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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 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옷 과 의 자 는 닮 은 점 이 많 다 :
롱 패 딩
우리는 겉모양새가 사실상 우리의 존재방식이다
가면이 곧 얼굴인 것이다
- 수전 손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주정뱅이 클럽 멤버들이 필동의 노포를 돌아다니며 술독에 빠져 있던 그날, 누군가는 새벽 2시부터 거리에 서서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이거, 실화냐 ? 느닷없이 찾아왔던 강추위를 생각한다면, 아아 ! 극한의 기다림이 아닐 수 없다. 아침 9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라이선스 상품인 `구스 롱 다운점퍼(일명 `평창 롱패딩`)을 구매하기 위해 오돌뼈도 아니면서 오돌오돌 떨었던 사람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영화 << 월드 워 z >> 에 나오는 좀비처럼 백화점 안으로 쏟아졌다고 한다. 몸에 맞는 사이즈를 구매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이 현상은 평창 올림픽에 대한 열기는 아니다(평창 올림픽 티켓은 절반도 못 팔렸다고 한다).
평창 롱패딩 가격이 시중에 유통되는 타 상품보다 싸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거리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했던 나이트클럽 삐끼 혹은 대리운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온성 때문에 입거나 운동선수들이 체온 유지를 위해 입던 기능성 운동복이 이제는 겨울철 생활복으로 바뀌었으니 제2의 노스페이스 사태'라 할 수 있다. 등골브레이커의 시작을 알린 노스페이스를 입은 학생들이 앵무새처럼 쏟아냈던 말이 예뻐서 입냐, 추워서 입지 _ 라는 변명이었는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이번 겨울에 롱패딩을 구입해서 입은 이들의 한결같은 소리도 예뻐서 입냐, 추워서 입지 _ 라는 소리'였다.
누가 보면 대한민국은 해발 3000 미터 아래 학교가 있고 영하 40도를 웃도는 북극 날씨여서 앞으로는 모르는 길을 묻기 위해 앞서 가는 양복 입은 신사의 어깨를 두드렸더니 팽귄이 고개를 돌렸다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하것어요, 니미. 나의 과격한 반응에 롱패딩-성애자가 이렇게 대꾸했다. 취존입니다아. 그는 취향과 유행을 같은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취향과 유행은 같은말이 아니라 반대말에 가깝다. < 유행 > 은 집단 내 포섭 욕망이고, < 취향 > 은 집단과의 결별과 차이를 뜻한다. 김경은 <<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재미있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대세를 따르는 행위는 취향이 아니라 유행이다. 유행은 몰개성적이며 무취향적이다. 롱패딩을 입고 거리를 자신 있게 워킹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직립보행하는 애벌레를 보고 있는 듯한 착시는 나의 눈병이 낳은 비극일까 ? 유행한다 싶으면 " 빠숑 레밍 " 처럼 달려드는 욕망을 볼 때마다 패션 파시즘을 연상케 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듯이 평창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기념상품인 롱패딩도 한철일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의 일인일옷(1인1옷)이었던 2002 월드컵 로고가 박힌 빨간 티셔츠를 아직까지 입고 있는 이 없고, 88올림픽 호돌이 기념 티셔츠 또한 그렇다. 이런 옷들은 대부분 과테말라에서나 빈티지스럽게 유통되고 있을 것이다.
이 상품은 디자인과 스타일 면에서도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가성비 측면에서도 형편없다. 가장 촌스러운 옷은 한때 졸라 유행했던 옷이다. 고가인 옷은 유행보다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옷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의자와 옷은 닮은 점이 많다. 디자인과 스타일이 뛰어난 의자일수록 불편하다. 예술사에 한 획을 긋는 의자는 대부분 불편하다. 옷도 마찬가지다. 의자와 옷은 앉았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어야 미학적으로 뛰어나다. 옷이 태도를 만든다. 편한 느낌은 자세를 망가뜨린다.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 디자인과 스타일이 뛰어난 복장은 몸에 불편하다.
그것을 견디줄 아는, 그 결핍을 충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멋쟁이가 된다. 그런 점에서 머리와 발목만 빼고 온몸을 감싼 롱패딩 패션은 실패한 스타일이다. 겨울철에는 따듯하게 보이는 옷보다 약간 춥게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이 멋있다. 입만 열면 명풍 타령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청바지 하나를 사도 몇 십만 원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봄에 입는 바람막이 옷도 백만 원을 주고 사 입는 녀석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는데 티셔츠를 청바지 안에 넣어 입는 것이었다. 내가 젊은 놈이 왜 티셔츠를 왜 바지 안에 넣어 입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잖아.
나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이고, 이 등딱아 ! 봄바람에 얼어죽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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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대기 ㅣ 스타일은 고가의 명품(재료)을 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네 건달이 금목걸이를 두른 채 백구두에 아르마니 정장을 입는다고 해서 우아해 보일 리는 없다.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 >> 을 20자로 줄이자면 이렇다 : 예술 하려면 돈이 좀 필요해 ! 어찌 보면 궁상맞기도 하고 속물 같기도 한 넋두리이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 >> 은 우아하다. 그는 궁상맞은 재료를 우아하게 포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예술가'다. 글을 쓰는 작가는 문체가 곧 스타일이다. 스타일이라는 낱말은 원래 글을 쓰는 도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양피지 위에 쓰여진 글이든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위에 쓰여진 글이든 중요한 것은 문체다.