하면, 6행 6열의 인물은 곰곰발님, 7행 3열의 인물은 곰곰곰발님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유사하나 같지는 않은. 훗.

곰곰생각하는발 2017-11-20 10:59   좋아요 0 | URL
10년 넘게 세월의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
 
인간과 공간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 이기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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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모 르 게    꽃 게   :

 

 

 


 


니     은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존 호이헨 반 린쇼텐

 



유독 키가 컸던 남자는 고시원에 거주한 지 2년이 넘었다고 했다.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고시를 준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해진 계기는 " 거제도 " 였다.  나는 아는 형님을 따라 거제도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몽돌 해안, 고현, 외도, 해당화 군락, 고등어회나 멸치회 따위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폈다. 아름다운 사내였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내가 싱싱한 멸치는 설탕보다 더 다아아아아아아알짝지근하지 _ 라고 말하면 침을 삼키곤 했다. 어느 날 고시원이 열흘 동안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바람에 그 기간 동안 급히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아야 한다며 나에게 구조 요청을 했을 때 나는 흔쾌히 그에게 열흘 동안 내 방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방은 작아도 내 침대는 킹사이즈야 !                  다 큰 사내 둘이 킹사이즈 침대에 함께 눕는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가 내 집에 온 첫날부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그는...... 그러니까, 그게, 음, 그러니까, 좋다 !  민망하지만, 아아......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이 자리를 빌려 말하련다. 그는.......

잠버릇이 고약했다.  잠자리가 불편하여 한밤중에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 모서리 끝에서 침대 아래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반대로 객(客)은 침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중앙을 점령한 채 나를 변방으로 내쫓은 것은 아니었다. 몸은 침대 맨 끝 벽에 붙어 모로 누웠으나 다리가 침대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 니은(ㄴ) 자 자세 " 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뻐꾸기 둥지 밖으로 떨어진 나는 하는 수 없이 난방이 되지 않는 바닥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해야 했다(이른 봄이었는지 늦은 가을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그의 사나운 잠자리가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이래서 머리털 검은 것은 집 안에 들이는 게 아니라니까.                         평정심을 잃은 나는 그를 깨워 투덜대기 시작했다. 잠결에 타박을 들을 때마다 그는 바로 누워 다리를 쭉 뻗어 갈치가 되었지만 다시 깊은 잠에 빠지면 형상기억 섬유'처럼  이내 새우로 복원되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노량진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새롭게 단장했다는 고시원이 궁금하여 잠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그가 2년째 머무르고 있다는 고시원 객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쪽방 같은 고시원에서 산 경험이 있어서 고시원 환경을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친구가 머무는 방은 특이했다.

그 객실은...... " 니은(ㄴ) 자 방 " 이었다. 그가 머무는 방에는 공간의 1/4를 차지하는 사각형 건물 기둥이 방 모서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난 공간은 으레 주거 공간이 아닌 비품 창고로나 쓰이기 마련인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돈 욕심 때문에 객실로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그는 2년을 버틴 것이다. 그는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무안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 이 방이 살기는 불편해도 이 고시원에서 제일 싸요. 유난히 키가 컸던 그가 발을 뻗고 자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비로소 나는 그의 사나운 잠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니은 자 고시원 객실에서 ㄴ자 잠'을 청했던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모방한 그의 초라한 의태를 떠올리자 나는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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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제목 그대로 인간과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그가 풀어놓은 글감은 하이데거 철학 內-存在, In-sein 과 가스통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에서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 인간과 공간 >> 은 << 공간의 시학 >> 보다 읽을거리가 더 풍부하고 사유 또한 더 깊다(개인적 판단이다).  이를 두고 청출어람이라 하는가 보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 또한 그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보인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것은 서체와 문체가 맺는 관계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같은 시라 해도 돋음체로 인쇄된 것과 명조체로 인쇄된 것은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 서체가 때로는 문체를 만든다. 모든 시집은 명조체로 쓰여진다. 좋은 시는 명조체로 인쇄되었을 때 최적화된 시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명조체에 맞춰 시를 쓴다. 탓할 일은 아니다. 시는 명조체의 세계이니까. 거제도에서 상경한 그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공간을 꾸몄다기보다는 공간에 맞춰 자신을 인테리어한 경우'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꽃게 !   아, 농담이다.  이처럼 인간은 알게 모르게 공간의 영향을 받으며 사유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하이데거는 << 존재와 시간 >> 에서 " 현존재는 공간적이다 " 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은 살면서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방 > 이라는 공간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세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장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직장에서의 예의바른 태도는 불량해진다. 집은 직립을 허문다. 그리고 잠이 든다는 것은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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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1-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댁에 잘 들어가셨습니까? 막판에는 참 경황이 없었네요. 저는 다행히 막차를 잡아서 집에 잘 들어왔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9 10: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니까요. 시간이 간당간당했을 겁니다. 수다맨 님 차 놓치셨으면 같이 찜질방으로 데려가려 했었는데..
저는 뭐... 근처에서 갈비탕 한 그릇(정말 맛은 없더군요) 비우고 무사귀환했습니다. 사실 어제는 취하지 않았음..

담달에서 함 모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